크리스마스는 예수 탄생일 아니라 예수 탄생기념일
>> 예수님의 진짜 생년월일은 불분명
기원후를 뜻하는 A.D.(Anno Domini·주님의 해)는 예수의 탄생 연도를 기점으로 한다. 그에 따르면 예수는 서기 1년에 태어났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의 추적에 따르면 예수는 기원전 4년 이전에 태어났을 공산이 크다. 예수의 행적을 기록한 기독교 성경(신약)의 4대 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에는 구체적인 연도가 등장하지 않는다. 게다가 내용의 시점도 조금씩 어긋난다. 그중 예수의 탄생설화가 담긴 마태복음서와 누가복음서의 공통 기록은 헤로데 왕이 다스리던 시대라는 점이다. 유대왕국의 마지막 왕조를 개창한 헤로데 대왕의 재위 기간은 기원전 37~기원전 4년이다.
누가복음에는 예수가 복음을 펼치기 시작한 서른 살 즈음이 로마황제 티베리우스의 치세 15년에 해당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는 기원후 28년에 해당한다. 이에 따르면 예수는 기원전 2년 경 태어났다는 소리가 된다. 정확하지 않지만 현재의 기원후 1년보다 몇 년 앞서 태어났단 얘기다.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도 2012년 펴낸 ‘나자렛 예수 : 유년기’에서 ‘예수는 서기 1년보다 몇 해 전에 태어났다’고 분명히 밝혔다. 525년 교황 요한 1세의 지시에 따라 전례용 연도를 기산하는 기준으로 기원전(B.C.)과 기원후(A.D.)를 도입한 수도사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의 계산 착오로 예수의 탄생 연도가 앞당겨졌다는 것이다.
혼란을 배가한 것은 누가복음서다.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칙령에 의한 인구조사로 예수의 부모가 원적지인 베들레헴으로 갔다 예수를 마구간에서 낳았다는 내용이다. 아우구스투스의 인구조사는 기원후 6년에 이뤄졌다. 헤로데 대왕이 죽고 10년 뒤 일이라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학자들은 누가복음의 저자가 나사렛 출신 예수를 다윗왕의 혈통으로 그리고자 다윗의 출신지인 베들레헴과 예수를 연결시킨 창작으로 본다. 이를 종합해보면 예수는 기원전 4년 무렵 태어나 기원후 30년 무렵 처형당했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 크리스마스는 고대 종교의 복합물
그럼 12월 25일이란 날짜는 맞을까. 역시 아니다. 이날 예수 탄생을 기념하기 시작한 것은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공인한 313년 이후 23년 뒤인 336년부터다. 공식축일로 격상된 것은 379년부터다. 그 전까지는 오늘날 공현절(동방박사가 아기예수를 찾아온 날이자 예수가 세례를 받은 날)이라 부르는 1월 6일이 예수 탄생기념일이었다. 이것도 정확한 날짜는 아니다. 예수의 탄생일자가 정확히 언제인지는 사실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왜 12월 25일이 탄생기념일이 됐을까. 이는 고대의 시간 감각에서 가장 중요한 절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당시 로마제국이 채택한 율리우스력에서 12월 25일은 동지에 해당한다(1582년 그레고리력이 새로 제정되면서 동지는 12월 22일로 당겨졌다). 동지는 1년 중 가장 해가 짧은 날이다. 그래서 어둠이 짙은 날에 믿음, 소망, 사랑의 등불을 밝히고자 구세주가 도래했다고 받아들인 것이다.
이는 다른 가톨릭축일과 연계하면 더욱 뚜렷이 드러난다.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예수를 임신했음을 알려준 수태고지일은 당시 춘분에 해당하는 3월 25일이다. 또 누가복음서에 예수보다 6개월 앞서 잉태되고 태어났다고 전해지는 세례자 요한 탄생대축일은 당시 하지 즈음에 해당하는 6월 24일이다. 그럼 요한 탄생대축일은 왜 6월 25일이 아니고 6월 24일일까. 이에 대해선 ‘1월 첫날로부터 거꾸로 8번째 날’로 크리스마스를 규정한 전통에 입각해 ‘7월 첫날로부터 거꾸로 8번째 날’로 규정했는데, 12월은 31일까지 있지만 6월은 30일까지밖에 없어 6월 24일이 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는 3세기 활동한 초대교부 히폴리투스(170~235)가 설파한 내용이다. 히폴리투스는 수태고지가 있던 날이 춘분이고 그 9개월 뒤인 12월 25일 예수가 탄생했다면서 ‘1월 첫날로부터 거꾸로 8번째 날’이란 표현을 최초로 사용했다.
>> 수태고지일, 부활절 그리고 태양절
4세기 전까지 기독교 최대 축일은 부활절이었다.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날인 동시에 기록이 가장 정확하게 남아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복음서 기록에 따르면 예수가 처형된 날은 이집트인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를 피하고자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바른 것을 기념하는 유월절 첫날인 금요일이고 이틀 뒤인 일요일에 부활한다. 그래서 오늘날 부활절은 유대력에 입각한 유월절 이틀 뒤가 된다.
하지만 초창기 기독교에선 부활절이 곧 수태고지일인 3월 25일이었다. 이는 유대 전통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유대인은 선지자 또는 예언자가 잉태된 날에 죽음을 맞는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가 숨진 날 역시 성령으로 잉태된 3월 25일과 같은 날로 여겼다는 것이다. 히폴리투스가 그 9개월 뒤인 12월 25일을 예수 탄생일로 본 것 역시 그런 전통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12월 25일은 고대 로마에서 ‘정복되지 않는 태양’이란 뜻의 ‘솔 인빅투스’ 신의 기념일이었다. 이 신은 병사들의 신이기도 했는데, 병졸 출신으로 로마황제에 오른 아우렐리아누스에 의해 274년 로마의 국가 수호신이 된다. 아우렐리아누스는 그해 12월 25일 솔 인빅투스 신에게 바치는 신전을 로마에 세우면서 이날을 태양절로 선포한다.
이후 로마황제들이 솔 인빅투스를 자신들의 수호신으로 삼는 전통이 세워졌다.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가 321년 3월 7일부터 매 7일에 한 번 교회에 가는 예배일로 삼으며 그 날짜를 일요일(태양의 날)로 삼은 것 역시 태양신 숭배의 산물이었다.
이 때문에 336년 크리스마스가 공표된 것이 당시 기독교와 경쟁하던 미트라교(페르시아에서 기원한 태양신 미트라를 믿는 밀교)를 포함한 태양신 신앙을 대체·흡수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실제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영역을 떠나 유럽대륙 전체로 퍼져가는 과정에서 크리스마스가 동지와 연관된 다양한 이교도 축제를 흡수하게 된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크리스마스를 이교도적 축제로 단정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기독교의 뿌리가 되는 유대교 전통에 입각해 태양절 이전에 주창됐으며 기독교 전통인 수태고지일이나 부활절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의 생일’은 아니지만 그 탄생을 경축하는 오랜 전통의 기념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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