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교

In Search of Knowledge, Wisdom and Truth

아무나 따를 수 없는 설교자의 길

2009-08-13 2109
정장복

경건한 영적인 생활

부름받은 설교자가 그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남다른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 노력이 시들 때 소명받은 존재로서의 열기가 식게 된다. 소명받은 말씀의 종에게서 열기가 식어질 때 말씀은 생명력을 잃게 된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은총으로 주어진 소명을 받은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 각별한 땀과 눈물을 흘려야 한다.

첫번째로 요구되는 것이 소명의 주체이신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이다. 여기서의 영성이란 예언이나 치유나 방언을 추구하는 삶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으로서 그 형상의 회복을 목표로 하고 살아가는 한 인간의 삶을 말한다.

맑고 고결한 인간 회복을 위한 경건한 삶의 지속은 설교자에게 주어진 일차적인 삶의 양태이다. 이 삶은 설교자로서 하나님의 인도와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리고 말씀을 보고 깨달을 수 있는 눈과 마음을 갖게 하는 가장 소중한 지름길이다. 설교의 역사에 우뚝 솟은 설교의 거성들은 바로 이 경건한 영적인 삶을 튼튼히 가꾸고 키우면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성공적으로 가져왔다.

그러므로 지금도 설교 사역자는 자기를 부르신 주인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길이 언제나 시급하고, 이 일을 위하여 영적 생활을 충실히 실천해야 한다.

설교학자 드와이트 스티븐슨(Dwight Stevenson) 교수는 "설교자 자신이 외치고자 하는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서는 아무에게도 그 말씀을 외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이처럼 자신이 증거하고자 하는 한 편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하여 설교자가 얼마만큼의 뜨거운 영적 생활을 해야 하는가는 재론의 여지가 없는 중요한 문제이다.

초기의 한국교회 설교자들은 깊은 기도와 명상과 말씀의 묵상 속에서 경험한 거대한 영성의 위력을 소유하였고 그 힘을 기반으로 하여 황무지와 같은 이 땅에 복음의 활착(活着)을 가져왔다. 성화를 향한 설교자의 노력은 소명 받은 설교자의 당연한 과정이다. 이 단어를 단순한 교리적인 차원에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거룩한 영성을 이룩하려는 노력이다. 거룩한 길을 걷는 것은 설교자의 경건성을 확고히 하려는 지극히 힘든 과정이다.

여기에서 오늘의 교회는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그 이유는 현대가 맑은 정신의 세계보다 물질의 풍요에 휩싸여 모두가 헤어나오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거기에 설교 사역의 주역들도 함께 오염되어 버리는 현상이 너무나 흔하게 발견되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교자에게 있어서의 경건한 영적인 삶이란 자신의 내적 삶을 위한 영양을 공급받고 그 안에서 자신의 생명을 지속시키는 소중한 생명줄이다. 그러므로 설교자가 지속해야 하는 영성은 대중에게 보이기 위한 전시적인 것이 될 수 없고 하나님과 자신과의 개인적인 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지속되어야 한다. 설교자는 소명을 받은 순간부터 바쳐진 종으로서 남다른 생활이 계속되어야 하고, 주인과의 관계는 성실한 영적인 세계를 통해 교제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 지속성은 설교자의 끊임없는 기도 안에서 이룩되어야 한다. 존 웨슬리는 이러한 기도의 실태를 "당신은 영원한 영광의 광채이시니 나의 입이 소리 없이 당신에게 향하옵고 나의 침묵이 당신을 향해 말합니다"로 설명한다. 진정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나를 부르신 하나님 앞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아가는 삶이 설교자의 영성이 참으로 건실해지는 길이다.

어질고 신실한 인격인의 생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만이 완전한 인간이요, 완전한 신이라는 사실은 설교자들에게 깊은 의미를 더해 준다. 한 인간으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고 그의 사자로서 말씀을 전해야 하는 설교자는 분명히 남다르게 어질고 신실한 인격을 요구받게 된다.

현대의 설교자들은 자신도 설교를 듣는 사람과 동일한 인간인데 그들이 우러러볼 수 있는 인격을 소유해야 한다는 막중한 부담감을 느낀다. 그러나 어떤 경우도 설교자가 부끄러운 인격인으로서 강단에 서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 한국교회다.

거기에 더하여 설교자의 생활과 인격이 자신이 선포하는 메시지와 일치되지 않을 때 문제가 된다. 설교자가 그 메시지를 살아 있는 말씀으로 자신의 인격을 통해 승화시킬 수 없을 때 그 메시지는 회중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 여기서 바울의 고백은 한층 더 그 필요성을 우리에게 깨우쳐 주고 있다.

"내가 달음질하기를 방향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고전 9:27)"

설교를 통하여 선포한 메시지의 내용을 자신이 얼마나 믿고 실천하느냐에 따라 그 메시지를 듣는 사람들도 그 내용을 받아들이고 실천에 옮기게 된다. 예를 들어, 강단에서 선행을 외치는 설교자가 어느 정도 그 선행을 행동에 옮기느냐에 따라 그 진리의 실현 가능성을 진단할 수 있게 된다. 특별히 한국교회에서는 설교자의 언어와 행동과 마음가짐, 인격 등에 교인들이 지나칠 만큼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을 볼 때 설교자의 인격의 신실성은 참으로 중요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존 엘리슨(John Ellison)의 말처럼 설교자는 성실한 기독교인으로서, 종교지도자로서, 그리고 인격적 표준인으로서 자신을 보여 줘야 한다. 17세기 영국교회에 혜성처럼 나타났던 리처드 박스터(Richard Baxter)는 이 심각한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감명 깊은 말을 남겼다.

"여러분이 거룩하고 훌륭한 모습을 지닌다면 양떼들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기도와 찬양과 교리가 양떼들에게 훌륭하고 달콤하게 나타나면 양떼들은 여러분이 하나님과 함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나의 심령이 싸늘해지면 나의 설교도 싸늘해지며, 나의 심령이 혼돈되면 설교도 혼돈됩니다. 내 설교가 냉랭해질 때 내 양떼들이 냉랭해진 것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오 형제들이여! 그러므로 먼저 여러분 자신의 마음을 돌보시기 바랍니다. 정욕과 정열과 세상적인 경향으로부터 떠나십시오. 신앙과 사랑의 생활을 유지하십시오. 하나님과 함께 계십시오.

자신의 마음을 보살피고 부패를 극복하며 하나님과 함께 살기 위해 자신을 매일 보살피지 않는다면 모든 사람들은 잘못 인도되며 여러분의 양떼들은 굶어죽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남이 알지 못하는 기도와 묵상을 많이 하십시오. 거기에서 여러분의 제물을 태울 수 있는 하늘의 불을 얻게 될 것입니다."

학문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생활해야

설교자의 자격을 구비하는 데 절대적으로 요청되는 것은 학문을 계속해서 추구하는 자세다. 설교자가 한 손에 성경을, 다른 한 손에 신문을 들어야 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현대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해 주고 그 말씀을 삶의 자리에 적용시켜 줘야 할 설교자가 역사적인 것과 삶의 현장에 대한 정보의 수준이 너무 낮을 때 발생하는 잡다한 문제들을 우리는 흔히 본다. 설교자가 여기에 맹안을 가지고 있을 때 과연 하나님의 말씀이 기대한 것만큼 효과를 가져올 수있을까?

클라이드 팬트는 학문적 자세의 노력을 회피하는 설교자들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있다. 그는 "역사적인 말씀과 삶의 현장의 실제성이 말씀을 선포하는 한 인간 속에서 성육화돼야 한다"고말하면서 한 설교자의 설교 형태에서, 그리고 그가 선포하는 설교의 내용 속에서 설교자는 그 시대의 뒷전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고 역설한 바 있다.

특별히 한국인의 심성은 글을 사랑하는 선비 문화 속에서 형성됐다는 점에 오늘의 설교자는 깊은 관심을 둬야 한다. 현대의 회중은 자신들의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가 학문적 감각과 자세를 가지고 살아 주기를 바란다. 자신들은 TV 앞에서 즐거운 연속극이나 대중가요를 즐기면서도 설교자만은 언제나 독서로 시간을 보내고, 말씀을 연구하며 사려깊은 설교를 준비하길 원한다. 이러한 회중의 기대를 벗어나서 일상생활의 언어나 비천한 구어체가 변함없이 계속되는 말씀의 석의는 교인들로부터 실망 어린 눈길만을 얻을 뿐이다.

사실 바삐 움직이는 현대인들은 시간이 주어질 때 한 권의 책이라도 더 읽겠다는 생각보다는 자신들이 받아 온 긴장을 풀고 여가를 즐기려고 한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설교자만은 대신 책을 읽어 주고 자신들의 낡은 지성을 설교나 교육을 통해 채워주기를 바란다. 이러한 요구를 부담스럽게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서재를 떠나기 쉬운 설교자에게 있어서는 다행스러운 기대라고 여길 필요가 있다.

생각하면 설교자가 학문을 즐기는 자세 속에서 오늘의 말씀을 진지하게 연구하고 모자란 자신의 실력을 계속해서 연마해야 함은 회피할 수 없는 책임이요, 의무다. 한때 한국교회의 보수신학자로 신학교육에 오랫동안 영향을 끼쳤던 박형룡은 그의 신학교육의 이념으로 "인간이 되시오. 신자가 되시오. 학자가 되시오. 목사가 되시오"라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교육의 이념은 오늘도 충분히 수용될 수 있는 좋은 충고라고 여겨진다.

설교자가 전해야 할 메시지는 단순한 감정의 이입이 아니라 이성을 통해 접촉되고 수용될 수 있는 올바른 전달의 과정을 밟아야 한다. 이럴 때의 이성은 단순한 일상생활의 대화의 수준을 벗어나서 좀더 진지하고 깊이있는, 그리고 사려깊은 것이 돼야 한다. 그러므로 설교사역의 주역들은 학문하는 자세와 노력 속에 그 생을 다해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의 말씀은 설교자 속에서 성육화되고, 동시에 현대인들의 눈과 귀, 그리고 마음 속 깊은 자리로 파고들어 가는 힘을 발휘할 수 있다.

source : 1300000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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