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한테도 전도... 기독교인들조차 "과하면 역효과"
도 넘은 지하철 포교 활동... 지하철 종교 관련 민원, 지난해 수천 건 접수
지난 겨울 어느날, 오후 3시께 지하철 1호선 전동차 안. 승객들의 시선이 한 남성에 쏠렸다. 성경책을 들고 탑승한 50대 남성은 매우 낮은 목소리로 "주 예수를 믿으라"는 말을 반복했다. 승객들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그는 좌석에 앉아 있는 한 무리의 고등학생들 앞에 서서는 "너희들 예수님 믿어야 한다"며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학생들은 "네, 믿어요. 나 자신을…"이라며 장난으로 맞받아쳤고, 남성은 민망한 표정으로 자리를 떠났다.
지하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지하철은 종교 포교를 하려는 이에게 최적의 장소로 꼽힌다. 물론 물건을 판매하는 행위나 포교 활동 등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은 지하철에서 금지돼 있으나 일부 사람들은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지하철에서 포교하는 모습은 인터넷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네이버의 한 블로거가 지난 3월 17일 올린 동영상엔 기독교인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스님(추정)을 상대로 전도를 시도하는 모습이 담겼다. 여성은 좌석에 앉은 스님 앞에 서서 전도용 문구가 적힌 것으로 보이는 카드를 내밀고 말을 걸었다. 그의 목소리는 설득을 위한 설교라기보단 위협에 가까웠다.
"하나님의 권세보다 높아요? 감히. 하나님 권세에 대적하지 마십시오. 생명은 하나입니다. 젊으신데 지옥 가는 문 잘 갈아타십시오. 작년 1년 동안에 스님을 106명 전도했고 오늘 다섯 번째 전합니다. 예수님 믿고 복 받으세요. 불쌍해서 전도하는 겁니다. 누가 스님을 전도해요?"
스님은 웃으며 손사래를 쳤으나 여성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쏘아붙였다. 이 동영상엔 '지하철에서 스님한테 전도하는 개독 아줌마'라는 제목이 달렸다.
"싫은데 자꾸 강요하니... 그걸 듣고 교회 가는 사람 있을까"
좁은 장소인 지하철에서의 포교는 이용객들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다. 불특정 다수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과정에서 통행에 지장을 주거나 소음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포교 내용 자체도 문제다. 일부는 비종교인이나 타종교인이 듣기에 매우 거북하거나 불쾌한 표현으로 교리를 전하는 경우가 있다.
실제 불편을 호소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서울메트로(1~4호선) 관계자는 지난 9일 "2012년 서울메트로 고객센터에 접수된 민원은 총 45만4950건이며, 그중 종교 전도자 관련 민원은 1627건으로 약 0.4%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도시철도공사(5~8호선)의 경우 지난해 총 민원 20만 7006건 중 종교 관련 민원은 2077건을 차지했다.
그렇다면 시민은 지하철 포교를 어떻게 생각할까. 목소리는 다양했지만, 대체로 비판적인 시각을 보였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정도의 포교는 종교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로 용인될 수 있는 수준을 넘었다는 것이다. 일부 비종교인의 경우 "오히려 반감이 든다"는 견해를 보이기도 했다. 지난 5일~9일 사이 여러 지하철역에서 만난 대다수 시민들의 의견도 부정적이었다.
기독교인인 정아무개(27·수원시 정자동)씨는 "어떤 종교든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옳지 않다"며 "비기독교인에게 (기독교에 대한) 안 좋은 이미지를 갖게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비종교인인 유선필(23·관악구 대학동)씨는 지하철 포교에 대해 "반감만 더 생긴다"고 일침을 놨다. 그는 "싫은데 자꾸 강요를 하니까 교회에 다니고 싶은 생각보다는 '또 왜 그래' 하는 생각이 든다"며 "그걸 듣고 교회에 가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고 꼬집었다.
10년 전부터 교회에 출석했다는 전병환(67)씨도 남에게 피해를 줄 정도의 지나친 포교는 지양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는 "포교 내용이 과장된 경우도 역효과를 낼 수 있다"며 "조용히 봉사활동을 하시는 분들이 오히려 비종교인에게 좋은 이미지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자성(23·노원구 월계동)씨 역시 "지하철을 타다 보면 포교하는 분들이 가끔 눈에 띄는데, 비종교인이 보기엔 좀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김아무개 교수는 "진정한 민주주의 국민이라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자유의사를 표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포교 활동이 문제라면, 플래시몹도 문제"
반면 포교 활동을 옹호하는 의견도 있었다. 기독교인 안재형(27)씨는 "사람의 통행을 막거나 고음을 내는 정도만 아니라면 표현의 수단으로 인정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순수한 의도라면 나쁘지는 않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안씨는 "포교 활동이 문제라면 길거리 '플래시몹'도 문제가 되는 것 아니냐"며 "오히려 그걸 듣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고 반박했다.
지하철은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곳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정도의 포교 활동이라면 그 내용을 떠나 환영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그 내용마저 타종교인과 비종교인에게 배타적이거나 불쾌감을 주는 정도라면 오히려 반감을 심어줄 수도 있다. 무언가를 전하기 전에 먼저 공공질서를 지키고 타인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게 순리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