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우리 손에 쥐이기까지의 역사 .. [1]
윌리엄 틴데일의 피 묻은 성경
우리가 읽고 있는 성경은 세상에서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된 책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500년 전만 해도 이것은 꿈도 꿀 수 없던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유럽에는 4세기에 제롬(Jerome)에 의해 라틴어로 번역된 성경만 사용되어 성직자들과 일부 학자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성경을 읽고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독일의 마틴 루터와 같이 영국의 위대한 종교개혁가 윌리엄 틴데일(William Tyndale c.1495-1536)도 모든 평신도들이 성경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기 위해 영어로 성경이 번역되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합니다.
하지만 그는 이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대가로 지불해야만 했습니다.
그는 마침내 42세의 젊은 나이에 벨기에의 빌보드(Vilvoorde)에서 순교의 제물이 됩니다.
벨기에에서 사역하는 필자는 틴데일이 빌보드에서 순교한 사실을 발견하고 더욱 그의 생애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틴데일은 영국의 명문인 맥댈런·옥스퍼드·케임브리지대학에서 수학했습니다.
그는 외국어 실력이 탁월하여 모국어인 영어 외에 불어·독일어·이태리어·라틴어·스페인어 그리고 헬라어와 히브리어에 능통하여 원어 성경을 읽으며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이 은혜를 일반 성도들도 받을 수 있도록 성경을 번역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당시 영국 국왕인 헨리8세는 이것을 금지하였고 가톨릭 고위 성직자들도 반대하였습니다.
하지만 틴데일은 이에 굴하지 않고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신다면 쟁기를 가는 소년이 당신들보다 더 성경을 알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If God spare my life, ere many years, I will cause a boy that driveth the plow to know more of the Scriptures than thou dost.)
하지만 상황이 악화되자 결국 틴데일은 루터의 영향을 받아 비교적 개신교에 관용적이던 독일의 함부르크와 비텐베르크로 건너갑니다.
그러나 영국 가톨릭 주교들은 그곳까지 첩자들을 파송하여 그의 성경 번역과 출판을 계속 방해하였습니다.
그렇지만 틴데일은 이에 굴하지 않고 루터의 도움을 받아 계속 번역한 후 다시 쾰른으로 옮겨 최초의 영문판 신약성경 번역을 완성하여 마침내 1525년에 출판합니다.
그러나 한 인쇄공이 이것을 밀고하자 신변에 위협을 느낀 틴데일은 다시 보름스(Worms)로 피신하였습니다.
그는 거기에서 다시 영문 신약성경 3,000부를 출판하여 비밀리에 영국으로 반입하는 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그 성경들 중 발각된 것은 즉시 불태워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성경이 계속 반입되어 나중에는 관리들도 그것을 막을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가 됩니다.
그때 인쇄된 것은 모두 18,000부였으며 그중 2부가 대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후 틴데일은 1529년부터 벨기에의 항구도시인 안트베르펜으로 이주하여 그곳에 머물면서 1534년 신약성경 개정 번역판을 냈으며, 이어 구약성경 번역에도 착수하여 2년 후 모세오경과 요나서가 출판됩니다.
하지만 여호수아와 역대하를 번역했을 때, 그의 친구였으나, 실제로는 스파이였던 헨리 필립스에 의해 배신당해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브뤼셀 근처 빌보드 성에 있던 감옥에 투옥됩니다.
당시 그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탈옥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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