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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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당은 성전이 아닙니다 .. [3]

2010-01-08 1929
Sundance

5) 교회의 본질

신약성경은 교회라는 개념을 나타낼 때 '에클레시아'란 말을 사용합니다. 이 단어는 'kaleo' 즉 '~으로 부르다'와 'ek' 즉 '밖으로부터'에서 취해진 합성어입니다. 그것은 '~로부터 불러 낸 자'(to call out from)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서 교회는 단순히 세상으로부터 불러낸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로 나아오도록 불러내었다는 뜻입니다.

그 부름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게끔 하는데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도록 세상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마땅히 순종해야 할 백성이 교회라면 교회는 세계 선교라는 주님의 명령을 받들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교회를,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공동체로 인도하시며 우리를 그 안에 있게 하시려는 외적인 은혜의 수단"이라고 그 본질을 말한다. 교회는 사람들에게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도록 주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교회는 무엇이며,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를 본질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교회 론은 철저하게 성경으로부터 정의되고 정립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 이론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세워 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 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사도들을 세상에 보내시고 그들의 터 위에 그의 몸 된 교회를 세우셨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엡 2:20)

초대교회의 시작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구속사역을 다 이루시고 부활하신 다음 그의 제자들이 그 부활 사건을 증거 하면서부터였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하나님 나라가 다가오고 있다는 기대와 예수님이 영광중에 다시 재림하실 소망을 안고 한 자리에 모이면서부터 교회는 존재하기 시작하였다.

사도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처음으로 목격하였던 증인으로서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증거 하기 위해 보냄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교회는 이 사도들의 증거와 사역 위에 세워졌다. 사도는 교회의 시작이며 영구한 기초석이 되었다. 이런 근거에서 교회는 사도적인 것이다. 교회가 사도 적이라는 말은 사도 성을 그 본질로 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한스 큉에 의하면 이 사도성은 교회의 본질을 결정하는 다른 모든 속성 즉 다양성 중에 통일성, 개체성 중의 보편성, 죄 성 중의 거룩 성, 가운데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그래서 교회가 사도적인가의 여부에 따라 그것이 성경적인 교회인가의 여부를 결정된다고 보는 것이다. 어느 정도로 교회가 하나 되고 거룩하고 보편적일 수 있는가? 참된 통일성, 거룩 성, 보편성을 가지고 있는가에 있지 않고, 그것이 과연 사도들의 터 위에 세워져 있는가 하는데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그 교회가 사도 적인가 하는데 있다."


6) 교회란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은 교회를 십자가 종탑이 있는 건물로 생각합니다. 그러한 건물은 교회라는 말보다는 예배당이라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참 의미는 무엇일까요?

(고전 1: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이처럼 엄밀한 의미에서 교회란 거룩한 성도들 혹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과 그 단체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와야 하는 이유도 바로 거룩한 성도, 즉 거룩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교회란
1> 주의 백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2>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3> 구원받은 사람들의 단체입니다.
4> 세상에서 불러낸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입니다.

교회=(헬)에클+레시아=밖에서(세상) + 불러내다


그러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교회는 건물이나 눈에 보이는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그 안에 존재하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단순히 교회에 나온다고 해서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불신자들이 볼 때 때때로 교회에 나오는 교인들 중에서 위선자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도 교회에 나오는 교인들이 아직 참된 교회로 변화하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7) 교회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교회입니다.(빌레몬서 1장2절 참조) 예수님이 오시기전엔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가 교회였으나 예수님이 오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후부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교회이며, 주위에 보이는 건물은 교회들이 모여 예배드리는 장소, 건물인 것입니다. 교회들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습과 하나님과 교재 하는 방식이 서로 다릅니다. 하나님은 광대하시기에 그 광대하신 하나님을 더 알기 위해 그리고, 주일성수를 위해 교회들이 한자리에 모여 하나님을 더 아름답고 영화롭게 하기위해 모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전을 재건하는 사람들입니다. 범죄로 깨어진 성전을 다시 건축하는 신령한 건축가들입니다. 그 일은 바로 내 믿음의 순금등대에 불을 붙이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가 거룩한 성전으로 재건될 때, 나의 앞날을 밝히는 소망의 등불이 밝혀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배당은 단지 편의시설일 뿐, 교회도 성전도 아니다.
교회와 예배당은 전혀 별개의 것입니다.

교회란 그리스도를 영접한, 신앙을 고백한 사람들, 신앙의 공동체를 두고 한 말이며, 예배당은 그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장소에 불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장소를 특정 건물로 만들고, 그 장소를 신당이나 혹은 무슨 사원처럼 꾸며놓고, 그 건물 혹은 장소에 교회라는 간판을 내걸고, 성직자를 구별해 따로 세우고, 하나님께 예물(헌금)을 바치게 함으로 그곳이(장소) 당당한 교회로 인식이 되게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교회라 하면, 일단은 건물을 교회로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교회의 60년대만 해도 예배장소에 예배당이라고 간판을 써 붙인 교회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때 부터인가 건물에 교회란 간판을 부착한 교회들이 늘어났고, 지금은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되어버렸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신자나 불신자를 막론하고 교회라고 했을 때, 건물을 교회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곳(장소)에 나가는 사람을 교회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은 그 교회 교인 혹은 그 교회 성도, 그 교회 집사, 권사, 장로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성도, 즉 교회를 위해 예배당(장소)이 필요한 것이었지만, 지금은 예배당을 위해, 성도(교회)가 필요한 결과가 된 것입니다. 주께서 피 흘려 사신 교회, 주께서 피 흘려 부여하신 왕 같은 제사장의 신분을, 건물에 빼앗긴 채, 건물의 노예처럼 살아가는 오늘의 처지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이것은 예배당을 성전이라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또는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처소, 혹은 예배당과 교회를 혼동한 체 열심만 갖고 사는 사람들이 만든 것입니다.

만약, 예배당을 때려 부수고, 사슬에 묶인 하나님의 백성들을 해방시켜야 한다고 한다면, 어떤 사람들이 제일 먼저 반대하고 나설까요? 그것은 신앙심이 투철하다고 자랑삼는 소위 보수주의를 주장하는 분들이 앞장 설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됩니다. 과거 미국의 역사를 보면 그랬습니다. 흑인 노예 해방을 하자고 했을 때 가장 첨예하게 반대했던 사람들이 보수주의 미국남부교회 사람들이였다는 사실이 증명해주고 있는 것을 봐서입니다.

그래서 참 교회(사람)는 예배당을 섬기는 노예(?)가 되어, 가족을 돌보고, 이웃을 돌보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삶보다는 예배당(건물)을 섬기는 것이 우선 되어야, 믿음이 좋은 사람으로 착각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런 경우를 주객이 전도(主客顚倒)되었다고 말하는 것 아닙니까? 왜 이런 현상이 되었을까? 그것은 교회당과 교회를 혼동하기 때문이랄 수 있고, 동시에 교회 공동체란 한계설정을 잘못 이해한데서 비롯된 현상일 수 있습니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지만 일부 목사님들 중에는 그 장소를 "성전" 혹은 "하나님의 집"이라고 성도들에게 인식을 시키고, 그 건물을 아름답게 건축하게 하고, 경건하게 하고, 소중하게 인식을 시켜, 교회당을 위해 아낌없이 봉사하게 만듭니다. 이와 같은 일은, 신당(神堂)에 신을 모시고 사는 이방 종교인들이 행하는 짓을, 성령과 함께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르쳐 어둠의 자식들이 되게 했다는 것이 심각한 오늘의 현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종교와 기독교가 다른 것은 우리 자신들이 곧 교회라는 것이 다른 것입니다. 이방 신은 신당에 모셔두고 신당을 찾아 섬기지만, 크리스천은 우리 몸에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몸을 성전이라 한 것입니다.(고전 3:16, 6:19; 고후6:16)

이 소중한 일을 위해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셨고, 성령이 강림하신 것입니다. 이 엄청난 사건을 왜곡해서 예배당을 교회로 둔갑시키는 오류를 만들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렇게 된 것은 신당문화의 영향과 성직자(목사)들이 은연중에 자신들을 사제(司祭) 혹은 제사장이나 승려와 같은 중재자의 신분을 취하려하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피 흘려 사신바 된 주의 백성(참 교회)들이 교회당이란 곳에 묶여, 목사 한 사람의 왕국을 위해서 혹은 목사기업 기능을 위해서 충성 봉사를 다 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흑암권세의 포로들이 된 것으로 봐야합니다. 교회당에 빼앗긴 왕 같은 제사장의 신분들을 신자(교회) 각 사람에게 되돌려 주어야 하고, 그 신분이 각 사람에게서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게 되는 날이 참 교회가 회복되는 날이라 할 수 있을 것이요, 주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루터의 만인 제사장설의 주장을 한번쯤 되새겨 보면서, 오늘의 신자들의 처지를 가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개혁자들은 중세교회를 두고, 사탄의회란 말을 했습니다. 사탄의 집단에 불과한 중세 교회를 떠나 개혁교회를 출발시켰지만, 지금의 교회 상황은 중세 카톨릭보다도 더 사탄의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면, 반드시 개혁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약시대의 성전에 관한 인식문제는 개혁의 중심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신앙이 성전이란 이름에 모아지고, 문제의 발생도 성전이란 이름에서 출발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성전이라 말한 것은 가시적 혹은 영적인 것을 포함한 성전 전체 개념에 관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46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일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르켜 말씀하신 것이라"(요 2:19-21)

여기서 "성전 된 자기 육체"란 말씀이 나옵니다. 이 말씀은 예루살렘 성전은 그리스도의 모형이란 것을 확인시킨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미 구약은 그리스도의 모형, 그림자, 비유, 등으로 설명 된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실 유대인들이 자기생명처럼 소중하게 여긴 것, 세 가지가 있는데 그 첫째가 안식일, 둘째가 법궤, 셋째가 성전이라 합니다. 그렇게 소중하게 여긴 실체는 사실 그리스도를 가리킨 모형에 불과한 것들이었습니다.

"내가 안식일의 주인이다"(눅 6:5)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요 1:14 / 법궤는 말씀)
"성전 된 자기 육체"(요 2:21; 계 21:22)

이와 같이 예루살렘 성전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셨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예루살렘 성전은 폐기되고(성전 휘장이 갈라져 버리고),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몸으로 성전을 완성하신(다시 일으킨)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시대의 성전은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사실 교회 개혁을 말하게 된 것은 땅에 다시 성전들이 등장하게 되고, 그 성전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예수이름으로 포장된 신종 율법의 노예로 전락되어 땅의 건물(성전)을 섬기는 자들이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이야 그런 교회가 없겠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자 분들은 강단에 올라갈 수 없다고, 교회법으로 정한 교단들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교회들이 있을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예배당은 하나님의 집(성전)이란 의식 때문이죠. 이 같은 의식을 가진 분들의 생각은 그와 같은 것이 가장 믿음이 좋은 행위라고 믿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혹 지금도 예배당을 신성시하거나, 신자들에게 하나님의 처소나 집처럼 인식을 시키려 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 일은 하루속히 중단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께 범죄 행위요, 하나님나라의 반역행위요, 주께서 피 흘려 진리로 자유케 한 백성들로 종교(성전)의 노예가 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행위는 그리스도의 값진 피 흘리심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행위가 되기 때문에 더욱 심각한 것입니다.

우리는 광야에서의 성막은 하나님의 임시 임재 처소였다는 것을 압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성막을 대신해서 지어진 것이고,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 처소란 점에서 성전이란 말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 성전이 그리스도의 몸에서 성취된 것이고,(요2:21) 성전 되신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그분의 영(갈 4:6)이 오순절 성령으로 강림 하셨는데, 그 영(성령)이 임한 곳이 곧 성전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순절 성령 강림은 어디로 임하셨는가? 사도행전 2장17절에서 요엘,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 "모든 육체에" 부어준 것이라 증거 함으로, 믿는 자의 몸(마음)에 임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갈4:6) 그래서 바울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 하느뇨"(고전3:16) 하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시대의 성전은 성령이 임하신 믿는 자의 각 사람의 몸이 성전이 된 것입니다. 목사님들이 예배당을 지어놓고, 혹은 지으려 하면서 성전이란 말을 공공연히 드러내 놓고 말하게 되면, 순진하기만한 신자들은 그것을 그대로 믿게 됩니다. 이 일은, 아무리 주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목사 노릇을 한다 해도, 그들은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요, 주께로부터 부인(否認)되는 존재가 되고 맙니다.(마7:22-23) 일개 건축물에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들먹이며 성전 운운하는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닌 것입니다. 이 일은 하나님의 이름과 관계된 일이며, 수많은 영혼들을 어둠으로 이끄는데 그 사안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거짓을 가르쳐 아름다운 교회당을 짓고, 사람들을 수만 명, 수십 만 명을 모은다고 해서, 하나님 앞에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는 아무런 유익이 없을 뿐만 아니라, 범죄 행위가 될 뿐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으로 무엇인가를 대단히 거창하게 하기를 원하심이 아니요, 비록 사람들 보기엔 초라해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기를 원하시는 분이란 것을 분명히 인식했으면 합니다.(마7:21, 마25:34-40)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생명을 버리신 것도 사람을 (성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예배당의 조직이나 제도 건물을 구원하지 않습니다.

- 끝 -

source : 1300000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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