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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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당은 성전이 아닙니다 .. [2]

2010-01-08 1817
Sundance

2) 우리 자신이 성전입니다.


성전보다 더 크신 분(마12:6)이신 예수께서는 왜? 성전을 허무시고(행6:14) 또 왜? 우리를 하나님께서 친히 거하실 성전으로 삼으셨을까요?(요2:21, 고전3:16) 구약에서의 하나님은 사람과 멀리 떨어져 계신 분이셨습니다. 이사야의 표현을 빌리자면 "숨어계신 하나님"(사45:15)이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처소 (Habitation of God)는 (거주지 혹 임재장소)

▶① 성막(Tent)에서
▶② 성전으로 (Temple)
▶③ 인간의 육체로 변해왔습니다.
하박국 2:20절 에서 ☞고전 3장 16절이 된 것입니다.

(하박국 2:20)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고전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하나님께서는 모형과 그림자에 지나지 않았던 구약의 건물성전을 인간의 몸으로 완성시키신 것입니다. 지구상에서 단 하나뿐이어야 했던 "건물성전"에서 행해지던 제사장직과, 희생제도는 이미 지나간 것이며 장막의 모형도 십자가에 의해 실체로 완성 되었습니다.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렘7:4)는 새 계약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성령은 "모든 육체에 임하시며"(행 2:17)"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자신이)"(행4:21) 영(Spirits)과 진리(Truth)로 아버지께 예배하게 된 것입니다."(요4:24)

"너희가(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3:16)고 사도바울은 반문하며, 이 중요한 사실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의문(문서 법)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엡2:15)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고후3:6) 이제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벽돌로 지어진 건물(교회당이나 건물성전)에 임하시지 않으며 오직 사람 안에 거하시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 안에 계시는 하나님 다시 말하면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 (갈 2:20)가 실제와 사실로써 체험되지 않는 믿음이란 부질없는 말(입술)만의 믿음이요, 공허한 이론(지식)에 불과합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듣고, 나는 저희를 알며"(요10:27)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그 마음 문을 열면 그에게도 들어가" 그와 함께 거하시겠다고(계3:20) 주 예수께서는 직접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사도 바울 역시 자기 자신이 산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 2:20) 고백하게 됩니다. 바로 이런 관계가 기독교 믿음의 핵심이며 또, 사람 자신(개인)이 곧, 성전이 되고, 교회가 되는 이유입니다.

(몬1:2)
및 자매 압비아와 및 우리와 함께 군사 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게 편지하노니

(롬 16:5)
저의 교회에게도 문안하라 나의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저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익은 열매니라

(고전 16:19)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및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교회, 또는 성전은 오직 사람들을 말하며, 교회는 선택된(chosen), 순례하는 (pilgrim), 계약의(covenant) 증거 하는(witness), 거룩한(holy)백성들입니다. 제가 이런 사실을 재차 강조하며 중요시하는 이유는 우리가 주의 몸 된 교회가 무엇인지 똑바로 알게 될 때 비로소 주의 몸 된 교회를 위하고 하나님께 충성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 핵심을 정확히 파악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너무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참 진리를 모른 채 고전 3장11절~15 말씀처럼 금이나 은이 아닌 낡아지고 태워지고 무너져갈 (나무나 풀이나 짚 같은 헛된 공력으로) 믿음의 집을 짓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은 정말 가슴 아픈 일입니다.

(고전 3:11-15)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3) 교회건물을 성전이라 부르지 마세요.

교회건물과 교회라는 의미는 다릅니다. 교회 건물을 성전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이미 칼빈이 "기독교 강요"에서 밝힌 내용입니다. 그 당시 권력 화되고 건물을 신성시하는 카톨릭이 성경에도 없는 개념을 넣는 것을 경계해서 분명히 밝힌 내용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런 용어가 교회의 큰 건물이라는 겉모양을 자랑하는 인간의 못된 심성을 따라 다시 생긴다는 것은 중세시대개념으로 돌아가는 시대 퇴보적 가치관입니다. 그래서 우리라도 용어를 바로 써야겠습니다.

교회의 본래 의미는 "하나님의 부름 받은 백성"(에클레시아), 즉 건물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교회건물이라는 것은 우리가 공동체적 신앙을 같이 합력하기 위한 공적이면서 부수적인 도구이지, 그 자체가 공동체나 성전이 아닙니다. 구약의 성전은 신앙의 본질에 대한 실체가 아니라 모형이요, 그림자 적 역할을 한 것입니다. 교회를 구약의 물리적인 성전과 동일시하면, 우리는 아직도 그런 구약의 희생제사와 제사장을 똑같이 세우고 제사해야 합니다.

신약에서는 그 성전과 희생제사의 실체가 예수그리스도라고 하고 있습니다. 성전은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면서 또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을 상징한다는 것이 신약의 기본원리입니다.(요 2:21, 계 21:11 고전 3:16)
교회건물은 성전이 아니라, 공적인 예배와 모임, 성례의 집행 장소로써의 부수적인 도구로 쓰일 뿐입니다.

지금 성전은 우리 신자 자신이죠. 즉 크리스천입니다.즉, 물리적 성전은 사도시대 이후로 신약에선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것이 영적인 의미로 상징화나 더 풍성히 승화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큰 성전을 가지고 자랑하는 유대인들과 제자들에게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무너진다고 했습니다.(마24:1-2) 그것은 유대인들의 종교적 위선을 고발하면서 동시에 이제는 물리적 건물로써의 성전이 아니라,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자신이 성전이 되는 본질적 성전이 세워진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그것을 잘 나타내는 사건이 AD70년 로마 디도장군의 예루살렘함락과 더불어 된 성전 무너짐입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의 죄악에 대한 심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제는 구약 적 물리적 성전의 시대가 공식적으로 끝났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은 성전건물을 통해 보이는 것을 중시하는 인간의 사고를 경계하고 있습니다.(사 66:1 행 7:48, 17:24) 솔로몬도 성전을 지으면서도 그런 것을 백성들에게 경계시키고 있습니다.(왕상 8:27-49)

그리고 사실 초대교회 때 핍박 받을 때 권력자들의 핍박을 피해 소규모의 가정규모의 교회들이 있거나, 여러 군데 동굴을 파놓고 군인들을 피해 여러 군데 도망 다니면서 예배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그런 교회모습은 물리적 성전과는 확실히 거리가 멉니다. 지금 너무 겉 숫자만 늘어서 건물가지고 성전이라고 자랑하는 사역자들이 바로 유대인들이 범했던 우를 똑같이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건물 속에서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이 모여서 예배하면 하나님의 임재가 있겠지만, 그것이 건물자체에 성스러움이 있어서 성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내주하는 신자들이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4) 내 몸이 성전이라

(고전 3:16-17)>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 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성전 안에 있는 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또 성전이 된 내 몸의 모습은 어떤 상태이어야 하는가? 우리 몸은 어떤 몸인가?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일상 사석 같은 자리에서 똥내 나는 몸으로 예배드리지 말라고 합니다. 하시면서 모세당시 레위지파가 제사장직을 맡을 때 몸 상태를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사사 이후부터 제사장직무를 맡은 레위지파들은 철저하게 제사장 본연의 임무를 직무유기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레위를 으뜸이라고까지 했습니다.(대상 9:34) 제사장 직이 얼마나 중요한가 말해주는 한 대목이기도합니다. 글쎄 레위가 제사장직은 고사하고 싸움질하는 전쟁 놀음에 앞장섰다는 것입니다. (대상12:26-28) 이런 몰지각한 레위지파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는 바로 나왔습니다.

(대상 13:10)>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듦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치시매 그가 거기 하나님 앞에서 죽으니라


이것이 개인을 향해서 치신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오늘날 성경을 보는 많은 제사장들이 있습니다. 내가 제사장인데 도대체 나는 하나님의 율법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성전 된 내 몸을 도대체 얼마나 관리하고 있는지 그런 성전(법궤)앞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다윗처럼 춤을 추고 있는 것은 아닌지...

(대상 13:8)>
다윗과 이스라엘 온 무리는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하여 뛰놀며 노래하며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제금과 나팔로 주악 하니라


이후에 웃사가 죽고 베레스 웃사가 되지 않았습니까? 요시야 왕 때 제사장 힐기야가 성전 보수하면서 율법 책을 발견합니다. 요시야 왕은 율법 책의 말을 듣자 옷을 찢으니라, 고 했습니다. 그리고 요시야 왕 18년에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왕하 23:22)>
사사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대부터 이스라엘 여러 왕의 시대와 유다 여러 왕의 시대에 이렇게 유월절을 지킨 일이 없었더니

요시야 왕이 어떤 사람이었느냐?

(왕하 23:25)>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향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 임금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마음뿐이 아니고 보이는 내 육신도 깨끗이 하라는 말씀, 마음뿐이 아니고 보이는 내 행실도 깨끗이 하라는 말씀, 우리의 모든 생활이 사람의 행실이 아니고 짐승의 행실이 나올 때 나 자신은 모릅니다. 성경이란 거울을 통해서만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세상은 철저하게 사단이라는 또 하나의 거울을 통해서 우리의 진실을 거짓으로 바꾸어 놓게 만드니까 사도 바울 조차도 이런 현실 속에서 고통스럽게 외치는 한마디를 하십니다.

(롬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하나님은 오직 마음이 성전으로 거룩하게 구별된 심령에게만 거하십니다.

오직 성전으로 거룩하게 구별된 심령만이 하나님의 처소입니다.(고전 3:16, 6:19; 고후 6:16)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의 행복이 있어야합니다. 복의 개념이 세상 사람과 같아서는 행복 할 수가 없습니다. 죄지은 인간의 심령은 에덴동산을 상실한 상태입니다. 에덴동산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영적인 세계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새 생명을 받아야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중생)


주님의 십자가는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는 자리였습니다. 신앙 양심에 걸리는 것을 찾아내야합니다. 말씀을 배척하면 빛난 과거의 은혜 생활은 간곳이 없고 비극이 찾아드는 어둠만 있을 뿐이다. 말씀은 새겨야한다.(렘31:33) 믿음과 은혜는 하나님의 것,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벧전 2:9)>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서 "너희"(성도)가 바로 "교회"입니다. 여기서 "너희"가 바로 "성전"입니다. 보이는 건물은 성전이 아닙니다. 속지 마십시오. 가르치는 자들은 영적으로 어리고 무지한 자들에게 거짓말해서는 안 됩니다. 보이는 건물은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믿는 자의 모임' 그 자체입니다. 보이는 건물은 그저 단순히 예배당일 뿐입니다.

(엡 4:13-15)>
이는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모든 일)에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랄찌라

우리는 가끔씩 어떤 일에만 경건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범사(모든 일)에 그에게(예수 그리스도)까지 자라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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