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우리나라의 1호들 .. [3]
◆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가요 '희망가'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이 앉아서 생각하니 / 세상만사가 춘풍 중에 또다시 꿈같도다."
너무나 유명한 이 대중가요는 실은 외국곡. 단지 우리의 노래로 알고 있는 것은 그 곡과 가사가 한국인의 정서에 맞게 바뀌어 불렸기 때문이다.
흔히 대중가요로는 1925년 발매된 '조선 소리판'에 실려 있는 도월색의 '시들은 방초', 김산월의 '장한몽', 그리고 1926년에 윤심덕이 불러 크게 히트시킨 '사의 찬미' 등이 있다.
그러나 '희망가'는 이보다 수년 전부터 대중 속에 급속히 퍼졌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3ㆍ1만세운동의 물결이 지난간 뒤인 1923년 무렵. 당시 대중의 마음은 허탈감과 죄절감 그 자체였다.
민족의 염원은 수포로 돌아갔고, 일제는 문화정책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겉과 속을 달리하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이런 시대상황에서 애조 띤 노래가 유행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그 노래를 '희망가'라고 했다. 가사가 한국어로 되어 있으니까 그 작사자와 작곡자가 분명 있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누가 지은 것인지도 알려지지 않은 채 널리 불려졌다.
◆ 국내 최초 다목적댐 '섬진강 댐'
다목적댐으로 국내 최초로 건설된 댐은 섬진강댐이다, 공사가 착수된 것은 1940년, 그리고 준공한 때는 1965년. 25년 만에 준공된 섬진강댐은 격동기의 시대상을 그대로 반영하면서 건설된 댐이다. 이 댐이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댐은 관개용으로 건설됐다. 가뭄에 대비해 미리 물을 가두어두었다가 필요할 때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이때의 댐은 대부분 흑으로 막은 것이었고, 그래서 높이는 높지 않았다. 그러나 인구가 증가하고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물은 관개용만이 아닌 식수, 공업용수 등으로 이용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댐이 다목적용으로 건설되기 시작한 것. 댐 높이 64 m. 제방길이 344.2 m. 저수용량 4억 6600만 t. 동진강(東津江) 하류지역의 수리불안전답과 계화도(界火島) 간척지에 관개용수를 공급하고, 호남지방의 전력난(電力難) 해소에 도움을 주고 있는 댐이다. 이 댐의 완공으로 연간 1억 6634만 7000 kWh의 전기와 연간 2억 2500만 m3의 각종 용수를 공급하게 되었으며, 초당 1,400 m3의 홍수조절 능력을 가지게 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다목적댐 '섬진강 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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