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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여인의 행실기록 자녀안 (姿女案) .. [3]

2009-08-04 2136
Sundance

'자녀안(姿女案)'은 엄격한 가부장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


조선조에서는 남편과 사별한 후 평생 수절한 여자들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열녀문(烈女門)을 세웠고, 살아 있는 사람에 대해서도 열녀문을 세우기도 했는데 이것을 생열녀문(生烈女門)이라 했다.

그런데 이런 엄격한 사회제도 속에 열녀문의 수가 넘쳐나지 않았던 것은 어떤 까닭이었을까.

남녀 간의 진실한 사랑은 육체에만 있지 않고 그들 서로의 내면적 요소가 더욱 중요하게 작용하는 바가 큰 믿음일 것이다.

또 그것은 상대에게 무한하게 베푸는 마음인 동시에, 그런 자신의 마음을 더욱 소중하게 간직하고자 하는 믿음이기도 하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선 일찍 홀로 되어 어렵게 자식을 키웠고, 키워가고 있는 엄마들의 이야기를 흔하지는 않으나 가끔은 들어가고 있다.

사랑함에 의무가 있기도 하겠지만, 때로는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당연히 물리치기도 한다. 그것은 각자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일 뿐, 강제한다 해서 생겨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당시의 사람들이라 해서 이것을 모를 리 없었다. 언제 살을 맞대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할 후궁들과 수많은 궁녀들, 축첩제도, 기생제도, 양반의 권세에 벌벌 떨어야만 했던 하층민들과 노비들. 이 모든 것들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 쪽의 물꼬를 단단히 틀어막아야할 필요성이 컸었을 것이다.

여자들의 투기를 가장 큰 죄악 중의 하나로 삼아 막으려 했고, 정실과 첩들 간의 화목을 덕으로 삼았으며, 죽어서 뼈를 묻어야 함을 인종의 미로 교육했던 것들이, 그 사회의 모순을 옳은 것으로 만들고자 했던 노력들이었다.

조선조 가부장제 하의 남성 중심 사회가 때로는 비난을 사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이러한 것들이었을 것이다.

정의(正義)가 모든 경우에 공평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부정의를 덮기 위해 정의를 희생시키는 경우들이 많았으니, 위선으로 기만할 수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강제함으로써 많은 문제들은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이 시대의 간통은 그 사람이 결혼했음을 전제로 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일부종사하지 않는 여자들의 모든 성행위를 간통으로 파악했다.

사대부 중심의 억지 제도들이 오히려 그 당시의 성풍속을 더욱 어지럽혔을 것이며, 이로 인해 그것을 지켜보는 같은 사족(士族) 여자들의 의식을 본능적으로 약화시키기도 했었을 것이다.

그래서 생겨나는 문제들이 더욱 불거지자 강제로써 억압할 수단을 취할 수밖엔 없었다. 그러면서도 사대부들 사이에서는 미모가 출중한 첩을 쟁탈하기 위한 다툼도 드물지 않게 발생하고 있었다.

자녀안을 수단으로 함이 더욱 강해지면서 그것에 연좌되어 발생하는 피해는 더욱 커갔다.

그 여파로 어머니를 간통했다 하여 타살하고, 딸과 동생, 심지어는 친척들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한편 자살을 강요하여 이승을 떠나게 하기도 했다.

그로써 '자녀목' '자녀암' '자녀소' '자녀굴' 등, 간통을 했다고 지목된 여자들이 자살하거나 죽임을 당하는 곳이 여러 곳에 생겨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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