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두 족보 .. 그 사연을 탐구하다 .. [4]
여호야김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
예레미아 36;1-32을 보면 예사롭지 않는 하나님의 저주가 여호야김에게 주어진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예수의 동정녀 탄생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문제점
예수의 아버지로서의 요셉은 Jeconiah를 통해서 여호야김의 후손중의 하나입니다. 요셉의 후손은 이러한 하나님의 저주 때문에 다윗왕의 위에 있다고 주장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하지만 눅1:32, 행2:30과 히12:2에서는 예수님이 다윗왕의 위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요셉으로 태어났다면 이러한 저주는 모순이 되고 말 것입니다.
또한, 사무엘하 7:12-13에 보면 하나님은 다윗에게 그의 실제적인 후손에서 그의 왕국의 왕위가 영원히 다스린다고 하였습니다. 이미 설명한 바와같이 요셉은 장차 이스라엘의 왕의 생물학적 면에서의 아버지로서 제외되었습니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저주와 약속을 동시에 이루기 위한 요건을 만족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한 사람이 여호야김의 생물학적 후손이 아니어야 하면서, 다윗의 적통자이어여 하면 또한 후손이 되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상충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신적인 해결책이 제시되어야 합니다.
저주 문제에 대한 해결책
하나님께서 동정녀 탄생이라는 기적을 통하여 이러한 해결책을 제시하였습니다. 비록 요셉이 솔로몬의 통하여 저주받은 여호야김의 후손이 되기는 하지만, 반면 마리아는 그러하지 않습니다.
마리아는 누가복음 3:31에 적시하듯 다윗의 다른 아들인 나단의 후손이 됩니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약속한 것이 마리아가 예수님의 생물학적 부모가 됨으로서 이루어 진 것이 됩니다. 이러한 동정녀 탄생은 여호야김에 내린 하나님의 저주를 시사하고 있습니다. 왕권은 정당하게 계승되었습니다.
요셉의 의하여 다윗왕의 위가 합법적으로 계승된 것이었으나 요셉은 예수님의 유전학적인 아버지가 아님으로 여호야김에 내린 저주로 부터 예외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동정녀 탄생은 하나님의 섭리가 두가지 방향에서 동시에 이루어 진것입니다. 첫째로 예수님이 합법적인 다윗왕의 위를 계승함을 허락한 것이며, 둘째로 여호야김에 내린 저주 또한 완성하여 가는 보여 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여호야김의 후손이 아닙니다.
반론들
기록들 중 사이에서 분명한 차이점들을 고찰하지 않고서는 예수님 가계도에 대한 논의하는 것은 불완전한 것 입니다. 자주 이 문제에 대하여 반론이 되는 몇가지를 살펴 봅시다.
1.
마태가 아브라함 부터 예수님까지 42세대라고 말하였다면, 왜 가계도에는 41명의 이름만 나옵니까? 이 질문은 자주 제시되는 반론인데, 이는 마태복음 1:17을 성급히 보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마태는 가계도를 3개의 역사적 부분으로 나누었으며, 각 부분은 14세대를 담고 있습니다. 다윗이 이름이 반복 사용되었는데 첫번 끝과 두번째 시작 부분에서 중첩이 된 것입니다.
2.
마태의 가계도는 구약의 기록과 일치하지만, 또한 마태는 몇개의 세대를 뛰어 넘기도 하였습니다. 마태의 가계도는 여러 세대를 함축한 것입니다. 아마도 가계도 표를 점 더 쉽게 암기할 수 있도록 한 것일 수있습니다. 물론 구약의 기자들도 그들의 가계도도 함축적으로 기록한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에스라 7:3과 열왕기상 6:7-10을 교차 비교해 보면 가계도의 함축을 볼 수 있듯이 마태도 그리한 것입니다.
3.
마태와 누각의 기록을 비교하여 보면 동일한 이름을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서로 일치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증 하나나 또는 둘 다 틀릴 수 있을 것입니다. 마태와 누가는 서로 다른 가족의 기록을 추적한 것입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법적인 아버지인 요셉의 조상을, 누가는 생물학적 어머니인 마리아의 조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두 기자가 서로 다른 가족의 뿌리를 추적하였음으로 이름들이 갈리우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4.
누가는 요셉이 헬리의 아들이라 말하고 있는 반면 마태는 요셉이 야곱의 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레 탈무드의 기록이 요셉이 헬리의 사위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요셉의 아버지는 야곱입니다. 1세기경에는 사위를 아들이라고 관습적으로 불리 우곤 하였습니다. 따라서 당시 누가의 기록은 문화적 관점에서 보면 또한 정확한 기록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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