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美 외식업계… 점심 외식 감소에 3조원 손실
美 외식 업계 위기 직장인 점심 외식 감소… 美 업계 32억달러 손실 자동화 기기 설치하고, 배달 경쟁 가속화
최근 미국 외식 업계는 침체기에 빠졌다. 레스토랑에서 호화로운 점심식사를 하면서 사업 관련 논의를 하는 ‘파워 런치’ 시대가 저물고, 사무실에서 간단하게 한 끼를 때우는 ‘데스크톱 다이닝(desktop dining)’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한 시간의 점심시간 동안 직장인이 레스토랑을 찾는 것은 흔한 일이었지만, 최근에는 이를 사치로 여기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 켄터키주 루이비실에 있는 텍사스로드하우스 본사 직원들은 음식 배달원의 이름을 알 정도로 점심식사 주문에 익숙해져 있다.
◆ 식당 점심가격, 금융위기 이후 19.5% 상승
제이슨 리스 펜실베이니아경영대학원 교수는 “과거에는 회사 경비로 제공되는 ‘석 잔의 칵테일을 마시는 호화로운 점심(three-martini lunch)’ 문화가 있었으나, 경기 둔화가 지속되면서 점심식사 비용과 시간마저도 아까워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시장조사 회사 NPD에 따르면 지난해 점심시간에 레스토랑을 방문하는 미국인 수가 4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 대비 2%(4억3300만 회) 줄어든 수치로, 외식 산업 분야는 지난해 총 32억달러(3조5840억원) 손실을 봤다.
점심시간 도시락이나 배달음식을 이용하는 미국인이 증가하는 이유는 외식 비용이 부담스러울 만큼 오른 데 있다는 게 지배적인 해석이다. 미국 레스토랑들은 지난 수년간 인건비 부담을 이유로 가격 인상에 나섰다. 미국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지난해 식당 점심의 평균가격은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19.5%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식재료값은 하락하면서 도시락 소비 등 합리적인 소비를 부추기고 있다.
◆ 사람 대신 주문·결제하는 키오스크 확산
지난해 미국 농무부가 수퍼마켓 등에서 구입한 재료로 가정에서 요리할 때 들어가는 미가공 식료품 가격을 조사한 결과 전년 대비 0.5~1.5% 하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 디트로이트에 있는 건축 제품 회사에서 영업담당 임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짐 팍스는 “예전에는 외부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해왔지만, 최근엔 사무실에서 음식을 주문하거나 사무실 앞 푸드트럭을 통해 간단히 식사할 때가 많아졌다”며 “거래처 관계자들을 만나는 경우에도 사무실에서 음식을 배달해 함께 식사하면서 업무를 처리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소비 패턴 변화도 한몫했다. 재택근무와 온라인 쇼핑 등이 늘면서 자연스레 외식이 줄었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국내 재택근무 비율이 2003년 19%에서 2015년 24%까지 올랐다”며 “또 온라인 쇼핑 이용자가 증가하면서 쇼핑몰을 찾아 점심을 해결하는 사람들도 줄었다”고 분석했다.
달라지는 소비 패턴에 대응하기 위해 많은 레스토랑은 아침식사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른 시간에 출근하는 소비자의 발걸음을 잡기 위해서다. 하지만 아침식사는 보통 점심·저녁식사에 비해 저렴하게 제공되기 때문에 마진율이 낮다. 리스 교수는 “최근 레스토랑이 6~8달러 수준의 저렴한 오전식사 메뉴를 내놓기 시작했지만 인건비, 재료비 등 기존 유지 비용이 비슷한 상황에서는 오히려 영업이익 감소만 초래한다”며 “특히 칵테일과 음료 등의 마진율이 상당히 높은데 예전처럼 레스토랑에서 술을 마시는 소비자는 현저히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외식 산업은 미국에서 가장 많이 고용하는 산업 중 하나다. 레스토랑의 매출이 줄어들면서 노동 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리스 교수는 “이미 일부 레스토랑에서는 최저임금에 대한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며 “많은 레스토랑이 비용 절감을 위해 인건비를 재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소비자 스스로 메뉴 검색에서 주문·결제까지 할 수 있는 키오스크(KIOSK)가 미국 외식 업계에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키오스크는 대중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설치한 터치스크린 방식의 무인단말기다. 실제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레스토랑 잇사(Eatsa)에선 주문받는 종업원을 찾아볼 수 없다. 레스토랑 이용 방법을 알려주는 안내원 한 명만 있을 뿐이다. 손님들은 종업원을 찾는 대신 별도로 마련된 터치스크린을 조작해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을 주문한다. 몇 분 후면 터치스크린 옆의 유리 칸막이에 자신이 주문한 음식이 조리돼 나온다.
맥도널드는 이미 주요 매장에 키오스크를 설치했다. 패스트 캐주얼 레스토랑 파네라(Panera)는 연말까지 전 매장에 키오스크를 설치할 방침이다. 패스트푸드 업체 웬디스(Wendy’s)는 지난해 최저 임금 인상을 이유로 키오스크를 도입해 인건비 부담을 줄일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칼스주니어(Carl’s Jr.)·하디스(Hardee’s) 등도 같은 이유로 키오스크 도입에 적극적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키오스크를 통해 주문받는 인력을 줄이는 대신 주방 인력을 늘려 더 빠르고 우수한 음식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다”고 전했다.
키오스크의 활용이 비단 비용 절감 때문만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소비자들이 키오스크 사용을 선호하기 때문에 매출 증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한 주류 전문 판매점에 키오스크를 도입한 이후 매출이 8.4% 증가했다. 호세쿠에르보, 모엣 샹동 등 외래어로 표기된 주류 상품명을 발음하기 어려워 평소 주문하지 못했던 술을 소비자들이 키오스크를 통해 구입했기 때문이다. 맥도널드의 경우 키오스크를 통해 주문하는 고객들의 소비 금액이 종업원을 통해 주문하는 것보다 평균 1달러 정도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키오스크 전문업체 올레키오스크가 미국 성인 1000명은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소비자들 중 55%가 ‘줄을 서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로 키오스크를 선호했다. 응답자 중 12%는 ‘계산대 직원과 대면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키오스크를 이용한다고 답했다.
소비자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외식 업계의 배달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패스트푸드 식당뿐만 아니라 고급 레스토랑들도 속속 배달 서비스에 나서고 있다.
◆ 맥도널드·우버와 제휴해 음식 배달
서비스 방식은 온라인 애플리케이션과 연계된 업체와 제휴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자체 인력을 고용해 직접 배달에 나서는 곳도 있다. 파네라의 경우 현재 4000명의 배달 인력을 1만명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NPD는 피자 업체를 제외하고도 배달 서비스 음식점이 지난 4년간 30% 이상 증가했다며 앞으로 증가세가 더욱 빨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미국 맥도널드는 최근 차량 공유업체 우버와 제휴를 통해 배달 사업을 확대한다고 밝혔다. 이는 플로리다에서 진행해온 우버잇과의 시범테스트 성공에 따른 것으로, 맥도널드는 고객들의 만족도가 높았고 지속적인 성장세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맥도널드는 감자튀김을 따뜻한 상태로 배달하기 위해 제휴 업체인 우버 운전자가 매장에 도착하기 3분 전에 음식을 만든다. 루시 브래디 맥도널드 경영전략 부문 부회장은 “현재 음식 배달 시장 규모는 1000억달러에 이르며 앞으로 급속히 더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맥도널드의 경쟁사인 웬디스 역시 텍사스와 오하이오주 일부에만 실시하던 배달 서비스를 연내 전국적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미국 수퍼마켓도 배달 경쟁에 뛰어들었다. 코스트코는 온라인 식료품 배달 서비스 업체인 ‘십트(Shipt)’를 통해 식료품 배달 서비스를 강화한다고 밝혔다. 2014년 설립된 십트는 앞서 홀푸드(Whole Foods) 및 크로거(Kroger)의 해리스 티터 (Harris Teeter) 부문과 제휴, 미국 일부 시장에서 식료품 배달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십트는 회원에게 연간 99달러의 회비를 받아 무제한 배달을 제공한다. 특히 올해 연말까지 50개 시장과 3000만 가구에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음식전문 미디어인 이터스(Eaters)는 미국의 레스토랑 시장이 약 5000억달러 규모며, 이 가운데 2100억달러는 식품 배달 가능성이 있다고 조사했다. 모건스탠리 역시 미국의 외식 및 음식 배달 시장이 약 2100억달러의 가치가 있다고 보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온라인 배달을 이용한 매출이 약 100억달러에 달한다며, 해당 시장을 ‘초기 시장’으로 분류해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미겔 고메즈 코넬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빠르고, 양질의 커피를 마시고 싶어하는 소비자의 변화에 대응한 스타벅스가 2000년대 초반 급부상했듯이, 외식 업계는 지금 소비자의 니즈를 정확히 읽어내고 그에 걸맞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며 “편리하지만 양질의 음식을 먹고 싶어하는 것이 현재의 트렌드”라고 말했다.
◆ 페이스북도 배달 사업 뛰어들어
전통적인 외식 업계뿐 아니라 IT 기업도 배달 음식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피자나 중식에 그쳤던 음식 배달 서비스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에 힘입어 외연을 키우는 것이다. 최근 미국에선 소비자와 레스토랑을 연결해주는 음식 배달 플랫폼이 늘어나는 등 음식 배달 시장 규모가 커지고 있다. 현재 시장을 선도하는 업체는 그럽허브(GrubHub), 이트24(Eat24) 등으로 소비자와 레스토랑을 연결하는 사업 모델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최근엔 음식 만드는 것부터 주문과 배달까지 모든 과정을 자체적으로 하는 업체들도 등장했다.
페이스북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음식 배달 기능을 테스트 중이다. 음식 배달 테스트 버전은 기본 메뉴 아래 흰색과 파란색의 햄버거 모양 아이콘을 누르면 실행된다. 음식 주문(Order Food) 버튼을 누르면 음식 주문 업체 ‘딜리버리닷컴’ ‘슬라이스’ 서비스와 연동된다. 페이스북 사용자의 위치를 파악해 음식을 주문할 수 있는 레스토랑의 메뉴 사진과 가격, 평점, 배달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주문하면 예상 소요 시간이 포함된 확인 이메일이 온다. 주문부터 결제가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이뤄진다.
고메즈 교수는 “모바일 앱의 활용 여부가 레스토랑 비즈니스의 핵심 부분으로 옮겨지고 있다”며 “스마트폰을 활용하는 방식의 비즈니스 모델은 기존 고객을 유지하면서 신규 수요도 창출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 PLUS POINT
간편식 업체 블루 에이프런, 월 800만 박스 배달
글로벌 시장조사 전문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세계 가정간편식(HMR·Home Meal Replacement) 시장 규모는 930억달러(1조원)에 달한다. 이 중 미국이 26%로, 가장 큰 시장이다. ‘블루 에이프런(Blue Apron)’은 미국 HMR 업체 중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기업이다. 소비자가 온라인으로 식료품을 주문하면 집 앞까지 배송해준다. 이마트 ‘피코크 육개장’이나 오뚜기 ‘3분 카레’처럼 간단하게 데워서 바로 먹는 제품보다는 재료와 레시피(조리법)를 포장해 제공하는 ‘레디 투 쿡(Ready to Cook)’ 상품을 취급한다. 배달된 박스(Meal Kit) 안에는 레시피가 적힌 종이와 요리에 필요한 식재료가 손질된 상태로 들어 있다. 식재료는 조리법에 따라 정확히 계량한 양이 들어 있어 요리를 못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실패할 확률이 낮다.
미국 뉴욕에서 처음 서비스를 시작한 블루 에이프런은 바쁜 소비자들의 심리를 꿰뚫었다. 오늘은 어떤 요리를 먹을까 고민하고, 이를 위해 장을 보고, 또 식자재를 손질하는 과정을 한 번의 주문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했다. 대신 전문가가 작성한 레시피를 제공해 요리하는 즐거움은 그대로 느끼게 했다. 가격은 두 사람이 1주일에 세 번 먹을 수 있는 박스를 신청할 때 59.94달러(약 6만7000원)다. 메뉴는 연어요리, 치킨, 파스타 등 다양하다. 1인당 한 끼 식사를 약 10달러에 해결하는 셈인데 배송 비용까지 포함돼 있으니 뉴욕 물가를 고려하면 합리적이라는 게 현지 소비자들의 평가다. 뉴욕을 중심으로 매달 약 800만 박스가 배달된다.
미국 리서치 회사 IBIS월드에 따르면 세계 배송 시장 규모는 2015년 기준 2420억달러다. 그해 식료품만을 전문적으로 배달하는 업체들에 54억달러의 투자금이 몰렸다. 2012년 창업한 블루 에이프런도 3년간 1억9300만달러를 투자받았다. 창업주인 매트 살즈버그 최고경영자(CEO)는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실리콘밸리에 있는 투자 회사에서 일하다가 2012년 지인과 함께 회사를 차렸다. 지난달에는 재료를 직접 조달하기 위해 유기농 육류 업체를 인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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