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마약이다
인간의 돈에 대한 욕망은 음식이나 섹스처럼 필요불가결한 것으로 느껴
많은 사람이 돈에 울고 돈에 웃는 삶을 꾸려간다.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는 속담이 있다. 돈만 있으면 못할 일이 없다는 뜻이다. 돈은 경제활동을 좀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하는 교환의 수단일 따름이지만 돈의 위력 앞에서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사람이 돈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이유가 밝혀지고 있다. 2006년 영국 엑시터대 심리학자 스티븐 레어는 '행동 및 뇌 과학(Behavioral and Brain Sciences)' 온라인판 4월 5일자에 발표한 연구결과에서 돈이 마치 중독성이 강한 마약처럼 마음에 작용한다고 주장했다.
돈에 중독되기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해 일벌레가 되며 비정상적으로 돈을 낭비하게 되거나 충동적으로 도박에 빠져든다는 것이다.
레어는 돈이 니코틴이나 코카인처럼 뇌의 보상체계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고 제안했다. 보상체계는 인류의 지속적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행동, 예컨대 식사, 섹스, 자식 양육 등을 규칙적으로 해나갈 수 있도록 쾌락으로 보상해주는 신경세포의 집단이다.
니코틴이나 코카인 같은 중독성 물질은 보상체계가 그것들을 음식이나 섹스처럼 필요불가결한 것으로 느끼게 만든다. 요컨대 돈이 보상체계를 활성화시키므로 돈이 떨어지면 끼니를 거른 것처럼 고통을 느끼지만 돈이 생기면 곧장 쾌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현생인류가 돈을 갈구하는 욕망이 진화된 이유를 설명하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2006년 프랑스 심리학자 바바라 브리어스는 '심리과학(Psychological Science)' 11월호에 사람의 마음속에서 현금에 대한 욕망은 식욕과 비슷하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실험 결과 배고픈 사람은 배부른 사람보다 자선단체에 기부금을 적게 내려고 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복권에 당첨되어 거금을 손에 넣는 순간을 꿈꾸면서 돈을 탐내는 사람들은 과자를 누구보다 많이 먹었다. 브리어스는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은 뇌 안에서 음식을 생각하도록 진화된 신경 회로가 돈에 관한 욕구도 함께 처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람들이 돈 때문에 일희일비하는 이유를 현대사회의 규범으로 설명하는 이론도 나왔다. 2008년 2월 미국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가 펴낸 '상식 밖의 경제학(Predictably Irrational)'을 보면 현대인은 두 개의 세계, 곧 사회규범이 지배하는 세계와 시장규범이 우세한 세계를 동시에 살고 있기 때문에 돈과 관련된 행동에 곧잘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사회규범은 장기적 관계, 신뢰, 협동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온정적이며 두루뭉술하다. 한편 시장규범은 돈이나 경쟁과 관련되며 개인이 이익을 추구하도록 한다.
애리얼리는 사회규범과 시장규범을 잘 구분하면 인생이 만사형통이지만 두 규범이 충돌하면 문제가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가령 사회규범이 우세한 상황에서 재력을 과시하거나, 시장규범이 지배하는 상황에서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갈등이 생긴다는 뜻이다.
영국 과학저술가 마크 뷰캐넌은 '뉴 사이언티스트' 3월 21일자에 기고한 글에서 돈이 단순한 교환 수단이라기보다는 사람의 마음, 특히 정서를 흔들어 놓는 힘을 지니고 있으므로 "경제학자들이 화폐의 개념을 재정립할 때가 되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