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본처 딸 미국집 혈세로 사며 온갖 불법자행
외무부 비밀전문 통해 40년만에 드러나
외무부, 박재옥 소유 숨기려 '가옥 주 사망-헐값이다' 거짓 공문
박정희 큰딸 소유 미국집 뉴욕총영사관 불법매입의 흔적들...
본처가 낳은 큰딸 박재옥 1976년 매입 미국주택, 1년 뒤 한국정부에 되팔아
'박정희 특별지시로 외무부가 주도했다'
한국정부가 박정희의 본처가 낳은 큰딸이 미국에 불법 매입한 주택을 정부예산으로 되사주면서 온갖 불법을 자행했다는 사실이 40년만에 처음으로 확인됐다. 박동진 당시 외무부장관은 남덕우 경제기획원 장관에게 이 주택이 박전대통령 큰 딸 소유임에도 불구하고 '주인이 갑자기 죽었기 때문에 싸게 나왔다. 빨리 매입해야 한다'고 거짓 공문을 보내는가 하면, 박전대통령 큰 딸이 아닌 다른 사람을 주택소유주로 변조한 뒤 '매도의향서'를 제출, 정부의 매입허가를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정부당국이 이 주택의 주인이 박대통령의 딸임을 숨기기 위해 전전긍긍한 것은 정부 스스로도 이 같은 사실이 공개될 경우의 파장을 잘 알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또 당초 예산에 편성되지 않았던 이 주택을 뉴욕총영사 관저로 급히 매입하면서 주미한국대사관 부지매입비가 축소돼 국가적 손실을 초래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정부의 이 같은 행위는 재외공관용 재산의 취득관리 등에 관한 특례법을 정면으로 위배한 불법행위로 매입자체가 원천무효다. 또 외환은행은 박대통령 큰 딸에게 17만달러라는 거액을 대출해 주고도 부동산담보권 설정 등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돼 사실상 외환은행이 대통령 딸의 사금고역할을 했음이 드러났다. 박전대통령의 큰딸은 박근혜대통령의 언니인 만큼 이제라도 박대통령이 국민 앞에 진솔한 사죄를 해야 마땅하다. 박정희정권이 미국 내에서 자행한 총체적 불법행위를 낱낱이 밝힌다. 안치용(시크릿 오브코리아 편집인)
지난 1979년 11월 3일 박정희 전대통령의 장례식 때 전국으로 생중계된 TV를 통해 '박대통령 큰사위부부'로 소개됐던 한병기-박재옥부부, 국민들은 중계를 보며 박대통령의 죽음을 아쉬워하면서도 '큰사위부부라니? 도대체 뭐지. 그렇다면 큰 딸이 있었단 말인가? 그럼 큰딸부부라고 소개해야지'하며 고개를 갸우뚱했었다.
박전대통령은 첫 번째 부인인 김호남 여사와의 사이에 박재옥을, 두 번째 부인인 육영수여사와의 사이에 근혜, 근영, 지만 등 1남2녀를 뒀다. 하지만 박전대통령은 엄연히 자신의 핏줄인 큰 딸이 있었지만 이 사실을 국민 앞에 쉬쉬 했던 것이다. 남편 한병기씨는 5.16혁명이 성공하자 약관 30세에 뉴욕총영사관 영사를 지낸데 이어 1971년 제8대 국회의원을 1년정도 지낸 뒤 칠레, 캐나다대사, 유엔대표부 차석대사 등을 역임했었다. 한씨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주요국 대사에 임명되자 미국무부 비밀전문은 '명백히 박대통령의 빽덕분'이라고 분석했었다.
지난 1979년 11월 3일 박정희 전대통령의 장례식 때 전국으로 생중계된 TV를 통해 '박대통령 큰사위부부'로 소개됐던 한병기-박재옥부부, 국민들은 중계를 보며 박대통령의 죽음을 아쉬워하면서도 '큰사위부부라니? 도대체 뭐지. 그렇다면 큰 딸이 있었단 말인가? 그럼 큰딸부부라고 소개해야지'하며 고개를 갸우뚱했었다.
박전대통령은 첫 번째 부인인 김호남 여사와의 사이에 박재옥을, 두 번째 부인인 육영수여사와의 사이에 근혜, 근영, 지만 등 1남2녀를 뒀다. 하지만 박전대통령은 엄연히 자신의 핏줄인 큰 딸이 있었지만 이 사실을 국민 앞에 쉬쉬 했던 것이다. 남편 한병기씨는 5.16혁명이 성공하자 약관 30세에 뉴욕총영사관 영사를 지낸데 이어 1971년 제8대 국회의원을 1년정도 지낸 뒤 칠레, 캐나다대사, 유엔대표부 차석대사 등을 역임했었다. 한씨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주요국 대사에 임명되자 미국무부 비밀전문은 '명백히 박대통령의 빽덕분'이라고 분석했었다.
바로 이 한병기씨가 지난 1975년 5월 31일 유엔대표부 차석대사로 임명됐고 공교롭게도 그 직후 프레이저청문회가 열리면서 1976년 6월 22일 김형욱의 증언 등이 이어지고 1976년 10월 24일 워싱턴포스트의 보도로 박동선의 의회로비사실이 폭로되면서 코리아게이트가 발발하는 것이다. 한씨의 부인이자, 박대통령의 큰 딸인 박재옥씨는 김형욱의 의회증언으로 한미간의 긴장이 고조되는 시점이었던 1976년 8월 17일 놀라운 일을 저지르게 된다.
뉴욕타임스가 미국주택매입사실 폭로
박씨가 자신의 명의로 '5 DOLMA DR. SCARSDALE NY 10583'의 주택을 20만5천달러에 사들인 것이다. 대지 1200평에 지하실까지 포함하면 4층짜리 붉은 벽돌건물이었다. 맨해튼에서 한참 떨어진 웨스트체스터카운티의 스카스데일의 고급주택이다. 아니나 다를까 박대통령 딸의 미국주택매입은 코리아게이트의 와중에 미 언론에 포착된다.
뉴욕타임스가 1976년 11월 30일 중앙정보부의 미국 내 조직 등을 다룬 장문의 기사에서 이 주택을 언급한 것이다.
기사는 이랬다. '미스터 한은 최근 뉴욕 스카스데일에 20만5천달러짜리 집을 샀다. 한인사회에서는 중세의 성을 방불케 하는 이 붉은 벽돌집이 박정희대통령이 실각하면 망명처로 사용될 것이라는 소문이 떠돌고 있다.[박대통령이 현재 권좌에 있으니] 확인될 성질의 문제는 아니지만' 이라는 내용이었다. 박대통령의 딸 명의로 고가의 주택을 구입했기에 박대통령의 망명처로 언급된 것이다. 불이 난데 기름을 부은 것이다.
김형욱증언, 박동선 의회로비의혹 등 큰 사건이 줄을 잇던 시점에서 뉴욕타임스기사까지 터지면서 한씨는 좌불안석이 됐다. 1977년부터 미 의회 청문회가 줄을 이었다. 프레이저위원회로 유명한 연방하원뿐 아니라 연방상원까지 모두 3개 위원회가 경쟁하듯 코리아게이트 조사에 나섰다. 정확히 말하면 코리아게이트는 '한국의 미 입법부 불법로비와 중앙정보부의 미국 내 불법 활동'등에 대한 조사다.
자칫 한대사는 '외교관의 특권과 면제'조약에 의해 연방의회에서 소환해도 거부할 수 있지만 한씨가 미국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논란을 키울 소지가 많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한국정부는 1977년 4월 16일 한대사를 미국에서 빼내게 된다. 캐나다대사에 임명한 것이다. 그러자 당장 박대통령의 딸 박재옥씨가 구입했던 주택이 문제가 됐다. 급기야 한국정부가 나섰다.
1977년 5월 9일 한국정부가 박재옥씨로 부터 이 집을 20만5천달러에 사들였다. 그래서 이 주택은 졸지에 뉴욕총영사 관저로 변신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정부가 현직 대통령의 큰 딸 집을 정부예산으로 사들인 것이다.
그러나 당시 이 집의 매입을 둘러싸고 외무부와 경제기획원, 뉴욕총영사관등이 주고받은 비밀전문을 입수, 분석한 결과 대한민국 실정법과 미국법을 어긴 불법으로 점철됐다는 사실이 40년만에 처음으로 확인됐다.
외교부가 올해 공개한 외교문서 중 '주뉴욕총영사관 관저매입 1977' 이라는 62페이지짜리 문서철은 박정희정권이 어떤 불법을 저질렀는지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박정희정권은 박대통령 큰딸 소유의 집이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집주인이 죽으면서 집이 싸게 나왔다'고 거짓공문을 주고받고, 재외공관용 재산 매입관련을 위해 반드시 사전에 제출해야 하는 '매도의향서'[LETTER OF INTENT]에서 소유주를 박대통령 큰 딸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명백한 실정법위반으로 혈세 매입자체가 원천무효인 것이다. 미국법으로도 사문서조작에 해당한다. 과연 어떤 불법을 저질렀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논란 일자 사위 한병기 캐나다 대사로 전보
외교문서 확인결과 박대통령 큰 딸의 집을 한국정부가 사들인다는 방침은 뉴욕타임스 보도 직후 일찌감치 결정된 것으로 확인됐다. 박동진 당시 외무부장관은 외무부장관 전용메모지를 통해 주유엔한국대표부에게 수기[手記]전문을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번호는 UNW[P]-1270, 전문일자는 1976년 12월 16일이었다. 뉴욕타임스 보도 15일 뒤였다. 박장관은 이 전문에서 '1. 대상주택은 1977년 예산으로 국유화조치를 취하기로 방침을 세웠음. 2.주택소유자명의는 귀 건의에 따라 N.Y.C.G[뉴욕총영사관을 의미]명의로 변경 필요함. 3. 대금청산방법은 은행융자로 한다. 4. 귀하가 지불한 선수금 3만5천달러의 청산은 전도 77년 중 조치하겠음. 5. 여타 000[확인안됨]은 전도 파우치 편으로 통지하겠음'등이었다. 또 맨 마지막페이지에는 '한병기대사 정부재산으로 전환 – 17만달러 외환, 3만5천달러 일시불- 주뉴욕총영사 1977'이라고 기재돼 있다.
박장관의 수기전문을 보면 수신자는 한병기 대사일 가능성이 크다. '귀하가 지불한 선수금'등의 대목에서 귀하가 한대사를 가리키는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1976년 12월 16일께 박대통령 큰딸의 집을 혈세로 구매하는 대신 이를 합법화하기 위해 뉴욕총영사관 명의로 사들인다는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박대통령 딸이 이 집을 매입한지 4개월만이다. 계약서 잉크도 마르기 전인 것이다. 그리고 매입대금 20만5천달러중 17만달러는 외환은행에서 조달하고, 3만5천달러는 일시불로 지불하겠다, 이런 내용이다.
이처럼 박대통령 큰딸의 집을 혈세로 매입한다는 결정이 내려진 12월 16일은 세밑, 보름이 지나면 1977년 새해가 되는 시기였다. 박외무장관은 1977년 예산으로 이 집을 사겠다고 했지만 1977회계연도 예산은 이미 12월 2일 이미 예산이 확정된 뒤여서 당장 예산확보 문제가 대두됐다. 그래서 여기서부터 정부차원의 광범위한 불법행위가 시작된다.
[박동진 장관 특별전문]
'20만5천달러에 매입 17만달러 외환은행에서 조달하라'
'큰딸 저택 매입 위장위해 엉터리 매도의향서로 관저매입 승인받아'
박동진 장관의 재외공관국유화계획의 속셈
1977년 1월 25일 박동진 외무장관은 남덕우경제기획원장관에게 공문을 보냈다. 이름하여 '재외공관국유화계획 – 국고채무부담행위 수정협의'라는 제목의 공문이다. 공문내용에 따르면 '1977년도 일반회계 당부소관 국고 채무부담행위로 계상된 재외공관 건물구입 및 신축계획을 수정 집행코자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수정이유가 문제였다.
박장관은 '뉴욕총영사관저구입이 비용도 줄이고 품위유지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는 '가옥주의 사망으로 매도하는 건물로서 현시가 최소 25만달러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는 이점이 있음' 이라는 이유를 댔다. 이 대목이 중요하다. 이 주택의 주인은 박재옥[계약서에는 남편의 성을 따라 한재옥으로 기재됨]이다. 하지만 박장관은 멀쩡하게 살아있는 '가옥주' 가 사망했다, 그래서 싸게 나왔다고 공문에 밝혔다. 멀쩡하게 살아있는 박재옥이 죽은 셈이다. 이는 명백한 거짓이다. 외무부가 대통령 큰 딸의 집을 구입한다는 것을 경제기획원에도 숨기기 위해 가공의 가옥주를 만들고 사망했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박장관은 국고 채무부담행위를 어떻게 수정할 지도 밝혔다. 주택구입비가 20만5천달러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20만5천달러가 필요했다. 박장관은 당초 1977년 예산으로 확정된 주미대사관 부지매입비 174만2천달러를 153만7천달러로 줄이는 대신 20만5천달러를 주뉴욕총영사관 관저구입비로 돌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경제기획원은 3일 뒤인 1월 28일 회신을 보냈다. 경제기획원은 '주미대사관 부지매입계획이 차질이 발생치 아니할 것을 조건으로 이견 없음을 회보합니다' 라고 통보했다. 이로써 박대통령의 큰 딸 집을 산다는 사실을 숨기면서 예산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다. 과연 박장관이 밝힌 것처럼 훨씬 저렴했을까, 또 예산사용변경으로 주미대사관 부지매입에 차질이 없었을까. 그랬다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사실도 이 문서철에서 드러나게 된다.
불법 매도의향서 통해 가공인물 내세워 매매
이처럼 예산이 확보된 지 약 40일 만인 1977년 3월8일 주뉴욕총영사관이 외무부장관에게 보낸 전문에서 또 다시 충격적인 불법을 저지른 사실이 밝혀졌다. 이 전문의 제목은 '총영사관저매입과 관련한 구비서류송부'로 전문번호는 '주뉴욕 700-0273'이다.
뉴욕총영사관은 이 공문에서 '매입건물은 뉴욕맨해튼에서 북방 18마일, 저명한 주택가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지는 약 1200평으로서 구형[원]모양이고 정원수가 많으며 잔디가 깔려 있음, 건물은 3층 석목조 혼합형으로 지하실 포함시 4층 1개동과 별개동 차고로 구성돼 있음'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관저매입과 관련한 구비서류는 건물개요, 건물의 표시와 도면, 감정기관의 평가조서, LETTER OF INTENT, 한국외환은행 뉴욕지점공문, 타이틀인수에 따른 소요비용에 관한 관련회사 공문 등이다.
이중 불법임이 명확히 드러나는 것이 매도의향서, 즉 LETTER OF INTENT이다. 이 매도의향서는 '해리엇 드레난'이라는 사람이 1977년 3월 1일 작성해 정도순 당시 뉴욕총영사에게 보낸 것으로 명시돼 있다. 이 매도의향서에서 해리엇 드레난은 '내가 이 건물의 타이틀 소유자, 즉 주인이며 한국정부에 20만5천달러에 매도할 것을 제의한다. 1977년 3월 29일에 크로징을 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이 주택의 타이틀홀더, 즉 소유자는 박전대통령의 큰 딸 박재옥씨다. 박재옥씨가 주인임에도 불구하고 뉴욕총영사관은 박재옥씨가 아니라 '해리엇 드레난'이 주인이라고 속인 것이다. 이는 명백한 거짓이다. 뉴욕총영사관과 외무부가 '재외공관용 재산의 취득-관리등에 관한 특례법'을 위반한 것이다. 또 외무부는 이처럼 잘못된 서류를 바탕으로 1977년 3월 17일 '귀(貴)관저 매입을 승인하니 매입절차 완료 뒤 서류를 제출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명백한 불법을 저지른 것이며, 박대통령 큰 딸의 집을 국민혈세로 구입한 것은 원천무효인 것이다.
감정평가조서는 1977년 2월 17일 작성됐으며 2월 15일 현재 공정한 시장가격은 22만5천달라라고 기재돼 있다. 박장관은 '가옥주가 사망해서 싸게 내놨다, 현시가가 최소 25만달러는 되기 때문에 훨씬 저렴한 것이다'라고 경제기획원장관에게 공문을 보냈었다. 그렇지만 현시가는 25만달러가 아니라 22만5천달러라는 것이 전문가의견이다. 가옥주가 사망했다고 거짓 공문을 보낸데 이어 주택 현시가까지 속이며 빨리 박대통령 딸의 집을 사자며 재촉한 것이다.
외환은행, 17만불 빌려주면서 담보권도 미설정
특히 지난 2000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2008년 통일부 장관 등을 지낸 김하중 전 장관이 외무부 기획관리실 금정호사무관에게 보낸 장문의 편지를 보면, 한대사의 전횡이 잘 드러난다. 4페이지에 걸친 장문의 이 편지는 김전장관이 수기[손글씨]로 작성한 것이다.
김전장관은 1973년 외무고시 제7회에 합격, 1976년 뉴욕총영사관 부영사로 부임했다. 외무부 입부와 동시에 골치 아픈 일을 맡게 됐고, 그 고충이 이 편지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당시 외부무 기획관리실 금정호 사무관은 1977년 2월 4일 뉴욕총영사에게 '주뉴욕총영사관 관저매입'이라는 공문을 보냈다. 사본은 한병기 유엔대표부대사에게 전달하라는 내용도 적혀있다. 외무부는 '재외공관용재산의 취득관리 등에 관한 특례법 시행령 제5조 부동산의 취득에 따른 규정대로 구비서류를 보내라고 요구했던 것이다.
그러나 박대통령 큰 딸의 집을 매입하는 것이다 보니, 한대사가 협조하지 않으면 해당서류를 준비하기 힘들었고, 그래서 1977년 3월 7일 김전장관이 본부에 거의 사신에 가까운 편지를 보낸 것이다.
이 서신에 따르면 '한병기 대사님 관저에 관한 모든 것이 한대사님께서 직접 하신 일이기 때문에 유엔대표부에서도 아는 사람이 없다'고 밝혔다. 즉 한대사 마음대로 모든 것을 처리했고 유엔대표부에서도 아무도 그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답답하다는 것이다. 김전장관은 또 '항상 총영사님께서 직접 한대사님과 접촉하여 자료를 준비하느라 시간이 걸렸다'고 밝혔다. 한대사는 총영사만 상대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대사는 박대통령의 큰 사위이며 코리아게이트 청문회 회의록을 보면 당시 한대사는 중정에서 파견된 주미대사관 공사를 제치고 미국 내 중정업무를 총괄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김전장관처럼 갓 부임한 부영사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것이다.
또 하나 이 서신에서 드러난 것은 박전대통령의 큰 딸이 1976년 이 주택을 살 때 외환은행에서 17만달러를 대출받았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김전장관은 '건물의 도면은 5장중 첫 째장은 한대사님께서 갖고 계신 도면이 없어 외환은행에서 17만달러 융자 때 준비했던 건물도면 사본'이라고 밝혔다. 이는 박전대통령의 큰 딸이 20만5천달러짜리 집을 사면서 외환은행에서 매입액의 85%에 달하는 17만달러를 빌렸음을 의미한다. 외환은행에 도면까지 들어갔다면 주택담보대출이다.
그렇다면 이 주택에 모기지와 담보권이 설정돼 있어야 한다. 이 주택 소재지가 뉴욕주 웨스트체스터카운티이기 때문에 이 카운티 등기소에 주택 소유증서, 모기지등 모든 서류가 등기돼야 한다. 그러나 이 모기지와 담보권은 설정돼 있지 않았다. 즉 외환은행이 박전대통령 큰딸에게 큰 돈을 빌려주면서도 정작 해당부동산에 담보권을 설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외환은행이 박전대통령 큰딸에게 특혜대출을 해 주는 등 사실상 박전대통령 딸의 사금고 역할을 했음을 의미한다.
큰딸, 관저구입비 명목 대출금 변제 여부 의문
그런 맥락이라면 과연 큰 딸이 이 돈을 상환했는지 조차도 의문이다. 모기지를 설정한 서류와 모기지를 다 갚으면 은행의 완납증명서가 카운티 등기소에 등기된다. 그래야 집 사는 사람이 은행 빚 유무를 확인하고 건물을 매입할 수 있는 것이다.
박대통령 큰 딸은 외환은행이 담보권 설정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카운티등기소에 완납증명서도 접수된 사실이 없었다. 외환은행은 과연 박전대통령 큰 딸에게 빌려준 돈을 돌려받았는지 알 수 없는 대목이다.
김전장관 서신에 대금결제와 관련한 부문도 주목을 끈다. 당초 이 매입은 국고채무부담행위, 즉 은행에서 돈을 빌려서 매입하는 것으로 결정됐었다. 하지만 김전장관은 이 서신에서 '어쩌면 총영사님 말씀이 본부에서 돈을 지불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고 하므로 자금차입 및 상환계획서는 별도로 작성하지 않고 외환은행에서 받은 공문만 보낸다'고 밝히고 있다. '한대사는 총영사와만 이야기한다'고 서신에 기재한 것을 감안하면 '본부에서 돈을 지불할지 모른다'는 말은 한대사의 뜻일 가능성이 크다. 한대사는 어떤 이유에선지 외환은행에서 돈을 빌리지 말고 본부에서 돈을 달라고 요구한 셈이다. 박장관이 국고채무부담, 즉 은행에서 차입한다고 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한대사는 본부에서 현금으로 지불하라고 요구하는 것으로, 사실상 장관의 결정도 무시한 것이다. 하극상이나 마찬가지다.
한대사의 힘이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는 더 있다. 1977년 3월 23일 정도순 뉴욕총영사는 '뉴욕 정도순'발신이라고 기재한 공문을 외무부 본부의 이상욱기획관리실장에게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급하게 작성된 공문으로 단 두 줄짜리였다.
'관저구입예산은 외환은행 차입이 아닌 본부예산으로 구입키로 되었다고 장관님께서 자금마련 관련 조속 회보바람'이라는 내용이었다. 정총영사가 김전장관에게 이야기했던 내용과 일치한다, '어쩌면 본부에서 돈을 지불할지 모른다'는 내용과 상통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박동진장관이 입장을 바꾼 것이다. 전문이 발송된 시점인 1977년 3월23일께의 박장관 동선을 체크해봤다. 박장관은 1977년 3월 17일 뉴욕에 와서, 유엔 등을 방문한 뒤 3월24일 귀국했음이 확인됐다. 박장관이 뉴욕에 온 뒤 한대사를 만나 한대사의 압력에 굴복한 셈이다. 그래서 당초 입장을 바꿔서 '본부예산으로 구입할 것이니 급히 돈을 마련하라'고 본부에 긴급지시한 것이다. 이처럼 한대사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다. 그러나 같은 날 이상욱 외무부 기획관리실장은 'NO'라는 입장을 단호하게 표명했다. 이실장은 3월 23일 정도순 뉴욕총영사에게 보낸 공문에서 '관저구입비는 국유화예산중 국고채무부담액의 일부이므로 외은에서 차입 지불해야만 함'이라고 강조했다. 본부예산으로 지불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석연찮은 주미대사관 관저 부지매입비 예산
한대사가 왜 외환은행 차입을 거부하고 본부 예산으로 지급받기를 원했을까. 외환은행에 17만달러 대출이 있었으므로, 한국정부가 외환은행에서 돈을 빌릴 경우 집을 판다는 사실이 외환은행에 알려져 대출금 상환압력이 있지 않을까 우려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가급적 외환은행 모르게 살짝 집을 팔고 돈을 챙기고 싶었을 개연성이 있다. 그래서 더 더욱 외환은행은 박전대통령의 딸로 부터 17만달러 대출금을 모두 회수했는지 지금이라도 분명히 밝혀야 하는 대목인 것이다.
1977년 5월 9일 뉴욕총영사는 마침내 박장관에게 '5월9일 총영사관 관저매입조치 완료'라는 공문을 보냈고 1977년 6월 14일 관저매입관 련서류를 본부에 보냈다. 소유증서 3부, 타이틀보험증서 3부, 크로징스테이트먼트 3부, 부동산표시와 도면사본 3부, 관저사진 사본 3부등이었다. 크로징스테이트먼트란 크로징때의 상황을 적는 서류다. 이 크로징스테이트먼트에 따르면 1977년 5월9일 오전 10시 30분, 866 유엔플라자 룸52호에서 크로징이 이뤄졌다. '셀러, 즉 매도자 한재옥씨와 남편 한병기대사, 구매자인 정도순 뉴욕총영사, 김하중 부영사가 참석했다'고 기재돼 있다. 이자리에서 '정총영사가 한대사에게 20만5천달러짜리 수표를 전달했다'고 명시돼 있다. 셀러가 한재옥이라고 명시돼 있으므로 박대통령 큰딸 소유의 집을 한국정부가 매입했고, '가옥주가 사망했다'느니 '해리엇 드레난이 주인'이라느니 하는 것은 몽땅 거짓이었음이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할 사항은 박대통령 큰 딸 주택을 매입한 자금이 주미대사관 부지매입 경비에서 20만5천 달러를 떼어내서 구입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주미대사관 부지매입이 차질을 빚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1985년당시 외무부 재외공관 국유화사업 대장에 따르면 외무부는 1977년 9월 27일 주미대사 관저부지를 60만달러에 매입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주매대사관 부지를 매입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이당시 주미대사관 청사는 1949년 구입한 1청사와 1973년 구입한 2청사등 2개청사로 이뤄졌으나 협소해서 신축이 시급한 상태였다. 외무부가 경제기획원에서 보낸 공문에서 '주미대사관 관저 부지매입비'를 '주미대사관 부지매입비'로 기재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주미대사관관저가 아닌 청사 부지를 매입하려다 박대통령 큰 딸 주택을 구입함으로써 예산이 줄어들어 부지를 매입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 때문인지 현주미대사관 부지는 13년 뒤인 1990년 5월9일에야 구입하게 되고 지하1층, 지상 5층으로 신축, 1992년 11월 20일에야 입주하게 된다.
국민 혈세로 큰딸 집 편법 불법동원 매입
만약 박대통령 큰딸 주택을 되사주기 위해 주미대사관 부지매입이 차질을 빚었다면 이 또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박정희 정권은 박전대통령의 큰 딸이 매입했던 미국집을 국민혈세로 사들이면서 숱한 불법을 저질렀다. 박전대통령의 큰딸은 박근혜 현대통령의 언니다. 40년만에 정부의 불법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난 만큼 박근혜 대통령도 이제라도 상세한 진상을 밝히고 국민 앞에 진솔한 사과를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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