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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미스테리 - 30년마다 나라를 뒤흔든 4인의 큰 죽음 .. [2]

2009-08-10 3099
Sundance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전쟁이 끝나고 남북 분단은 고착되었으며, 엄청난 상처를 남긴 채 남과 북은 재건에 온 힘을 다하였고, 그 과정에서 남과 북은 각각 독재 지배의 길을 걷게 됩니다. 남한에선 특히 박정희 정권의 개발 독재가 강화되고 새마을 운동과 수출 육성 정책으로 산업화도 가속화됩니다. 친일 경력과 군사 쿠데타로 정통성을 상실한 상태에서 집권하여 그 기반이 취약하였던 박 전 대통령은 그 취약점을 영구 집권을 통해 강화하려고 독재 권력을 휘두르다가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에게 살해되었습니다.


▲ 박정희 전 대통령

백범 서거 이후 꼭 30년 만에 서거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참으로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 국민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준 최초의 대통령이며, 무기력증에 빠져 있던 국민들에게 '하면 된다'는 신념을 불러일으킨 분이라는 평가에서, 대다수 민중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경제 개발은 많은 국민들의 삶을 질곡에 빠뜨렸으며 새마을 운동으로 농촌 공동체를 파괴하고 일본 자본을 끌어들이느라 식민지 배상을 포기하였으며 독재 권력을 강화하여 정치적 다양성을 말살하고 영구 집권을 획책한 독재자라는 평가까지, 아직도 논란의 편차가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논란과 상관없이 국장으로 치러진 그의 죽음 앞에서 그에게 기대왔던 많은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의 죽음도 그 뒤의 한국 역사를 격동에 빠뜨렸지요. 정치적 민주화를 다시 시작하려는 '서울의 봄'을 불러왔고, 이어서 신군부의 쿠데타, 그리고 한국 현대사의 깊은 상처인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비록 신군부의 집권으로 한국 사회는 다시 독재의 그늘로 빠져들지만 그것은 마치 아침이 오기 전에 더 깊어지는 어둠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한국민의 민주화 열망을 누를 수는 없었지요.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 후 30년 만인, 2009년 5월 23일에 다가온 또 하나의 큰 죽음이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입니다. 내로라하는 명문 가문 출신도 아니었고, 서울대를 비롯한 일류 대학 출신도 아니며, 삶의 모든 부면에서 변두리, 외방 출신의 비주류였던 노무현이 주류의 정점이랄 수 있는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한국 사회는 희망의 거대한 분수령을 넘게 되었지요.


▲ 노무현 전 대통령

노무현의 삶 자체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30년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이었고, 그 삶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와 같았습니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가난 때문에 상고밖에 졸업하지 못하였고 9년간의 고시 공부로 사법고시에 합격한 후 변호사가 되었던 노무현, 부림 사건을 계기로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며 법정이 아닌 노동 현장과 거리에서 민중과 함께했던 노무현,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5공 청문회 때 부도덕한 권력 집단을 질타하여 소위 청문회 스타가 되었던 노무현, 3당 합당에 반대하여 정치적 고난의 길을 걸으면서도 원칙을 지키고 지역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몸을 던짐으로써 '바보'라는 별명을 얻은 노무현, 정치인으로는 처음으로 가지게 된 팬클럽 노사모의 참여와 인터넷의 힘으로 대통령이 된 노무현이었습니다.

노무현은 대통령이 되고 난 뒤에 바로 권력을 제자리로 놓아주고 권위주의를 벗어던지며 낮은 자세로 국민과 소통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류 언론과 기득권 세력은 무척이나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입니다. 결국 노무현은 탄핵당하였고, 임기 내내 악의적인 비방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임기가 끝나고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고향으로 내려가 고향 사랑을 실천하며 소박하게 국민들 곁을 지킴으로써 도리어 국민들의 사랑을 더욱 많이 받는 전임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행복도 얼마 가지 못하였지요. 노무현의 상징이랄 수 있는 도덕성에 끊임없이 흠집을 내기 위한 검찰 수사와 주류 보수 언론의 집요한 반격으로 마침내 노무현은 자신이 태어난 고향 땅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서거하였습니다.

갑작스런 노무현의 서거는 온 국민을 비통과 충격에 빠뜨리며 온 나라를 눈물에 젖게 하였습니다. 국민장이 거행되었고 무려 500만 명이 조문하며 '바보 노무현'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누구는 노무현의 죽음을 정치적 타살이라고 규정했고, 누구는 주류 기득권 세력의 치졸한 정치 보복이라 하였고, 누구는 또 다른 노무현을 말살하기 위한 전방위적 반격의 결과라고 규정했지만, 한국 민주주의 후퇴가 노무현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고 하는 데 대체로 의견을 같이하였습니다.

저는 서민들과 함께 몸과 마음을 나누었던 '서민 대통령'의 죽음이 우리로 하여금 다시 한 번 우리 사회와 우리 자신들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누구이며, 지금 이 사회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으며, 한국 민주주의 현주소는 어디이며, 우리의 행동은 지금 어느 곳에 자리하고 있는가를 성찰하게 해줬다는 말입니다.

국민들의 눈물이 내면화되면서 어떤 폭발적인 에너지로 변하여 우리 사회와 역사를 더 고양된 형태로 넓히고 깊어지게 할 것이라는 점에서 노무현의 서거는 참으로 큰 죽음입니다. 아니, 그 엄청난 조문 행렬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 역사의 잠재 에너지입니다. 그 에너지는 아름답게 분출될 길을 찾고 있을 것이며, 그 길을 가는 일은 살아남은 사람들의 몫이겠지요.

이제 노무현의 죽음 이후 30년이 지난 2039년에 우리는 또 다른 '큰 죽음'을 기다려야 할 까요? 저는 우리 역사를 격동시킨 큰 죽음은 노무현의 죽음으로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이후 30년은 또 다른 큰 죽음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면 되겠지요. 상식이 통하는 사회, 정의가 승리하고 민주주의가 온전히 자리를 잡고 통일을 이루어 세계평화의 기점이 되는 나라를 만들어야겠지요. 상쟁과 상극의 사회를 상생의 사회, 은혜를 느끼어 아는 세상으로 만들어나가면 되겠지요.

그런 세상을 갈망하며, 다가올 30년을 기다립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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