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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학이 없다. 어느 인문학도의 눈물 .. [2]

2009-04-16 2017
월간중앙

학술 아닌 친목 다지는 학회활동

후사로 술과 밥의 무한제공을 약속받은 새내기들은 자신의 관심사보다 어떤 선배를 따라갈까에 초점을 맞추는 것 같았다. 이런 일이 어디 우리 학번만의 일일까? 매년 반복되다 보니 학회는 원래의 목적과 상반된 일반 친목단체로 전락한 경우가 허다했다. 물론 모든 선배가 다 그랬던 것은 아니다.

고학번 중에는 전공자답게 불문학에 심취한 사람도 소수이지만 있었다. 나는 그런 선배들과만 어울렸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선배들도 한 학기가 지난 뒤에는 얼굴 보기가 무척 힘들어졌다. 하반기 취업 시즌이 다가오면서 그런 현상은 더욱 뚜렷해졌다. 1학기와 달리 2학기의 캠퍼스 풍경은 더 살벌한 편이었다.

그 즈음 나도 학회를 그만뒀다. 1학년을 마치고 남자 동기들 대부분이 군입대를 위해 휴학을 신청했다. 2학년에 진학하기 위해 남은 몇몇과 여자 동기들은 복수전공을 어떻게 신청해야 할지 매일 열띤 토론을 벌였다. 사회에 나가 무역업에 종사하고 싶다던 한 영문과 친구는 부전공으로 경영학을 신청할 것이라고 했고, 같은 과의 다른 친구는 통사론을 더 공부해보고 싶다고 했다.

깊은 공부 쪽으로 방향을 잡은 친구의 손을 들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내 판단이 완전히 틀렸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남들은 수강신청 때 자리가 없어 수업을 못 듣는 경우가 허다하다는데 내 경우는 달랐다. 오히려 여유가 넘쳤다. 교양과목인 현대철학강의 신청자는 수강신청기간이 끝날 때까지 10명을 넘기지 않았다.

그 큰 강의실에서 교수를 포함한 11명이 수업한다니, 마치 토론회처럼 진지할 것 같았다. 전공수업보다 오히려 더 깊이 있는 지식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도 생겼다. 하지만 그 꿈은 1주일 만에 산산이 깨졌다. 첫 수업이 있던 날, 아침부터 들뜬 마음으로 다시 한번 강의실을 확인하고 집을 나섰다.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머릿속에는 그들과 라캉·데리다·들뢰즈 등의 철학을 논할 그림이 그려졌다. 한 사람이 이야기하면 옆에 앉은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말한다. 그런 생각 등을 하며 강의실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수강신청 인원이 부족해 폐강합니다."


'상실의 시대'에 빠진 인문학

교실 안은 썰렁했고 칠판에는 지극히 사무적인 투의 몇 글자가 인쇄된 A4용지 한 장이 붙어 있을 뿐이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 겪는 터여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우선 자리에 앉아 곰곰이 생각해봤다. 등록금을 지불하고 원하는 과목을 신청했는데 인원이 모자라 강의 자체를 없앤다? 이상했다. 교수도 확보됐을 테고, 수업할 여건이 갖춰졌으니 온라인 수강신청란에 띄웠던 것 아닌가?

한참 생각에 빠져 있는데 인기척이 들렸다. 문 쪽을 바라보았더니 한 손에는 두 권의 책, 다른 한 손에는 가방을 든 사람이 서 있었다. 얼핏 교수처럼 보였다.

"혹시 교수님이세요?"
"네. 서둘러 왔더니 학생 혼자인가 봐요?"
"수업이 폐강된 것 같은데요."

깜짝 놀란 교수는 칠판 쪽을 바라봤다. 잠시 굳은 얼굴을 하더니 이내 허탈한 목소리로 "아무 연락 못 받았는데…. 지난 학기에도 그러더니 또 이렇게 됐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 그와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단과대학 앞의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정교수가 아니라 시간강사였다.

마치 조선시대 보부상처럼 전국의 대학을 떠돌며 강의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마저 자리가 없어 힘들다는 속내를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털어놨다. 얼마나 힘겨운지 짐작이 갔다. 그는 이번처럼 전에도 몇 번 수업이 폐강된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이 세 번째예요. 요즘 학생들이 이런 수업 듣나? 충격받을 일도 아니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고 있었지만 눈가에는 물기가 어른거렸다. "꼭 강의를 듣고 싶었는데 못 듣게 돼서 아쉽다"고 말하자 그는 "내가 대학 다닐 때는 그래도 그런 학생들이 많은 편이었다"며 말을 이었다. "예전에는 문·사·철(文·史·哲)에 대한 탐구정신 같은 것이 있었어요. 어찌 보면 낭만이기도 했고, 그 자체가 자랑이기도 했죠. 그런데 요즘은 안 그래요. 학생처럼 관심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이상한 것 같이 느껴질 만큼 줄어도 너무 줄었어요."

돈 버는 것과 무관한, 즉 비실용 학문에 대한 관심이 적을 수밖에 없다는 그의 지적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독일에서 철학박사 과정을 밟았다는 그는 아직 사회 물이 덜 든 내게 철학이 아닌 세상 사는 이야기를 많이 해줬다. 대학에서 철학 강의를 제대로 해본 적은 없지만, 캠퍼스 울타리 밖에서는 의외로 호응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인문학에 목마른 사람은 대학생이 아닌 일반 사회인이라는 것. 하지만 그쪽도 벌이는 시원찮다고 했다. 열심히 듣는 청강생이 있다 해도 그 정원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는 인문학의 현실 때문이었다. 그래도 초심이 그랬듯 학자로서의 길을 걷는 것이니 진지하게 배우겠다는 열정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행복하다는 그.

문제는 역시 대학 쪽이었다. 찾는 학생이 없으니 학교에서도 지원을 줄이고, 그럴수록 수강신청하는 사람은 더 줄어드는 듯했다. 대학생활 내내 봤으니 이제는 진부하게 느껴지는 것이지만 당시에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내가 꿈꾸는 학자의 길이 그렇다는 것에 놀랐고, 대학과 대학생들의 수준이 그것밖에 안 된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랐다.

고등학교 은사들이 진학을 권한 경영학과의 경우 사정은 딴판이었다. 영문학과 친구가 그랬듯 비경영대 학생들이 너도나도 취업과 관련해 경영학으로 몰리다 보니 강좌를 여럿 개설해도 미어 터질 정도로 학생들이 몰렸다. 부익부빈익빈의 악순환은 신성한 상아탑 안에서도 현재진행형인 셈이었다.

대학생활의 고비는 그때부터 왔다. 나 역시 방황하기 시작했다. 전공수업을 들어도 의심부터 하기 시작했다. 교수들의 행동이나 선후배, 동기들의 행동이 눈에 무척 거슬렸던 것이다. 심하게 말해 교수들 중에는 '사기꾼'이 많았다. 여기서의 사기란 '지식사기'다. 20~30년 된 교재는 물론 매년 똑같은 내용을 가르치는 교수들이 어떻게 정년까지 버티는 것일까?

말로는 허울 좋게 인문학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내 생각은 그들과 달랐다. 인문학도 시대에 발맞춰 변하게 마련이다. 때문에 새로운 해석이 나오고, 새로운 학자들이 탄생하는 것 아니던가? 그럼에도 이들은 철옹성처럼 버티며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주려 하지 않았다. 불문학의 경우, 가뜩이나 전국적으로 폐과 위기에 내몰려 교수직 공고를 눈을 씻고 찾아도 찾을 수 없는 상황인데 말이다.

실제로 강의의 질도 시간강사 쪽이 훨씬 나은 경우가 많았다. 가령 최근 프랑스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한 강사는 비교문학 강의를 하면서 불문학 속에서의 소수문학과 한국·일본·중국 등의 동양문학 속 소수문학 사이의 공통점을 찾아내는 과제를 주는 등 상당히 신선한 내용이 많았다.

하지만 이들은 학내에서 주목받지도, 성장하지도 못하는 듯했다. 그런 장면들을 보면서 고교시절부터 가졌던 내 꿈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하기도 했다.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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