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보탤 게 없을 때가 아닌 더 뺄 것 없을 때라야 완벽··
고객에 더 많은 것 주려 말라
현금이 든 두툼한 지갑을 가볍게 만들어준 것은 신용카드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제는 용도별로 늘어난 신용카드들이 오히려 지갑을 더 두껍고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현대카드는 지난 7월 기존의 모든 카드를 두 종류로 단순화했다. 프리미엄 카드를 제외하고는 포인트 적립용인 M카드와 캐시백 할인용인 X카드로만 나눴다. 할인과 포인트 적립을 위한 복잡한 조건도 없앴다. 그 결과 출시 50일 만에 소비자들의 두 카드 사용액이 각각 34% 증가했고, 신규 가입자가 14% 늘어났다.
기업은 종종 더 많은 기능과 혜택, 더 많은 선택의 기회를 주는 것이 고객을 위하는 길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유타 대학교의 조지프 테인터 교수는 저서 '문명의 붕괴(The collapse of complex societies)'에서 한때 융성했던 문명들이 결국 복잡함 때문에 무너지게 된다고 역설한다. 사회든 조직이든 디자인이든 복잡해지려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복잡함은 경계 대상 1호라는 것이다.
이러한 복잡함을 단순화하는 귀재가 바로 스티브 잡스였다. 얼마 전 그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잡스'가 개봉됐다. 그의 일생을 다큐멘터리처럼 엮어냈는데, 기저에 깔린 잡스의 인생 철학이 잘 드러난다.
그의 철학은 한마디로 '단순화'이다. 선불교 수행을 즐겼던 그가 늘 인용했던 "더 보탤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 완벽함이 완성된다"는 생텍쥐페리의 말이 곧 그의 평생을 지배했던 철학이 아닌가 싶다.
자꾸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고 싶어 하는 기술자들과 달리, 잡스는 열정적으로 단순함을 추구했다. MP3 플레이어만 해도 다른 회사들의 제품은 지속적으로 기능을 추가한 탓에 전면에 버튼이 몇 개씩 붙어 있는 스타일이 대부분이었다. 반면 잡스는 원형의 휠 버튼 하나로 모든 조작이 가능하게끔 만들었다. 그는 사람들이 원하는 노래를 듣기 위해 버튼을 세 번 이상 누를 필요가 없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는 업무를 추진할 때도 프로세스가 조금만 복잡해지면 즉각 기존의 시스템을 걷어내고 새롭게 시작하는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에게 혁신이란 단순함의 추구를 의미했다. 흔히들 혁신이라고 하면 뭔가를 더 추가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업무가 단순해질수록 경영의 효율성은 높아지고 투명해진다. 한때 애플의 CEO였던 존 스컬리는 잡스를 '제품이든 업무든 알맹이만 남을 때까지 쓸데없는 요소를 계속 제거하는 미니멀리스트'라고 평가했다.
기업은 자꾸 이것저것 붙이려는 경향이 있지만, 사람들은 단순한 것에 반응한다. 캘리포니아의 명물이 된 인앤아웃 버거의 메뉴는 세 종류 햄버거에 프렌치프라이를 더해 딱 네 가지뿐이다. 햄버거 그 자체로 승부하려는 것이다. 포털 사이트 구글은 어떠한가. 디스플레이 광고 일색인 기존의 포털에 비하면 벌거벗은 듯 보이지만, 사람들에게 어느 곳보다도 만족스러운 탐색 경험을 제공한다. '심플(Simple)'이라는 책을 쓴 시겔과 에츠콘은 고객들에게 더 인상 깊은 경험을 안기려면 되도록 단순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은행에서 새 계좌를 열려면 서명을 대여섯 번은 해야 하는데, 그 이유를 알고 서명하는 고객은 많지 않다. 은행은 자신들의 법적 면책을 위해 갖가지 서명을 하게 할 뿐, 고객의 혜택을 위해 진정으로 노력한다는 인상을 주지 못한다. 최근 미국 시티은행은 금융상품의 구조와 계좌 신청에 필요한 서류를 획기적으로 단순화해 큰 성과를 보았다. 상품이 단순하고 명료하니까 고객이 서류 작성하는 시간이 그만큼 단축되고, 은행원은 고객과 더 깊은 신뢰 관계를 구축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단순화는 단순히 줄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본질'을 찾아내는 과정인 셈이다.
고객에게 더 많이 제공하는 것이 고객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TV 리모컨에서부터 병원 진료, 온라인 쇼핑, 약품 용기의 설명서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모든 것에서 단순함을 추구하고 개선할 여지는 많다.
"단순한 것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평범한 일이다. 그러나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만드는 것이 진정한 창조다." 재즈 음악가인 찰스 밍거스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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