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학이 없다. 어느 인문학도의 눈물 .. [3]
구태의연한 강의에 신물 나…
학생들이 취업에 목을 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구직활동이 힘든 시기였던 만큼 더 그럴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자신이 선택한 전공에 대해 관심 정도는 가져줬으면 하는 다소 건방진 생각도 들었다. 학점을 따기 위해 벼락치기 공부를 할 뿐 제대로 책 한 권 안 읽고 문학수업을 듣는 과 학생들도 많았다.
그들이 평소 도서관에 앉아 펼쳐 드는 책은 영어시험 교재 아니면 고시 관련 서적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왜 대학을 다니는 것일까? 이런 질문 앞에 서면 우리 사회에서 대학이 대졸자 양성소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들에게 졸업장은 대학을 나왔다는 취업용 자격증에 다름 아니었던 셈이다.
하루는 도서관에 앉아 내 등록금의 가치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기도 했다. 강의 내용은 부실하지만 전공필수여서 어쩔 수 없이 들어야 하는 과목들, 그리고 그 시간에 대한 기회비용 등을 고려해볼 때 산술적으로 따지기는 힘들지만 대학은 '비싼 도서관'이 아닐까 하는 결론에 도달했다. 8학기째 접어들면서 많은 갈등을 했다. 계속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친구들처럼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취업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일까 하는 갈등이었다.
쉬 답이 나오지 않았다. 지금의 대학 현실에서는 국내 대학원에서 공부한다는 것은 나 자신을 땅에 묻는 행위일 테고, 또 학위 취득 후 시간강사 자리도 확보하지 못해 캠퍼스의 미아가 될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취업 전선에 뛰어드는 것에도 문제가 있었다. 단 한 번도 실용학문 수업을 듣지 않은 나를 받아줄 기업이 국내에는 없다는 사실을 익히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나는 대부분의 학생이 가지고 있다는 토익 고득점이나 기타 자격증도 없었다. 학점 역시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다. 다른 학생들처럼 학점이 후한 교수들의 강의를 찾아 듣는 타입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가짜 취업률로 돈 벌려는 대학
이런 생각들을 정리하지 못한 채 지난 2월 나는 졸업을 맞았다. 대학을 떠난 몸이지만 아직도 대학으로부터 자유롭지도 못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것은 며칠 전 받은 전화 한 통 때문이었다. 학교에서 걸려 온 전화의 내용은 "취업했느냐"였다. 아무리 취업이 중요하기로서니 '지성의 산실'이라고 부르는 대학이 어떻게 갓 졸업한 동문을 상대로 취업 여부만 묻는 것일까? 그 숨은 뜻은 전화를 건 상대와의 대화에서 금방 나타났다.
"취업하셨나요?"
"아직 안 했습니다."
"혹시 대학원에 다니시거나 아르바이트라도 하지는 않으시나요?"
"잠시 보습학원에서 강사로 활동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그럼 동문님께서는 취업자이십니다."
이런 황당한 일이 있나? 얼토당토않은 취업률 조사 앞에서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내가 취업자라는 말인가? 이는 각 대학이 '취업률 인플레'를 조장하기 위해 만든 속임수였다. 이를 자료로 삼아 대학은 신입생 유치 때 홍보에 활용한다고 들었다. 멋 모르는 고등학생들을 꾀기 위해서였다.
진리를 가르쳐야 하는 대학의 요즘 실상이다. 그토록 졸업생 취업률이 중요하다면 차라리 화끈하게 지원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 그래야 등록금 낸 것을 아깝게 여기는 여러 졸업생이 도움을 받을 것 아닌가? 새로운 계좌인 미래의 신입생에게는 부단히 노력하면서도 헌 계좌인 졸업생은 나 몰라라 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대학이 그 정도로 매정한 곳이었다면 절대 들어가지도 않았을 터. 물론 학교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돈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대학은 생존의 절대 필요조건인 돈을 마련하기 위해 대대적 투자를 마다하지 않는다. 화려한 교정, 최첨단 장비를 갖춘 강의실, 그리고 학생들을 즐겁게 해줄 엄청난 규모의 정기적인 축제. 오히려 강의의 질을 높이는 교수진 확보는 나중 문제다.
이러니 대학의 미래가 없다고들 하지 않는가? 또 다른 생각도 들었다. 우리 사회에서 대학이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대학이 과연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느냐의 문제였다. 다소 고답적인 이 질문 앞에 서면 자연스레 지난 6년을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다. 꿈을 가지고 고등교육의 문을 두드린 학생이 있다. 그는 대학에서 꿈을 잃었다.
그 중심에는 돈이 되지 않는다는 논리가 작용했다. 그리고 이제는 모교가 돈을 벌기 위해 그를 이용하려 한다. 지금도 그 대학 안에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내야 할 취업준비생들로 가득하다. 진정한 대학과 대학문화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 아닐까? 이러한 의문의 연속 속에 살아가는 나는 요즘 이 나라를 뜰 채비를 하고 있다.
이른바 유학이다. 그렇다고 학위를 따고자 함은 아니다. 다시 한번 제대로 된 공부를 하기 위해서다. 적어도 오늘날 한국의 대학보다 나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다면 내 꿈도 다시 불씨를 일으킬지 모른다. 그리고 지금 심정으로는 다시는 이 땅을 안 밟을 것 같다. 돌아와서 '고난의 행군'을 할 바에야 유학 현지나 다른 나라에서 학자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을 꺼내든다.
"나의 이야기를 읽고 난 뒤에는 이 책을 던져버려라. 그리고 밖으로 나가라."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