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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학이 없다. 어느 인문학도의 눈물 .. [1]

2009-04-16 2056
월간중앙

교수 30년 된 교재로 버티기… '지식사기꾼' 아닌가요


학생 책 한 권 안 읽고 문학수업… 그게 대학 공부입니까
대학 임시직 졸업생도 "취업했다"… '취업률 부풀리기' 그만하세요
우리나라의 미래를 짊어진 대학의 현실은 처참하기 그지없다. '文·史·哲'로 상징되는 인문학 강의에는 학생이 아닌 '폐강' 공고가 자주 나부낀다는데…. 어느 불문학 전공 졸업생의 촌철살인 대학비판을 1인칭 시점으로 풀었다. "저녁을 바라볼 때는 마치 하루가 거기서 죽어가듯 바라보라.

그리고 아침을 볼 때는 마치 만물이 거기서 태어나듯 바라보라. 그대의 눈에 비치는 것이 순간마다 새롭기를. 현자(賢者)란 모든 것에 경탄하는 자다." 앙드레 지드가 쓴 <지상의 양식>은 그의 정신적 자서전이자 나의 정신적 지주였다. 정확하게는 10대 후반의 내가 대학을 꿈꾸며 그리게 한 최고의 서적이었던 셈이다.

지드에게 반한 나는 불문학과에 진학하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그뿐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문인 중에는 프랑스어권 출신자가 상당했다. 유년시절 누구나 읽었을 <삼총사><몽테크리스토백작> 등을 쓴 대 뒤마, 즉 알렉산드르 뒤마를 필두로 내 마음 속 영원한 <어린 왕자> 생텍쥐페리, <여자의 일생>을 쓴 모파상, 요절한 천재시인 랭보에 이르기까지….

자주 또래보다 어른스럽다는 말을 듣고는 했지만, 그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성적이 매우 뛰어난 우등생은 아니었다. 특히 수학은 '젬병'이었다. 어찌됐든 고등학교 3년을 거치면서 다른 전공을 택하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담임 선생님들은 그런 내게 경영학이나 법학과 같은 실용 학과 진학으로 생각을 고쳐먹을 것을 종용했다.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았다. "네가 생각하는 대로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아."먹고 살기 어려운, 즉 취업이 안 되는 불문학을 선택했다 크게 후회할 것이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는 공부가 하고 싶었고, 제대로 공부하게 된다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보고 듣고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부모님도 이런 내 결정을 탐탁지 않게 여기셨다. 그래도 나는 끝까지 우겼다. 대 학자가 될 터이니 두고 보라고.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학비는 꼭 마련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프로파간다로 가득한 대학문화

이런 설득 끝에 무사히 원서를 넣을 수 있었다. 2001년 겨울, 드디어 나는 서울 소재 A대학 불문학과에 합격했다. 뛸 듯이 기뻤다. 이제 마음껏 공부하면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설마 그 순간이 '지옥문'일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부터 내가 가지고 있던 대학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나는 연습을 8학기 내내 해야 했다.

그 첫 관문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OT)이었다. OT 첫 날, 교내 노천극장으로 집합하라는 학교의 부름을 받고 시간에 늦지 않게 달려갔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희한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노천극장에는 각 학과의 깃발을 든 선배들이 있었다. 내 눈에는 마치 유치원생을 마중 나온 사람, 아니 관광 가이드처럼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유심히 깃발에 쓰여 있는 글귀들을 살펴보니 학과 이름 앞에 '강철' '선봉' '전진' 등의 문구만 잔뜩 있었다. 그것이 무엇을 상징하는지는 쉽사리 간파할 수 있었다. 프로파간다성이 너무 짙어 약간 불쾌하기도 했지만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어느 정도 학생들이 모이자 선배라며 몇 명이 앞으로 나와 인사했다.

그러면서 무슨 학번 누구임을 스스럼없이 큰소리로 밝혔다. 그들 뒤에는 선배 몇 명이 뒷짐을 지고 있었다.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것으로 봐서 고학번들인 것 같았다. 속칭 'FM'이라고 부르는 자기소개 방식이었다. 일종의 시범인 셈이었다. 너희 새내기들도 앞으로는 그렇게 해야 한다는 듯.

TV에서 본 장면이 떠올랐다. 군대에서 이등병이 힘차게 관등성명을 내뱉는 모습 말이다. 그러는 사이 옆 학과에서는 춤을 추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민중가요에 맞춰 율동을 하는 것이라는데, 도저히 눈뜨고 봐주기 민망할 정도였다. 이제는 성인이라고 부를 나이의 사람들이 딱딱 행동을 맞춰 군무를 펼치는 모습을 어디서 쉽게 보겠나?

요즘 대학에서는 비실용 학문에 대한 인기가 낮다. 한 인문학 강의실의 수업시간, 휑할 정도로 빈 자리가 많다.대학 입성 첫날, 나는 원칙 하나를 세웠다. 내일부터는 OT에 나가지 않으리라. 대학은 말 그대로 '큰 공부'를 하는 곳이지, 선전·선동이나 입대 전 군대문화를 미리 체험하는 곳은 아니지 않은가?

물론 교양을 쌓기 위해, 또는 선후배 간의 건전한 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모임이라고 생각되면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이 역시 헛된 바람에 불과했다. 첫 MT의 기억도, 과내 학회 모임 첫날의 분위기도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T와 거의 똑같았다고 보면 된다. 약간의 유흥이 더해졌을 뿐이었다. 이제부터 학회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한다. 나는 당연히 학과 내 불문학회에 가입했다. 적어도 그곳만은 소설·시·희곡 등 문학을 사랑하는 대학생의 모임일 것이라고, 그리고 지적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역시 착각이었다. 선배들 중 진짜 독서파는 극히 소수였다. 수박 겉핥기 식으로 아는 체만 했지, 제대로 책 한 권이나 읽었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무식한(?) 선배들이 더 많았다. 학회 선배라기보다 그저 과 선배에 불과했다.

문이 들었다. "왜 저 선배들은 학회에, 그것도 조금은 진지해야 할 문학회에 가입한 것일까?"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내 동기들이 꼭 그랬기 때문이었다. 그 매커니즘은 OT에서 출발한다. 나는 두 번째 날부터 가지 않아 잘 몰랐지만, 선배들과 신입생 간에 친목이 두텁게 형성돼 있었다. 선배들은 서로 자신의 학회에 후배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경쟁하는 듯했다.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학회 회원이 많아야 과에서 운영비 등을 많이 지원받는다는 말도 나돌았다.


- 계 속 -

source : 1300000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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