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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잘 살던 나우루가 외국에 구걸하는 까닭은

2010-05-03 2277
Sundance

대만으로 부터 밥을 얻어 먹다.


타이완(臺灣) 영자지 타이베이 타임스에 따르면 타이완 정부는 2010년 3월부터 남태평양 섬나라 나우루(Nauru)에 매일 아침식사를 무료 급식하고 있다. 나우루 전역의 유치원·초등학교 어린이들이 대상이다.

나우루에는 유치원이 6개, 초등학교가 2개 있다. 고교와 공무원 1000명에게는 도시락이 싼값에 공급된다. 남태평양 순방길에 올랐던 마잉주(馬英九) 타이완 총통은 나우루에 들러 지속적인 경제 협력을 약속하기도 했다.



타이완은 2002년 중국의 달러 외교전에 패배해 나우루로부터 단교당했다. 그러다 대대적인 경제 지원을 통해 2006년 국교를 복원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나우루의 1인당 국민소득이 한때 2만 달러에 육박했기 때문이다.타이완은 2002년 중국의 달러 외교전에 패배해 나우루로부터 단교당했다. 그러다 대대적인 경제 지원을 통해 2006년 국교를 복원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나우루의 1인당 국민소득이 한때 2만 달러에 육박했기 때문이다.

그랬던 나라가 어쩌다 어린이들 식사까지 외국으로부터 얻어먹는 처지가 됐을까. 호주와 하와이 사이에 있는 섬나라 나우루는 국토 면적이 21㎢에 불과하다. 울릉도의 3분의 1 크기다. 인구는 2010년 현재 1만 명 정도다.

산호초로 둘러싸인 이 작은 섬에는 갈매기와 앨버트로스(신천옹)가 천지였다. 섬을 찾은 새들은 산호초와 섬 위에 수천 년 동안 똥을 쌓았다. 1888년 나우루를 찾은 독일 자본가들은 섬 전체에서 대량의 인광석을 발견했다.

인광석은 화학비료 재료로 쓰인다. 새들의 똥이 산호충과 결합해 인광석으로 변했고 나우루 전체가 인광석 노천광이 된 것이다. 이후 독일·호주·뉴질랜드·영국 자본이 나우루인들을 고용해 노천에서 인광석을 실어갔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68년 신탁통치가 종료되면서 나우루는 공화국으로 독립했다. 인광석 광산은 나우루 소유가 됐다. 나우루 정부는 외국 자본이 한 그대로 인광석을 채굴했다.

땅을 걷어내면 순도 높은 인광석이 나오니 기술도 필요없었다. 현금이 쏟아져 들어왔다. 나우루 주민들은 더 이상 노동을 하지 않았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고용한 채굴장 수입으로 먹고살았다.

농장은 모조리 인광석 광산으로 변했다. 사람들은 통조림을 수입해 냉장고에 쟁여놓고 먹었다. 세금도 없었다. 초등학교 공짜, 의료비 공짜, 주택도 공짜였다. 1980년대 중반 나우루는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기도 했다.

한번도 외국을 나간 적 없는 사람들이 전세기를 타고 하와이와 피지와 싱가포르로 쇼핑관광을 가는가 하면 전세기로 호주 멜버른으로 날아가 럭비 경기를 구경했다. 고급 스포츠카도 수입했다.

나우루에는 일주도로가 하나 있다. 길이는 18㎞에 제한속도가 40㎞였다. 지금은 곳곳이 부서져 차량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한 주민은 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경찰 간부 한 명이 최고급 스포츠카인 람보르기니를 수입했는데 운전석에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몸이 뚱뚱해 제대로 타보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이 주민은 "심지어 1달러 지폐를 화장지로 쓴 미친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1990년대 초 문제가 두 가지 터졌다. 전 주민의 90%가 비만이고 50%가 당뇨를 앓고 있었던 것이다. 채소와 어류 대신에 수입한 가공식품에만 매달린 결과였다. 지표면을 뒤덮었던 인광석이 고갈됐다는 사실은 더 심각했다.

정부가 부랴부랴 어업 부활을 위해 항구를 개발했다. 주민들은 거기에서 고기를 잡는 대신 해수욕을 즐겼다. 농장을 개발하려 했지만 표토(表土)가 사라진 땅에는 농사가 불가능했다.

뼈만 남은 땅에 관광산업 개발은 더 불가능했다. 낮아진 지표 때문에 나우루는 지구온난화에 따른 수면 상승 효과의 대표적인 피해국가가 됐다. 1990년대 나우루 정부는 외국에 투자해둔 부동산을 담보로 외채를 빌려썼다.

세금 떼먹는 외국인이나 테러리스트에게 국적을 팔고 스위스식 비밀은행업도 벌였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은 나우루은행 자산을 동결했다. 그 해 나우루 정부는 현금 지원을 대가로 호주 난민수용소를 자기 땅에 유치했다.

2003년 인광석이 공식적으로 고갈됐다. 2005년 12월에는 국적기 에어나우루가 운항을 중단했다. 2008년에는 호주가 난민수용소를 폐쇄했다. 지구상에서 나우루를 위한 돈줄기가 사라진 것이다.

그 무렵 타이완이 나타났다. 2006년 타이완은 국교 복원을 조건으로 경제협력을 제안했다. 중국과 살벌하게 외교전을 벌이던 때라 타이완 정부는 나우루→피지→서울을 경유해 나우루 대표를 타이베이로 데려가 수교를 복원했다.

이후 타이완은 기술자들을 보내 채소 농장을 건설했다. 중단됐던 국적기 에어 나우루도 2006년 타이완 자본으로 '아워 에어라인(Our Airline)'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했다. 지난해 12월 나우루는 그루지야가 소유권을 주장하는 구소련지역 소국 압하지아와 남오세티야를 승인했다. 외교가는 "그루지야를 견제하는 러시아가 나우루에 5000만달러를 지원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여기까지가 나우루 어린이들이 타이완으로부터 밥을 얻어먹게 된 사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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