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gent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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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Argentina - 지리, 기후, 역사

2019-02-01 2155
About Argentina

아르헨티나 (Argentina)

아르헨티나에 대해 이야기할 때 탱고나 가우쵸(남미의 카우보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들어봤을 테지만 대부분의 여행자들에게 가장 주요한 구경거리는 이 나라의 놀라운 자연이다. 북쪽 사막에서 남쪽의 안데스산맥까지, 그리고 이구아수(Iguazu)폭포에서 장엄한 파타고니아(Patagonia)황야까지 이 나라의 자연은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모든 것들 위에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가 있는데 이 도시는 세련된 모습으로 유명한 동시에 유럽을 흉내 낸 도시로 조소를 받기도 하는데 이러한 것들은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사실 아르헨티나에 사는 대부분 이민자들의 모습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유럽에서부터 소위 말하는 신세계로 건너올 때 유럽의 문화적인 특징을 그대로 간직하고 왔다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아르헨티나는 유럽인들이나 북미인들, 그리고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편안하게 느껴지며 상대적으로 특별히 달라 보이지 않는다. 현지 사람들과 공감대를 가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아마 축구에 대한 관심과 민첩한 축구 기술일 것이다.

통계 자료

국명 : 아르헨티나 공화국(Republica Argentina)
면적 : 2,776,653 sq km
인구 : 3400만 명 (인구 성장률 1.2%)
수도 : 부에노스아이레스 (인구 12백만 명)
인종 : 유럽인 후손 85%, 메스티조 15%, 인디언과 기타 소수민족
언어 : 스페인어와 17가지의 토착 언어
종교 : 로마 카톨릭 93%, 개신교 2,5%, 유태교 1.5%, 우크라이나 카톨릭, 아르메니아 정교
정체 : 공화제

지리 및 기후

아르헨티나는 남미의 길고 가늘어지는 아래 부분 중 동쪽 반을 차지하고 있다. 이 나라는 커다란 나라로 세계에서 여덟 번째 큰 나라이며 남미에서는 두 번째로 큰 나라이다. 국경은 서쪽으로 칠레(안데스산맥으로 나뉘어 있다)와 접하고 있으며 우루과이, 파라과이, 브라질, 볼리비아와는 북쪽과 동쪽으로 국경을 접하고 있다(강들에 의해 나뉜다). 또한 칠레와 띠에라 델 푸에고(Tierra del Fuego)의 연안 섬 영토를 공유하고 있으며 계속해서 말비나스(Malvinas, 영국에서는 포크랜드로 부름) 섬의 영유권을 놓고 다투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세부 지형은 고도와 위도에 의해 영향을 받고 변한다. 아르헨티나는 크게 네 지형으로 나뉘는데 서쪽의 안데스산맥(건조한 분지와 포도로 가득한 구릉, 빙하 산맥과 디스트릭트 호수), 동쪽의 비옥한 저지대(아열대 우림), 중앙 팜파스(다습하고 건조한 기후가 섞인 넓은 평원), 그리고 파타고니아(목가적인 대초원과 빙하 지역이 함께 공존하는 곳) 가 그것들이다. 22곳의 국립 공원은 이런 다양한 환경의 광대한 지역들과 카이만(또는 야카레, 중남미산 악어), 퓨마, 과나코(안데스산맥 라마의 사촌격으로 저지대에 사는 동물), 레아(타조 비슷한 동물), 안데스 콘도르, 홍학, 여러 바다 포유동물, 마젤란 펭귄 같은 보기 힘든 조류 등 독특한 동물들을 많이 보존하고 있다.

가시 숲, 원시 열대 우림, 한창 꽃을 피우는 선인장, 광대하게 퍼져 있는 칠레 소나무 숲, 남쪽의 해변 등도 또한 보호되고 있는 곳들이다. 아르헨티나의 기후는 북쪽의 아열대에서 다습한 중앙, 그리고 남쪽의 추운 지역까지 걸쳐 있다. 안데스산맥 지역은 불규칙한 강우량, 여름의 봇물같이 쏟아지는 홍수, 타는 듯한 더위, 높은 고도에서의 눈, 그리고 뜨겁고 건조한 바람인 손다(Zonda) 등 여러 가지 모습을 볼 수 있다.

저지대는 늪지대 숲과 고원 사바나를 이어갈 만큼 충분한 비가 쏟아지지만 강우량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갈수록 감소하며 동쪽에서는 낮은 여름 홍수가 일반적이다. 겨울의 건기도 확실하며 여름의 불볕더위는 무지막지할 정도이다. 편평한 팜파스 지역도 또한 홍수에 취약하며 파타고니아 동쪽은 연중 내내 온화하며 남쪽은 얼음처럼 차갑다.

역사

콜롬부스 이전 시대의 아르헨티나에는 디아기따 같은 인디언 부족들이 정착해 있었으며 유목민족에 의해 사냥터로 이용되었다. 그리고 인디언의 저항은 스페인인의 침략과 개척을 억제하였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1580년까지 시의 건립에 난항을 겪었으며 200년 동안 오지로 남아있었다. 인디언 인구가 줄어가고 불균형하게 분포되면서 노동력을 착취하기 어려워지자 아시엔다(hacienda)로 알려진 거대한 목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

이러한 목장은 전설적인 가우쵸의 탄생이나 몇몇 행운아들이 거대한 부를 축적하는 기반이 되었다.부에노스아이레스는 스페인의 정치적 경제적 지배를 받기에는 너무 커버렸다는 인식하에 1776년에 리오 데 라 쁠라따(Rio de la Plata)의 새로운 총독령의 수도가 되었다.

그러나 스페인의 간섭에 대한 계속된 불만으로 1810년 5월 25일 혁명이 발발하였고 결국 1816년 독립하게 되었다. 독립에 따라 곧 스페인 지배하에서 감추어지던 극심한 지역적 불균형이 드러나게 되었다. 내륙의 연방주의자들(보수적인 지주, 가우쵸나 도시 노동계급에 의해 지지를 받던)은 지역별 자치제를 지지하는 반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단일주의자들(유럽의 수도, 이민, 사상들이 유입되는 것을 환영하던 대도시 거주자들)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중앙 집권을 주장하였다.

명목만 연방주의자인 후안 마누엘 로사스(Juan Manuel Rosas)의 비참하고 압제적인 지배 이후에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단일주의자들이 득세하였으며 1853년 단일주의 헌법하에 성장과 번영의 새 시기를 구가하였다.양들이 수입되었고 팜파스는 곡물 농작물의 경작을 위해 이용되었다. 유럽의 이민자, 외국 투자와 무역은 새로운 자유주의의 보증 표시가 되었다. 그러나 과다한 외국의 이권으로 경제는 특히나 세계 경제의 흐름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었고 부는 소수의 손에 집중되었으며 소자작 농지가 실패하면서 실업률도 올라 농부는 일자리를 잃고 도시로 향하게 되었다.

20세기의 최초 10년 동안은 문민 정권의 약화, 경제 정책 실패, 지주 엘리트에 대한 지속적인 분노, 영국 자본에 대한 불신 등이 두드러졌으며 이로 인해 독재자 후안 페론(Juan Peron)의 집권으로 이어지게 되는 1943년 군사쿠데타가 발발하였다. 노동부의 한직을 차지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한 대령이던 그는 1946년과 1952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그에 못지 않게 유명하고 카리스마적인 힘을 가지고 있던 그의 아내 에바와 함께 페론은 국내 산업화와 자결권을 강조하는 긴축 경제 계획을 실시하였고 이는 보수적인 민족주의자들이나 노동계급 양쪽에 호응을 얻었다. 그의 정당은 1955년 군사 쿠데타에 의해 무너졌으며 페론은 스페인으로 추방당했고 이후 30년 동안 많은 피해를 가져온 군사 정권이 잠시 문민 정부가 들어선 기간을 제외하고 계속해서 지배하였다.

페론은 1973년 잠시 정권을 찾았지만 1974년 재임 중 사망했고 그의 세 번째 아내 이사벨에게 권력을 이양했다. 그러나 경제적인 문제들과 정치적 불안정이 증대하면서 파업과 납치, 게릴라전이 발생하였다. 이사벨의 정부는 1976년 붕괴되었고 새로 군사 정부가 들어서 공포정치를 펼치기 시작했다. 1976년에서 1983년까지는 더러운 전쟁(Dirty War)의 시기로 묘사되고 있다. 반대와 비판세력은 정부와 관계가 있는 반군사적인 암살대에 의해 제거되었고 10,000명에서 30,000명에 이르는 시민들이 사라졌다.

이 시기에 가장 유명한 희생자들은 사라진 가족들을 위해 용감하게 공개적인 감시활동을 벌였으며 때로는 그들 자신도 행방 불명된 여성들의 그룹인 마드레스 데 라 플라사 데 마요(Madres de la Plaza de Mayo)이다. 이러한 내부적인 갈등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남대서양에서 진짜 전쟁이 벌어지면서 끝이 나고 말았다(말비나스 또는 포클랜드 전쟁). 레오폴드 갈띠에리(Leopold Galtieri) 장군은 아르헨티나의 소름 끼치는 정치적 부패와 경제적 실수를 감추기 위해 영국으로부터 말비나스를 점령했다.

양국에서 터져 나온 격앙된 민족주의 감정은 영국이 이 조그만 땅덩이를 지키러 소 함대를 파견하기에 이르렀다. 결국은 영국이 '승리'를 거두었지만 이 사건은 양쪽에게 모두 부끄럽고 값비싼 일화가 되어버렸다. 안팎으로 불명예스러운 실패를 거듭함으로써 아르헨티나의 군사 정권은 물러나게 되었고 1853년의 헌법체제로 돌아가게 되었다. 현재의 대통령은 페론주의자인 메넴으로 경제적인 변화 - 국유 산업을 사유화하고 외국 투자자에게 경제를 개방하는 -를 추구하고 있으며 인플레이션을 5000%에서 4%까지 내렸다.

메넴은 1995년 선거에서 손쉽게 재 당선됨으로써 40년 만에 최초로 연임을 하게 된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말비나스의 영유권은 아직도 분쟁의 씨앗이 남아있다. 1995년 6월 아르헨티나의 외무장관은 2000여명의 섬 주민들에 대해 그들의 국적을 바꾸는데 각각 US$800,000을 제공하면서 이 섬을 사겠다고 제의했다.

이 문제는 영국이 이곳 연안에 유전이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더욱 복잡하게 얽혀있으며 앞으로도 분쟁의 소지가 많이 남아있다.

source : LiKW2ruKXf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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