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lay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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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Malaysia - 지리, 기후, 역사

2019-02-01 1592
About Malaysia

말레이시아 (Malaysia)

말레이시아는 동남아시아에서 여행하기 가장 쉬운 나라로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페낭이나 말라카 같은 역사적인 도시들이 여행자에게 인기 있다. 비록 전통문화에서는 두드러지는 것이 없지만 말레이시아에는 다양한 민족의 친절한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아주 흥미로운 복합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말레이반도에는 말레이인, 중국인, 인도인들이 살며 東말레이시아의 사바와 사라왁에는 다양한 종류의 소수 부족들이 살고 있다. 멋있는 해변과 산 그리고 국립공원과는 별개로 말레이시아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번영하고 있는 나라이다. ‘新아시아'의 중심지이며, 빠르게 늘어나는 부와 산업개발로 동남아시아에 서 가장 현대화된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통계 자료

국명: 말레이시아 연방(State of Malaysia)
면적: 329,750 sq km
인구: 1970만명(인구 성장율 2.3%)
수도: 쿠알라룸푸르(Kuala Lumpur; 인구 120만명)
인종: 말레이 50%, 중국인 33%, 인도인 9%, 이외 오랑아슬리나 이반족같은 원주민
언어: 말레이시아어, 영어, 중국 방언, 타밀어, 원주민어
종교: 무슬림 52%< 불교 17%, 도교 12%, 기독교 8%, 힌두교 8%, 부족종교 2%
정체: 입헌군주국

지리 및 기후

말레이시아는 두 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말레이반도는 손가락 모양으로 아시아에서 인도네시아와 호주 쪽으로 뻗어 있으며, 전체 국토에서 약 40%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고무나 야자나무의 플랜테이션을 만드느라 수십년에 걸쳐 숲들이 많이 없어졌지만 여전히 처녀림이 남아 있으며, 그 중에 많은 숲들이 따만느가라(Taman Negara) 국립공원에 있다. 나머지 국토는 보르네오섬 북부를 차지하고 있는 사바와 사라왁 주에 있다.

이곳에서도 역시 농업과 제재업 때문에 숲이 없어지고 있는데, 특히 처녀 열대우림들이 빠른 속도로 파괴되고 있다. 사바?있는 끼나발루산(Mt Kinabalu)은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전형적인 열대기후가 나타나 연중내내 무덥다. 기온은 밤에도 섭씨 20도 이하로는 잘 떨어지지 않으며, 대개 30도까지 올라가고 낮에는 이보다 더 올라가기도 한다.

말레이시아에는 연중내내 비가 내린다. 하지만 말레이반도 서부는 9~12월 사이에 더 많은 비가 내린다. 반면 동부해안은 11~2월 사이에 몬순의 영향으로 비가 많이오고, 사라왁과 사바도 동부해안과 비슷하게 몬순의 영향을 받는다. 습도는 거의 90% 주변에서 낮아지지 않는다. 하지만 말레이반도에 있는 고원지대에 올라가면 서늘하여 더위와 습기를 피할 수 있 다.

역사

선사시대 말레이시아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하지만 약 1만년 전에 토착 말레이人 오랑아슬리(Orang Asli)가 남서 중국쯤에서 출발하여 남쪽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기원을 전후하여 말레이는 유럽까지 알려졌다. 프톨레마이오스(Ptolemy)는 그의 초기 지도에서 말레이반도를 ‘황금반도’로 표기했다. 황금이라고 표기한 것은 로마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였지만, 인도와 중국의 무역업자들이 금을 찾아 이곳에 도착한 후, 힌두 미니왕국들이 말레이의 강을 따라 형성된 것은 그렇게 오래된 일이 아니다.

말레이 인들은 민족학적으로는 수마트라, 자바 그리고 필리핀 인들과 비슷하다. 그리고 때때로 다양한 동남아시아의 왕국들이 말레이반도를 전체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지배했었다. 1405년 중국인 제독인 정화가 황제의 칙령을 가지고 말라카에 도착했다. 그리고 북쪽에서 침범하는 시암왕국을 막아주겠다는 중요한 약속을 해주었다. 그 결과 중국의 도움으로 말라카는 말레이반도 전역에 세력을 확장했다.

거의 같은 시기에 말라카에 이슬람이 도래했고 곧 말레이 전역으로 전파되었다. 말라카의 부와 번영은 곧 유럽인들의 관심을 끌었으며, 1511년에는 포르투갈이, 1641년에는 네덜란드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1795년에 영국이 말라카를 차지했다. 오랫동안 영국은 그들의 교역로를 보호하기 위해 말레이의 항구에만 관심을 두었다. 하지만 주석의 발견은 그들의 관심을 내륙으로 이끌었고, 그에 따라 전체 반도가 영국의 통치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반면 백인 라자(raja; 지방 왕)인 Charles Brooke과 북보르네오 회사(North Borneo Company)는 영국이 차지한 것과 비슷한 방법으로 사라왁과 사바를 각각 차지했다.

영국인들은 자신들의 관습을 유지했고, 인도인과 중국인들을 말레이반도에 이주시킴 으로써 말레이의 인종 혼합이 급속하게 이루어졌다. 말레이는 1957년 독립(머르데까; merdeka)을 쟁취했다. 하지만 곧이어 국내 공산세력의 준동과 이웃 나라인 인도네시아와 ‘대결국면’의 상태에 빠짐으로써 나라가 상당히 불안정하게 되었다. 1963년 보르네오에 있는 사바와 사라왁 그리고 싱가포르가 말레이 연방에 가입함으로써 말레이시아가 탄생하게 되었다. 하지만 싱가포르와의 관계는 즉시 냉각되었고 2년 후에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탈퇴하였다.

수카르노의 사망으로 인도네시아와의 불편한 관계는 끝이 났으며, 현대화와 더불어 공산주의도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판명되어 간단하게 세력이 약화되었다. 1969년 인종폭동이 발생하였으며, 특히 쿠알라룸푸르에서 그 강도가 심했다. 그리고 폭동 결과 수백명의 사람들이 사망했다. 정부는 말레이와 중국인 사이의 긴장을 약화시키기 위한 정책을 실시했다. 방향은 다른 민족보다 말레이 인에게 더 많은 경제적 혜택을 주는 것으로 정해졌다(경제적 소외감 때문에 발생한 폭동이었다).

결국 오늘날 말레이시아는 인종 간에 평화스러운 분위기를 유지하며, 서로 협동하면서 살고 있다. 1974년 선거에서는 바리산(Barisan)으로 불리던 국민전선(National Front)이 다수표를 얻었으며, 그 중에서도 UMNO (United Malays National Organisati on)가 핵심 정당 역할을 했다. 그 때부터 모든 선거의 승리자는 UMNO가 되었다. 마하티르모하마드(Dr Mahathir Mohamad) 수상은 말레이시아의 경제발전을 주도했으며, 범아시아주의의 지도자로서 세계 무대에서 그의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하지만 1997년 링깃화의 약세로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그의 위치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1998년 9월 영연방 경기가 말레이시아에서 열렸지만 학생들이 불법구금과 안와르(Anwar Ibrahim) 부총리의 체포에 대해 항의하면서 연일 데모를 벌여 공공질서가 크게 흔들렸다. 그리고 데모대는 마하티르 총리의 사임까지 요구하고 나서 동남아시아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안정된 나라였던 말레이시아에 대한 인식이 많이 변하게 되었다.

source : TjH5DWlQU6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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