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쥐락펴락한 10대 정치 명문가
혈통을 이어 고위직을 차지하는 정치 명문가
혈통을 이어 고위직을 차지하는 '정치 명문가'(political dynasty)의 존재는 '미국'으로 상징되는 브랜드와는 거리가 먼 듯 보인다.
미국 헌법에도 "미국에는 어떠한 귀족적 지위도 부여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미국 정계에서 '정치 명문가'의 존재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최근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의 타계로 '케네디가(家)'가 종막을 고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면서 미국 정계에서도 정치 명문가의 존속 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조명을 받고 있다.
'미국의 정치 명문가'(America's Political Dynasties)라는 저서로 유명한 브루킹스 연구소의 스티븐 헤스는 워싱턴 포스트의 의뢰로 미국 역사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10대 '정치 명문가'를 선정했다.
헤스는 승계, 가족, 영향력 3가지 기준을 바탕으로 점수를 매겨 10대 정치 명문가를 선별했다.
승계성은 최소한 3대에 걸쳐 공직에 진출한 것을 정치 명문가의 조건으로 했다.
가족은 혈연관계만을 포함시켰다. 아널드 슈워제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처럼 케네디가의 사위인 경우는 점수에서 배제했다는 얘기다. 영향력은 해당 직위와 재임기간에 따라 가중치를 부여했다.
워싱턴 포스트 2009년 9월 13일자 특집 기사로 게재된 헤스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의 최대 정치 명문가로는 역시 케네디 가문(96점)이 뽑혔다. 케네디가는 대통령 1명, 상원의원 3명, 하원의원 4명, 각료 1명을 배출해 숫자도 많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향력도 높은 평점을 받았다.
2위는 미국 26대 시어도어 루스벨트(1901~1909년) 대통령, 32대 프랭클린 루스벨트(1933~1945년) 대통령 등 대통령 2명, 부통령 1명, 주지사 2명을 배출한 루스벨트 가문(92점)이 차지했다.
3위는 부통령 1명, 주지사 3명, 상원의원 2명, 하원의원 2명을 배출한 록펠러 가문(81점)이었다.
엄청난 '금권'을 장악한 록펠러 가문은 19세기에는 정계 진출이 여의치 않았으나 명문가와의 혼맥을 바탕으로 20세기 들어 정.재계에 동시에 막강한 영향력을 펼치고 있다.
할아버지와 손자 대통령을 배출한 해리슨 가문(76점)은 4위를 차지했다.
9대 윌리엄 해리슨(1841∼1841년) 대통령은 취임 42일만에 급사했지만, 48년뒤 손자인 벤저민 해리슨(1889~1893년)이 23대 대통령을 역임했다. 지난 1990년 이후 정계에 해리슨 가문의 맥은 끊긴 상태다.
5위는 2대 존 애덤스(1797~1801), 6대 존 퀸시 애덤스(1825~1829) 대통령을 배출한 애덤스 가문(68점)이었다.
미국 건국 이전부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애덤스 가문은 점차 퇴조해 20세기에는 딱 한명의 장관을 배출했다.
부자(父子) 대통령을 배출한 부시 가문(67점)은 6위를 차지했다. 헤스는 "부시 가문은 플로리다 주지사를 역임한 젭 부시가 아직 50대 중반이고, 그의 아들도 정치에 관심을 갖고 있어 다른 어떤 명문가보다 향후 영향력을 이어갈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무장관 1명에 6명의 상.하원의원을 배출한 뉴 저지의 프렐링하이젠 가문(66점), 1800년대에 부통령을 배출하며 영향력을 행사하다 20세기엔 정계에서 발을 뺀 브레킨리지 가문(65점), 27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1909∼1913년) 대통령을 배출한 태프트 가문(64점), 델라웨어의 베이야드 가문(63점) 등이 10위권안에 들었다.
미국의 정치 명문가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낡은 명문가들이 몰락하고, 새로운 명문가들이 떠오르는 추이를 보인다고 헤스는 분석했다.
2명의 대통령을 배출하며 신흥 명가로 부상한 부시 가문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정치 명문가 리스트에 명함도 내밀지 못했었다. 반면 18, 19세기 미국 정치를 주름잡던 해리슨, 애덤스 가문은 정계에서만큼은 쇠락의 길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