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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과 프리메이슨의 대결 .. [1]

2009-08-11 2908
Sundance

남북전쟁의 이면에는 미국을 분열시키려는 프리메이슨들의 음모가 숨어있었다.

"링컨의 서거는 '기독교 세계'(Christendom)의 커다란 재앙이다. 음흉하고 사악한 흉계로 가득 찬 외국 은행가들이 약동하는 미국의 부흥을 송두리째 장악하고 새롭게 건설한 그들만의 문명을 조직적으로 부패시킬까 두렵다. 왜냐하면 그들은 전 세계를 장악하고자 온 기독교 세계를 전쟁과 혼란의 도가니로 만드는데 추호도 거리낌이 없기 때문이다." (오토 폰 비스마르크, Eric Rainbolt & Alex Jones著 'The Obvious Untruth of the World')

링컨(1809~1865)은 미국의 제16대 대통령으로 남북전쟁(Civil War)의 포화 속에서 미국의 분열을 막은 지도자이며, '게티즈버그 연설'에서 볼 수 있듯이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미국 민주주의의 이상을 제시한 정치가로서 오늘날 미국 역사상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존경받고 있다.

그러나 케네디 암살사건과 마찬가지로 링컨 대통령의 죽음 역시 오늘날까지 그 음모의 논쟁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본지(本紙)는 기독교 국가인 미국을 둘로 나누려 했던 남북전쟁의 실제 배후 세력과 이들에 맞서 싸운 링컨 대통령의 생애를 살펴본다.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것으로 알려진 비밀단체 '프리메이슨'(Freemason)단은 프랑스 대혁명과 러시아 혁명 그리고 미국의 남북전쟁에서도 깊은 관여를 했다.

특히 미국은 이민자의 천국이었기 때문에 건국 초 상당수의 프리메이슨들이 청교도(Puritan)를 따라 미국으로 들어왔다.


전쟁기록 화가인 Mort Kunstler의 작품


1800년대 미국의 '反 메이슨 운동'

그러나 필그림(Pilgrim)과 퓨리턴(Puritan)들이 주축을 이루었던 초기 북동아메리카의 종교적 분위기는 일루미나티 계열의 프리메이슨에 의해 수입된 무정부주의적 사상들을 완강하게 막았다.

실제로 미국의 역사 속에서는 기독교와 프리메이슨이 상당한 각축을 벌였던 것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실제로 1826년 무렵 미국 내 메이슨 단의 총회원수는 거의 5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기도 했다.(Jim Marrs 著, 'Rule by Secrecy P.188)

특히 1827년 'Royal Arch Mason'단원이었던 윌리엄 모건 대위는 메이슨 단의 정체를 폭로하는 '30년 동안 헌신했던 한 형제가 쓴 메이슨 단의 실상'(Illustration of Masonry by one of the Fraternity Who Has Devoted Thirty Years to the Subject)을 출간함으로써 메이슨 단원이 아닌 사람들도 이 단체의 실상을 알 수 있게 됐다.

모건 대위는 이 책에서 "메이슨 단은 우리 사회의 제도와 그 활동에 해악을 끼치고 있다. 그 해악은 날마다 그 도를 더 해가고 있다. 나는 조국을 위해 그 위험을 폭로할 의무가 있다"고 썼다.


링컨, 노예제 반대 하면서 휘그당 입당

프리메이슨들의 주도하에 여러 가지 사건*사고 등이 발생하자 여론의 압력을 견디지 못한 뉴욕 주 상원은 1829년 프리메이슨 단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기도 했으며 미국 최초의 제3정당인 '反 메이슨 당'(Anti-Mason Party)이 1827년 조직되기도 했다.

1830년대 말, 반 메이슨 당은 노예제를 반대하면서 휘그당(Whig Party*링컨은 1836년에 입당)에 흡수 통합 됐다. 이 과정에서 메이슨 단이 입은 타격은 그 후 남북전쟁(1861~1865)이 일어나기 전까지 수십 년 동안 회복되지 않았다.

미국의 남북전쟁은 독립 이후 가장 큰 시련이었다. 정사(正史)에서는 이 전쟁이 시작된 시기가 1861년으로 보고 있으나, 실제 전쟁의 씨가 싹트기 시작한 것은 1837년부터였다. 당시는 미국의 경제사정이 한창 어지러웠던 시기였다.

이에 유럽의 대부호이자 일루미나티 단원 이었던 로스차일드(Rothschild*유태인)는 어거스트 벨몬트(August Belont*유태인)란 인물을 미국으로 보내 美 정부의 공채를 사들이게 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나폴레옹 전쟁, 러시아 혁명, 프랑스 혁명, 제2차 세계대전 등 세계적인 사건을 배후조종하거나 사건에 개입하면서, 경제뿐 아니라 정치계에도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배 계급으로 성장해온 가문이다. (동아일보*한국경제신문 2002년 1월 19일자)

프리메이 슨 연구가인 존 리브스(John Reeves)는 '로스차일드 가문-각국의 경제 통치자들'(Rothschilds-the Financial Rulers of Nations)이라는 책을 통해 1857년에 유럽에는 국제 금융 연합(syndicate)이라는 (비공개) 모임이 있었으며 여기서 결정적으로 미국에 남북전쟁을 일으켜 나라를 둘로 나누자는 의견에 합의를 보았다고 밝히고 있다.


로스차일드家 주축으로 남북전쟁 모의

이외에도 로스차일드家를 주축으로 한 국제금융가들이 남북전쟁을 모의하고 링컨의 암살을 배후에서 조종했다는 이야기가 1934년 캐나다에서 나왔다.

맥기어(Gerald G. McGeer)라는 캐나다의 저명한 변호사가 발표한 내용이 'Vancouver Daily Province'지에 실리게 된 것이다.(1934년 5월 2일자) 당시 그는 링컨을 죽일 만한 동기를 가진 사람들이 오직 환전꾼들 뿐이며, 링컨은 다만 그들의 세계 정복욕에 맞서 싸웠을 뿐이라는 내용을 언급했다.

당시 맥기어의 주장은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서 그 타당성이 입증되어 이듬해인 1935년에 서치(Dr. R.E. Search)박사는 'Lincoln Money Martyred'를 출간해 남북전쟁의 배경과 링컨의 죽음을 재조명하는 작업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당시 로스차일드 가문은 미국이 극한적인 상태에 도달하지 않고서는 중앙은행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토대로 전쟁을 일으켜야 한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전쟁을 하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게 되니 미국정부가 자연스럽게 자신 돈을 빌리게 되고 그 다음부터는 자기네 마음대로 정부를 움직일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사업의 첫 단계로 남부의 주들을 '유니온'(Union, 당시 미합중국의 명칭)에서 이탈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이었고, 그에 적절한 이슈로 미국의 '노예문제'를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화제를 널리 알리기 위한 선전*선동의 조직체가 필요했는데 이것이 바로 '금원의 기사단' (Knights of the Golden Circle*1854년 창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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