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화를 사랑한 아디다스
무기보다 더 중요했던 전쟁도구 중 하나가 신발이다.
맨발로는 마라톤 언덕도, 워털루 평원도 달릴수 없었으니 말이다.
국가가 전쟁에 뛰어든 병사를 위해 끊임없이 신발을 제공해야 했던 이유다. 긴 승마용 장화를 선호했던 나폴레옹의 부대부터, 구두끈이 달린 군화를 지급했던 18세기 영국 부대까지 역사 속의 군화는 그 시대 상황을 가장 잘 반영한 ‘강한’ 신발 디자인의 여정을 보여준다.
전쟁의 무대는 바뀌었지만, 과거의 군화는 오늘날 패션 영역에서 여전히 뜨거운 오마주의 대상이 된다.
검은색 군용 부츠를 거의 그대로 베낀 발목까지 올라오는 투박한 워커뿐 아니라 디오르, 마르탱 마르지엘라 등 유명 디자이너들도 군화에서 상상력을 빌려와 ‘신상’을 내놓는다.
세계적 인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의 운동화는 더욱 흥미롭다. 실제 19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까지 독일군에 군화 및 트레이닝 슈즈를 납품했던 노하우를 갖고 있어서다.
어떤 점이 군화와 닮았을까. 가수 비가 5집 ‘레이니즘’을 부르며 무대 위를 포효할 때 군화를 본뜬 아디다스 운동화를 신었다는 데 힌트가 있다.
비가 날렵하게 무대 위를 미끄러지고 카리스마 넘치는 발동작을 구를 때 신었던 운동화는 아디다스 ‘BW ARMY’(비더블유 아미).
첫눈엔 별 특색 없는 심플한 흰색 운동화일 뿐이지만 독일군이 신었던 트레이닝 슈즈를 재해석한 디자인이다.
이름에도 군대라는 단어가 들어갔지만 기능면에서 군화의 장점을 제대로 흡수한 것이 특징.
군용 부츠처럼 신발 내부에 패딩을 사용했고 레이저로 뚫은 구멍을 표현한 것도 군용 부츠에서 따왔다.
아디다스가 군화의 날렵한 디자인과 기능성을 그대로 빌려왔다면 재해석된 군화는 때로 과거의 이력을 정반대로 뒤바꿔놓는다.
독일 연방 경찰의 엘리트 대테러 특수부대인 GSG9에 납품했던 신발을 재해석한 최근의 한 운동화는 대테러라는 과거 역할이 던지는 위압감은커녕 스포티하고 발랄한 청춘을 상징한다.
척척 소리를 내며 모두 같은 방향으로 걷는 것, 이런 운동화를 신은 사람이라면 거부할 것 같다.
≫ 독일군화를 재해석한 운동화 VS 로마 검투사의 신발에서 착안한 글래디에이터
올여름 여성들에게 사랑받는 글래디에이터는 더욱 그렇다. 영화 <글래디에이터>나 <트로이>, <300>을 통해 고대 군인용 가죽샌들이 얼마나 전투적인 동시에 섹시할 수 있는가를 보았다면 오늘날의 글래디에이터는 중성적이면서도 세련된 형태로 여성들의 섹시미를 드러낸다.
아래 보이는 수제화 브랜드 ‘수콤마보니’의 글래디에이터에는 황금색 보석이 표면 전체를 채우고 있어 강렬한 여전사의 느낌을 준다.
아름다운 것과 강한 것, 보이는 살과 안 보이는 살갗이 묘하게 충돌하는 디자인이다.
남성 검투사의 발을 땅에 딱 붙게 중심을 잡아주었던 가죽샌들은 과거의 기능 대신 파격적이고 강렬한 이미지만을 여성용 샌들 디자인에 전수했다.
낮은 굽으로 땅바닥에 붙어있던 샌들은 ‘걸어다니는 조각’(walking sculpture)이라는 애칭이 붙을 만큼 10㎝ 이상 높은 굽을 가진 킬힐과 결합되면서 또 한번 파격적으로 변신했다.
글래디에이터는 강함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보여주는 디자인이되, 신발 주인이 더 빨리 달리는 데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