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만드는 2%…정예 연구위원들의 세계
'R&D의 별' 평균 스펙은 카이스트 공학박사에 49.7세 남성
갤럭시 출시 앞두면 업무강도 '상상초월' 끼니 거르고 12시간 연구
삼성전자 연구위원 365명은 '페르시아 10만 대군에 맞선 스파르타 정예병 300명'에 종종 비유된다.
삼성전자는 지난 10년 경쟁업체들을 하나씩 제치고 세계 정보기술(IT) 업계의 최강자로 우뚝 섰다. 핵심 경쟁우위는 제품개발력이다. 삼성전자에서 제품 연구와 개발을 주도하는 이들은 연구위원이라고 불리는 임원급 연구인력들이다. 삼성전자는 임원급 연구인력을 기술분야 S급 인재로 분류하고 각별히 관리한다.
삼성전자 연구위원은 365명이다. 핀란드 노키아는 전 세계에 연구개발(R&D) 인력 1만여명을 두고 있다. 대만 HTC는 R&D인력 4000여명을 거느리고 있다. 중국 화웨이는 R&D 인력 7만명을 꾸렸다. 삼성전자 연구위원은 원천기술, 자본, 인재로 중무장한 수만명의 IT 분야 인재와 맞서고 있다.
◆ 삼성 R&D의 별 연구위원 어떻게 구성되나
삼성전자 연구위원들은 어떤 조건을 갖추고 있을까. 지난 17일 조선비즈는 삼성전자 연구위원 전원의 신상 정보를 확보해, 나이ㆍ최종 학력ㆍ학위ㆍ유학지ㆍ업무 별로 임원급 연구위원 365명을 분류했다. 연구위원 평균 모델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공학 분야 박사 학위를 취득한 49.7세 남성이다. 박사학위 취득자는 176명으로 전체의 48.2%이고, 석사학위 소지자는 89명이다. 석·박사를 모두 합치면 총 인원의 72.6%(265명)에 달한다.
비유학파 연구위원은 263명이다. 비유학파 중 석·박사 학위 소지자는 168명이다. KAIST 출신이 60명으로 가장 많다. 서울대(33명), 한양대(27명), 경북대(25명)가 그 뒤를 이었다. 여대 출신은 이화여대에서 박사를 마친 박종애 종합기술원 퓨쳐IT연구소 상무가 유일하다. 유학파는 102명이다. 유학파 중 석·박사 97명이다. 유학지 별로는 미국이 86명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 다음 일본(8명) 영국(2명) 독일(2명) 순이다.
학사 출신 연구위원은 100명이다. 한양대 출신이 17명으로 가장 많았다. 경북대(11명), 연세대(11명), 인하대(9명), 서울대(6명)가 뒤따랐다. 유학파 가운데 학사급 내국인은 이주한 연구위원(노스캐롤라이나대)이 유일했다. '고졸입사자'로 임원까지 오른 것으로 유명한 김주년 상무는 한양사이버대에서 학사를 마쳤다.
외국인 연구위원은 총 8명이다. 일본인(4명)이 가장 많았다. 인도(디페쉬 인도연구소 VP), 중국(왕통 북경통신연구소장), 대만(량몽송 시스템LSI사업부 임원) 출신은 각각 한 명이다. 외국인 연구위원은 2008년까지 한 명도 없었다. 2009년 5명을 시작으로 2010년 9명, 2011년 6명을 채용했다.
세계 금융위기가 터지자 일본 전자업계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대표 사례가 일본 소니다. 소니는 2008년 1만 6000명, 2011년 1만 명을 구조조정했다. 그러다보니 고급 인력들이 세계 인력 시장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이 중 상당수가 삼성전자행을 선택하고 있다. 장원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삼성전자에는 예전부터 꽤 많은 일본인이 일하고 있다”면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일본 인재들이 한국과 중국 등지로 많이 유입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품 설계와 제조 분야에서 일본인 기술자의 공헌도는 매우 높다.
◆ 국내파, 워커홀릭 뺨치는 '승진루트'
삼성전자의 연구개발인력(지난해말 기준)은 5만여명이다. 반도체연구소 인력만 3787명이다. 이 중 연구위원은 34명이다. 수천명 중 수십명 만이 연구위원에 오르는 셈이다.
연구위원으로 승진하는 길은 세갈래다. 승진 계단을 차근차근 밟아온 '바른생활형', 연구원 시절 개발 공로를 인정받은 '특채형', 그리고 해외 경쟁사에서 영입한 '핵심기술형'이다. 지난해 최연소 연구위원에 오른 류제형 삼성전자 생산기술연구소 상무(39)는 특채형이다. A3 프린터 근본설계와 LED TV 발열 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한 공을 인정받아 지난해 임원으로 승진했다. 지난해 3월 부장으로 승진한 후 9개월 만에 상무로 한단계 뛰어올랐다.
수석연구원(부장) 중 연구위원으로 승진하는 비율은 2%에 불과하다. 삼성전자 소속 한 연구원은 "회사에 목숨 바친 일벌레(워커홀릭) 중 극히 일부가 연구위원에 오른다. 내 상사는 연구위원인데 8년동안 휴가를 가지 않더라”고 말했다.
신상품 출시가 임박하면 연구위원의 업무 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우선 새벽 퇴근이 잦아진다. 한번은 40대 수석연구원이 밤샘 작업을 마치고 수원사업장 부근 사우나에 들린 적이 있었다. 연구원은 새벽녘이라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했으나 오산이었다. 옆 부서 연구위원이 수면실에 대(大)자로 누워 자고 있었다. 스마트폰 모델인 갤럭시 라인이 가동될 때는 담당 연구위원들은 한동안 귀가를 포기한다.
담당 연구위원은 주말에도 아침 8시 반과 오후 6시 두 차례 수석연구원과 불량품 점검 회의를 가져야 한다. 이와 별도로 토요일 아침 8시 부사장급 고위 임원과 회의를 연다.
한 연구위원이 금요일 밤 10시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12시간 동안 5분도 쉬지 않고 일했다. 식사도 모두 걸렀다. 어느덧 희열까지 느껴진다. 이제 달콤한 불금이다." 이 연구위원은 일에 집중하면 끼니를 거르기 일쑤다. 냉장고에 빵과 우유가 있지만 시간이 아깝다고 손사래친다.
◆ 해외파, 핵심기술 보유한 인재 파격 특채
삼성전자는 해외 우수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파격적인 근무조건을 제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산요 출신 연구원 야마즈치 토오루 씨는 일본 주간지 겐다이비즈니스와 인터뷰에서 "삼성전자는 실력으로 120점의 사람을 찾고, 그에 걸맞게 처우한다”고 귀띔했다. 전자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소니나 산요의 기술자를 1.5~2배 연봉을 주고 영입했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
일본 경제주간지 니케이비즈니스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외국인 기술자를 3가지 방법으로 채용한다. 'S급 핵심 인재'는 사장급이 접촉한다. 이건희 회장이 이직을 권유한 사례도 있다. 그 아래급은 학회 논문 발표, 특허 출원, 업계 명성에 기초해 필요한 인재를 추리고 헤드헌팅 업체에게 영입을 맡긴다. 구직자가 직접 이력서를 보내는 사례도 있다.
외국인 연구위원 면면을 보면, 삼성전자가 새로 육성하는 사업을 가늠할 수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2000년대 초반 삼성전자가 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PDP) TV사업을 키울 때 일본 전자업체의 부장급 인재들을 연구위원으로 대거 영입했다”고 귀띔했다. 외국인 임원이 새로 영입되는 부서가 삼성의 미래 성장산업이라는 뜻이다.
이시야마 IT솔루션 개발팀 연구위원과 이시즈카 PRT선행개발팀장은 지난해 합류해 프린팅솔루션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조직개편을 통해 프린팅사업을 IT솔루션사업부에서 독립, 소비자가전(CE)부문 산하 프린팅솔루션사업부로 격상시켰다. 량몽송 시스템 대규모집적회로(LSI)부문 연구위원은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업체인 대만 TSMC의 연구원으로 17년간 일한 사람이다.
한편 삼성전자는 연구위원의 성과를 엄격하게 관리한다. 삼성전자 임원 출신의 한 일본인은 "연초 매출 목표를 제출하면 윗선에서 '더 분발하라'고 하면서 목표치를 올린다. 연구위원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무용지물'로 찍혀 이듬해 계약에서 탈락한다”고 털어놨다. 그는 또 "목표를 초과 달성하면 사업부에 두둑하게 PS(프로피트쉐어링·성과에 따른 상여금)를 챙겨주지만, 이듬해 목표치는 더 늘어난다. 그러다보니 연구위원들은 오로지 '프로젝트'에 대해서만 대화를 나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