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Indonesia - 지리 기후, 문화
인도네시아 (Indonesia)
인도네시아는 열대 섬로 이루어진 나라로 문화, 인종, 자연경관, 발전 가능성, 사회문제, 갈등 등 모든 것들을 복합적으로 볼 수 있는 나라이다. 배낭족들에게 싼 음식, 모험적인 여행코스, 그리고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인도네시아는 천국이 아닐 수 없다. 대표적인 볼거리로는 지상낙원으로 불리는 발리, 수마트라의 원시자연, 족자카르타의 유적지, 자카르타의 복잡함 등을 들 수 있다.
통계 자료
국명: 인도네시아 공화국(Republic of Indonesia)
면적: 1,904,000 sq km
인구: 2억 900만명(인구 성장율 1.6%)
수도: 자카르타(Jakarta; 인구 900만명)
인종: 365개의 부족이 있음. 이중 중요 부족은 아체, 바탁, 미낭카바우(이상 수마트라); 자바, 순다(이상 자바); 발리(발리), 사삭(롬복), 다니(이리안자야) 등이다.
언어: 바하사 인도네시아(이외에 583개의 부족 언어), 영어
종교: 무슬림 87%, 기독교 9%, 힌두교 2%
정체: 군이 지배하는 공화국
지리 및 기후
인도네시아에는 13,700개의 섬이 있으며, 이들 섬들의 총면적은 190만 평발킬로미터(한반도의 약 9배)이다. 근처에 있는 섬으로 이루어진 국가인 필리핀보다 훨씬 넓은 지역에 섬들이 퍼져있다. 인도네시아의 많은 지역은 여전히 열대정글로 이루어진 미개발지역이며, 많은 섬들에 사화산, 활화산, 휴화산 등 다양한 종류의 화산이 있다. 적도를 둘러싸고 있는 인도네시아는 1년 내내 더우며, 우기에는 고온습윤, 건기에는 고온건조한 기후를 나타낸다.
하지만 해안지역은 일반적으로 서늘하며, 산간지역 중에는 매우 추운 곳도 있다. 우기는 남동쪽으로 갈수록 늦게 시작된다. 수마트라 북부에서는 9월달에 비가 내리기 시작 하지만, 띠모르에서는 11월에도 비가 오지않는다. 1~2월 중에는 어디든지 비가 자주 오므로 우산이 필수품이다. 일반적으로 건기는 5~9월이며, 말루꾸(Maluku)에서만 반대로 5~9월이 우기이다. 인도네시아는 다양한 종류의 식물과 동물이 있는 곳으로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자연환경을 가진 나라 중의 하나이다.
영국의 자연과학자 알프레드 왈라스(Alfred Wallace)는 인도네시아의 섬들을 서부의 아시아 생태지역과 동부의 호주 생태지역으로 나누어, 최초로 인도네시아의 자연지역 구분을 시도했다. 이 두 지역을 구분하는 경계선인 왈라스라인(Wallace Line)은 깔리만딴과 술라웨시 사이를 통과하며 남쪽에서는 발리와 롬복 사이를 지나간다. 후에 과학자들은 술라웨시와 말루꾸, 말루꾸와 이리안자야 사이에도 자연생태에 많은 차이가 나는 것에 주목하여 왈라스의 이분법을 좀 더 세분화시켰다.왈라스라인 서쪽에 있는 수마트라, 자바, 깔리만딴, 발리는 한 때 육지로 아시아 대륙에 연 결되어 있었다. 이런 이유로 코끼리, 호랑이, 코뿔소, 표범같은 아시아 원산의 대형동물들이 이 지역에 남아있다.
그리고 열대우림과 다양한 종류의 아시아산 식물들도 같은 대륙에 붙 어있었다는 분명한 증거가 된다. 인도네시아에서 서식하는 동물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수마 트라와 깔리만딴에서 볼 수 있는 붉은색 긴털을 가진 오랑우탄(숲속의 사람; 인도네시아 어 로 orang 사람, utan은 숲을 의미한다) 일 것이다.왈라스라인의 동쪽에 있는 술라웨시, 누사떵가라, 말루꾸는 오랜 기간 동안 대륙과 분리되어 있었으며, 그 결과 특이한 동식물들이 번성하게 되었다.
롬복의 동쪽에 있는 누사떵가라의 섬들에 서식하는 동식물은 건조한 기후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대형 아시아산 포유류는 살 지 않으며, 일반적으로 포유류의 크기도 작고 종류도 다양하지 않다. 누사떵가라의 꼬모도와 그 주변의 몇몇 섬에는 꼬모도 드래곤으로 알려진 세계에서 가장 큰 도마뱀이 살고 있다. 이리안자야와 아루 제도(AruIslands)는 한 때 호주 대륙의 일부분 이었으며, 호주판과 태평 양판의 충돌로 생긴 거대한 산맥이 이리안자야의 중앙을 지난다. 호주와 많은 관련이 있는 동물들이 살고 있지만 고립의 결과로 역시 특징적인 자연경관을 보이고 있다. 이리안자야에 는 캥거루, 주머니쥐(marsupial mice), 긴발톱 주머니쥐(bandicoots), 둥근꼬리 주머니쥐, 악 어, 주름도마뱀(frilled lizards) 등이 사는데 이들은 모두 호주 대륙에도 살고 있다.
역사
인도네시아 제도의 초기 거주자들의 역사는 흔히 자바인으로 불리우는 피테칸트로푸스 에렉투스(Pithecanthropus erectus)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은 50만년 전에 육로를 통하여 자바로 흘러들어 왔다. 오늘날 인도네시아 인들은 말레이 계통으로 말레이시아나 필리핀에 사는 사람들과 인척 관계가 있으며, 동남아시아에서 기원전 4천년 경에 인도네시아 제도로 이주한 것으로 여겨진다. 4세기 경 무역의 부산물로 힌두교와 불교가 도입되었고, 7세기 말경에는 자바와 수마트라에 서 작은 왕국들이 점점 힘을 가지게되었다.
불교 왕국인 스리위자야(Sriwijaya)는 6백년 동 안 수마트라 남부와 말레이 반도를 통치했고, 힌두 왕국인 마따람(Mataram)은 중부 자바에 서 세(勢)를 과시했다. 두 왕국은 간혹은 적으로 때로는 동맹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발전했고, 마따람의 영토에서는 보로부두르 같은 뛰어난 불교 사원이 건설되기도 했다. 마따람이 영문을 모르게 몰락한 후 힘은 동부 자바로 옮겨졌으며, 마자빠힛(Majapahit) 왕 국이 일어나 마지막 힌두 제국을 건설했다. 13세기에 세워져 가자마다(Gajah Mada) 수상 시절에 전성기를 구가했고, 자바촵발리촵마두라 섬 등을 통치했으며 주변의 작은 섬들에도 큰 영향력을 미쳤다. 이슬람이 인도네시아 제도에 퍼지면서 마자빠힛은 힘이 약화되었고 마지막에는 지역을 옮겨 새로운 작은 왕국을 건설했다. 하지만 자바에 들어온 이슬람은 중동의 이슬람보다 원리주의 적인 색채가 약했기 때문에 곧 자바 인들의 민간신앙과 섞이게 되었다.
15세기 마자빠힛은 발리로 후퇴하여 그곳에서 힌두 문화를 꽃피웠으며, 자바는 여러 술탄이 통치하는 작은 왕 국으로 나눠지게 되었다. 15세기 말레이 반도의 말라카에 기반을 둔 강력한 무슬림 왕국이 나타났다. 그러나 1511년 포르투갈에 의해 왕국이 무너지면서 인도네시아는 유럽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포르투갈 은 곧 네덜란드에게 축출 당했고, 네덜란드는 1600년대 인도네시아를 손에 넣게 되었다. 1619년 영국은 네덜란드를 몰아내려고 했지만 실패했고, 1641년에는 말라카가 네덜란드의 수중에 들어갔다. 1700년 경 네덜란드는 전체 인도네시아를 조정할 수 있게 되었으며, 뛰어 난 해상력을 바탕으로 주요 항구를 차지하고 무역을 독점했다.
18세기 중반 네덜란드는 자바의 모든 지역을 완전 통치할 수 있게 되었다. 나폴레옹 전쟁으로 네덜란드가 잠시 프랑스의 수중에 떨어진 틈을 타서 영국이 1811~1816년 사이에 인도네시아를 통치했다. 래플스 경(Sir Stamford Raffles)이 자바를 통치했지만 전쟁이 끝나자 다시 모든 통치권을 네덜란드에 돌려줬다. 영국인들이 인도네시아에서 완전 히 떠나는 반대 군부로 네덜란드 인은 인도와 말레이 반도에서 역시 손을 뗐다. 민족 의식이 고취된 인도네시아 인들은 1825년부터 5년 동안 자바의 디뽀네고로 (Diponegoro) 왕자의 주도하에 반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진압되었고 20세기가 되기 전에 네 덜란드는 아체와 발리를 포함한 모든 인도네시아 제도를 통치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네덜란드의 식민통치가 그렇게 가혹한 것은 아니었지만, 식민지배를 받는 사람들은 언 제나 불만이 있었다. 네덜란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수카르노(Soekarno)를 중심으로 민족주의 운동이 전개되었다. 2차 대전 중에 인도네시아는 일본에 점령이 되었다. 일본이 항복한 직후인 1945년 8월 17일 수카르노는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선언했다. 하지만 네덜란드는 인 도네시아로 돌아와 그들의 옛 영토를 회복하기 위해 전쟁을 시작했다. 4년의 독립전쟁 끝에 1949년 인도네시아는 완전한 독립을 쟁취했다. 오래 끌어온 전쟁의 여파로 힘이 약해져 독립 후의 상황은 그렇게 좋지가 못했다. 1957년까 지 극심한 혼란을 보이던 의회민주주의 정치는 1957년 수카르노가 군부를 배경으로 대통령 인 자신에게 권력을 집중시키는 교도민주주의(Guided Democracy)를 선언함으로써 끝을 보 게 되었다. 경제의 사회주의화는 말레이시아와 갈등을 초래했으며, 전반적인 국가경제가 침체에 빠지게 되었다.
변화의 계기는 위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수카르노의 경호원이었던 수하르토(Soeharto) 장군이 1965년 6명의 군부지도자를 살해하고 쿠테타에 성공했다. 쿠테타의 명목은 분명하지는 않았 지만, 곧 공산주의자로부터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는 이유가 붙었고 수많은 공산주의자 와 공산주의 용의자들이 살해되거나 감옥으로 보내졌다. 최종적으로 수하르토는 수카르노를 밀어내고 자신이 대통령에 올랐다. 그리고 수하르토의 통치가 시작되자 사회가 안정을 찾았다. 1975년 포르투갈령 띠모르에 대한 침략은 인도네시아에 대한 불신을 증가시켰는 데, 침략이 일어나기 바로 전날 미국의 국무장관이었던 헨리키신저는 아무런 말도 없이 자카르타를 떠났다.
1991년 동띠모르의 딜리에서 일어난 대규모 학살이 인도네시아의 국제 지위를 크게 실추시켰다.1998년 1월 루삐아가 폭락하면서 2천 5백만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인도네시아 경제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관리체제하에 들어간다. 몇몇 용감한 이들이 수하르토의 부패청산을 요구하고 나섰다.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하여 술라웨시와 깔리만딴의 산림을 초토화시키는 자연재해까지 인도네시아를 혼돈으로 몰아 넣었다. 수하르토 대통령은 1998년 3월 각종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것을 천명하며, 5년 임기의 대통령 선거에 다시 나섰다. 국민들의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고, 5월에 6명의 학생이 군이 발포한 총탄에 맞아 숨지면서 시위는 절정을 이루었다. 5월 21일 수하르토는 하야했으며, 애매하게 중국인들이 무차별적으로 인도네시아인들에게 약탈을 당해 해외로 탈출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수하르토를 이러 부통형인 하비비(Jusuf Habibie)가 대통령에 올랐다. 1998년 동티모르의 독립선언으로 나라가 다시 시끄러워졌고 학생과 군도 다시 충돌하여 긴장이 조성되었다. 특히 암본에서는 기독교에 대한 무슬림들의 학살이 자행되었으며, 깔리만딴에서는 다약족과 마두라인들이 충돌했다. 1999년 9월 동티모르의 독립에 반대하는 인도네시아군을 몰아내기 위해 호주군을 주축으로 한 UN연합군이 동티모르에 상륙하면서 동티모르 사태는 가닥을 잡아나갔다.
하지만 10월에 중도파 무슬림인 와히드(Abdurrahman Wahid)가 자유선거로 대통령에 당선되자 메가와티(MrsMegawati Sukarnoputri)의 지지자들이 시위를 벌이면서 경찰과 충돌이 발생했다. 동티모르 문제 때문에 호주와 인도네시아 사이의 긴장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source : yAfMDSXBZ8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