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Cambodia - 지리, 기후, 역사
캄보디아(Cambodia)
캄보디아는 앙코르 시대(9~14세기)에 현재의 캄보디아 영토 뿐만 아니라 베트남, 라오스, 태국까지 지배했던 강력한 크메르 제국(Khmer Empire)의 계승자이다. 당시 제국의 영화는 전설적인 앙코르 사원의 유적에서 볼 수 있다.
정글 한 가운데 자리잡은 이 놀라운 유적은 프놈펜에서 보트나 비행기로 쉽게 가 볼 수 있다.캄보디아는 20년 동안의 전쟁 후유증을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으며 현재 회복기에 있다. 특히 크메르루즈(Khmer Rouge)의 4년 통치 기간 중에는(1975~ 1979) 대량학살이 자행되어 7백만 캄보디아 인구 중 약 2백만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혁명 이전에 존재했던 캄보디아의 문화가 완전히 파괴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크메르루즈는 여전히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오지를 여행할 때 큰 문제가 되고 있다. 대부분의 주의깊은 여행자들은 여행지를 앙코르, 프놈펜 등지로 한정하고 있으며 이외 시하눅빌(Sihanoukville) 정도를 방문하고 있다.
통계 자료
국명: 캄보디아 왕국(Kingdom of Cambodia)
면적: 181,035 sq km sq km
인구: 1050만명(인구 성장율 2.5%)
수도: 프놈펜(Phnom Penh; 인구 100만명)
인종: 크메르족 90~95%, 이외 중국인, 베트남인 거주
언어: 크메르어, 불어, 영어
종교: 불교 95%, 무슬림과 애니미즘도 존재
정체: 민주주의 도입 과도기
지리 및 기후
캄보디아는 이탈리아나 베트남 영토의 반 정도되는 181,035 평방킬로미터(한반도의 80%정도)의 면적을 가지고 있으며, 메콩 강과 똔레삽(Tonl Sap; 대호수)이 지형학상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남서쪽의 Elephant 산맥과 Cardamom 산맥, 북쪽 태국 국경을 따라 있는 Dangkrek 산맥, 그리고 북동쪽의 동부 고지 등 산간 지역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 진다. 똔레삽 호수는 똔레삽 강이라고 불리워지는 100 km의 길이를 가진 운하에 의해 프놈펜에 있는 메콩 강까지 연결된다.
우기인 5월 중순에서 10월 초까지 메콩 강의 수위가 높아져 똔레삽 강의 물이 역류하여 북서쪽의 똔레삽으로 흘러 들어간다. 이 기간에 똔레삽은 3천 평방킬로미터(제주도의 1.5배)에서 7천 5백 평방킬로미터까지 늘어난다. 메콩 강의 수위가 낮아지는 건기에는 똔레삽 강의 물이 다시 메콩 강으로 흘러 들어가 물의 흐름이 바뀐다.
이런 과정의 결과 똔레삽은 세계에서 가장 풍부한 민물 고기가 사는 곳이 되었다. 캄보디아의 기후는 농촌의 생활 양식을 결정하는 두 개의 계절풍에 의해 좌우된다. 차갑고 건조한 북동 계절풍은 11~3월 사이에 불며, 비가 많이 내리지 않는다. 4월이나 5월부터 1월 초까지는 강한 바람과 습기, 그리고 비를 동반한 남서 계절풍이 분다. 하지만 우기라도 아침에 비가 오는 경우는 드물다. 비는 대부분 오후에 내리며 소나기 형식으로 잠깐 퍼붓는다.
역사
1~6세기 경 현재의 캄보디아에는 중국과 인도 사이의 무역로를 차지하고, 번성을 구가하던 후난(Funan) 왕국이 있었다. 건축과 조각에서 두각을 나타낸 앙코르 시대는 800년 경 자야바르만 2세(Jayavarman II)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의 재위 기간에 정교일치의 권한을 가진 데바라자(devaraja;(神王))의 크메르 통치가 성립되었다. 앙코르 주변에 관개시설을 이용한 집약적인 농사가 이루어졌으며, 그 결과 크메르 인들은 고도로 중앙집권화된 국가에서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1863년부터 90년 동안 프랑스가 캄보디아와 베트남을 식민지 통치했으며, 1953년 캄보디아 는 독립을 선언했다. 그후 15년 동안 노로돔 시하누크(Norodom Sihanouk) 왕이 캄보디아 정치를 좌지우지했다(후에 그는 수상, 국가 원수를 거친 다음 다시 왕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그는 좌우 세력을 오가며 연합전선을 펴는 변덕스러움과 억압적인 정치스타일 때문에 1970년 군부에 의해 쫓겨나 중국으로 망명했다. 1969년부터 캄보디아는 베트남 전쟁에 말려들었다.
미국은 캄보디아 내에 있다고 의심되는 공산군 기지를 부수기 위해 비밀 융단 폭격을 실시했으며, 1970년 쿠데타 후에 미국과 월남군은 월맹군의 뿌리를 뽑기 위해 캄보디아를 침공했다. 그들의 침략은 실패했지만 캄보디아의 자체 혁명 세력인 크메르루즈(불어로 루즈는 붉은색을 뜻한다)를 내륙 오지로 몰아내게 되었다. 이후 캄보디아 전체가 참혹한 싸움에 빠져들었으며 사이공이 함락되기 2주 전인 1975년 4월 17일 크메르루즈가 프놈펜을 점령함으로써 전쟁이 끝났다. 곧 크메르루즈의 지도자 폴포트(Pol Pot)의 지휘아래 지금까지 행해진 것 중 에서 그 어떤 것보다 급진적이고, 잔인한 사회개조가 시도되었다.
목표는 캄보디아를 농민이 지배하는 사회주의 농업협동조합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후 4년 동안 식자층을 포함한 대부분의 도시인들이 농촌 지역으로 재배치 되었으며, 고문을 당해 죽거나 처형당했다. 수 많은 사람들이 기생충으로 분류되었고 단지 외국어를 구사한다든지 안경을 썼다는 이유만으로도 간단히 죽임을 당했다. 또한 영양부족,질병, 방치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크메르루즈의 정책 때문에 적어도 백만명, 많게는 2백만명의 캄보디아 인들이 1975~79년 사이에 죽었다. 1978년 말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공했으며, 그 결과 크메르루즈는 태국과의 국경지대에 있는 캄보디아 서쪽의 정글로 쫓겨갔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에 걸쳐 크메르루즈는 중국과 태국(간접적으로 미국이 지원)의 도움을 받아 베트남의 조종을 받는 프놈펜 정부에 대항하여 게릴라전을 전개했다. 1993년 중순 유엔의 관리하에 캄보디아에서 선거가 치뤄졌다. 새로운 헌법에 의해 노로돔 시하누크가 다시 왕이 되었다.
이후 독립연합전선(United Front for an Independent)의 노로돔라나리드 왕자(Prince Norodom Ranariddh)가 이끄는 FUNCINPEC(Neutral and Free Cambodia)당과 훈센(Hun Sen)이 이끄는 캄보디아 민중당(Cambodian People's Party)이 합쳐 연정을 이루었지만 1998년 중반 선거를 통해 훈센이 단독 수상의 지위를 확보했다. 한편 크메르루즈는 완전히 와해된 것은 아니지만 1998년 4월 폴포트가 심장병으로 사망하면서 그 세력이 급격히 약화되었다.
source : Ava1Ujp-_K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