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성매매… 아내는 불륜…
한국에만 존재하는 '기러기 아빠' 현실은외로움에 지쳐서 스스로 목숨 끊고… 성매매 업소 찾고…
거액 송금하느라 가정경제 파탄… 일부 아내는 불륜까지
외국은 이해 못해… 전문가 "상담소 찾으면 일단 희망적"
치과의사인 A(50)씨는 지난달 4월 5일 오후 3시30분 대구시 북구 읍내동의 한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숯불을 피워놓고 죽은 그를 발견한 병원 직원은 "오전에 원장이 출근을 하지 않은 데다 연락이 안 돼 119구조대 도움을 받아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A씨는 '기러기 아빠'였다. 경찰은 2003년 미국으로 간 딸과 아내를 둔 A씨가 딸의 유학 문제 등으로 고민하는 내용의 유서를 작성한 점으로 미뤄 기러기 아빠인 A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기러기 아빠는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만 존재한다. 공교육 불신과 '내 자식만큼은 무한경쟁 시대 속에서도 살아남게 하겠다'는 과도한 애정이 결합해 탄생한 문화다.
수치화할 순 없지만 기러기 아빠 문화가 사회적으로 큰 악영향을 끼친다. 우선 기러기 아빠들은 외국에 나간 아내의 체제비와 생활비, 자식 교육비를 대느라 상상을 초월하는 경제적 압박을 받는다. 매달 수백만원씩 투입되는 유학비용 때문에 가정경제가 파탄하는 것이다. 늘어나는 유학비용 부담에 사채를 쓰는 기러기 아빠도 있다. 3년 전에는 뉴질랜드에서 기러기 엄마와 두 딸이 자살한 데 이어 현장으로 달려갔던 아빠마저 자살한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현지 경찰은 이들이 8년간의 기러기생활 끝에 경제적 어려움을 견디지 못해 충격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파악했다.
기러기 아빠 문화는 가족 갈등과 해체 등을 가속화하는 주범 중 하나이기도 하다. 경제적 어려움 못잖게 기러기 아빠들을 압박하는 건 외로움. 수년 전 경남의 한 지역에서는 번듯한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업가인 60대 기러기 아빠가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한 바 있다. 그는 부인과 아들, 딸 등을 7년간 외국으로 보내놓고 아파트에서 홀로 생활했다. 그는 외국에 있는 부인과 이혼한 걸 비관해 부인 없이는 혼자 살 수 없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기러기 아빠들은 사건·사고에 휘말리기도 한다. 외로움에 지쳐 성매매업소를 전전하는가 하면 인터넷 채팅 등을 통해 미성년자와 원조교제를 하기도 한다. 지난 2월 16일에는 한 여중생과 10만원을 주고 성관계를 가진 기러기 아빠가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외로워서 성매매를 했다”고 답했다.
심지어는 기러기 아빠들이 주로 찾는 ‘데이트바’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곳에서 기러기 아빠들은 이른바 ‘대화녀’로 불리는 술친구와 시간을 보낸다. 그들은 단지 대화 상대가 필요해 한 시간에 10만원이나 되는 금액이 아깝지 않다고 말한다. 성매매업소나 데이트바 출입으로도 외로움을 달래지 못한 기러기 아빠들은 짝을 찾아 이혼을 선택하기도 한다.
아이와 함께 떠난 아내들의 탈선도 문제다. 현지 적응이 어려운 데다 남편이 없어서 외로움을 느끼는 엄마들이 주변 남성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경우가 있다. 실제로 현지 유학상담사, 어학강사, 골프강사, 보험설계사, 자동차 딜러 등의 남성과 불륜으로 발전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내의 심경에서 변화를 감지한 기러기 아빠들이 술과 성매매 등의 유혹에 굴복하는 사례로까지 이어지면 말 그대로 이 가정은 파탄이 난다.
기러기 아빠들 삶의 질은 형편없다. 지난해에는 기러기 아빠 4명 중 3명이 영양불량에 시달리고 우울증이 심각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국내의 한 병원이 기러기 아빠 80명을 조사한 결과 52%가 술을 자제하지 못했고 45%가 필름이 끊겼다. 술을 제어하지 못한 채 알코올의존증으로 진행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인간의 삶에서 성은 행복의 한 요소다. 졸지에 홀아비 신세가 된 기러기 아빠들은 성 욕구를 해소할 길이 여의치 않아 술과 담배를 더 찾게 돼 건강을 해치는 경우가 많다. 기러기 아빠들의 연령대가 40대 이상 중년이 대다수임을 감안할 때 원만한 성생활을 하지 못하는 기러기 아빠들은 남자들의 갱년기 증상과 연결돼 건강을 크게 위협한다.
외국에서도 한국 기러기 아빠의 사례를 신기하게 바라본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들은 기러기 가족의 사례를 소개하기도 한다. '부부보다 자녀가 우선인 이상한 나라' 한국의 이야기는 외국인들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자녀의 유창한 영어 실력을 위해 가족들이 생이별을 하는 한국 교육 문제점을 분석하며 한국의 기러기 아빠 현상이 가정 해체를 재촉하고 있다고 전할 정도다.
전문가들은 기러기 아빠 양산의 원인이 되는 교육문제 개선을 최우선으로 꼽고 있다. 공교육 제도를 개선하고 부모들의 교육 가치관 전환 노력이 수반되면 기러기 아빠 수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또 기러기 아빠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기러기 아빠의 일상생활에 깊게 개입하는 것은 물론 떠나 있는 아내와 자녀에 대한 개입도 수반되고, 기러기 아빠들의 집단 모임 활성화와 고충을 토로할 수 있는 전문가 상담이 이뤄지면 기러기 아빠가 불러오는 여러 사회적 문제들에 대응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기러기 아빠들이 가정문제로 인한 이혼 등 법률적인 해결접근을 상담하려는 곳은 많아도 마음을 터놓고 고민을 토로하는 형식을 갖춘 심리상담을 위주로 하는 곳은 쉽게 찾을 수 없다. 이는 가정 폭력이나 경제적 이유로 인한 이혼 등의 가정문제를 의논하려는 사람들보다 기러기 아빠들이 폐쇄적인 점도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서울가정법률상담소의 조경애 부장은 한국아이닷컴과의 전화통화에서 가정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기러기 아빠들에게 일단 전문 상담기관을 찾으라고 권유했다. 조 부장은 "기러기 아빠의 문제는 사례마다 차이점이 많아 접근하기 쉽지는 않다"면서도 "그래도 상담소의 문을 두드리는 기러기 아빠들은 그나마 희망적이다"고 말했다.
조 부장은 "기러기 아빠 관련 상담은 많지는 않지만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면서 "국가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줄 알지만 민간 상담에 재정적인 지원 등이 필요하다. 현재 자체적으로 법률상담뿐 아니라 심리상담과 기러기 아빠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