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안타고 지구 7바퀴, 토르까지 잡아 세운 코로나
6년 반동안 194개국, 30만km 주파한 덴마크인
9개국 남겨두고 여행 제한으로 석달째 홍콩에 갇혀
"절대 포기 않는 사람 되고 싶다"
비행기를 한 번도 타지 않고 지구상의 모든 나라를 방문하는 게 가능할까. ‘토르’라는 별명의 한 남자가 그 목표를 이루기 직전에 홍콩에서 발이 묶였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이다.
토르비욘 피더신(41)씨는 비행기를 한 번도 타지 않고 육·해상으로만 전 세계 203개국을 모두 일주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2013년 10월 고국 덴마크를 떠났다. 6년 반이 흐른 지금, 유럽, 아메리카, 아프리카, 지중해, 중동, 동유럽, 아시아를 차례로 주파하고 목표의 95%인 194개 나라를 방문했지만, 단 9개국을 남겨두고 코로나로 인한 여행 제한 때문에 홍콩을 거의 석 달째 떠나지 못하고 있다고 CNN이 23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30만㎞, 피더신씨는 지구 7바퀴를 돌 수 있는 거리를 배와 대중교통만 이용해 누볐다. 자신만의 엄격한 세부 규칙도 세웠다. 방문하는 모든 나라에 최소 24시간을 머물 것. 교통비, 식비, 비자 발급비 등 모든 하루 여행 경비를 20달러(약 2만5000원) 내에서 해결할 것. 그리고 여행이 모두 끝나기 전에는 집에 돌아가지 않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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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금까지 모든 규칙을 지켰다고 자신한다. 힘들었을 때가 없었던 건 아니다. 중앙아프리카 국가 카메룬에서 가봉으로 국경을 넘다 총을 든 무리에게 위협도 당해봤고,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하지 못한다는 이유나 신청서를 잘못된 색깔의 펜으로 작성했다는 이유로 입국을 거부당한 적도 있다. 발급 심사가 까다롭기로 소문난 이란과 시리아에서는 각각 3주, 3개월간 비자를 받지 못해 무념무상으로 기다려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코로나가 피더신의 발목을 잡았다. 1월 말 홍콩에 도착해 서태평양 섬나라 팔라우로 향하는 배를 기다리던 와중에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터진 것이다. 모든 선박편이 취소됐고 오는 27일까지 유효했던 홍콩 여행 비자는 만료될 위기에 처했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홍콩에 있는 동안 등산도 하고 강연도 다니며 바쁘게 몸을 놀렸다. 운영하는 블로그도 꾸준히 업데이트하며 전 세계의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 다행히 비자도 30일간 연장했다. 마음씨 좋은 홍콩 가족을 만나 당분간 지낼 곳도 생겼다. 그는 “여행이 죽도록 질렸고 당장 집에 갈 수도 있지만, 내 의지를 꺾을 순 없다”며 “홍콩에서 보내는 매일 매일 (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시간을 잃고 있지만, 그 시간을 최대한 이용하려고 한다”고 CNN에 말했다.
피더신씨가 이런 ‘특이한’ 세계 일주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아버지가 보내 준 기사를 읽고 나서였다. 지구상의 모든 나라를 가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내용을 보고 ‘비행기를 타지 않고 한 세계 일주는 아직 아무도 하지 않았으니 내가 해보자’는 결심이 섰다고 한다.
북미에서 직물 사업을 하는 아버지와 여행 가이드가 직업인 어머니 때문에 어릴 때부터 여러 나라를 돌아다닌 그는 이런 생각이 아주 자연스러웠다고 한다. 12년간 국제 운송·물류업에 몸담은 경험이 구체적인 계획을 짜는 데 도움을 줬다. 결심이 선 지 10개월 만에 계획을 모두 짜고 고향을 훌쩍 떠났다.
여행을 하면서 나쁜 기억보다 좋은 기억이 훨씬 많이 생겼다. 몇 달간 얘기해도 시간이 모자랄 정도라고 한다. 그는 그중에서도 남태평양 솔로몬제도에서 한 노인의 초대를 받고 전기, 상수 시설도 없는 한 오지 섬마을에서 며칠을 보낸 기억을 꼽는다. 그날 먹을 물고기를 그날 잡았고, 저녁이면 80여 명의 주민들이 피더신의 작은 노트북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함께 흘러간 옛 영화를 봤다고 한다.
새로운 목표도 생겼다. 모든 인간 안에 숨겨져 있는 ‘선한 본성’을 찾는 것이다. 피더신은 “언론이 보여주는 테러, 부정부패, 자연재해만 보면 세상이 정말 무서운 일만 있는 것 같지만, 결국 사람은 모두 똑같다”며 “누구나 가족, 일자리, 교육에 대해서 신경 쓰고 맛있는 음식, 춤추기, 웃기, 마음 놓고 푹 쉬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피더신은 전 세계에서 그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다. 매일 자기를 보고 ‘살을 빼겠다’ ‘공부를 하겠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겠다’ ‘실연당했는데 극복해 보겠다’는 사람들의 메시지를 받는다고 한다. 1년 안에 남은 9개 나라를 돌고 마지막 목적지인 몰디브 섬에 도착하
면, 기다려 준 약혼녀 등 친구들과 작은 파티를 할 생각이다.
“끊임없이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중간에 그만둔 사람이 되고 싶은지, 아니면 절대, 단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이 되고 싶은지 말입니다. 말라리아에 걸렸을 때도,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여자친구와 헤어졌을 때도, 돈이 다 떨어졌을 때조차 단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던 그런 사람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