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lg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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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Belgium - 지리, 기후, 역사

2019-02-01 1638
About Belgium

벨기에 (Belgium)

벨기에는 주변 강국들로부터 시달림을 많이 받은 작은 국가로 민족의식도 그리 뚜렷하지 않아 유럽역사에서 별로 주목 받지 못했다. 그러므로 서유럽에서 최초의 대도시가 발생했으며 유화를 최초로 발명한 화가가 살았던 곳이라는 사실은 거의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200여종이나 되는 맥주, 세계적으로 유명한 초콜릿을 맛볼 수 있으며, 어느 곳에서도 편안한 느낌을 주는 훌륭한 바와 카페, 그리고 역사적으로 부유한 예술 도시 브뤼헤로부터 목가적인 아르덴고지의 멋진 풍경에 이르기까지 한번 벨기에에 발을 들여 놓으면 그 매력에 흠뻑r 빠질 것이다.

통계 자료

정식국명 : 벨기에 왕국(Kingdom of Belgium)
면적 : 30,518 평방 km
인구 : 1,020만 명
수도 : 브뤼셀(Brussels (인구: 970,000)
인종 : 55% 플라망인, 33% 왈론인, 그리고 기타 외국인 10%
언어 : 플라망어, 불어, 독어 (대부분 벨기에사람들은 영어를 한다)
종교 : 인구의 75%이상이 로마 카톨릭
정체 : 의회 입헌군주제

지리 및 기후

벨기에는 총면적이 3만 평방km로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독일, 프랑스에 들러 쌓인 유럽의 소국 중 하나이다. 북부지방은 평지이고, 아르덴이 있는 서부는 고산지대이다. 65km에 달하는 북해해변은 바람이 심한 몇 곳을 제외하고 휴양지로 유명하다. 저지대는 십자로 서로 연결된 운하망으로 되어 있다. 기후는 온난한 편이나 가장 따뜻한 7,8월이 가장 습한 때이기도 하다.

역사

프랑스와 독일의 중간, 그리고 북해를 끼고 있는 위치로 인하여 벨기에는 오랫동안 유럽의 전쟁터였다. 13.14세기 때는 직조와 직물 거래의 발전으로 이프레(Ypres), 브뤼헤(Bruges), 헨트(Ghent)같은 플랑드르 마을들이 대도시로 성장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직공들이 길드(예술가와 공예 기술자들의 자치 공동체)를 결성하고 여러 도시에 화려한 길드 하우스를 세우기도 했으나 영국과의 경쟁, 외국산 직물을 거부한 브뤼헤인들의 고집, 해상 교역의 어려움 등으로 플랑드르의 직조업이 쇠퇴하면서 도시들도 쇠퇴하기 시작했다.

무역의 중심지도 후일 유럽 최대 항구도시로 발전하는 서부의 엔트워프(Antwerp)로 옮겨갔다.신교가 전 유럽을 휩쓸던 16세기, 저지대 국가들(오늘날 베네룩스 3국으로 알려진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은 그들의 통치자이며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 스페인 국왕 필립 2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신교를 받아들였다. 필립 2세가 카톨릭을 고수하기 위해 잔혹한 탄압을 자행하면서 종교 분쟁이 일어났다.

프로테스탄트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교회를 약탈하는 사태로까지 발전했다. 1568년, 전쟁 발발 직전인 1568년에 필립왕은 1만명의 군대를 보내 진압하고 수천 명을 투옥시키거나 처형하였다. 80년 동안이나 지속된 반란으로 네덜란드와 오늘날과 같은 경계선이 만들어졌다 - 홀랜드(Holland)와 그 연합 지방은 스페인의 통치를 벗어났지만 벨기에와 룩셈부르크는 그 통치를 벗어나지 못했었다.

그 후, 200년 동안 벨기에는 끊임없이 외세의 전쟁터가 되었다. 스페인이 물러나면서 오스트리아, 프랑스가 순서대로 침입했으며 1814년에 나폴레옹이 브뤼셀 근처의 워털루 전쟁에서 패하자 네덜란드 연방이 결성되었으며 벨기에와 룩셈부르크는 네덜란드로 통합되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카톨릭 교도들이 반란을 일으켜서 1830년에 독립 국가를 세우게 되었다.플랑드르 민족주의가 번성하면서 플라망어(네덜란드에서 파생)와 프랑스어 사용자 사이에 갈등이 일어났으며, 이 갈등 때문에 결국 나라가 언어권에 따라 분할되게 되었다.1885년 당시 왕인 레오폴트 2세는 몸소 아프리카의 콩고(지금의 자이레)를 정복하고 노예 거래를 일삼는다.

벨기에의 식민지였던 콩고는 1960년 오랜 투쟁 끝에 독립을 쟁취하였다. 한편, 1914년, 벨기에의 중립 정책에도 불구하고 독일이 벨기에를 침공하게 되었다. 1차 세계 대전 내내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르다가 이프레가 지도에서 사라지기도 했다. 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에 전 국토는 3주간의 기습 공격으로 함락되기도 했었다.

이 치욕에 대한 책임을 지고 당시 국왕이었던 레오폴트 3세가 1950년에 물러나게 되었으며, 그의 아들인 보두인 왕(Baudouin)이 계승하여 1993년 사망할 때까지 높은 인기를 누렸다. 자식이없어 현재 국왕인 동생 알베르 2세(Albert II)가 왕위를 계승했다. 전후의 벨기에는 경제 성장으로 인해 번영하게 되며, 브뤼셀 조약에 따라 유럽 연합(the European Union)과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 본부가 이곳에 자리하게 되었다.

source : -kWpbDInbS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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