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Swaziland - 지리, 역사, 문화
스와질랜드 (Swaziland)
남반구에서 가장 작은 국가로 편하고 한가한 생활을 하는 스와지인들은 사회질서의 재편을 위한 시위보다 즐거움을 즐기는 편이다. 야생동물 보호에 관한 진보적이고 친밀한 태도는 스와질랜드에 인상적인 국립공원과 야생동물 보호구역을 영구적으로 유지하게 만든다. 흑 코뿔소, 백 코뿔소, 코끼리, 최근에 다시 서식을 시작한 사자 등의 다양한 종류의 야생동물들을 놀라울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관찰 할 수 있고, 공원에서 트레킹과 말타기, 강에서의 래프팅과 싸이클링 등의 레져 스포츠가 가능하다. 보호구역의 시스템은 독특하고 보기 드문 식물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일반적인 식물군인 핀보스까지 보호하고 있다.
밤에 한 두 개의 마을을 돌아다니긴 조금 위험한데, 특히 남아공에서 스와질랜드로 이동했다면 긴장은 분명히 고조될 것이다. 에줄위니(천국) 밸리(Ezulwini Valley)에서 열리는 중요한 축제기간은 부족민의 눈부신 의상을 아름답게 치장하고, 왕국과 문화에 대한 믿음을 재확인하는 화려하고 뛰어난 춤과 노래들 일년에 두 번 정도 듣게 된다. 스와질랜드에는 한 개의 박물관과 카지노에서 도박을 하는 것을 제외하면 밤에 갈 곳이 없지만, 지방은 번창하며 삶은 야성적이다.
통계 자료
국명 : 스와질랜드 왕국
면적 : 17,363 sq km
인구 : 1,031,000명
수도 : 옴바바네(Mbabane, 행정적인 수도), 로밤바(Lobamba, 입법상의 수도)
인종 : 스와지인, 주루인, 쏭가-산가아인, 유럽인
언어 : 영어, 시스와티(SiSwati)
종교 : 기독교(60%), 토착신앙(40%)
정체 : 왕정 국회주의
국가 대표 : 므스와티 3세(King Mswati)
지리 및 기후
스와질랜드는 작은 육지에 둘러쌓은 왕국으로 동부의 모잠비크와의 100km 국경을 제외하면 남아공과 모든 국경을 접하고 있다. 대략적으로 직사각형의 모양을 하고 있으며, 코넥티컷보다 조금 크지만 이스라엘이나 엘 살바도르보다 작다. 상태학적으로 동부의 사바나 관목지역에서 북서부의 열대우림까지 다양한 지역이 분포한다. 열대우림 지역은 남아공에서 잘 아려진 '좋은 숲'인 핀보스와 연결된다. 모잠비크와 국경을 이루는 산악지역은 건조한 지역으로 가파른 산들이 서부의 고지대 초원으로 퍼진다. 3/4이상의 스와지인들은 농업에 종사하는데 겨우 생계에 필요한 정도를 생산해낼 뿐 식량 자급자족은 안 된다.
스와질랜드의 지하자원은 매우 많으며, 구토의 크기에 비해 남부 아프리카에서 가장 양호한 야생동물 보호구역과 국립공원을 몇 개 보유하고 있다. 코끼리, 사자, 코뿔소가 다시 서식을 시작했으며(코뿔소는 70년간 서식하지 않았다), 무단 침입자와 산림 경비관과의 수 차례의 유혈충돌 이후 흑 코뿔소와 백 코뿔소는 더 이상 안전을 위협받지 않고 있다. 가장 여행하기 쉬운 야생동물 공원은 에줄위니 밸리 내에 있는 옴릴와네 야생동물 서식지(Mlilwane Wildlife Sanctuary)로 수도인 옴바바네로부터 멀지 않은 거리이며 운인 좋다면 하마와 악어를 볼 수 있다. 사냥감 동물 종은 보호구역에서 일반적이며, 수 백여 종의 조류가 전역에 걸친 숲 지대에 서식하므로 망원경을 가지고 다니는 게 좋다.
동부의 아열대 삼림지와 습지는 매우 더우며, 활엽수림은 벌목반출 산업으로 인해서부의 고지대가 많이 잘려나갔다. 여름기간의 서부 산악지역은 비가 억수같이 내리며, 저지대 초원은 수은주가 40도 이상으로 올라가지만 산악 지역은 저지대 보다 기온이 낮게 분포한다. 10월이 가장 더운 달이며 비는 12월초에 내리기 시작해 4월까지 이어진다. 저지대 초원은 여름에 매우 덥고, 겨울(북반구의 여름)에는 빙하점까지 온도가 내려간다. 동부의 저지대 초원은 아열대 지역으로 모기에 괴롭힘을 당하는(말라리아에 주의해야 한다) 찐득찐득한 날씨로 겨울에도 따듯하다.
역사
고고학자들은 동부 스와질랜드에서 인간이 110,000년 전부터 살고있다고 발견했다. 반투족의 남부 아프리카로 대이동 기간에 한 씨족인 구니족이 동부해안으로 이동해 현재 모잠비크의 마푸토(Maputo)에 정착했다. 트라미니 가족은 이곳에 왕조를 설립했지만 18세기 중반 다른 씨족이 드라미니 왕인 응와네 3세를 공격해 남부인 현재의 퐁골라 강(Pongola River) 주변인 남부 스와질랜드로 이동했다. 스와지인은 응와네 3세가 자신들의 첫 번째 왕으로 여기고 있다. 주루족의 압력으로 다음 왕인 소부자 1세는 현재 스와지 왕족과 의식이 남아있는 에줄위니 밸리에서 철수한다. 전사와 외교가의 자질을 가진 므스와지 왕은 1868년 스와지인들의 국가를 안전하게 보호한다
줄루와 영국과 보어와의 잦은 충돌은 스와지인에 대한 압력을 약화했지만 다른 문제를 야기했다. 스와질랜드는 백인들 여러 집단, 무역상, 선교사, 가축을 사육하기 위한 농부들에게 관심을 끌었다. 결국 유럽인에게 국가를 양도하기도 했으나, 1877년 영국이 스와질랜드를 병합한다. 1881년의 스와질랜드 회의는 서류 상에 독립을 인정했으나 국경 관계를 둘러싼 문제로 독립은 성립되지 않았다. 영국과 보어의 각기 다른 관심은 혼동스런 결과를 가져왔고, 보어 전쟁의 결과로 스와질랜드는 런던의 행정권을 받는 국가가 된다.
20세기 동안은 스와지 문화의 생존을 위한 토지 소유권의 강해졌고, 스와지 왕은 왕국이 신뢰를 얻기 위한 고민을 한다. 많은 국토가 외국인의 소유였으나 라봇시베니 왕은 스와지인에게 토지를 사서 되찾도록 용기를 북돋았으며 이민 온 다수의 남아공화국 사람들은 광산에서 일을 하기 위해 돈을 모았다. 토지의 직접구매와 영국 정부에 의한 반환으로 왕국은 결국 땅을 되찾았고 1968년 독립을 얻어 2/3의 국토를 스와지인이 직접 통제하게 된다. 영국의 66년간의 지배는 평화스럽게 이양됐으며, 옴바바네의 많은 거리이름은 식민지 시대의 이름을 간직하고 있다. 스와질랜드의 구성은 영국에 의해 대부분 이루어졌으며, 1973년 소부자 2세의 새로운 시도는 스와지인의 문화를 반영시키지 못했다.
4년 후 모든 권력을 장악한 왕이 기득권 세력의 새로운 구성 하에 국회가 재 소집됐다. 소부자의 뒤를 이어 1986년 전통을 유지하고 지키려는 므스와티 왕은 핵심 조언자들인 장관의 협의회를 운영한다. 국가 반대주의자가 별로 없었으며 스와지인은 외부의 근대화 압력에도 불구하고 고유의 문화를 유지하려 한다. 야당 활동은 불법이며, 1995년에는 국회와 부수상과 스와질랜드 대학의 부학장의 집이 학생들의 시외로 인해 불타기도 했다. 같은 해 후반에 일어난 총파업으로 국왕의 권한을 악화했으며, 1997년에는 모잠비크와 남아공의 지도자가 스와질랜드의 민주화를 위해 국왕과 대화를 하기도 했다.
경제
국내 총생산 GDP : US$ 26억
1인당 국민 총생산 GNP : US$ 2,523
경제 성장률 : 2.9%
인플레이션 : 14.7%
주요 산업 : 설탕, 광업(석탄, 석면), 펄프, 농업, 음료 농축
주요 교역 대상국 : 남아공, 일본, 영국, 미국
문화
노래와 춤은 스와질랜드의 주요 문화 행사이며 전통적으로 사람들이 함께 모여 환상적인 축제를 여는데 남자와 여자가 화려한 전통의상을 입고 조화를 이루며 춤을 춘다. 왕정은 천박한 행위라고 비난을 했지만 주요 문화적인 축제는 신성한 행사와 사람들의 모임과 왕과의 관계를 아직도 상기하는 행사를 포함하고 있다. 스와지인의 국가 의상은 뛰어나며 여행하는 동안 자주 보게 될 것이며 특별히 축제기간에 더 많이 보게 될 것이다.
황토색, 핑크색, 빨간색의 의상이 일반적이며 머리에 밝은 깃털을 장식한다. 시스와티와 영어가 공식적인 언어로 사용되며 영어는 공식적인 필기언어다. 대부분의 지방에서 영어를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토착신앙이 넓게 퍼쳐있진 않지만 전통적인 스와지 문화가 강하게 남아있고, 인크와라(Incwala), 움란가(Umhlanga), 움크와소(Umcwasho) 같은 종교적인 우위를 같은 중요한 행사가 열린다. 잉크와라의 중요한 요소는 인도양의 파도로부터 거품을 걷어낸 바다로 순례를 떠나 모잠비크의 해안선 위의 스와지인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의식을 포함하고 있다. 성이 드라미니인 사람들은 스와질랜드에서 많이 만날 수 있는데 대부분은 왕조의 혈통이라고 주장하거나, 확증되지 않은 채로 왕실에 이름에 올린 사람들이거나 고생하는 농부들이다. (1998년의 국회 의장이 사임한 혼란상태에서 피터 드라미니의 이름을 가진 두 명이 도착해 장관이라고 선언했었다)
대부분의 인구는 스와지인이지만 소수의 주루, 쏭가-산가아인과 유럽인이 살고 있다. 아프리카와 유럽의 후예인 모잠비크의 난민들은 소수민족이다. 옥수수가 주요곡물로 대부분이 사람들이 포리지 형태로 식사를 하며, 지방질의 스튜 요리와 함께 자주 서빙된다. 별로 식욕을 돋구는 음식은 아니지만 가난한 국가인 스와질랜드는 가뭄이 발생하는 지역에 소하고 있어 연속적인 음식 공급의 부족을 겪고 있다. 역사적으로 스아지인은 육식을 했으나 현재는 옥수수, 우유와 채소가 일반적인 음식이다. 아프리카의 집에서 수수나 옥수수로 만든 맥주는 먹어 볼 만한 가치가 있는데 지역마다 다르게 생산되는 양질의 맥주는 물어봐서 공장이나 판매소를 찾아가야 한다.
source : xI890WMt7U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