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United Kingdom - 지리, 기후, 역사
잉글랜드 (England&Great Britain)
20세기는 영국에게 그리 호의적인 시기는 아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제국은 쇠락했고, 무역기반을 잃었으며, 정부의 완고함은 현대세계에서 그 역할을 감퇴시켰다. 그러나 왕실 권력과 영국인 생활에 초석이 되어온 많은 제도들이 변화를 일으켰다. 20세기 후반의 불가항력적인 환경과 방대한 도시 스프롤 현상은 그 동안 신사의 나라 영국의 전통적인 상징들을 하나씩 무너뜨리고 있다. 노동당의 토니블레어가 이끄는 예고된 '신 영국인은 우울한 대처주의에서 고 다이아나의 숭배로 옮겨갔고, 여왕과 찰스 황태자는 서민적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Spice Girls가 페미니즘의 새 얼굴로 떠올랐고, 버릇없고 무표정의 형제들이 대형포스터의 주인공이 되었다. 아직도 기사작위와 판사의 가발이 남아있는 나라이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는 계속 될 것이다.
통계 자료
면적 : 129,720 평방 km
인구 : 4,800백만
수도 : 런던 (London)
인종 : 앵글로 색슨, 스코트랜드인, 웨일스인, 아일랜드인, 서인도인, 파키스탄인, 인도인 등
언어 : 영어
종교 : 영국성공회, 감리교, 침례교, 천주교, 이슬람교 등
정체 : 의회 민주주의
국가 대표 : Queen Elizabeth II
지리 및 기후
영국의 면적은 24만 평방 km로 뉴질랜드와 비슷하거나 프랑스의 절반 정도이다. 남쪽에서 북쪽 끝까지가 약 1000km이고 너비는 500km이하이다. 아주 큰 산은 없지만 많은 산맥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북서 웨일즈의 스노우도니아 산맥, 북서 잉글랜드의 컴브리안 산맥, 남서 스코틀랜드의 글렌켄 산맥 등 모두 대략 1000m에 이른다. 스코틀랜드 그램피언 산맥에는 저지대와 고지대 사이를 가르며 경계선 구실을 하고 있는 영국에서 가장 높은 1343m의 벤 니비스 (Ben Nevis)산이 있다.
잉글랜드는 Great Britain섬 안에 나뉘어진 세 지역 중 가장 넓은 지역이다. 북으로 스코틀랜드, 서로 웨일즈와 경계진 잉글랜드는 대부분 국토가 평평한 저지대이다. 북쪽은 페나인 산맥의 석회암 지대이고, 서쪽은 컴브리안 산맥과 디스트릭트 호수(Lake District)지대이다. 페나인 남쪽은 인구밀집지역인 미들랜드(Midlands)이고, 웨스트 컨트리(West Country)인 반도의 남서쪽은 화강암, 비옥한 농토, 바위 해안이 있는 고원지대이다. 나머지 국토는 잉글랜드 저지대로 불리며, 농토와 낮은 산, 산업지대 그리고 방대한 런던이 있다. 잉글랜드는 과거 숲으로 뒤덮여 있었으나 지금은 유럽에서 아일랜드 다음으로 숲이 없는 곳이 되었다.
정부는 숲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오히려 소나무는 땅을 산성화시키고, 이전의 많은 토탄지대를 황폐화시키고 있을 뿐이다. 이외 수림으로는 오크와 느릅나무, 밤나무, 라임, 물푸레 나무, 너도밤나무 등이 있다. 큰 식물군은 없으나, 봄철에는 수많은 야생화를 볼 수 있다 - 아네모네, 수선화, 블루벨, 앵초, 미나리아재비, 서양깨풀 등. 붉은 사슴이 잉글랜드에서 가장 많은 포유류종이며 여우, 오소리, 호저 등도 있다. 미국산 회색 다람쥐가 들어오면서 토종 붉은 다람쥐가 줄어들고 있다. 잉글랜드에서 유일한 독뱀인 살모사는 극히 수가 적어 보호되고 있다. 과거 영국에는 조류탐사가 인기 있을 정도로 수많은 조류가 있었으나 현재 많은 서식지가 파괴되어 수도 줄고 멸종한 것도 많다.
잉글랜드의 국립공원은 국토의 7%정도로, Dartmoor, Exmoor, Lake District, Peak District, Yorkshire Dales, North York Moors, New Forest, Broads, Northumberland 등이 있다. 영국을 둘러싸고 있는 바다는 얕고 따뜻한 북대서양 해류의 영향으로 비교적 온난하다. 이러한 요인으로 영국은 아주 춥거나 아주 더운 기온도 없고, 햇빛 나는 날도 적고, 구름 없는 날도 드문 온화하면서 변화무쌍한 해양성 기후를 보인다. 겨울(12월-2월)에도 얼음이 얼지 않고, 여름(6월-8월)에는 30도 이상의 기온을 보인다. 북쪽이 가장 추운 지역이며, 런던, 남동부와 서부지역이 가장 따뜻하다. 산악지대와 West Country가 가장 강수량이 많은 곳이다.
우중충한 날씨가 주를 이루는 영국은 하루 종일 해가 쨍쨍한 날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여름조차 여러 날 해를 볼 수 없을 때가 많고, 소나기, 폭우는 당연한 것이다(하루에 열두 번 바뀌는 날씨에 빨리 적응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박, 비, 눈, 쨍쨍 내리 쬐는 햇볕이 서너 시간 안에 차례로 등장하기도 한다. 영국이란 나라를 즐기려면 끊임없이 '난 비를 좋아한다'는 생각을 주입시켜야 할 것이다.
역사
*켈트족과 로만족
BC4000년 경, 새로운 이주자들이 유럽에서 들어왔을 때, 영국은 오랫동안 소수 수렵족들이 정착해 살아온 터전이었다. 석기를 사용했던 새 이민족들은 이 섬나라에 처음으로 큰 자취를 남겼다. 솔즈베리 평원의 언덕에서 농경을 시작하였으며, 돌무덤을 만들었고, BC3000년 경에는 에이버리(Avebury)와 스톤헨지에 거대한 의식제단도 만들었다. 그 다음으로 유입된 민족은 켈트족으로, 청동과 철기를 사용하던 중부유럽에서 건너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두 형태의 켈트어를 사용했는데, 그 중 하나는 지금도 아일랜드와 스코트랜드에서 쓰여지는 겔릭어(Gaelic)이고, 다른 하나는 과거에는 잉글랜드 지역에서도 쓰여졌지만 지금은 웨일즈 지역에서만 쓰이는 브라이토닉어(Brythonic)이다. 서기 43년 로마인들이 토착민의 거센 저항에도 불구하고 무력으로 잉글랜드에 정착하여 7년동안 대부분의 잉글랜드를 장악하였다. 웨일즈와 스코트랜드 산간지방은 켈트족이 여전히 장악하고 있었으나 잉글랜드는 350년간 로마제국의 통치하에 들어갔다. 로마인들은 안정과 잘 뻗은 도로, 기독교를 이 곳에 가져왔으나 그 댓가로 영국인들이 준 것은 골칫꺼리뿐이었다. 결국 410년 경 제국이 쇠퇴함과 함께 로마인은 '결코 패하지 않고, 단지 사라졌을 뿐'.
*영국민족
로마인이 철수하고, 영국은 라인강 북쪽에서 유래한 앵글족, 쥬트족, 색슨족의 독차지가 되었다. 5세기 무렵 그들은 영국에 남아 있던 로마문화들을 바탕으로 각자 발전하였고 7세기가 되어서야 그들 자신을 처음으로 하나의 민족, '영국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켈트족 중 아일랜드에 남아있는 켈트족은 라틴어와 로마기독교 문화를 그대로 유지하였다.
*바이킹과 노르만인
9세기 중반 영국은 새 침입자들의 물결에 다시 한번 여지없이 당하고 만다. 노르웨이의 바이킹족은 스코트랜드 북부와 컴브리아(Cumbria), 랭카셔(Lancashire)지방을 정복했고, 데인족(Danes)은 요크를 수도로 삼으면서 잉글랜드 동부를 정복했다. 잉글랜드 동부는 데인로우(Danelaw)로 불리게 되었다. 그 뒤 알프레드 대왕에 의해 이들의 침략은 끝을 맺게 되었고, 계승자들이 미약하나마 연합된 국가를 세웠다. 그러나 덴마크인들의 침입이 계속되었고 1016년 에는 노르웨이와 덴마크 두 나라의 왕인 카누트(Canute)대왕이 왕좌를 빼앗았다. 덴마크 통치시기 후에 참회왕 성 에드워드가 왕위에 오른다. 그는 사촌 윌리암 공과 함께 프랑스에 있는 바이킹 공작 소유인 노르망디에서 자랐다. 에드워드의 죽음은 두 명의 왕위계승자, 영국인 매형 해롤드 고드윈(Harold Godwin)과 노르만인 사촌 윌리암을 남기게 된다. 1066년 윌리암이 12,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상륙하여 헤이스팅즈 전투에서 해롤드를 패배시킨다. 북쪽 노르만인의 잉글랜드 정복은 이로써 막을 내리고 영국귀족층이 불어를 쓰는 노르만인으로 대체되고, 장엄한 성들이 세워졌으며 연방체제가 실행되었다.
*중세영국
12세기에 왕위계승문제로 일어난 참혹한 시민전쟁 후에 앙주백작이었던 헨리2세가 왕이 되었다. 반 이상이 프랑스 혈통인 헨리2세는 왕권을 프랑스왕에게 건네주었다. 이것이 백년전쟁의 도화선이 되었고 영국의 패배로 끝이 난다. 왕위계승문제로 계속되는 분쟁은 의회에 더욱 강한 힘을 주는결과를 가져왔다. 요크 집안과 랭카셔 집안 사이의 왕위투쟁이었던 장미전쟁도 30년이나 지속되었다. 결국 1485년 헨리 7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튜더왕조가 시작되었다. 헨리8세 때 교황의 권력에 대항한 영국왕들의 투쟁은 결국 승리를 거두었고, 의회는 헨리8세를 성공회의 수장으로 거두게된다. 16세기는 황금기로 희랍학문과 무역이 부흥하였고 셰익스피어가 작품활동을 한 시기이다. 엘리자베스1세 이후 의회와 귀족적인 스튜어트왕들과의 관계가 악화되어 이 갈둥이 결국 1642년 시민전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북쪽과 서쪽 지방을 권력기반으로 하던 카톨릭 신자들과 옛 귀족들은 찰스1세를 지지했고, 런던과 남동부 도시에 기반을 둔 신교도들과 민중들은 의회를 지지하였다. 의회가 참신한 지도자로서 크롬웰(Oliver Cromwell)을 내세운 결과, 왕당파는 패배하였고, 1649년 찰스1세가 처형당하게 된다. 크롬웰은 독재정치를 자행하였지만 육, 해군을 재정비함으로써 대영제국을 위한 초석을 닦은 인물이기도 하다. 1658년 그가 죽은지 2년 후 재구성된 의회는 추방당했던 찰스2세를 불러들였다. 왕정복고기는 곧 영토확장의 시기였다. 식민지가 아메리카 해안을 따라 퍼져나갔고 동인도 회사가 봄베이에 본부를 설립하였다.
*대영제국시기와 산업
18세기에 들어서면서 하노버의 왕들이 왕국을 다스리기 위해 의회에 많이 의지하였고, 로버트 왈폴 경(Robert Walpole)이 명목상의 첫 수상이 되었다. 1770년까지 프랑스가 캐나다의 모든 영토와 인도의 프랑스 무역지점 두 곳을 빼고 모두 양보하는 반면, 영국의 쿡 선장은 호주를 계속 영국 소유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제국의 첫 번째 큰 반전은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들이 1783년 독립을 쟁취하였을 때 찾아왔다. 또한 1780년대는 산업혁명을 발전시킨 첫 움직임이 이루어진 시기로 운하의 이용과 기차의 등장, 석탄, 수력과 증기력으로 생산과 교통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빅토리아여왕이 왕좌에 앉은 1837년까지도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였다. 영국함대는 해상을 손에 쥐고 그 큰 대영제국을 이어주고 있었고, 영국의 공장은 세계무역을 움직이고 있었다.
*20세기
빅토리아 여왕은 이 새로운 세기 초창기에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이전 세기를 지배하던 구제도들은 1차 대전으로 무너지는데, 1918년에 끝난 이 전쟁으로 백만명의 영국 남성이 목숨을 읺었으며 국가 자본 중 15%가 소비되었다. 1939년 9월1일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또다시 전쟁이 일어났다. 1940년대 중반까지 유럽 대부분이 나치 통치하에 놓여 있었다. 스탈린은 평화조약을 맺었고 미국은 중립적 태도를 취했으며 윈스턴 처칠의 탁월한 지도력 하에 있던 영국은 완전히 고립되었다.
1940년 로얄공군이 영국전투에서 승리하여 히틀러의 침략계획은 실패하게 되었다. 1960년대는 전쟁의 복구시기였고 Beatles, Rolling Stones, Mary Quant, David Bailey, Twiggy, Jean Shrimpton 등의 활약으로 세계 문화의 중심무대가 되어있었다. 또 전후 대영제국의 많은 식민지들이 독립을 얻었다. 1970년대, 오일파동, 극심한 인플레이션, 3일 태업, 계층간의 반목 등 혼란이 가중되던 중 1979년 마가렛 대처가 나타나 이를 정리하게 되었다. 그녀는 조합의 균열과 국가산업 사유화, 우등 교육제도 등을 설립하였고, 남미 포클랜드제도에 함대를 보냈으며, 영국사회를 분극화시키는 등 많은 업적으로 이 세기에 가장 오래, 가장 두각을 나타내어 활동하였다.
1990년 임명된 존 메이져는 보수당에게 집권을 넘겨주지 못하고 97년 5월 선거에서 토니 블레어에게 자리를 넘기게 된다. 토니 블레어가 수상으로 임명된 후 영국도 변화가 일어났다. 20여 년간 보수당의 영향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지만, 희망적인 분위기로 서서히 변화되고 있다: 아일랜드의 평화가 첫 발을 디디고 있고, 젊은 왕자들은 대중가수 스파이스 걸에 열광하는 등 변화의 길을 가는 조짐이 보이는 것 같다.
source : OSvdcmhj5r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