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e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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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Sweden - 지리, 역사

2019-02-02 1925
About Sweden

스웨덴 (Sweden)

아바그룹, 지프(Zip), 그레타 가르보(Greta Garbo), 독한 보드카(Absolut Vodka) 등에 못지 않게 스웨덴을 상징하는 것은 스웨덴식 정찬(sm rg sbord), 볼보 자동차, 테니스 애호가들이다 (가수 록세트(Roxette)는 절대 여기 속하지 못함). 화폐의 평가절하로 스웨덴 여행의 부담이 많이 줄어들었다. 신선한 공기, 자연경관, 이 곳의 문화가 주는 소박한 즐거움은, 여행자가 낭비 없이 만족스럽고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수도인 스톡홀름은 진보적인 도시이지만 전원분위기를 느낄수 있는 호젓한 장소들도 많다. 일단 도심을 벗어나면, 스웨덴의 정말 아름다운 숲과 거대한 호수들은, 스케이팅부터 엘크(북유럽의 큰 사슴류)사냥에 이르는 다양한 실외 레저활동을 즐기게 해 준다.

통계 자료

국명: 스웨덴왕국(The Kindom of Sweden)
면적: 450,000평방 킬로미터
인구: 890만
수도: 스톡홀름(Stockholm :인구 100만)
인종: 스웨덴인 90%, 핀란드인 3%, 사미족(원주민) 15%
언어: 스웨덴어, 영어가 널리 통용
종교: 루터교
정체: 입헌군주제

지리 및 기후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스웨덴은 소시지 모양의 가장 큰 나라로, 면적은 45만 평방킬로미터에 달한다. 자연경관의 특징은 빙하활동의 결과로 형성된, 발틱해 서남쪽 암석해안과 동남해안 스톡홀름 군도의 피요르드와 암초들이다. 풋나기 선원은 전 국토가 약 십 만개의 호수로 연결되어서 마른 내륙지라고는 없는 사실을 유감스러워 한다. 스톡홀름 남쪽, 욀란드(land)와 고틀란드 (Gotland)섬은 평평한 석회암지대이지만 해안은 모래사장으로 둘러 싸여 있어 도심을 벗어나 휴식을 즐기려는 사람들에게 좋은 피서지이다.

노르란드(Norrland)는 (스웨덴 국토의 60%에 달하는 북부 지방 지명) 인구밀도가 낮고, 거의 한결같이 광활한 삼림지, 강, 급여울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스웨덴의 완만한 산맥인 스칸데르나 (Skanderna)의 서쪽은 노르웨이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스웨덴 최고봉은, 빙하로 뒤덮인, 해발 2111m의 케비네카이세 (Mt Kebnekaise) 북쪽 봉우리이다.국토 전역에 있는 엘크, 사슴, 여우 등은 스웨덴 야생동물 중에서 가장 마주칠 가능성이 많이 있는 동물이지만, 그렇다고 자동차 정면에 쉽게 나타날 정도는 아니다.

늑대, 스라소니, 불곰 등은 농토 확장과 열성적인 사냥꾼들로 인해 점차 줄어들고 있지만, 일부 서쪽 지방과 산악지역에서는 그 수가 점차 다시 증가하고 있다. 오소리 무리는 가축을 잡아먹기 때문에 그들을 없애려는 농장주의 눈을 피해 산 속에서 간신히 생존하고 있다. 아름다운 물총새, 최고의 목수 딱따구리 등 다양한 새들이, 해변에서 눈이 쌓인 지역까지 지저귀며 여유 있게 훨훨, 혹은 급히 후다닥 날아다닌다. 북부 호수와 개울은, 큰 바다송어를 잡았다고 자랑하는 스웨덴 낚시꾼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스웨덴의 햇볕아래서 여행을 해야 한다면, 반드시 5월말에서 6월말 사이, 8월 우기 전에 서둘러 이 곳을 찾아야 한다. 스톡홀름의 월평균 기온은 7월이 섭씨 약 17도로 가장 높으며, 이때 9시간은 확실히 햇볕을 쬘 수 있다. 같은 때, 북부 산악지대의 평균기온은 섭씨 약 11도이지만, 때때로 영하로 떨어지거나 심지어 여름에도 눈이 오는 것에 대비해야 한다. 보스니아만(Gulf of Bothnia)의 기온 차는 거의 섭씨30도에 이른다. 스웨덴은 위도상 아주 북쪽에 위치하므로, 5월 중순부터 6월말까지는 해가 지지 않고, 이와 대조적으로 12월은 늘 어둡다. 예테보리(G teborg, Gothenburg)지역의 연 강우량은 스웨덴 최대로 700mm이상이며, 라플란드 (Lapland)지방은 잦은 눈으로 일년 중 약 200일은 눈으로 덮여있다. 많은 연안 항구들이 겨울 내내 얼어 있는 반면, 스톡홀름 군도는 두어 달만 얼음이 언다.

역사

중세부터 스웨덴역사는 기록으로 남아있다. 다양하고 수 많은 요새들, 집회장소, 제사지, 무덤 등은 인상적인 유적지이다. 인도유럽족이 도래한 이후인 청동기 시대에 비로소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였고 연금술도 나타났으며, 활발한 교역이 이루어졌다. 초기 문명생활상은, 아직까지 스웨덴 많은 지역에 남아있는 암석화(h llristningar)에 생생히 재현되어 있다. 최초의 교역소가 세워진 맬라렌(M laren)계곡에서, 고대유럽 룬문자가 새겨진 기념비가 발견되었다. 바이킹시대는 9세기까지 전성기를 누렸고, 로마, 비잔틴, 그리고 아랍동전들이 보관된 창고는, 스웨덴 바이킹의 부와 권력이 다음 세기에도 건재했음을 보여준다.

바이킹은 대체로 동으로 이동했는데 러시아에 그 흔적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비잔틴지역들과도 교역했음을 알 수 있다. 기독교가 뿌리내린 11세기 이전까지, 이교도의 신이나, 다소 세속적이 왕들이 백성들을 마음대로 지배하였다. 1397년 노르웨이와 함께 덴마크가 중재하여 스웨덴을 칼마르동맹(Union of Kalmar)에 가입시킬 때까지 스웨덴은 내부 분쟁으로 중세기를 헛되이 보낸다. 스웨덴 국민주의자들의 일세기에 걸친 불만이, 결국 구스타프 바사(Gustaf Vasa)가 주도하는 반란을 일으키게 되었고, 그는 1523년 왕위에 오른다. 구스타프는 종교개혁과 강력히 중앙집권화된 국민국가의 도입을 시도한다.

국력신장의 결과, 스웨덴은 많은 핀란드와 발틱 국가를 지배하게 된다.1809년, 귀족들의 반란으로 왕권에 예속되어 있던 무한권력은 끝이 나고, 핀란드는 러시아에 빼앗기게 되었다. 같은 해, 스웨덴은 입법권을 왕과 국회(Riksdag)로 분리하는 헌법으로 제정하고, 관료주의 권력을 견제하는 기구로서 행정감찰관직 제도를 도입시킨다. 1814년 군사력에 의한, 노르웨이와의 강제적 연합이 스웨덴이 전쟁에 개입한 마지막이 되었다. 뒤늦은 산업화는 제철과 스웨덴 발명품인 '안전한 성냥'에 토대를 두었다. 최소 300년 동안 중요시되었던 철광과 제철산업은 확장되기 시작했고 중산층의 번영을 창출했다. 그러나 스웨덴 농촌지역의 대부분 마을을 흩뜨려 놓은 1827년 법령은 즉각 심각한 영향을 미쳐 구시대의 사회구조를 붕괴하기에 이른다. 1900년까지 스웨덴인구의 4분의1이 도시로 이주하였고, 목재, 정밀기계, 철물 등에 기초를 둔 산업은 상승세를 탄다. 이와 같은 여건에서 노동계층은 급진적이 되었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스웨덴은 스스로 중립을 선언하였고, 1917년까지 상호존중의 정권 체제가 유지되었다. 그러나 식량부족은 사회불안을 초래하였고 의견 일치는 더 이상 불가능해졌다. 그 결과 최초로 사회민주당이 정권을 잡았다. 사회민주당은 1932년 이후 정권을 독점하면서, 복지국가의 개념도입과 경제개입을 통하여 1920년대의 자유주의 경향을 바꾸어나갔다. 이러한 분위기는 1970년대 경제적 압박이, 스웨덴 사회가 지향하는 목표를 방해하기 시작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특히 올로프 팔메 (Olof Palme)수상 암살사건과 그것의 모호한 처리과정을 보면서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지지가 최초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중도파가 이끄는 연합정당이 정권을 잡은 1991년, 정치적 순풍은 우파로 옮겨간다. 극우경제의 실험과 EU 회원국 가입은 많은 스웨덴인을 불안과 회의에 빠지게 하여 1994년, 결국 사회민주당이 슬그머니 소수정권을 다시 잡는다. 사회민주당은 1995년 선거에서 다시 패배해, 중앙 우파당(Centre Right party)이나 녹색당(the Greens)의 지지를 받는 수상 예란 페르손의 주도하에 간신히 권력을 고수하고 있다.

source : Bs3iRL2jEJ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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