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nm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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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Denmark - 지리, 기후, 역사

2019-02-01 1804
About Denmark

덴마크 (Denmark)

안락하고 고도로 컴퓨터화된 스칸디나비아의 문명사회에 약간의 시기심을 느끼며, 바이킹의 후예덴마크인은 바이킹의 뿔을 깎아내면서 더 문명국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우선, 가장 조심스럽게 EU 회원국이 된 덴마크는, 레고의 발명으로 두각을 나타내었고, 급부상한 재능 있는 축구선수들과 1996년 자전거 경주(뚜르 드 프랑스배Tour de France)에서 우승한 노란 털스웨터의 비야르네 리즈(Bjarne Riis) 등 다방면으로 확고한 덴마크의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

가장 대중적인 덴마크의 인지도는 뭐니뭐니해도 전 세계사람들을 매료시킨 데니쉬 페이스트리가 아닐까.덴마크의 수도이자 장난감의 도시 코펜하겐이 아무래도 가장 발길을 끌어당기는 곳이다. 항상 말끔하게 면제품은 세탁되어있고, 단정하지 않게 대충 입어도 최신 유행의 옷차림 못지 않게 멋있으며, 옌센 (Jensens), 한센 (Hansens), 닐센 (Neilsens)같은 이름들이 덴마크의 인상이다. 스칸디나비아국가들 중 은행파산이 가장 적은 덴마크의 위상은, 항상 즐거운 축제로 가득한 섬에서 신나게 즐긴 여행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는 편지와 따뜻하게 악수를 받을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통계 자료

국명: 덴마크 왕국(The Kingdom of Denmark) 
면적: 42,930평방미터
인구: 520만
수도: 코펜하켄(인구 140만)
인종: 97% 덴마크인, 3% 외국인
언어: 덴마크어,영어, 독일어가 보편화
종교: 루터교
정체: 입헌군주제

지리 및 기후

덴마크는 작은 나라로서, 그 국토의 대부분은 유틀란드반도(Jutland)에 위치하고 있다. 유틀란드반도 남쪽에 접해있는 독일은 덴마크에 유일하게 연결된 유럽대륙 국가이다. 덴마크는 서쪽으로 북해, 동쪽으로 발틱해와 접해 있다. 북으로는 노르웨이와 스웨덴으로부터 덴마크를 구분지어주는 스카게락(Skagerrak)해협과 카테가트 (Kattegat) 해협이 있다. 또 섬 밀집국인 덴마크에는 500개 가량의 섬들이 있느데, 그 중 100여개의 섬에만 사람이 거주한다. 코펜하겐은, 메인랜드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가장 큰 섬 지일란드(Zealand)에 있다. 덴마크는 대부분이 비옥한 농지인 저지대, 구릉지, 너도밤나무와 히쯔(관목)로 덮힌 황무지이다. 이 나라에는 산이라고는 없는데, 최고의 고지는 유틀란드 호수지방의 이딩 스코브헤(Yding Skovh j)로 이 곳도 해발 173m가 채 못 된다. 수세기 동안에 걸친 산림벌채와 지나친 방목으로 덴마크의 자연환경은 황폐화되었었다.

전 농토의 약 20%에 해당하는 지역이 해면과 높이가 비슷해 그 대부분이 환경학적으로 골치 아픈 습지대에 있어 펌프로 물을 빼내고 개간하였다. 자연은 지나치게 변형되어 덴마크 본래의 천연경관이 그대로 보존되 있는 곳이라고는 없다. 국토의 약 12%가 수목으로 덮여 있으나 원시림은 거의 없다. 삼림은 대부분이 너도밤나무와 오크로 덮인 낙엽수 지대이다. 이 외 느릅나무, 개암, 단풍나무, 소나무, 자작나무, 사시나무, 라임수, 밤나무 등이 있다. . 가장 큰 야생동물은 무게가 200킬로가 넘는 고라니(red deer)종이다. 그밖에 노루, 담황색에 흰 반점이 있는 사슴(fallow deer), 산토끼, 여우, 다람쥐, 고슴도치, 오소리 등이 있다 덴마크에는 거의 400여종에 달하는 조류가 있다.

그 중, 까치류, 비둘기류, 큰물닭, 거위, 오리 등이 가장 흔하다. 덴마크에서 가장 크며 끝없이 넓은 삼림지대인 롤드 스코브(Rold Skov)는 77 평방미터의 공유림으로 그 안에 덴마크 유일의 국립공원인 레빌드 박케르( Rebild Bakker.)가 있다. 상당히 높은 위도를 감안한다면 기후는 상대적으로 온화한 편이다. 덴마크에서 비와 회색빛 하늘을 기대하는 것이 덜 실망스럽지만, 햇빛이 갑자기 나타나는 날에는 놀랄 만큼 쾌적한 날씨에 기분이 배가한다. 여행하기 가장 좋은 때는 5월부터 8월로 섭씨 25도 정도의 기온을 오르내리며 낮시간이 거의 18시간 지속된다. 1월과 2월이 가장 추워서 낮 평균기온이 0도에 머물지만 이는 같은 위도상의 다른 지역보다 약 10도 가량 높은 것이다.

역사

후기 빙하기에 유목사냥민들이 순록을 앞세우고 덴마크로 들어왔다. 순록떼는 '북으로 가라'는 소리를 듣고 돌아갔지만 구석기시대 덴마크인들은 그대로 정착을 해, 화전을 일구어 씨를 뿌리고 외양간에 울타리를 치고 수직으로 시체를 묻고 생활하였다. 제조기술은 기원전 18세기부터 청동기시대에 걸쳐 크게 발전하였고, 교역은 남쪽으로 항로를 따라 멀리 확대되었고, 가장 아름다운 덴마크생산품은 제물로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소택지에 묻혔다.

기원전 500년에 철기가 들어와 가정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되자 대단위 농경사회로 발전하게 된다. 오늘날 덴마크의 언어와 문화적 기원을 추적하기 위해서는 서기 500년 스웨덴에서 남으로 이동해온 부족이 덴마크인으로 정착했던 시기로 거슬러 가야한다.덴마크왕조는 하르데곤의 아들, 고름(Gorm)이 10세기 초 자신의 영토를 설정했던 때를 기원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왕조임을 주장한다. 고름의 아들 하랄드 블루투스(Harald Bluetooth)는 덴마크인을 완전히 정복시킨 후, 서둘러 이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킨다. 블루투스의 뛰어난 후계자들, 포르크베아르드(Forkbeard)와 그 자손들은 영국에서 목재를 가져와 상점을 세워, 영국계 덴마크왕조로 태평세월을 보냈다.

반세기를 함께 잘 지냈지만 바이킹의 위세가 기울자 덴마크왕국의 국경은 현재 덴마크 땅으로 축소된다.반전, 암살 등으로 점철된 중세기를 지내고, 14세기 후반부 급부상한 왕조들 간의 상호결혼 결과 현명했던 마그레테여왕(Queen Magrethe)의 주재로 칼마르동맹(Kalmar Union)을 맺는다. 그러나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모두는 같은 배를 탔지만 서로에게 분노하기 시작한다.스웨덴은 전쟁으로 낭비가 심했던 덴마크에 대해 특히 불만이 컸고, 마침내 동맹은 구스타브 바사(Gustav Vasa)가 스웨덴의 왕으로 추대된 1523년 깨어진다. 그러나 노르웨이는 그 후 3세기를 더 덴마크의 지배하에 남아있어야 했다.16세기에 종교개혁이 온 나라를 휩쓸어 교회는 불타고 그 결과로 시민전쟁이 초래한다.

투쟁은 1536년 카톨릭 교회의 몰락으로 종결되고 왕실을 이끄는 덴마크 루터교파가 설립된다. 크리스티안 4세 (Christian IV)는, 17세기전반 50년을 통치하는 동안 스웨덴과의 참혹한 전쟁 속에 그의 백성들을 몰아 넣음으로써 엄청난 교역과 부를 손실했다. 덴마크는 부와 영토를, 왕은 눈 하나를 상실했다. 더한 불행은 수 십 년 뒤, 크리스티안의 계승자 프레데릭 3세(Frederick III.)가 초래한 스웨덴과의 전쟁 패배였다. 그 후 덴마크는 서서히 이런 전쟁에서 벗어나 국민의 발전과 개혁에 힘쓰게 되었다.나폴레옹 전쟁 동안 영국이 코펜하겐을 두 번 침공하는데, 1801년에 덴마크함대에 큰 손실을 가했고 1807년에는 코펜하겐의 많은 부분이 화염에 휩싸였다.

스웨덴인들은 덴마크가 쇠약해진 틈을 타 그들에게 노르웨이 양도를 요구한다. 19세기는 불운과 몰락이 시작되었던 시기로 자아가 강했던, 키 작은 한 프랑스인(나폴레옹)의 지배를 받던 때였다. 그러나 1830년대까지 덴마크는 예술, 철학, 문학 등을 통한 문화혁명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었다. 민주화 운동의 결과, 덴마크는 1849년 6월 5일 입헌군주제를 채택하기에 이른다. 덴마크와 독일 모두의 전통을 세습한 유틀란드 남부의 슐레스비히(Schleswig)주민들이 새 헌법에 저항한 후, 독일이 슐레스비히를 지배한다.

덴마크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중립을 지켰고 제 2차 대전이 발발하자 중립을 재선언한다. 하지만 1940년 4월9일 독일전투기가 코펜하겐을 침공하자 덴마크는 항복하고 만다. 덴마크는 자치권을 고수할 능력이 없었고, 3년 후 독일은 본색을 드러내어 철저히 통제한다. 소비에트의 공격으로 보른홀름섬(Bornholm)이 심하게 폭격을 입었지만 나머지 덴마크 땅은 2차대전 시 그다지 큰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 사회민주주의 정당 주도하에 포괄적인 사회복지 국가로 정립된다.

덴마크는 여전히 국민에게 폭넓은,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사회보장제도를 제공하고 있다. 유럽공동체EC(현재는 EU)가입을 1973년 투표로 정하기는 했지만, 덴마크인들은 EU 확대의지지를 망설여왔다. 실제로, 유럽경제 및 정치협력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내었던 마스트리트조약의 비준을 묻는 국민투표가 1992년 6월 실시되었다. 유권자들은 51% 대 49%로 아슬아슬하게 비준을 반대했다. 마스트리트조약이 정한 공동방어와 단일통화의 규약에서 면제를 받고나서야, 1993년 5월 실시된 2차 국민투표에서 근소한 차이로 조약을 허용하게 된다.

많은 덴마크인들이, 강대국에 의해 지배되는 유럽관료주의가 지역적 통제를 할 때 입게 되는 손실을 우려하기때문에 EU에 대한 덴마크의 지지도는 열의 없이 지속되고 있다. 19세기초 노르웨이가 덴마크와의 정치적 협력을 깼을 때, 노르웨이 식민지였던 아이슬란드, 그린랜드와 파로섬이 덴마크의 행정관할로 남게 되었다. 1380년부터 덴마크의 지배하에 있었던 아이슬란드의 외교정책은 여전히 코펜하겐의 통제를 받지만, 1918년 독립국가임을 선언한다.

그린랜드와 파로섬은 덴마크왕국에 속해있긴 하지만, 둘 다 원칙적으로 자치구이다. 파로섬은 1948년 이래로, 그린랜드는 1979년 이래로 지방자치제가 되었다. 덴마크가 은행, 국방, 외교관계 등의 책임을 유지하고, 그린랜드와 파로는 각각 두 명씩 국회대표자를 덴마크국회에 두고 있다. 그러나 덴마크와는 달리 둘 다 EU 회원국은 아니다.

source : Tif0CoZfK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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