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Jordan - 지리, 기후, 역사
요르단 (Jordan)
성경 이야기, 잃어버린 도시들, 아라비아의 로렌스 - 요르단은 모든 것이 낭만적인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당연히 관광객들로 가득 차 있어야만 하겠지만 중동의 나쁜 평판은 관광객들을 무더기로 쫓아보냈다. 그러나 잊지 말자. 요르단은 전체적으로 볼 때 평온한 나라이다. 게다가 세계에서 가장 따뜻하고 손님을 환대하는 국민들 중 하나이며 이 지역의 다른 곳과 달리 위압적인 남성 중심의 사고 방식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른 어느 곳에서 몇 시간 동안 거리에 짐을 놔두어도 안전할 것이라고 믿을 수 있겠는가?
또는 카페트 장사꾼도 아니면서 처음 보는 사람을 따뜻하게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는 사람들을 어디서 볼 수 있겠는가?이곳은 단순히 요르단인과 차 한잔을 할 만한 곳에 그치지 않는다. 요르단은 중동에서 가장 극적인 두 곳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나바테 인들의 고대 도시인 페트라(Petra)는 세계에서 가장 분위기 있는 유적 중 하나이다. 조금 더 명상적인 경험을 원한다면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매혹시켰던 와디 룸(Wadi Rum)의 놀라운 사막 풍경이 여행자들로 하여금 카피어(아랍인의 두건)을 쓰고 지긋이 먼 사막을 바라보게 만들 것이다.
통계 자료
국명 : 요르단 하세미트 왕국(Hashemite Kingdom of Jordan)
면적 : 91,860 sq km
인구 : 495만 명
수도 : 암만(Amman, 인구 158만)
인종 : 아랍인(60% 팔레스티나인, 상당수의 난민), 체르케스인, 체첸인, 아르메니아인
언어 : 아랍어
종교 : 이슬람교
정체 : 전제 왕정(최근 민주주의가 시작되었다)
지리 및 기후
요르단은 북쪽으로 시리아, 북동쪽으로 이라크, 동쪽과 남쪽에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서쪽으로 이스라엘과 접해 있다. 요르단은 세 곳의 다른 지역으로 나뉜다. 비옥한 요르단 계곡은 국토의 서부를 지나며 동부 고원은 대부분의 도시들이 자리하고 있고 동부 제방(East Bank)은 동쪽으로 시리아,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이어진 사막이다. 요르단은 이상하게 생긴 작은 나라이다. 전해 오는 얘기에 따르면 동부의 울퉁불퉁한 국경은 처칠이 질퍽한 점심 식사를 하고 나서 정했다고 한다.
북부의 소나무 숲은 요르단 계곡의 경작된 경사면으로 이어져 삼나무와 올리브, 유칼립투스 나무로 덮여 있다. 사해를 향해 더 남쪽으로 내려오면 식물들이 살수 없는 곳으로 풍경은 진흙과 염전으로 덮여 있다. 사막 지역은 보통 사막에 사는 동물들, 낙타나 사막 여유, 모래쥐, 토끼, 날쥐 등이 살며 사해 북동쪽의 고원은 멧돼지와 오소리, 거위 등을 볼 수 있다. 요르단은 특히 해양 생물로 유명하여 아카바(Aqaba) 만은 다양한 열대어나 산호가 산다.
이 나라의 가장 큰 보호구역은 동쪽에 있는 샤우마리(Shaumari) 야생동물 보호구역으로 한때 요르단에서 많이 볼 수 있었던 영양과 오릭스 영양이 다시 불어나고 있다.기후는 국토의 끝과 끝에서 극심하게 변한다. 요르단 계곡은 여름에 엄청나게 더우며(보통 40도) 암만과 페트라는 종종 겨울에 눈이 내리기도 한다. 고원 지역은 보통 따뜻하고 건조하여 20도에서 30도 사이를 오르내리고 사막은 극단적인 기후 변화를 겪어서 낮 동안은 타는 듯이 덥고 건조하며 중앙아시아에서 차가운 바람이 가끔 불어온다
역사
20세기 초까지 요르단은 현재 대부분 이스라엘의 영토인 팔레스타인의 일부였다. 이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로 요르단 강 서안의 고고학적 유물은 BC 9000년 전의 것들까지 있다. BC 3000년 전부터 이 지역에는 가나안 인들과 아모리트인들이 살기 시작했으며 그들 다음에는 수메르(Sumer)와 아카드(Akkad)의 왕인 사르곤의 군대가 들어왔다. BC 1800년경에는 아브라함이 메소포타미아에서 유목민들을 이끌고 가나안 산맥에 정착했다(이 지역은 현재의 이스라엘과 대충 일치한다).
BC 1023년 이스라엘인들은 사울과 다비드가 이끈 왕국을 형성했고 예루살렘을 장악하여 수도로 정했다. 거칠 것 없이 영토를 확장하던 로마는 BC 63년 이스라엘을 점령하고 헤롯왕이나 빌라도 총독을 비롯한 여러 집정관의 지배하에 두었다. 이 지역에서 예수가 태어나 설교하던 것은 이 당시로 믿어지고 있다.
칼리귤라 밑에서 점점 미쳐가던 로마는 일련의 유태인 반란을 촉발하였으며 몇 년간 지속된 이 반란은 결국 진압되어 예루살렘은 파괴되고 팔레스티아 주가 선포되었다. 이 패배는 유태인 국가의 종말을 고했으며 세계 각지로 유태인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시발점이 되었다.
AD 331년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기독교로 개종하고 예전에 불법적이던 이 종교를 국교로 인정하였다. 갑자기 모두가 성지와 예수의 무덤이나 탄생지 등을 포함한 많은 건물들에 대해 알고 싶어하면서 팔레스타인은 종교적인 중요성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기독교가 이 나라를 지배한 것은 오래가지 않았다.
638년 예루살렘은 오마르(Omar) 왕에게 함락당하여 모하메드가 성전의 꼭대기에서 천국에 오른 이슬람의 성스러운 도시로 선포되었다. 기독교 세계는 이러한 것에 반대하여 십자군을 조직하였고 1099년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닥치는 대로 살육하며 거의 100여 년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수십 년의 기독교/이슬람교의 다툼 끝에 1187년 이슬람의 손으로 다시 넘어갔고 이슬람의 맘룩 왕조는 1291년 마지막 십자군 성채를 함락시켰다.이후 500년 간 팔레스타인은 매우 조용했다.
제국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하며 이 나라의 지배권은 단조롭고 규칙적으로 옮겨갔지만 결국은 오토만 제국의 지배로 결말을 맞게 되었다. 많은 사막의 요르단인들은 이런 변화를 피해 베두인의 성채에 남았다. 오토만 제국이 1차 대전 이후 무너지면서 영국이 팔레스타인을 지배했고 압둘라 왕의 지배하에 트란스요르단(Transjordan)을 만들었다.1948년 이스라엘의 아랍인과 유태인은 서로 전쟁을 시작했다 - 모든 사람들이 이 전쟁에 마음을 빼앗겨 있는 동안 트란스요르단은 강 서안과 예루살렘 일부를 점령하고 국가명을 요르단으로 고쳤다.
1953년 후세인 왕이 즉위하면서 요르단은 관광산업과 미국으로부터의 원조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67년 6일 전쟁은 이스라엘이 강 서안과 거대한 구경거리인 예루살렘의 반을 다시 차지함으로써 요르단에서 싹트기 시작한 관광산업을 망쳤다. 6일 전쟁 동안 요르단은 돈벌이가 될만한 땅들과 농지를 잃고 대신에 이스라엘 점령지에서 도망친 수천 명의 난민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1970년대까지 난민 인구의 PLO세력은 후세인 왕의 권력을 위협하였으며 피비린내 나는 내전이 시작되어 급진주의자들의 대부분은 레바논으로 넘어갔다.
1995년 요르단과 이스라엘은 경제 장벽을 없애고 안전과 수자원을 공유하는 평화협정에 서명했다. 이 협정은 팔레스티나인들로 하여금 요르단과 이스라엘이 자기들끼리 이권을 챙김으로써 자신들은 지역에서 제거될지 모른다는 불안을 낳게 하였다. 동시에 요르단은 팔레스타인 국가 평의회 의장인 야세르 아라파트와의 연계도 강화하며 협정을 맺으려 노력했다. 최근 요르단은 1991년 걸프 전쟁으로 중단된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와도 관계를 정상화하였다.
후세인 왕은 민주주의로 요르단을 이끌기 시작했으며 이슬람행동 노선(무슬림 브라더후드와도 연계를 맺고 있으며 상당히 원리주의적인 정책을 가진)은 현재까지 가장 성공한 정당이 되었지만 1999년 후세인 왕의 죽음으로 앞날이 불투명해지고 있다. 왕은죽기 바로 몇 주전 장남인 압둘라 왕자를 후계자로 지명했다.
source : zC4t3fP1v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