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Bangladesh - 지리, 기후, 역사
방글라데시(Bangladesh)
국제뉴스를 보면 방글라데시는 여행지 보다 재해지역으로 생각된다. 싸이클론과 홍수 이면에는 자연과 아름다운 대지가 오래된 역사와 더불어 작은 국가인 방글라데시는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2천년 이상 된 고대유적지, 세계에서 가장 긴 해변, 가장 큰 해안의 망글로브가 있고 19세기 마하라자의 '바람과 함께 사라진' 쇠퇴한 맨션을 볼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방글라데시의 전원은 편안함, 광대함, 친절함을 느낄 수 있다. 인도에서 방글라데시로 입국하는 여행자들은 국경 관리관들이 입국 시 골탕먹이는 일 대신 차를 제공하는 것에 매우 놀라게 될 것이다. 여행시설은 부족하지만 개인여행에 경험이 있다면 '여행자들로 부적거리기 전에 방글라데시를 여행하라'라는 말처럼 여행자들로 붐비는 인도나 네팔 대신 충분히 여행할 만한 가치가 있는 국가이다.
통계 자료
국명 : 방글라데시 공화국
면적 : 143,998 sq km
인구 : 125 million
수도 : 다카(인구 : 6 million)
인종 : 98% 벵갈인, 1% 비하르인, 소수부족
언어 : 벵갈어
종교 : 87% 이슬람, 12% 힌두교, 0.5% 불교, 0.3% 기독교
정체 : 헌법상의 공화국
수상 : Sheikh Hasina Wazed
대통령 : Zillur Rahman
지리 및 기후
방글라데시는 벵갈만의 만곡부에 위치하며 인도에 둘러 쌓여 있고 남동쪽은 미얀마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매우 평평한 평지로 갠지스-브라마푸트라-자무나(Ganges-Brahmaputra-Jamuna) 삼각주가 어울려 있다. 방글라데시의 경계선과 해양은 퇴적암 상승, 수류, 물줄기, 홍수지역, 실트 등의 애매한 지역이다. 90%이상이 충적토 평지로 해발 10m 이하이며 동북부와 남동부는 240-600m의 높지 않은 구릉이 존재한다. 대략 방글라데시의 2/3이 비옥한 경작지며 10% 정도가 삼림지역이다.
벵갈 호랑이, 표범, 아시안 코끼리(대부분 비하르에서 이주함), 소수의 흑곰, 다수의 원숭이, 아시아 남부 원숭이, 기본(아열대 지역의 꼬리 없는 원숭이), 수달, 몽구스가 서식하고 있다. 파충류는 바다 거북이, 진흙 거북이, 강 거북이, 비단뱀, 악어가 서식하며 다종의 독사가 살고 있다. 600종 이상의 조류도 분포하는데 찌르과의 새들이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가장 환상적인 건 물총새다. 방글라데시의 기후는 아열대와 열대기후로 겨울은 낮 최저 평균기온이 21도, 여름은최고 평균기온이 35도다.
세 계절로 구분되는데 우기는 5월에서 10월초, 겨울은 10월 중순부터 2월말, 여름(방글라데시인은 적은 우기로 부름)은 3월 중순부터 5월 중순이다. 또한 싸이클론 계절은 5월-6월과 10월-11월이다. 방글라데시의 계절은 기온이 건조하고 신선한 겨울이 가장 좋은 시기이다. 4월은 습하고 너무 더워 피하는 게 좋다.
역사
중세의 유럽 지리학자는 갠지스강 입구에 낙원이 위치한다고 했는데 이는 지나친 기대였다. 16세기까지 벵갈은 아대륙에서 가장 비옥한 곳이었다. 초기의 역사는 인도 제국의 등장과 내분, 힌두교와 불교의 종교적 분쟁이 일어났고 12세기에 북부 인도는 이슬람세력이 들어선다. 튀르크의 모하메드 박티아르(Mohammed Bakhtir)는 20명을 이끌고 대담하고 현명한 전술로 1199년에 벵갈을 점령했다. 모굴(Moghul) 부왕시대는 예술과 문화가 꽃을 핀 시기로 육상 무역이 확대되고 벵갈이 해상무역지로 등장하게 됐다.
모굴의 사망은 유럽제국의 영향력이 미치게 된다. 포르투갈이 15세기초에 영향력을 행사했으나 현지인의 반발로 인해 1633년 철수했다. 동인도회사는 1690년 캘커타에 무역항을 건설했다. 모굴의 권한의 약화는 태수가 지배하는 지역 왕조의 독립을 야기했다. 겸손한 동인도회사의 상인인 로버트 클리브는 충동적인 태수의 공격을 받아 지배력을 상실했으나 1년 후인 1857년에 발생한 인도 폭동 이후 영국 정부는 동인도회사를 재 설치했다.
영국은 벵갈에 전대미문의 광범위한 사회 구조를 조직적으로 설치해 캘커타는 아대륙에서 상업, 교육, 문화의 중요한 위치가 된다. 많은 방글라데시 역사학자들은 영국의 독재적인 농업정책에 대해 비난을 하고 있으며 반봉전제도인 자만다르 시스템의 도입으로 인해 부유한 지역경제가 미약해지고 사회구성이 피해를 입게됐다. 영국의 존재는 소수인 힌두교인에게 이득이 됐으나 무슬림에게는 대재앙이었다. 힌두교인은 영국에 협조적이었고 영어 교육과 영국 교육기관에 입학을 했으나 무슬림은 협조에 반대해 반란을 일으키거나 생산품에 대한 이윤이 생기지 않도록 정부정책을 만들었다. 2차대전후 유럽의 식민지정책이 붕괴되면서 인도의 독립도 예상되어졌다.
인도는 1947년 독립을 얻었으나 갈등이 심화됐고 특히 벵갈은 자치정부를 위한 종교적인 내전이 발생했다. 영국은 힌두교인과 무슬림간의 어떤 타협도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아대륙을 분할하기로 결정했다. 무슬림이 다수를 차지하는 벵갈과 펀잡은 인도의 반대쪽에 위치한 혼란스러운 지역이었다. 벵갈의 상황은 더욱 복잡해 무슬림 지향의 동부에서 곡물과 섬유가 생산되고 힌두교 지향의 서부인 캘커타에서 상품이 제조되고 수출되어졌다.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슬림의 동 벵갈(East Bengal)은 정식적으로 동 파키스탄(East Pakistan)이 된다. 두 지역간의 동일성 부족은 벵갈인의 국가주의를 야기시킨다. 파키스탄의 '우르드와 단지 우르드'라는 정책으로 한 우르드어의 국어 채용정책은 벵갈어를 사용하는 벵갈인들의 문화적 정체성에 대해 자극시켜 벵갈어를 쓰는 자치 국가에 대해 갈망하게 된다.
1971년 선거에서 파키스탄 대통령의 희망과 반대로 아와미 리그(Awami League)가 선거에서 다수를 차지하게 되고 결국 국회 개회가 연기됐다. 반란과 폭동이 일어났고 결국 동 파키스탄은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했으며 파키스탄은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한다. 전쟁은 짧은 시간동안 많은 피해자를 내고 대부분의 지역을 파키스탄이 점령하게 됐는데 파키스타은 네이팜을 사용했으며 시민들에 대한 학살과 강간을 자행했다. 파키스탄과 인도의 국경 충돌이 발생했고 훈련된 인도인 방글라데시 게릴라가 국경을 넘었다. 파키스탄 공군은 인도 군대에 대해 선제 공격을 감행해 양국간의 전쟁으로 확산됐다.
인도군은 국경은 넘어 파키스탄 군을 공격했고 북부와 동부는 게릴라에 의해 점령됐다. 11일만에 전쟁은 끊나고 방글라데시는 세계에서 139번째 국가가 됐다. 아와미 리그의 창설자인 세이크 무집(Sheikh Mujib)은 1972년 1월에 방글라데시 최초의 수상이 됐으나 1975년 혼동의 시기에 암살 당했다. 파괴되고 다수의 인명피해를 낸 방글라데시는 1973-74년에 기근을 겪었으며 계엄령과 군사 쿠테타, 정치적인 암살이 이어졌다.
1979년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지아 대통령은 서구와 산유국 이슬람 국가와 좋은 관계를 성립하며 방글라데시에 일시적인 민주주의를 선보였다. 1981년 지아 대통령의 암살로 군사정부가 재등장했고 곧 선거를 실시할 거라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으며 1991년까지 방글라데시의 민주주의는 실현되지 않았다. 군사 독재자인 에르샤드(Ershad) 장군은 방글라데시 국민당과 아와미 리그에 대한 전례 없는 대중의 지지로 인해 사임하고 베굼 카레드 지아(Begum Khaled Zia)가 수상에 부임한다.
경제는 4.5%의 성장을 이루고 있으며 방글라데시의 걸프전과 미국이 주도한 하이티 공습, 보스니아 전 파병으로 서구와 관계가 두터워졌다. 지아 정부는 많은 사람을 석방했으나 1974년 군사정부에 의해 특별법으로 제정된 판결 없이 120일간 감금할 수 있는 조항은 아직 폐지되지 않고 있다. 정부에 대한 부정 재선거, 군대와 경찰의 반체제인사에 대한 억압이 증가하고 있어 불만이 높다. 야당은 총파업과 내각 퇴진을 주장하고 있다. 1996년 2월에 실시된 선거는 야당의 보이콧으로 투표율을 5%에 그쳤으며 끊임없는 반정부 시위는 지아 정부를 심각하게 위협했다.
야당과 반정부 단체는 선거에 대한 캠페인이 이어져 3월 30일 지아 수상은 하야를 발표했으며 무하마드 하비부르 라만(Muhammad Habibur Rahnam)가 중립정부의 수상이 됐다. 공식적으로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가 6월에 실시돼 아와미 리그의 세이크 하시나 와제드(Sheikh Hasina Wazed)가 이끄는 연합정부가 성립됐다. 1988년 중반에는 방글라데시 64개 지역중 50개 지역이 엄청난 폭우로 인해 홍수피해를 입었으며 755명의 인명피해와 백 만명 가까운 이재민을 낳다.
source : bkcwoWlaw4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