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os

In Search of Knowledge, Wisdom and Truth

About Laos - 지리, 기후, 역사

2019-02-01 1720
About Laos

라오스(Laos)

라오스는 오래전부터 란상(Lan Xang) 또는 백만 코끼리의 땅(Land of a Million Elephants) 으로 알려졌던 곳으로, 인도네시아 전쟁 중에는 저널리스트들이 백 만년 뒤진 땅(Land of a Million Irrelevants) 으로 표현했던 곳이다. 현재는 아시아에서 가장 개발이 덜 됐고, 가장 수수께끼 같은 나라 중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20만 평방 킬로미터가 넘는 면적에 450만 명만 살고 있어, 주변 국가들이 겪고 있는 인구과잉 문제는 라오스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통계 자료

국명: 라오 인민 민주주의 공화국(Lao People's Democratic Republic)
면적: 236,000 sq km
인구: 475만명(인구 성장율 2.9%)
수도: 비엔티안(Vientiane; 인구 30만명)
인종: 라오룸 족(저지 라오스인) 50%, 라오텅 족(산지 라오스인-말레이나 몽크메르 족의 후손) 30%, 라오숭 족(고지 라오스인-흐몽, 미엔 족) 10~20%, 타이 족 10~20%
언어: 라오스 어, 라오스 방언(태국어와 흡사), 프랑스어
종교: 불교 85%, 정령신앙 15%
정체: 사회주의 공화국

지리 및 기후

라오스는 면적이 235,000 평방킬로미터이며(한반도와 비슷한 크기),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중국, 미얀마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전체 국토의 70%가 산지나 고원이며, 3분의 2가 숲을 이루고 있다.대부분의 국민은 강 주변의 계곡을 따라서 정주하고 있다. 가장 큰 강인 메콩 또는 남콩(Nam Khong)은 전체 국토를 완전히 가로지르고 있다. 강의 범람으로 인해 생긴 비옥한 충적토에 농경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강 자체가 교통에서 동맥 역할을 하고 있다.해마다 부는 아시아의 몬순 때문에 라오스에는 두 개의 계절이 생긴다.

5~10월은 우기가 되며, 11~4월은 건기이다.평균 강우량은 위도와 해발고도에 따라 차이가 많지만, 비가 가장 많이 오는 지역은 남부 라오스이다. 안남산맥(Annamite Chain)의 봉우리들이 가장 많이 오는 곳으로 연강수량이 3000 mm를 넘는다. 루앙쁘라방, 사인야불리(Sainyabuli), 시엥쿠앙(Xieng Khuang) 지방은 단지 1000~1500 mm 정도만 비가 내리며, 비엔티안과 사바나켓(Savannakhet)은 퐁살리(Phongsali), 루앙남타(Luang Nam Tha), 보께오(Bokeo)에서처럼 1500~2000 mm가 내린다.

기온은 해발고도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난다. 메콩 강 계곡(보께오 지방에서 참빠삭 지방까지)은 태국이나 미얀마의 대부분처럼 최고기온이 3~4월 사이에 나타나며(섭씨 약 38도 정도), 최저기온은 12~1월 사이에 나타난다(섭씨 약 15도).하지만 시엥쿠앙 같은 산지에서는 12월이나 1월에 기온이 밤에는 섭씨 0도까지 쉽게 내려간다. 고도가 좀 낮은 산간 지방도 0도까지는 아니지만 기온이 많이 내려간다. 우기의 대부분 동안 낮시간에 평균기온은 저지대에서는 섭씨 29도, 산간 계곡에서는 섭씨 25도 정도 된다.

역사

라오스는 오랫동안 타이-카다이(Thai-Kadais) 계통의 산(Shans), 시암(Siamese), 라오 족을 비롯하여 많은 작은 부족들이 이주해와 살던 곳이며, 몽미엔(Hmong-Mien) 산간부족들이 화전을 하면서 살았던 곳이다(오늘날에도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첫 번째 라오스 연합체 인 머앙(meuang)은 몽고 황제 쿠빌라이칸이 남서 중국을 침입한 직후인 13세기에 통일을 이루었다. 14세기 중반 크메르 왕국의 원조를 받은 라오스 장군인 파응움(Fa Ngum)이 루앙쁘라방(Luang Prabang) 주변의 머앙들의 커다란 연합체를 기반으로 하여 그의 왕국 란상을 세웠다.

왕국은 14~15세기에 비록 번영을 구가했지만, 주변 국가들의 위협과 내부 분란으로 큰 곤란을 겪었다. 결국 17세기 란장은 서로 적대하는 세 개의 왕국으로 쪼개졌는데 각 왕국의 중심지는 루앙쁘라방, 위엥찬(Wieng Chan; 비엔티안), 참빠삭(Champasak)이었다.18세기 말 대부분의 라오스 지역은 태국의 속국이 되었지만 베트남에서 조공을 바치라는 압력도 있었다. 두 나라에 조공을 바치는 것도 불가능했고, 원하지도 않았던 라오스는 1820년대 시암 왕국(현 태국)과 전쟁을 치렀다. 도전은 불발로 끝났고 그 결과 세 개 왕국 모두가 태국의 완전한 지배를 받게 되었다.

19세기 중에 프랑스는 베트남 왕국이었던 통킹(Tonkin)과 안남에 프렌치인도차이나를 건설했다. 1893년 프랑스와 시암은, 라오스를 프랑스의 보호 아래 두는 일련의 조약을 체결했다.제 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이 인도차이나를 점령했고, 라오스의 레지스탕스 그룹인 라오이사라(Lao Issara)가 전쟁이 끝난 다음 라오스가 프랑스에 다시 복속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형성되었다. 1953년 협정을 통해 라오스는 완전한 독립을 보장받았다. 하지만 왕권주의자, 중도파, 공산주의자 간에 투쟁은 지속되었다.

미군이 1964년 동부 라오스에 있는 호찌민 루트에 대해 폭격을 시작하면서 왕권파인 비엔티안 정부와 공산주의자 사이에 투쟁은 가속화 되었다.비록 라오스에서의 지상전투는 베트남이나 캄보디아에서보다 훨씬 덜 처절했지만, 동부 라오스에 대한 폭격은 많은 사상자를 내었고 결과적으로 1973년 평화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동부 지방의 대부분의 주민들을 퇴거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라오스는 세계 전사상 가장 많은 폭탄이 퍼 부어진 나라로 여겨지고 있다(인구 1인당 쏟아진 폭탄을 기준으로하면 미군은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세계에서 퍼부은 폭단보다 더 많은 양의 폭탄을 1964~1973년 사이에 라오스에 사용했다).연정이 세워졌지만 1975년 4월 사이공이 함락하자 정치적 사정이 강타할 것을 짐작한 우익 력들은 모두 프랑스로 도망갔다.

1975년 12월 라오스 인민민주주의 공화국(Lao People's Democratic Republic)이 탄생했다.비록 정권은 베트남과 정치적으로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지만, 라오스는 그럭저럭 많부분을 스스로 꾸려왔고, 베트남과 구별되는 정체성도 유지해 왔다. 불교는 문화와 사회 구조에 아주 크게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정부는 불교와 공산주의의 불일치점에 대해 설명하느라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1975년 이후 많은 사설 비즈니스가 문을 닫았지만(많은 상인들은 메콩 강을 건너 태국으로 갔다) 1989년 이후 규제가 완화되면서 경제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그리고1997년 7월 아세안(ASEAN)에 가입함으로써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었다.

source : qO0AwxUDizo

바로가기

세계탐험 오버랜드 새포스팅 사진영상 여행정보 세계역사 종교탐구 미국야기 기술생활 트 렌 드 음식조리 영어공부 에 세 이 친구이웃 자료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