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adagascar
마다가스카르(Madagascar)
목가적인 열대의 섬이라는 상상을 완전히 포기할 필요는 없지만, 마다가스카르에는 모래 해변에 누워 뒹굴 거리거나 수정 같은 물 속에 뛰어들어 때때로 산호초를 엿보는 것 이상의 것이 있다. 마다가스카르의 삼림은 엄청난 숫자의 초목이 모여 바람에 흔들리며 솟아오르고, 나뭇잎들이 뚝뚝 떨어지고, 자연의 혜택을 받은 영리한 짐승들이 나뭇가지에 뛰어 오르고 미끄러지면서 살아가는 곳이다. 여우원숭이, 카멜레온, 빙카 나무, 바오밥 나무, 알로에, 도마뱀 붙이, 시파카와 낙지 나무까지 볼 수 있다. 수 만년 동안 아프리카 본토에서 떨어져 있었으므로 마다가스카르의 풍부한 삼림은 자연주의자들의 꿈과 같은 곳이 되었다. 특수성이 유지되었고 지구상의 다른 어떤 곳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종들이 성장했다. 마다가스카르에 가면 쉽게 갈 수 있는 장대한 국립 공원에서 이 모두를 볼 수 있다.
통계 자료
정식 국명: 마다가스카르 공화국(Republic of Madagascar)
면적: 594,180 sq km (231,730 sq mi)
인구: 1,750만(2004.8)
수도: 안타나나리보(Antananarivo, Tana ,해발 1,500미터)
인종: 말레이-인도네시안; 아프리카계, 말레이-인도네시아계, 아랍계 혼혈; 프랑스계; 인도계; 크레올; 코모란(Comoran)
언어: 말라가시어(마다가스카르어) 및 프랑스어
종교: 기독교 41%, 회교 7%, 토착종교 52%
정체: 공화국
지리 및 기후
마다가스카르는 세계에서 그린란드, 뉴 기니, 보르네오 다음으로 네 번째로 큰 섬이며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합친 것 같은 크기다. 마다가스카르는 인도양에 떠 있으며 아프리카 본토의 모잠비크와 모잠비크 운하를 사이에 두고 400km (248mi) 떨어져 있다. 모리셔스, 리유니언, 로드리게스, 코모로스 같은 주변의 화산섬들과는 달리 마다가스카르는 화산 분화가 아니라 대륙이 표류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마다가스카르는 아프리카 본토에서 1억 6천 500만년전 떨어져 나왔다). 동쪽 해안의 좁고 긴 땅에는 다우림이 무성하며 고도가 높은 중앙 고원은 서늘하고 서쪽에는 평원과 저지 고원이 위치한다.
마다가스카르는 아주 다양한 환경의 생육지가 있는 대륙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으며, 다른 섬들과 마찬가지로 마다가스카르에만 있는 동식물이 많다(아주 특이한 것들도 있다). 국제 자연 보존 협회는 마다가스카르를 지구상에서 가장 생태학적으로 풍부한 나라 중 한 곳으로 지정했다. 마다가스카르와 근처의 코모로스에 아프리카에 있는 꽃나무의 거의 1/4이 있다. 또 여우원숭이의 알려진 종류 중 90%, 세계 카멜레온의 절반이 여기에서 발견된다. 건조 지역에는 바오밥 나무와 특이한 선인장, 알로에가 자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풍부한 생태계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 인간이 이 섬에 들어오면서 쌀과 길을 내기 위한 벌채 기술을 가져왔고 오늘날은 상황이 심각해졌다. 원래 삼림의 15% 정도만이 남아 있는 것이다.남쪽 끝 부분만 제외하면 마다가스카르는 전적으로 열대 기후에 속한다. 그러나 섬 거의 전체에 걸쳐 있으며 분수령을 이루는 높은 고원은 사과와 핵과가 자랄 만큼 서늘하고 800m (2896ft) 이상에는 포도원도 있다. 고도가 높은 곳에서는 겨울에 눈도 볼 수 있다. 무역풍은 동쪽에서 불어오고 계절풍은 북서쪽에서 불어온다. 동해안과 북쪽 끝에는 비가 많이 오지만 강수량이 적은 지역인 고원 남서부는 일년 내내 건조하다. 1월에서 3월까지 동해안, 북쪽 끝, 때로는 남쪽 끝에도 파괴적인 사이클론이 덮쳐온다.
역사
마다가스카르 국민들은 아시아인과 아프리카인의 혼혈이며, 1500년에서 2000년 전부터 마다가스카르에 살아 왔다. 석기 시대의 유물들을 보면 아마도 더 오래전에도 문명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주자 대부분은 말레이-폴리네시아 계로, 인도네시아와 남동 아시아에서 인도양을 건너 왔지만, 동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다. 아랍인, 인도인, 포르투갈 상인, 유럽 해적, 프랑스 개척민들이 모두 뒤섞여 오늘날 마다가스카르에 살고 있는 공식적인 18개 부족 혹은 씨족이 형성되었다. 초기의 마다가스카르인들이 자신들이 남동 아시아에서 키우던 작물을 가지고 들어왔고, 논이 끝없이 펼쳐진 마다가스카르의 농업 지역 풍경을 보면 마다가스카르가 아프리카가 아니라 아시아에 있는 나라처럼 느껴진다. 마르코 폴로는 여행기에서 마다가스카르에 대해 적고 있으며 아랍의 지도 제작자들 역시 마다가스카르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이 나라에 처음 도착한 유럽인들은 포르투갈인으로, 1500년 디에고 디아스(Diego Dias)의 지휘를 받는 함대가 도착했다. 이어지는 시기 동안 포르투갈인, 네덜란드인, 영국인이 모두 이 섬에 영구적인 근거지를 만들고자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그러나 17세기 한 무리의 무법자들이 정부가 해내지 못한 일을 해냈다. 귀족들은 마다가스카르 원주민, 특히 일 상트 마리 주변의 원주민들에게 전리품과 암매장한 보물들을 주었으며 원주민 여자와 결혼하기도 했다. 원주민들이 카리브해의 해적들을 거부할 수 있게 되었을 때는 1000여명이 넘는 영국, 프랑스, 포르투갈, 내덜란드, 미국 등의 해적들이 마다가스카르의 동해안을 기지로 삼고 있었다. 이 지역은 희망봉을 돌아오는 배를 공격하기에 아주 입지가 좋았던 것이다.
유럽과의 무기 및 노예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마다가스카르에는 여러 왕국들이 생겨났고 작은 왕국끼리 대립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18세기 후반이 되자 메리나 씨족이 주도권을 잡았다. 1820년 영국은 메리나 씨족의 통치 하의 독립상태를 인정하는 조약에 서명했지만 영국의 영향은 20세기까지도 강하게 남아 있었다. 1883년경이 되자 영국은 조용해지고 프랑스가 마다가스카르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유일한 유럽 세력으로 남았다(대신 프랑스는 잔지바르에서의 영국 주권을 인정해 주었다). 프랑스는 1895년 서부 해안을 통해 침략해 놀란 메리나 씨족의 방어를 물리치고 조세프 갈리에니(Joseph Gallieni) 장군을 초대 총독으로 하는 식민 정부를 세웠다. 갈리에니는 1897년 라나바로나(Ranavalona) 3세 여왕을 알제리로 추방하면서 마다가스카르의 군주제를 종식시켰다. 그는 영국의 영향력을 일소하려 애쓰면서 프랑스어를 공식 언어로 선언하여 마다가스카르어도 없애려 했다. 프랑스가 명목상으로는 노예 제도를 폐지했지만 실제로는 억압적인 세금 체계를 도입하여 세금을 내지 못하는 사람은 강제 노동력이 될 수 밖에 없었다. 토지는 외국인 정착민과 회사를 위해 몰수되었고 수입과 수출은 커피 농장을 기반으로 발전해갔다. 2차 대전 동안 마다가스카르의 프랑스 식민 정부는 프랑스 비시 괴뢰 정부에 협조했고, 영국은 일본의 침투를 막아 마다가스카르를 인도양의 기초 기지로 이용한다는 명목상의 핑계로 마다가스카르를 공격했다. 1943년 영국은 드골의 자유 프랑스에 마다가스카르를 돌려주었다. 전후 마다가스카르는 애국주의적 반동을 겪었다. 많은 마다가스카르인들은 프랑스의 기준으로 훈련받았고 자유, 평등, 박애의 관념 하에 공부를 했다. 그들은 더 이상 스스로의 나라에서 2등 시민 취급을 받고 싶지 않았다. 1947년 폭동이 일어나 수천 수만의 마다가스카르인들이(아마도 80,000명에 달할 것이다) 희생되었지만, 부패는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다양한 토착 정당이 1950년대 탄생했고 1958년 드골이 프랑스에서 재집권했을 때 마다가스카르는 프랑스의 해외 연방에 속하면서 자치 공화국이 되는 문제로 투표중이었다. 1960년 마다가스카르는 평화롭게 독립했지만, 농장주, 즉 프랑스계 정착민들이 여전히 막후 세력을 쥐고 있었다. 초대 대통령이었던 필버트 치라나나(Philibert Tsiranana)는 점점 압제적이 되어 갔고, 메리나 부족 출신임에도 불구하고(메리나 부족은 일반적으로 소련 진영으로 기우는 경향이 있었다) 공산 국가와의 외교를 거부했다. 그는 1972년 마다가스카르 남부에서 일어난 폭동을 잔인하게 진압했고 그것이 치라나나의 몰락의 시작이었다. 그는 곧 사임하면서 권력을 군대 사령관이었던 가브리엘 라만초아(Gabriel Ramantsoa) 장군에게 넘겨주었다.
마다가스카르가 독립하자마자 경제는 서서히 급강하하기 시작했다. 마다가스카르가 아프리카 경제 연방(Communaute Financier Africaine, CFA)에서 탈퇴하자 급강하에는 속도가 붙었고 프랑스 농장주들은 도매업에서 손을 떼고 자본과 기술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군 출신의 대통령이 자주 바뀌는 것도-취임한 지 일주일만에 암살된 대통령도 있었다- 어려운 경제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디디에 라치라카 제독이 이끄는 새로운 관리 집단은 권력을 잡자 은행과 다른 주요 산업을 보상없이 국유화하기 시작했다. 남아 있던 프랑스계는 돈과 기술을 가지고 짐을 싸 본국으로 돌아갔다. 1970년대 후반이 되자 마다가스카르는 프랑스와의 모든 관계를 단절했으며 정부는 공산 국가 쪽으로 아주 많이 기울어 있었다. 라치라카는 심지어 스스로 정부 정책과 이론에 대한 '레드 북(red book)'을 내기도 했다. 1981-82년의 고조되는 채무 위기로 정부는 개혁 속도를 늦추었고 IMF가 차관의 대가로 요구한 긴축 조치를 과시했다. 경제는 IMF 프로그램을 따르면서 다소 나아지는 것처럼 보였으나 곧 다시 나빠졌다. 리차라카는 1989년 3월 선거에서 상당히 의심스러운 승리를 거두었고 이는 곧 폭동으로 이어졌다. 더 심한 일은 1991년 평화적인 시위를 하던 시위대가 북한에서 훈련받은 대통령 경호인단에게 라치라카의 화려한 새 궁전(북한의 원조로 지어진 것이다) 앞에서 살해당했던 일이다. 90년대 초반에는 시민 폭동이 잦았다. 알버트 자피(Albert Zafy) 교수가 4년의 임기 동안 나라를 단결시키거나 관료들의 실정을 극복하는데 실패한 후, 1996년 라치라카가 선거에서 다시 승리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650만 인구 중 25%만이 선거인으로 등록해 투표하도록 강요받는 상황은 마다가스카르가 정치 상황에 있어서는 완전히 신뢰를 잃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1998년 제안된 새 헌법은 리치라카에게 정부 장관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더 강력한 권리까지 주고 있다. 2000년 초 마다가스카르에는 엄청난 사이클론이 여러 차례 몰아쳐 파괴와 홍수를 가져왔다. 130명 이상의 사망자가 났고 10,000명 이상이 집을 잃었다.
문화
마다가스카르의 현대 음악과 전통 음악 대부분이 인도네시아와 아프리카 본토, 특히 케냐에서 영향을 받은 리듬 중심으로 되어 있다. 이런 리듬은 플루트와 호각, 바순을 닮았지만 연주되는 것은 하프 비슷한 특이한 28현짜리 악기인 발리하(valiha)로 반주된다. 코르도폰(cordophone)이라고도 불리는 로캉가 보아타보(lokanga voatavo) 역시 인기 있는 악기이며 우케렐레(ukelele)와 비슷한 카보시(kabosy)같은 기타 종류도 인기 있다. 바키 소아바(Vaky soava)는 손뼉으로만 반주되는 리드미컬한 노래이며, 가장 유명한 작곡가는 폴 버트 라하시마나나(Paul Bert Rahasimanana)로, 반주를 곁들이는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내었다. 그는 가난, 사랑, 상실, 희망등의 주제를 자신의 음악에 담는다. 피아나란트소아라는 시골 마을은 최근 일종의 문학적 수도로 발전했으며 많은 소설가와 작가들이 이곳에서 글을 쓰고 있다. 1930년과 40년대까지는 문학이 그다지 발전하지 못했으며 카바리(kabary)라 불리는 전통 웅변이 높게 평가되었다. 카바리는 각 연사가 돌아가면서 발언하는 초기의 정치 집회에 그 근원이 있다. 이것이 발전하고 대중화되면서 일종의 오락 형태로 일반 대중에게까지 확대되었던 것이다. 카바리는 일요일 오후마다 타나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음악, 무용, 이야기를 포함하는 구경거리인 히라 가시(hira gasy)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이다. 마다가스카르는 공식적으로는 하나의 언어와 문화를 표방하고 있지만 마다가스카르 국민들은 18개 부족으로 나뉘어 있고 그 경계는 인종적 특색보다는 오래된 왕국에 기반을 두고 있다. 마다가스카르 국민 대부분은 혼혈이지만 안타나나리보 지역의 메리나 부족은 외모가 주로 인도네시아인들 같고 남서 해안의 베조(Vezo) 부족은 동아프리카와 관계가 깊어 아프리카 흑인들처럼 보인다.
프랑스어가 공용어로 정해져 있기는 하지만 마다가스카르어도 널리 쓰인다. 마다가스카르어는 인도네시아어와 많은 폴리네시아계 언어가 속해 있는 오스트로네시안(Austronesian) 어족에 속하며 언어학상의 친척은 남부 보르네오에서 쓰이는 말이다. 프랑스어, 아랍어, 가까운 지역에서 쓰이는 아프리카어, 영어 등에서 단어를 많이 차용해 왔다.마다가스카르인의 50%가 전통 신앙을 믿고 있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41%)도 여전히 전통 의식을 열광적으로 행한다. 마다가스카르 인들은죽은 이를 존경과 경의를 가지고 대하며 현세만큼 사후 세계도 중요하다고 본다. 죽은 이들이 산 사람의 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는 다른 문화에서는 보기 힘들다. 추모자들은 장례식에서 아주 복잡한 의식을 행하고, 그것이 죽은 이를 만족시키지 못했다고 생각될 때는 그들을 달래기위해 의식이 다시 행해진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파마디하나, 혹은 뼈 뒤집기라고도 불리는 의식으로, 죽은 사람을 무덤에서 다시 파내어 환대하고, 말을 걸고, 수의를 갈아입혀 선물과 함께 묻는 것이다. 이슬람 교 공동체도 많이 있으며 인구의 7%가 이슬람 교 신자이다. 마다가스카르 음식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쌀로, 다른 요리 없이 쌀만 먹을 수는 있지만 쌀 없이 요리를 먹지는 못한다. 길거리의 노점상에서 보통 파는 것은 옆에다 쇠고기, 생선, 닭고기 같은 몇 가지 반찬을 곁들인 쌀밥이다. 쌀 외에 마다가스카르에서 인기있는 음식으로는 로마자바(romazava, 쇠고기와 야채 스튜), 라비토토(ravitoto, 카사바를 곁들인 돼지고기 스튜) 등이 있다. 음식에 자주 곁들여지는 것은 절인 야채로 만든 매콤한 카레인 아차드(achard)이다. 해안 지방에서는 해산물이 맛있고 값도 싸며 일년의 대부분 기간 동안 파인애플, 리찌, 망고, 바나나 같은 열대 과일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 프랑스의 영향으로 커피가 아주 맛있고 차보다 대중적이다. 지역 특산 맥주인 THB(Three Horses Beer)도 훌륭하다. 암발라바오(Ambalavao)와 피아나란트소아 주변에서는 아주 훌륭한 와인이 생산되는데 그 중에는 회색 술(gris)이라 불릴 만큼 회색을 띈 와인도 있다. 하급 술도 종류가 다양한데 모두가 아주 독하다. 토아카 그라시(Toaka grasy)는 쌀과 사탕수수로 만든 하급 럼주다. 트렘보(trembo)는 코코넛 술이며, 리첼(litchel)은 리찌로 만든 과일주이다. 좀 수준을 올리자면 로마(roma)라는 이름의 증류한 럼이 있다.
축제 및 행사
마다가스카르에는 휴일과 축제일은 내용과 시기가 다양하다. 부활절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일반적인 기독교 휴일 외에도 인서렉션 데이(Insurrection Day, 3월 29일, 1947년 프랑스에 대항한 폭동을 기념), 오거니제이션 오브 아프리칸 유니티 데이(Organisation of African Unity Day, 5월 25일), 애니버서리 데이(Anniversary Day, 5월 8일), 리퍼블릭 데이(Republic Day, 12월 30일) 등이 있다.
3월의 알하마디 비(Alahamady Be)는 조용한 마다가스카르의 새해 첫 날이다. 전통 음악 축제인 도니아(Donia)는 5-6월의(날짜는 다양하다) 노지 비(Nosy Be)에 열린다. 피즈마나(Fisemana)는 6월에 안타카라나(Antakarana) 사람들이 치르는 정화 의식의 날이다. 파마디하(Famadihana, '뼈를 뒤집는' 매장 의식)은 6월에서 9월 사이에 열린다. 11, 12월에는 타나에서 열리는 현대 음악 축제인 가시차라(Gasytsara)가 볼만 하다.
여행자 정보
비자: 방문객은 모두 비자를 받아야 함, 비자는 입국일부터 3개월간 유효함
건강상 위험: 말라리아, 주혈흡충병, 간염, 선 페스트(심각하게 경고하는데, 죽은 동물이 눈에 띄면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함)
시간: 협정 세계시에 3시간을 더함
전기: 110에서 220V까지. 어느 쪽인지 모를 때는 220V라고 생각하면 된다
도량형: 미터법
통화: Ariary, 마다가스카르 프랑 (Franc Malaga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