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Comoros
코모로스(Comoros)
코모로스 제도는 일랑일랑 향유에 아라비아의 미, 아프리카의 따스함과 프랑스의 우아함이 혼합된 향기로 둘러 싸여 있다. 뒤죽박죽인 길 위에 자갈로 깔린 중앙분리대가 있고, 예스럽지만 세계적인 매력으로는, 하얀 돛을 단 다우(dhow; 아랍인이 쓰는 연안용 돛배)들로 빽빽이 들어선 항구, 흰 모래사장 위로 떠오르는 열대지방의 달, 대양 위에 빨강과 오렌지 빛으로 화려하게 떠 있는 태양, 그리고 술탄(sultan; 회교국 군주)과 점성가들, 대 농장주들 그리고 눈 맞아 달아난 공주들로 다채로운 역사가 있다.
이 모든 매력들에도 불구하고, 코모로스 제도를 방문하고 여행하는 이들의 수가 이 지역 모든 섬들 중에서 가장 적다. 침체라는 평판을 가진 이 제도에서 뭔가 할게 있을 수 있고, 또는 정치적 쿠데타, 시민폭동과 철 따라 어김없이 오가는 탈퇴론 자의 음모들 속에서 단지 뭔가 할게 있을지도 모른다. 코모로스가 까닭 없이 쿠쿠랜드(Coup-Coup Land; coup는 쿠데타를 의미한다)라고 별명 지어진 것은 아니다.
통계 자료
국명: 연방 이슬람 코모로스 공화국(Federal Islamic Republic of the Comoros);
마요테 준주 집단(Territorial Collectivity of Mayotte)
면적: 코모로스, 2230 sq km (870 sq mi); 마요테, 375 sq km (146 sq mi)
인구: 코모로스, 550,000; 마요테, 88,000
수도: 모로니(Moroni; 코모로스); 마무주(Mamoudzou; 마요테)
인종: 안탈로테(Antalote), 카프레(Cafre), 마코아(Makoa), 와맛사아(Oimatsaha),사칼라바(Sakalava)
언어: 아랍어, 프랑스어, 코모로스어(스와힐리(Swahili)어와 아랍어의 혼합체)
종교: 수니 이슬람교 86%, 로마 카톨릭 14%
정체: 독립공화국 (코모로스); 프랑스령의 준주집단 (마요테)
지리 및 기후
코모로스 군도는 마다가스카르(Madagascar)의 북쪽 끝과 모잠비크(Mozambique) 연안의 반쯤 꼭대기 사이의 인도양에 흩뿌려진 4개의 화산섬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중 그랑드 코모레(Grande Comore; 엉가지쟈(Ngazidja)), 모헬리(Moh li; 므왈리(Mwali)), 앙주앙(Anjouan; 엉쥬앙니(Ndzuani)), 이 세 섬들이 코모로스 공화국을 구성하며, 4번째 섬인 마요테(Mayotte)는 공화국도 아닌 체, 후회도 유감도 없이 프랑스령으로 남아 있다. 공화국인 3개의 섬은 대략 워싱턴의 12배 되는 면적을 갖으며, 가장 크고 최 북단의 섬인 그랑드 코모레는 발과 정강이뼈 모양을 하고 있다. 아래쪽 더 작은 섬 모헬리는 발로 차고 있는 타원형의 돌맹이 모양이고, 그 아래(약간 동쪽으로) 중간 크기의 섬 앙주앙은 호주의 타스마니아(Tasmania)섬이 녹아 내린 듯한 모양을 하고 있다. 남쪽으로 다시 더 내려가면 마요테가 워싱턴의 약 2배 정도 크기로 있으며, 원기 왕성한 조그만 해마가 거꾸로 서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코모로스가 육지의 이상하고 별난 야생동물로는 유명하지 않지만(이곳이 바람 가마귀들투성이라는 사실은 별도로 하고), 다소 '주라기공원' 같은 바다속으로는 유명하다. 1938년 한 지역박물관의 관장이 한 주민의 낚시바구니 바닥에 있던, 멸종된 것으로 여겨졌던 중생대 물고기인 실러캔스(Coelacanth)를 발견했다. 손발처럼 생긴 지느러미와 연골질의 골격을 가진 이 선사시대 "화석" 물고기는 7천만년 전에 사라진 것으로 여겨졌으며, 어느 교수의 말을 빌리면, 이 발견은 살아있는 공룡을 찾은 것과 같다고 한다. 놀랍게도 이 지역 주민들은 수년간 이 "멸종된" 실러캔스(또는 곰베사스(gombessas))를 잡아다가 집에서 살짝 튀겨 먹었었다. 이 발견은 열정과 음모, 시기, 복수, 비탄의 드라마 속에서 국가대 국가, 어류학자대 어류학자의 싸움을 붙인 대실러캔스 논쟁(Great Coelacanth Controversy)을 촉진했다.
또는 그렇게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심지어 아주 오래된 것이라도 단순한 물고기에게 뒤쳐지진 않는다, 앙주앙의 대통령은 도도(dodo; 날개가 퇴화하여 날지 못하는 오리만한 새로 약 300년 전에 절멸했음)가 아직 그의 섬에 살아 있고, 또한 잘 살고 있다고 했다. 기후는 열대성 해양기후로 2개의 계절이 있다: 11월에서 4월까진 뜨겁고 습하며, 나머지 기간은 쌀쌀하고 건조하다. 사실 1년 중 상당한 기간 동안 무역풍에 부드럽게 실려오는 일랑일랑 나무, 정향나무, 육계나무, 바닐라의 향기와 거의 완벽하게 온화한 25℃를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완벽한 낙원의 날씨가 아닐 때는 계절풍과 대양 멀리서 날카롭게 소리를 지르는 태풍들로 비바람이 치며 험악해 진다
역사
이곳 군도의 초기 정착민들은 인도네시아-폴리네시아(Indonesia-Polynesia)에서 온 나그네들로 여겨지지만, 초기 아시아권 문화의 흔적들이 후속된 아프리카와 아랍, 그리고 쉬라찌(Shirazi)인들의 이민의 물결 속에서 연결되지 않고 뒤섞여 왔다. 이러한 초기 이민중 가장 주목할 것은 쉬라찌 아랍 왕족들로, 이들은 15, 16세기에 코모로스에 나타나서 머무르며, 회교사원을 짓고 왕가를 세웠으며, 건축술과 목공기술을 전했다. 1529년 프랑스의 파르망티에르(Parmentier) 형제가 이곳에 불쑥 방문했지만, 이곳에 찾아온 첫 번째 주요한 유럽인은 포르투갈의 탐험가인 디에고 디아스(Diego Dias)와 페르디난드 소아레스(Ferdinand Soares)이다. 포르투갈인들은 이 군도에 처음으로 닿았다는 사실을 기회로 이용하지 못했고, 그 다음 1, 2세기 동안 이 군도는 동아프리카의 연안 위 아래를 오가는 항해 중 단지 수리를 위해 머무는 곳으로 쓰였다.
사실 19세기 중반까지 가장 큰 골칫거리는 유럽 탐험가가 아니라 마다가스카르에서 온 해적들이다. 이 시기동안 술탄의 수가 놀라운 비율로 급속히 증가했고, 한 시기에 그랑드 코모레섬만 해도 12명 이상이었다. 이는 100 평방km(39 평방마일)당 한명의 술탄이 있는 것이 되고, 어떤 이의 말을 빌리면, 술탄이 두명만 되도 너무 많은 꼴이 되는, 뉴욕시 면적당 3명의 술탄이 하찮은 언쟁을 하고 있는 격이 된다. 15세기부터 프랑스가 코모로스 군도에 관심을 갖게 된 19세기 중반까지, 권력브로커들은 그들끼리 술탄의 지위를 가지고 즐겁게 놀았다. 마침내 프랑스는 여러 전략들을 교묘히 섞어가며 이 군도를 차지했다. 프랑스의 전략으로는 분할 & 정복법, 수표장 정치, 그리고 좋은 관례가 된 술타나(sultana; 회교국 왕비, 혹은 술탄의 후궁)와 프랑스 무역상간에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있다. 이 시기부터 코모로스의 역사는 마치 월트디즈니 만화영화와 머쳔트 아이보리(Merchant Ivory)프로덕션, 셰익스피어의 비극 사이를 교차하는 것 같다. 모든 영고성쇠를 거쳐 프랑스는 이 군도에서 칼자루를 쥐고, 소작농의 동요와 가끔 일어나는 폭동을 평정해 왔다.
서서히 코모로스에도 독립이 다가왔으니, 20세기 중반동안 프랑스는 합당한 요구에 마지못해 응하기 시작했고, 1947년까지 코모로스는 마다가스카르와는 별도로 통치된 식민지가 되었었다. 1961년에 자치적인 통치가 수여되었고, 7년후 전체적인 동요와 좌익폭동인, '68, Comoros는 프랑스와의 모든 속박을 풀었고 독립국가를 설립했다. 마요테는 처음부터 새로운 공화국에 동참하기를 거부했고, 프랑스의 울타리 속으로 더욱 견고하게 스스로를 결부시켰다. 그러나 다른 섬들은 독립에 대한 맹세를 유지했다. 프랑스는 사회간접자본과 재정자원을 취하는 방법에서 물러나, 훌하우스의 카드가 굴러 떨어져 올 때를 기다렸다. 코모로스의 첫 번째 대통령, 아메드 아브달라 아브데레마네(Ahmed Abdallah Abderemane)의 정치활동은 이슬람교 배경을 가진 무신론자인 알리솔리(Ali Solih)의 쿠데타로 내쫓기기까지 1초도 안 걸렸다.
솔리는 이 군도를 20세기 안으로 골인하여 환호하는 곳으로 이끌며, 공산당 비밀정보부원으로서의 부와 특권을 부여 받은 죽어 가는 사회를 묻어 버리기 위한 일련의 굳건한 사회주의 이념들을 가지고 시작했다. 재산은 국유화 되고 여성들의 베일은 벗겨졌으며 고비용의 성대한 결혼식인 그랑 메리지(grand mariage)과 정통 장례식은 폐지되었다. 불행히도 솔리의 열정은 과도해졌고 사회주의는 곧 경제적 자유의 몰락을 가져온 폭정으로 변했다. 솔리의 이 위기에 대한 반응은 성숙한 메시아적 콤플렉스를 발달시키는 거였고, 이는 전혀 문제에 도움이 안되었다. 모든 사항이 프레드릭 포시드(Frederick Forsythe)의 팔아 치우려는 음모인 좌익쪽으로 기울었을 때 사태는 이미 너저분하고 어두워 보였다. 이미 나이지리아, 앙골라(Angola), 예멘(Yemen)과 자이르(Zaire)에서 그 당시 유행인, 비밀근무를 수행하던 밥 데나르(Bob D nard)라는 이름의 프랑스 용병이 1978년 5월 13일 새벽에 코모로에 왔으며(그의 오른팔 격인 매드 마이크(Mad Mike), 그리고 몇 명의 전쟁광들과 함께 왔다), 아침식사시간 이전에 나라 전체를 해방시켰다.
솔리는 총에 맞았는데, 들리는 말로는 "도망치려다가" 당했다고 한다. 아브달라가 복귀했고, 용병들은 내각의 요직에 앉았다. 그리고 솔리의 통치가 남긴 폐허를 치우기 위한 진정한 노력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코모로스이고, 지도자는 지도자이며, 용병은 용병이기에 사안은 아브달라쪽으로 원활히 진행되지 않았다. 1985년에서 1989년까지 4년간 쿠데타의 시도는 5번이 넘었고, 한 건을 제외하고 모든 시도들은 용병들에 의해 진압됐다. 마지막 시도는 아브달라가 그의 경호원에 의해 암살 당함으로서 그 끝을 냈고, 결코 깨끗하지 못한 음모에 데나르가 관련했다는 등 그들의 본성에 관한 음흉한 풍문이 나돌았다. 1990년에 세드 모하메드 죠하르(Sa d Mohamed Djohar)가 코모로스의 첫 번째 대통령으로 자유롭게 선출되었지만, 또 다른 쿠데타와 그에 따른 반격이, 용병들과 반란군, 그리고 정규군이 한데 어우러진 난투 속에서 뒤를 이었다.
1992년 후반 마침내 사태는 진정되었고 죠하르는 대통령으로 재선출 되었지만, 그의 오랜 숙적이자 복수의 화신인, 데나르가 이끄는 또 다른 쿠데타 시도에서 아직 살아 남아야 했었다. 현 재직자들인 타지다인 벵 세드 마쑨데 대통령(President Tadjidine Ben Said Massounde)과 압바 주쑤 총리(Prime Minister Abbas Djoussouf)는 때때로 "하얀악마"("White Devil")라고 불리우는 사람과 지금까지는 거래를 할 필요가 없었지만, 그들은 그들 자신의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 앙주앙과 모헬리, 두 섬 모두 1997년에 독립을 선언했고, 그랑드 코모레만 영광스런 코모로스 공화국에 홀로 남겨 졌다. 1999년 현재 분쟁에 관련된 모든 측 사이의 긴장된 협상은 앙주앙 섬의 시민 동요와 폭동으로 주기적인 방해를 받고 있다.
문화
코모로스인은 섬 나라들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잡종민족이다; 아프리카 대륙인들, 말레이-폴리네시아인(Malay-Polynesian; 또는 말라가시인(Malagasy)), 아랍 무역상들, 그리고 쉬라찌 페르시아인(Shirazi Persian)들이 정력적으로 혼합되어 있다. 다른 소수 그룹들로는 안탈로테인(Antalote), 사칼라바인(Sakalava)과 크리올인(Creole)이 있지만, 지배적인 종교그룹은 수니이슬람(Sunni Islam)으로 쉬라찌 페르시아인에게서 유래되었다. 술이 금지되어 있고 회교사원으로 가득 차 있는 곳이지만, 매일 기도자를 부르는 소리는 다른 이슬람 국가들처럼 우렁차고 크진 않다. 그리고 애니미즘(animism)의 흔적들이 아직도 악한 정령들에 대한 믿음에서 보여진다. 여성들은 점잖게 옷을 입지만, 퍼다(purdah; 인도에서 여성의 거처를 가리는 휘장)의 관습은 화려한 사리(sari; 인도 여인이 허리와 어깨를 감고, 남은 부분으로 머리를 싸는 무명 또는 비단의 긴천) 또는 치로마니(chiromani)의 지지로 대부분 사라졌다. 코모로스 여성은 특히 백단향과 산호(므시자누; m'sidzanou)로 만든 황색의 반죽을 좋아하는데, 이는 얼굴 전체에 바르거나 얼룩무늬 패턴으로 치장하는데 쓰인다.
코모로스는 건축술 하나만으로도 방문할 이유가 될지 모른다. 옛 아랍지구(Arab Quarter)나 메디나(medina)에서 코모로스 스와힐리인(Swahili)의 기원은 아케이드와 난간, 격자세공이 꼼꼼하게 조각된 목재 현관과 셔터로 빽빽이 들어선 2층 건물들과 함께 소생된다. 이는 잔지바르(Zanzibar; 아프리카 동해안의 섬)에서 생겨나고 있는 모든 이국적인 것을 갖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정교한 건물들은 주로 마요테에서 자주 나타나는 방가(bangas)와 대조된다. 방가는 10대 소년들이 지은 무너질 것 같은 오두막으로 부모들의 시선에서 벗어난 곳이며, 전세계를 걸쳐 반항적이고 오해 받는 십대들 식으로 개성 있게 포스터와 낙서로 장식되어 있다. 유일한 코모로스의 전통은 빅웨딩(Big Wedding)으로 번역되는 성대한 결혼식인 그랑드 메리지(grande mariage)이다. 이는 단지 수야드(yard)의 비단과 태피터(taffeta; 견직물의 일종), 10단 높이의 웨딩 케이크만 얘기 하는게 아니다.
엄청난 것을 얘기하는 것이며, 벤허(Ben Hur)보다 대단한 것을 말하는 중이다. 이것은 보통 여자보다 나이가 많은 신랑과 젊은 신부사이에 미리 협의된 결혼으로, 남자는 이 둘을 위한 9일 동안의 공공 축제(톼라; toirab)에서 마을 전체에 여흥을 제공하기 위한 비용을 지불해야만 한다. 그는 또한 신부를 위해 비싼옷과 금, 보석 같은 값비싼 지참물을 사야 한다. 신랑은 종종 결혼식으로 그의 남은 생 동안 재정적인 파탄을 겪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마을 사람들은 그가 살아가게끔 충분한 지혜와 지위를 줄 것이다. 남은 생의 빈곤함에 대한 보상으로 그는 특별한 띠인 므루마(m'ruma)를 두르게 되며, 이 띠는 그의 지위가 완드루와지마(wandruwadzima) 또는 그랑 노타블(grand notable)임을 알린다. 이 그랑드 메리지는 사회의 엘리트층을 위해 삼가고 있으며 사회적 정치적 위치를 나타내기 위해 쓰인다. 코모로스 요리는 인도, 아랍, 프랑스, 아프리카 요리의 혼합물이다.
대부분의 주식은 바닐라, 카도만(cardoman), 고수열매, 정향, 육두구, 계피와 같이 이 곳에서 생산된 향신료로 맛을 낸 쌀과 고기의 혼합요리이다. 참치, 구루퍼(grouper; 농어과의 식용어), 문어와 같은 물고기와 해산물은 닭, 염소, 양과 같은 고기와 함께 수 많은 요리에 쓰인다. 프랑스 요리와 신선하고 싼 이 곳 생산물의 혼합으로 코모로스는 미식가의 낙원이 되었고, 특히 프랑스 여행객들에게 그러하다. 빡빡한 예산으로 여행 하는게 아니라면 최소 한번쯤 나가서 돈도 쓰고 맛있는 이 곳 음식도 먹어보자: 랑구스테 알라 바닐레 (langouste la vanille)는 바닐라 소스를 곁들인 바다가재 요리이다.
축제 및 행사
코모로스 대부분의 축제는 이슬람의 휴일과 연관 된다. 라마단(Ramadan)은 이슬람세계를 위한 전통적인 단식기간으로 해마다 그 시기가 다르다. 아이드-울-피트르(Id-ul-Fitr)는 초승달을 표시하며, 라마단의 종료를 알리고 또한 경축의 시간이다. 마요테는 이슬람 휴일과, 유럽의 휴일인 7월 14일 혁명기념일(Bastille Day)과 크리스마스를 지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