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z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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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anzania - 지리, 역사, 문화

2019-02-03 1911
About Tanzania

탄자니아 (Tanzania)

탄자니아의 위압적으로 펼쳐진 넓고 확 트인 평원으로 한발 내디디면 자신이 갑자기 아주 작게만 느껴질 것이다. 누구나 그렇듯이.. 바로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야생 동물의 터전으로 들어선 것이다. 누, 원숭이, 영양, 사자, 치타, 악어, 가젤, 홍학 등 이름이야 무엇이건 간에 옛날 탄자니아에서 백인들은 이런 야생 동물들을 마구 약탈해왔다. 그러나 오늘날 이들은 총대신 카메라를 사용하고 있다. 소란스러운 이웃 나라들과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제국주의 세력들로 괴롭힘을 당해왔던 가난한 이 나라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야생동물을 볼 수 있는 가장 뛰어난 지역 중 하나이다. 세렝게티나 킬리만자로산 같은 유명한 국립공원, 그리고 아름다운 응고롱고로(Ngorongoro)화산 호수 등에는 많은 마을들이 들어서 있어 한 번 들려볼 만하다. 그리고 탄자니아에서 가장 매혹적인 도시인 잔지바르(Zanzibar)는, 탄자니아 연안 앞에 있는 섬들 중 하나로 예전 향료 교역의 중심지였던 이곳은 이국적인 매력이 넘쳐흐르며 페르시아 목욕탕의 향기가 술술 풍겨 나오는 곳이다.

통계 자료

국명 : 탄자니아 연합 공화국(United Republic of Tanzania)
면적 : 945,090 sq km (368,585 sq mi)
인구 : 2900만명
수도 : 다르 에스 살람(Dar es Salaam)
인종 : 99% 아프리카 토착민(100여 부족 이상), 1% 아시아인 이외 유럽인, 아랍인
언어 : 스와힐리어, 영어, 토착언어
종교 : 45% 기독교, 35% 이슬람교, 20% 전통 민간 신앙
정체 : 공화국 (다당제)

지리 및 기후

좁은 저지대 해안선과 더불어 평원, 호수, 산맥 등이 어우러진 탄자니아는 동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나라이다. 국토의 상당부분은 고원평지로, 그 중 일부는 반 사막 지형이며 나머지는 사바나와 점점이 흩어진 관목 숲들이다. 가장 높은 산은 메루(Meru, 4556m)와 킬리만자로(5895m, 아프리카 최고봉)로 케냐 접경지역을 따라 북동부에 위치해 있다. 다른 어떤 곳에서도 탄자니에서 보는 것만큼 많은 누, 가젤, 얼룩말, 영양들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탄자니아의 특징적인 평원들은 이런 야생동물을 쉽게 발견할 수 있게 해준다. 세계 최고 자연동물 보호구역들 중 몇 곳이 이 탄자니아에 있어, 코끼리, 들소, 악어, 말, 사냥개, 침팬지 등도 가장 많이 모여드는 곳 중 하나가 되었다. 탄자니아의 다양한 지리는 기후적인 편차에서도 잘 나타난다. 고원의 고도는 열대 기후를 상당히 누그러뜨리는 역할을 하여, 많은 고원 지역이 밤에는 매우 선선하다. 인도양을 따라 난 해안지대와 펨바(Pemba), 잔지바르, 음피아(Mfia)같은 연안 섬들은 덥고 축축한 열대 기후이며 바닷바람이 불어올 때는 다소 살 만하다. 오직 북동부에 있는 산악 경사 지역만이 비교적 꾸준히 온화한 기후를 보인다. 탄자니아 여행을 피해야 할 때는, 거의 매일 같이 비가 내리는 긴 장마 기간으로 3월에서 5월 사이이다. 또 11월에서 1월 사이에도 짧은 우기가 있다.

역사

탄자나아 계곡에서 인류의 조상 중 하나인 호모 에렉투스의 흔적이 최근 발견되었지만 정작 탄자니아의 고대 역사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기록에 남겨진 역사는 마사이 전사 부족이 케냐에서 탄자니아로 이주하기 시작한 1800년 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탄자니아 해안 지역에서는 오랫동안 포르투갈과 아랍 상인들 사이에 쓸모없는 해전이 계속되어 왔지만 험한 내륙의 마사이 지역으로 아랍 상인들과 노예들이 도전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중반부터이다. 유럽 탐험가들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반으로, 그 중 유명한 이들은 스탠리와 리빙스턴이다. 두 사람의 일화 중 유명한 구절인 '리빙스턴 박사이시지요?'라는 말은 탕가니카(Tanganyika) 호수의 우지지(Ujiji)에서 두 사람이 만난 데서 나온 것이다. 

20세기가 서서히 시작될 무렵 독일은 철도를 건설하고 상업에 열중하며 탕가니카(당시에 알려진 이름)를 서둘러 식민지화하고 있었다. 성가신 체체파리만 없었다면 이 지역은 독일에 있어서 광대한 하나의 방목지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에서의 패배는 독일이 그런 이익을 손에 넣도록 놔두지 않았으며 연합군은 이 지역을 영국령으로 위임했다. 영국은 이미 몇 세기동안 아랍 상인의 지배하에 있었던 잔지바르섬을 손에 넣고 있었다. 민족주의 조직들이 2차세계대전 이후 자라나기 시작했지만 실제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것은 줄리우스 니예레레(Julius Nyerere)가 1954년 탄자니아 아프리카 국가 연합(TANU)을 설립하고 나서부터이다. 탕가니카는 1961년 독립을 쟁취했고 니예레레는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잔지바르는 그 뒤에도 2년 동안 영국의 입김을 강력히 받고 있었으나,

그 후 탄자니아가 잔지바르와 근처의 펨바섬을 포함해 연합을 형성하면서 탄자니아가 탄생하게 되었다. 그러나 통일과 카리스마적인 최초 대통령만으로는 탄자니아의 기초 자원 부족을 극복할 수 없었다. 니예레레의 비밀스러운 처방은 근본적인 사회주의로, 미국 같은 원조 제공 가능성이 있는 나라의 사회주의에 대한 편집증을 감안하면 위험한 계획이기도 했다. 중국의 지원을 받은 지도층의 개혁으로 경제체제와 임대 자산의 상당부분이 국유화되었으며 부유층은 부의 재분배를 위해 많은 세금을 내게 되었다. 1960년대 초, 탄자니아, 케냐, 우간다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삼각 체제로 연결되어 항공, 전신설비, 교통, 관세 등을 공유했다. 세 나라 사이의 통화도 자유롭게 바꿀 수 있었으며 국경을 넘나드는 것도 자유롭고 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예측할 수 있었던 정치적 차이로 인해 이러한 밀착은 1977년 끝나버렸고 탄자니아는 그 어느 때보다도 힘든 상황이 되었다. 현대 탄자니아를 괴롭히는 요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모든 것이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고는 할 수 없다 결국, 탄자니아는 섟瓦【?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한때 아프리카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였던 잔지바르와의 합병조차 새로운 문제만을 만들 뿐이었다. 그리고 다당제 정치 체제를 채택한 것 역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잔지바르와 이웃의 펨바섬은, 막다른 궁지 끝에 치러진 잔지바르의 선거로 두 섬이 분리된 이후, 폭력을 동반한 불안과 정치적인 헛소문으로 시달려 왔다.

그러는 동안 탄자니아는 벤자민 음카파 대통령하에서 이웃 르완다의 내전 중 생겨난 수많은 난민의 유입을 극복해야만 했다. 1996년 후반, 음카파 정부는 UN의 지지하에 르완다 난민이 탄자니아를 떠날 것을 발표했다. 그러나 과도한 무력과 강간 등이 보고되고 있는 가운데 아직도 수 천명의 난민이 탄자니아에 머물고 있다. 1998년 8월, 테러리스트들이 다르 에스 살람과 케냐 나이로비에 있는 미국 대사관을 폭파시켜 250명 이상이 죽었으며 5000명 이상이 부상당했다. 이러한 긴장은 오랫동안 지속된 부족간 갈등, 특히 챠가(Chagga, 킬리만자로산 지역)의 문제로 마비된 탄자니아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웃 르완다와 케냐를 몇 년째 괴롭히고 있는 부족간 갈등 문제에 탄자니아가 쉽게 휩싸일 것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정치권의 마비와 소수 부족간의 깊은 분열 등의 문제는 당분간 탄자니아에서 계속될 것이다.

경제

국내 총생산 GDP : US$ 204 억
1인당 국민 총생산 GNP : US$415
인플레이션 : 40%
주요생산품 : 담배, 설탕, 사이잘 섬유, 다이아몬드, 금 채광, 석유 정제, 시멘트, 여행산업
주요교역국 : 우간다, 케냐

문화

탄자니아의 100개 혹는 그 이상의 서로 다른 부족들은 거의 반투어족(Bantu)에 기원을 두고 있다. 잔지바르와 펨바섬의 구성원은 아랍의 영향이 뚜렷하게 나타나며, 시라지아(Shirazia, 페르시아로부터), 아랍, 코모리안(Comorian,모모로 섬들로부터), 그리고 지배적인 세력인 본토에서 온 반투어족 등이 섞여 살고있다. 아시아인들은 도시와 큰 마을에서 특히 중요한 소수 민족이다. 유럽인(후손이나 이주자들)은 보다 적은 소수 민족들로 분류된다. 본토에서 반투어족을 제외한 주요 부족으로는 마사이(닐로틱어족)족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은 북동부에 거주한다. 스와힐리어와 영어가 공식언어이며 상거래에서는 주로 영어가 쓰인다. 탄자니아의 부족적인 다양성을 반영하듯 국내에는 여러 토속 아프리카어가 많이 있다.

도시나 큰 마을을 벗어나면 케냐에 비해 소수의 사람들만이 영어를 사용한다. 잔지바르에서 사용되는 스와힐리어는 다른 어느 곳보다 정통적인 스와힐리어로, 꽤 많은 여행자들이 스와힐리어를 배우기 위해 이 섬으로 향한다. 두 개의 주요 종교는 기독교와 이슬람교이며, 힌두교도 인구의 1/4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이슬람교인의 상당수는 해안과 섬을 따라 집중되어 있다. 이슬람에 비해 기독교는 영향을 끼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 이후(19세기 경)에도 주로 내륙 부족들 사이에서 신봉되었다. 스스로 선택한 그들의 고대 신앙을 믿는 부족도 상당히 많다. 그런 부족 중 하나가 마사이족으로 엔가이(Engai)와 그의 구세주, 킨동오이(Kindong'oi)를 믿으며 이로부터 그들의 사제가 계속되어진다고 한다. 국내의 정치, 행정 등에는 종교적인 편견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탄자니아의 음악과 춤은 동아프리카 다수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스와힐리족에 근거를 둔 탄자니아의 음악은 리듬이 강하고 적극적인 가사로 알려져 있으며, 유행하고 있는 댄스 그룹들에 의해 잘 전해지고 있다. 레미 온갈라(Remmy Ongala)는 탄자니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연주자이다. 잔지바르는 독특한 타랍(taraab), 혹은 시 낭송 전통의 중심지이다. 1928년으로 되돌아가 동아프리카 가수 중 최초로 상업적 음반을 취입한 시티 빈트 사드(Siti bint Saad)는 좀처럼 잊을 수 없는 스타일의 노래인 '타랍의 여신'으로 알려져 있다. 케냐와 탄자니아의 음식은 거의 차이가 없다. 미식가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말이다. 케냐에서처럼 냐마 쵸마(nyama choma, 구운 고기)가 식당에서 특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해안지역이나 잔지바르 그리고 펨바섬에서는 해산물로 만든 전통적인 스와힐리 음식이 다양하게 있다. 가장 일반적인 맥주는 사파리라거(Safari Lager)이며, 현지의 독주는 하얀 럼 스타일의 혼합술로 콘야기(konyagi)라고 하는 것이 있다.

source : ocRM1qP_o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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