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ibia

In Search of Knowledge, Wisdom and Truth

About Namibia - 지리, 역사, 문화

2019-02-02 1910
About Namibia

나미비아 (Namibia)

나미비아의 독일인 식민지개척자들이 무제한의 자유로운 행동범위, 광대한 사막, 연중 300일을 내리쬐는 햇빛을 어떻게 극복해 나갔는지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나미비아는 현재 아프리카에서 가장흥미를 자아내는 여행지의 하나로 여행자를 끌어들이는 곳임은 틀림없다. 칼라하리(Kalahari)사막과 냉랭한 남대서양 사이에 위치한 나미비아의 매력은 이웃국가인 남아프리카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만 다른 외부인에게는 단지 최근에 와서야 나미비아의 사막, 해안풍경, 오지탐험, 무한한 자연이 알려지고 있다. 풍부한 천연자원과 함께 안전하고 현대적인 사회기초기반, 다양한 전통적인 문화와 함께 나미비아는 막대한 잠재력을 지닌 아름다운 국가이다.

통계 자료

국명: 나미비아 공화국
면적: 824,290 sq km (321,473 sq mi)
인구: 1백66만명
수도: 빈트획(Windhoek)
인종: 흑인 85%(오밤보족 45%) 백인 정착민 7.4%(독일, 네델란드인), 혼혈인 7.6%
언어: 네델란드어, 독일어, 영어, 오밤보어, 반투어, 코이산어
종교: 루터교 75%, 애니미즘 10%
정체: 민주 공화국

지리 및 기후

나미비아는 남쪽으로 남아프리카, 동쪽으로 보츠와나, 북쪽으로 앙골라와 국경을 접한 아프리카의 남서부 해안에 위치한 나라이다. 동부 끝에 좁게 길게 연결된 카프리비 지역(Caprivi Strip)은 나미비아, 잠비아, 짐바브웨와 연결되어 있다. 나미비아는 대개 건조하지만 지리적으로 다양하게 변화무쌍하며 일반적으로 나미브 사막(Namib Desert)과 해안의 따라 위치한 해안평원(Coastal Plains), 동쪽으로 경사가 지는 잡목이 무성한 중앙 고원(Central Plateau), 보츠와나와 남아프리카 국경을 따라 위치한 칼라하리(Kalahari)사막, 북동부의 카방고(Kavango)와 카프리비 지역의 관목초원(삼림지대)같이 4개 지역으로 나뉜다. 북쪽 국경은 나미비아 대부분의 지역에 물을 공급하는 강이 흐르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건조지역인 나미브사막은 8천만년이 넘은 지역으로 나미비아의 대서양해안 전체를 따라 형성되어 있다. 나미브사막의 경치는 남부의 산더미같은 붉은 모래언덕부터 중부의 내륙 평원, 인셀베르그(inselbergs)라고 불리는 평평한 정상과 가파른 경사면이 있는 외진 산악지대까지 다양하다. 나미브 사막에는 중앙 고원에서 기원한 여러 강의 흔적이 있지만 물은 거의 흐르지 않고 있다. 사막은 동쪽으로 고도가 높아지면서 모래언덕이 자갈평원으로 바뀌게 된다. 북부에는 이러한 평원에 초기인류가 거주한 것으로 알려진 동굴과 암석 거주지가 벌집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나미비아에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다양한 여러 곳의 자연 서식지가 있다. 사막에서조차 코끼리, 기린, 얼룩말을 볼 수 있으며 사자가 가끔 바다로 내려오기도 하지만 밀렵꾼들이 모래사막으로 내몰고 있다. 북부의 에토샤 국립공원(Etosha National Park)에는 홍학무리가 살고 있기도 하다. 중부 해안에 있는 크로스곶 바다표범 보호구역(Cape Cross Seal Reserve)에는 10만여 마리의 케이프 물개가 서식하고 있다. 주로 사막지역이지만 나미비아에서는 지역적으로 다양한 기후를 즐길 수 있다. 가장 건조한 기후는 여름에 낮 기온이 섭씨 40도(화씨 105도)까지 올라가지만 밤에는 영하로 떨어지는 나미브 사막 중부지역이다. 산악지대와 반-건조 중앙고원(빈트획포함)의 낮 기온은 일반적으로 나미비아의 다른 지역보다 더 낮다. 안개가 해안지대에 흔히 나타나기도 한다. 12월이 모든 곳에서 가장 더운 달로 낮 기온이 평균 섭씨 30도(화씨 86도)이다. 또한 10월부터 12월까지의 '작은 우기'와 1월부터 3월까지의 주요 우기로 두 차례의 우기가 있다. 나미비아의 동부지역에 있는 저지대는 대개 중앙 고원보다 훨씬 더 더우며 북동부의 카방고와 카프리비를 제외하고는 거의 비가 오지 않는다.

역사

남아프리카에서 살기 시작한 최초의 거주민은 가장 혹독한 지형에서조차 적응할 수 있었던 대가족집단으로 구성된 유목민인 산(San)족이었다. 나중에 산족은 코이코이(Khoi-Khoi)족에게 몰리게 된다. 코이코이족은 사냥을 하기보다는 가축을 기르는 부족이었으며 고고학적인 기록에 따르면 최초로 도자기를 제조한 부족의 하나였다. 그들은 남쪽에서부터 와서 점차 산족을 몰아내고 AD1500년경까지 나미비아지역을 통치하게 된다.코이코이족과 산족의 후예들이 여전히 나미비아에 살고 있지만 그들의 전통적인 생활양식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2천3,4백년전에 처음으로 반투족이 나미비아 남중부의 고원지대에 나타나게 된다. 반투족이 등장함으로써 남아프리카 사회에 최초로 부족의 구조가 형성된다. 다른 부족들은 사막이나 오카방고 삼각주(Okavango Delta)의 늪지대로 쫓겨나거나 반투족의 노예가 된다.

나미비아에는 세계에서 가장 메마르고 황량한 해안선이 있기 때문에 유럽의 개척자들은 대부분 나미비아 지역을 무시하게 된다. 이곳에 도착한 첫 번째 유럽인은 15세기말에 인도로 가는 길을 찾던 포르투갈의 선원들이었지만 항해의 길잡이로서 해안을 따라 일정한 지점에 석조 십자가를 세우는 것으로만 활동이 한정된다. 19세기말이 되어서야 나미비아는 1878년에 영국이 점령한 콜로니곶(Cape Colony)이었던 월비스만(Walvis Bay)을 제외하고 독일에 합병된 마지막 식민지 각축장이었다.

1904년 반투어를 사용하며 소를 기르던 헤레로(Herero)족이 폭동을 일으키지만 잔인하게 진압되고 만다. 한편 남부에서는 남아프리카 노동자들이 뤼데리츠(Lüderitz)에서 다이아몬드를 발견하게 된다. 모른척하면서 독일당국은 뤼데리츠와 오렌지강(Orange River)사이의 전지역을 슈페르게비트(sperrgebiet) 즉 '금지구역'으로 지정한다. 독일의 지배는 1차 세계대전동안 독일군이 연합군을 위해 싸우던 남아프리카 원정군에 항복하였을 때 끝나게 된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남아프리카는 국제연맹이 정한대로 나미비아지역(그후 서남아프리카(West South Africa)로 알려짐)을 지배하는 위임통치를 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후에 유엔이 남아프리카에 위임통치를 계속하게 하지만 남아프리카가 나미비아를 노골적으로 합병한 것은 승인하지 않는다. 아무런 저항도 없이 남아프리카 정부는 나미비아지역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게 되며 1949년 백인인구에게 의회선출권을 부여하기에 이른다.

남아있던 나미비아 대부분의 농장이 백인 정착민이 소유한 6000여곳의 농장에 분배되는 한편 흑인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은 법에 의해 '소유제한'으로 금지된다. 독일에 합병된 이래로 대부분의 나미비아인들은 강제노동자로 전락하였으며 이것은 1950년대 말 대중시위와 민족주의가 등장하는 주요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즈음에 여러 정당이 형성되고 파업이 조직화된다. 1960년까지 대부분의 정당이 남서 아프리카 인민단체(South West Africa People's Organisation (SWAPO))을 형성하기 위해 합병되고 남아프리카의 점령문제는 국제재판소에 뜨거운 안건이 된다.국제재판소의 재판결과는 결론에 이르지 못하지만 1966년 유엔회의는 남아프리카의 위임통치를 끝맺는 것에 대해 가결하고 나미비아 지역을 관리하기 위해 남서아프리카 의회(Council for South West Africa)를 세우게 된다.

그와 동시에 SWAPO는 게릴라 전법을 채택하지만 유엔이 나미비아에 국내정부를 세우지 못함으로써 남아프리카가 지배권을 주장기가 더 쉽게 된다. 남아프리카는 약 1만9천명의 쿠바군이 이웃국가인 앙골라에서 철수하지 않으면 나미비아의 독립에 대하여 유엔이 감독하는 어떤 프로그램에도 협조하지 않을 것이라고 거부했다. 이에 대응하여 SWAPO는 나미비아 북부지역으로 활동을 엄하게 제한하면서 게릴라활동을 강화하게 된다. 나미비아 국민들은 전쟁에 지치게 되고 경제는 심하게 악화된다. 1985년까지 남아프리카 역시 돈에 쪼들려 고생하고 있었으며 자체내의 내부문제로 정신이 없었다.

유엔이 지원한 협약으로 남아프리카군이 나미비아에서 떠나면 쿠바군도 앙골라에서 떠날 것을 보증하게 된다. 유엔의 감시하에 1989년 11월에 선거가 실시되고 SWAPO가 막대한 다수표를 얻게 된다. 헌법이 1990년 2월에 채택되고 다음달에 SWAPO의 지도자인 샘 누요마(Sam Nujoma)가 대통령직을 맡으면서 독립을 하게 된다. 누요마는 1994년에 재선되고 혼합경제와 민간부분과의 협력을 유지하면서 나미비아의 재건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누요마는 1998년 3월에 나미비아의 통화를 남아프리카의 랜드화와 제휴하게 된다.

경제

국내 총생산 GDP : US$ 85 억 6천만
1인당 국민 총생산 GNP : US$ 3,584
연간 성장율: 1.5%
인플레이션: 8%
주요 생산품: 광업(다이아몬드, 우라늄), 목축, 농업, 어업
주요 교역국: 영국, 남아프리카, 스페인, 일본

문화

나미비아의 국민 중에는 사냥꾼-채집 꾼부터 시골 농부, 도시 거주자까지 다양하게 적어도 11개의 주요 부족이 포함되어 있으며 나미비아에는 여전히 독일과 네덜란드 식민지개척자의 영향이 많이 남아있다. 65만명의 강력한 오밤보(Ovambo)족이 가장 큰 부족을 형성하고 있으며 주로 북부에 거주하고 있다. 다른 주요 부족으로는 카방고(Kavango), 헤레로(Herero), 힘바(Himba), 다마라(Damara), 나마(Nama), 바스터(Baster)족이 있다. 지금은 소수민족인 산(San)족은 먼 옛날에 자체의 토지분할 체계를 갖추고 있었으며 19세기 나미비아지역에서 가장 광대하게 식민지 이전시대의 무역망을 책임지고 있었다. 나미비아는 여전히 개발중인 나라이지만 문학전통, 음악, 춤, 시각 및 건축예술이 오랫동안 지역예술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는 나라이다. 나미비아 최초의 음악가들은 산족으로 그들의 음악은 동물이 내는 소리를 흉내낸 것으로 춤이나 이야기와 같이 연주되었다.

초기 나마족이 북, 피리, 현악기를 사용하였으며 나중에 온 반투족이 마림바(목금의 일종), 호리병 딸랑이와 동물뼈로 만든 나팔을 추가하게 된다.그후 선교단이 지역 종교합창단을 세우게 된다. 소박한 주제를 다채롭고 대개 명랑한 양식으로 개발한 유색인지정지구(Township) 예술은 남아프리카의 유색인지정지구에서 아파라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 기간 동안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이것이 나미비아에 남게 되며 급속하게 대중예술형태로 발전하게 되어 괄목할만한 이름 중에는 템보 마살라(Tembo Masala), 조셉 마디시아(Joseph Madisia)가 포함되어 있다.

나미비아에 있는 각 부족은 각기 좋아하는 음식이 있다. 오밤보족의 주요요리로는 옥수수가루 포리지(오트밀에 우유나 물을 넣어 만든 죽)인 미에리에 팝(mielie pap), 포리지나 스프를 만드는 마항고(mahango)(기장)가 있다. 미에리에와 마항고는 대개 생선, 염소고기, 양고기, 쇠고기 스튜와 같이 먹는다. 호박, 후추, 양파가 또한 주요 재료이다. 사막에 사는 나마족은 수 천년 동안 끝이 뾰족한 나라메론(nara melon)을 숭배해 왔으며 매년 나라메론의 수확은 중요한 행사이기도 하다.

사막지역 특산물로 나라메론이 나미브 사막에서 인간이 생존할 수 있게 했다고들 말하기도 한다. 헤레로족은 주로 응고된 유제품이나 버터 같은 유제품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 외에 유럽음식은 대부분 독일음식으로 커다란 '농부의 소세지'인 뵈레보어(boerewors)가 있다. 패스츄리, 빵, 케익, 과일, 냉육과 치즈로 만든 요리도 또한 독일에서 유래된 것이다. 전통적인 양조술로는 마타쿠(mataku)(수박와인), 보드카 같은 맛이 나는 증류한 야자술인 와렌데(walende)가 있다.

source : 5kM1s0ZQM8w

바로가기

세계탐험 오버랜드 새포스팅 사진영상 여행정보 세계역사 종교탐구 미국야기 기술생활 트 렌 드 음식조리 영어공부 에 세 이 친구이웃 자료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