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ozambique - 지리, 역사
모잠비크 (Mozambique)
지난 세월 은 모잠비크에게는 시련의 연속이었다. 길고 끔찍했던 내전은 전 국토에 상처를 남겼고 사회기반을 파괴했으며 지방 곳곳에 지뢰를 남겼다. 전쟁은 코끼리, 코뿔소 같은 큰 동물들을 포함해서 많은 야생동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으며 사이클론은 상당수의 해안선을 황폐하게 했다. 가뭄과 홍수는 번갈아 모잠비크의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많은 모잠비크인들은 이미 과거를 딛고 일어나 국가 재 건설에 착수했다. 현재는 비교적 안전한 여행이 가능하지만, 현지에서 돌아다닐 때에는 빈틈이 없게 처신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해변, 세계유산, 진기한 식민지 풍 건축물 등 볼거리들이 많이 있다.
통계 자료
정식국가명: 모잠비크 공화국(Republic of Mozambique)
면적: 801,600 sq km
인구: 157만명
수도: 마뿌또 Maputo (인구 13만 명)
주민: 아프리카인(99%, 샹간, 쇼크웨, 마니까, 세나, 마꾸아 포함)
언어: 포르투갈어(공식 언어), 토착어
종교: 토착 신앙 (50%), 기독교(30%), 무슬림(20%)
정체: 공화국
지리 및 기후
아프간 사냥개가 거꾸로 있는 것 같은 모습의 모잠비크는 아프리카 남동 해안에 2500km에 걸쳐 길게 있다. 북으로는 탄자니아, 북서쪽에는 말라위와 잠비아, 서쪽으로는 짐바브웨, 남서쪽으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스와질랜드 등과 국경이 접해 있다. 모잠비크 해협 건너편 정동향으로 400m 지점에 마다가스카르 섬이 있다.
남부의 해안평지는 넓이가 200km에 달하며, 북부와 서부로 갈수록 산악지대와 고원지대로 지세가 높아진다. 남아프리카에서 가장 긴 강에 속하는 잠베지강(Zambezi)과 림포포강(Limpopo)은 국토를 관통하여 흐른다. 다른 중요한 강으로는 사베강(Save), 로부마강(Rovuma)으로 후자는 탄자니아와 북쪽 경계를 이룬다. 커다란 말라위 호수(Lake Malawi, 또한 Lake Nyasa로 불리기도 한다)는 말라위와의 국경 중 일부를 이룬다. 서쪽으로 갈수록 국토는 야자수가 산재한 좁은 해안지대에서 갑자기 넓은 사바나와 삼림지대로 바뀌고, 나중에는 수목으로 뒤덮인 산악지대? 변한다.
나무 종류에는 활엽수, 아카시아, 파파야 이 포함된다. 동물 종류로는 멸종위기에 빠진, 희귀한 검은 코뿔소도 있다. 모잠비크는 지역별 편차가 크지만, 일반적으로 건기는 4월에서 9월 사이로 바닷가와 시원한 내륙지대의 평균 일일 최고온도는 27℃이다. 건기를 제외한 나머지 기간은 대부분 우기로, 평균온도가 최고 31℃에 이른다.
역사
사람에 가까운 생물인 원인이 모잠비크 근처에서 보이기 시작한 것은 2백만년 전부터이며, 호모사피엔스는 최소 10만년 전에 이 곳에 정착을 했다. 2000년 전에, 반투인(그들이 사용하는 연어의 계통을 따서 명명되었다)들이 철제 기구와 무기를 갖고 이곳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첫번째 천년이끝나갈 무렵, 모잠비크 해안가의 몇몇 마을이 아프리카 다른 지역과 중동, 인도를 잇는, 반투인들의 무역항으로 성장했다. 이 항구들에 아랍인들은 큰 영향을 끼쳤으며, 스와힐리어는 상용 국제어였다. 모잠비크는 바스코 다 가마가 1498년 상륙했을 때 환영하며 맞이했다.
그의 목적은 인도로 가는 포르투갈의 항로에 물품 공급 지점을 세우기 위한 것으로, 이 일로 그는 현지에 정착한 아랍 무역상들과 충돌을 일으켰다. 금과 상아무역의 성공은 포르투갈인들이 이런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1700년대 중반, 노예무역이 첨가되었다. 점차 포르투갈인들은 내륙으로 이동해 갔으며 본격적으로 이 나라를 식민지화하기 시작했다. 20C초에 이르러 한가지 경향이 성립되었다. 나라를 개발하기보다는, 포루투갈인들은 사용가능한 자원을 빌려갔다. 여기에는 이웃나라들, 주로 남아공과 로디지어(Rhodesia)에 빌려준 노동력도 포함되며, 따라서 상당한 남자 노동력이 유출되었다.
1932년부터 1968년까지 포루투갈의 파시스트 리더였던 안또니오 살라자르(Ant nio Salazar)의 명령으로 힘든 노동조건이 더 가혹해진 후에는 더 많은 모잠비크 남자들이 이 나라를 떠났다. 살라자르는 목화나 쌀 같은 현금화하기 쉬운 농작물을 도입하였으며, 15세 이상의 모든 남자는 농장에서 반년 동안, 종종 쇠사슬에 묶여 일하도록 명령했다. 환금 작물이 증가하면서 식량생산의 급격한 감소가 일어나 1940, 50년대에는 기근이 널리 발생했다. 설상가상으로 포루투갈은 모잠비크내에 사회에 대한 투자를 하는 척 하지도 않았다. 그 당시 있었던 얼마 안되는 학교와 병원들 대부분은 도시에 편중되어 있었으며 주로 포르투갈인과 다른 백인들, 아프리카계 아지밀라두스(asimilados) 특권층 전용이었다.
이 모든 것이 1960년에 곪기 시작했고, 당시 포르투갈 군인들이 조세 제도에 저항하는 평화시위대에 발포하여 6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죽었다. 독립을 향한 움직임이 일어났다. 모잠비크 해방전선(Mozambique Liberation Front, 또는 프렐리모 Frelimo)이 1962년 결성되었다. 에두아르도 몬들라네(Eduardo Mondlane)가 이끄는 프렐리모는 포르투갈지배에서 완전히 벗어나고자 노력했다. 무력투쟁이 10년간 계속되었으며, 1974년 파시스트 정권이 무너지면서 성공적으로 끝났다. 1975년 6월 25일 모잠비크 공화국이 정식으로 독립하였다 - 그리고 그 후 정말로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포르투갈은 이 나라를 혼란 속에 남겨놓고, 실질적으로 하룻밤 사이에 떠나갔다: 전문인력과 사회기반의 부족, 유혈이 낭자한 수도, 추락한 경제상황 등. 정부여당이 된 프렐리모는 구 소련과 동독의 사회주의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다.
1980년대 초까지 모잠비크는 거의 파산상태였다. 화폐가치는 떨어졌고 상점들은 텅 비었다. 이러한 불안정으로 각각 자신들의 독립운동의 비밀 은신처로 사용키 위해 모잠비크를 불안하게 만들려고 애쓰던 로디지어, 남아공과 모잠비크간에 점차 긴장감이 크게 조성되었다. 모잠비크내의훈련받은 로디지어 반란세력들은 모잠비크 국민 저항운동(Mozambique National Resistance, 또는 레나모 Renamo)을 결성했으나, 결국 남아공이 이를 인계했다. 그 후에는 전형적인 내전이 잇달았지만, 혹자는 레나모가 전적으로 외국의 앞잡이에 의해 창설되었고 훈련 받았으며 필요물품이 조달되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레나모의 목표는 모잠비크 사회기반과 통신 시설을 대대적으로 파괴하고 결국은 정부를 전복시키는 것이었다. 1983년의 가뭄과 기근은 이 나라를 무릎 꿇게 했다. 레나모는 구원물자를 실은 트럭을 공격했으며 곡식 창고에 불을 질렀다. 프렐리모는 점차 압력에 굴복, 서방에 문을 열기 시작했으며 서방은 식량원조로 화답했다. 남아공과의 관계는 1980년대 말까지 조금씩 개선되어 갔지만, 1990년 프렐리모가 마르크스 이데올로기를 포기하고 나서야 비로소 레나모의 협박이 끝났다. 1992년 양측이 평화협정에 서명함으로써 공식적으로 교전이 종결되었다. 1994년 선거는 의외로 순조롭고 공정하게 진행되어 프렐리모의 우두머리인 조아낑 시사노(Joaquim Chissano)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모잠비크는 지뢰, 가뭄(가장 최근의 가뭄은 1998년에 있었다), 싸이클론 등으로 계속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그 후로 다시 국가 재건을 위해 많은 일을 하고 있다.
경제
국내 총생산 GDP : US$ 97 억 3천만
1인당 국민 총생산 GNP : US$ 369
연간 성장률 : 3%
인플레이션 : 22%
주요산업 : 식품, 음료, 섬유, 화학, 석유주요 교역국 : 남아공, 스페인, 미국, 영국, 포르투갈, 프랑스, 일본문화
문화
모잠비크에는 16개 주요 종족이 있다. 가장 중요한 종족은 북부지방의 마꾸아족(Makua, 최대 규모임)이다. 그밖에 같은 북부의 마꼰드족(Makonde)은 조각품으로 유명하며 중앙의 세나족(Sena), 남부지방을 차지하고 있는 샤나간족(Shanagaan) 등이 있다. 포르투갈계의 사람들도 조금 있으며(1%미만), 유럽과 아시아인들도 약간 있다. 모잠비크내의 각 주요종족은 고유한 언어를 가지고 있다. 공용어이자 일반적으로 쓰는 언어는 포르투갈어이다. 10대들과 청장년층은 내전으로 인해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없었으므로 포르투갈어는 주로 노년층과 어린이들만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남부의 관광지역을 벗어나면 영어는 그리 많이 사용되지 않는다. 남아프리카의 다른 나라들처럼, 애니미즘은 수 천 년간 모잠비크에 존재해 왔고 많은 사람들이 조직화된 신앙 못지 않게, 이 전통신앙을 지키고 있다. 아랍무역상들은 8세기 초에 해안 왕국에 이람교를 전파했으며, 포르투갈 카톨릭 선교사들이 16세기에 기독교를 소개했다. 현재는 인구의 1/4이 무슬림으로 주로 북부지역과 해안지역에 퍼져 있으며, 약 1/5은 카톨릭 신자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애니미즘을 신봉한다. 모잠비크에는 수 십년 간의 식민지배와 내전 후에 계속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훌륭한 예술 전통이 있다.
현재 아프리카에서 가장 우수한 예술작품들의 일부가 모잠비크에서 나오고 있다. 북부 마꼰드 사람들의 조각품은 아프리카의 가장 세련된 예술형태중의 하나로 여겨진다. 1950년대 이래로 재능 있는 화가들이 많이 나타났다. 아마 가장 유명한 화가는 말랑가따나(Malangatana)로 전세계에서 전시회를 가졌었다. 이 나라는 벽화가 유명한데, 상당수는 마뿌또의 여러 장식벽에 남아있다. 가장 크고 유명한 것은 공항근처의 길이 95m짜리로 혁명에 얽힌 이야기와 이미지를 나타내고 있다.
모잠비크에서는 전통관습과 전설이 세대에서 세대로 구전을 통해 전해지고 보전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기록물의 중요성이 대두되어, 시인 조제 끄라베이린냐(Jose Craveirinha)같은 민족주의 작가들은 불굴의, 때로는 비극적이기도 한, 자국의 현실을 작품주제로 삼아왔다. 독립 이래로, Voices Made Night와 The Tale of the Two Who Returned from the Dead를 쓴 미아 꼬우또(Mia Couto)를 포함하여 많은 작가들이 나왔다. 전통음악은 전국적으로 연주된다.
북부의 마꼰드 족은 루뻼브(lupembe)라고 알려진 관악기로 유명하다. 남부의 쇼쁘족(Chope)연주자들은 남아프리카 전체에 걸쳐 발견되는 실로폰형태의 마림바(marimba)를 다루며, 그들의 마림바 오케스트라는 유명하다. 현대음악은 도시에서 인기가 있다. 마라벤따는 가장 전형적인 모잠비크 음악이라 여겨진다. - 지방의 전통적인 마지까(majika) 리듬의 영향을 받은 경쾌한 스타일의 음악이다.
• Source : ydfspIGgV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