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Djibouti - 역사, 문화
지부티 (Djibouti)
프랑스가 아프리카의 뿔에서 철수하고 난 후 지부티는 21세기를 탐내듯 응시하고 있다. 내전으로 인한 상처가 최근 들어 치유되기 시작했고 지속적인 분쟁은 국경은 접근지역으로 접근을 어렵게 만든다. 소말리아와 이디오피아의 수만 명의 난민들로 인해 인구는 팽창하고 있고 국경지대들 따라 만연한 반감은 여행자들에게 최소한 카메라를 빼앗길 위협을 당하게 만든다. 프랑스 군대의 철수로 인해 지부티에 필요한 돈도 함께 빠져나갔고 무디스 신용등급이 'AAA'가 될 날은 멀게만 보인다.
지부티의 약한 매력은 많은 여행자들을 볼 수 없게 만든다. 풀라 밍고가 가득한 적막한 호수의 동틀녘은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검은 용암이 있는 지대와 이상하게 생긴 연기와 불이 나오는 굴뚝을 볼 수 있고 끝없이 이어진 대지는 황폐하다. 홍해 주변의 산호지역에서의 다이빙과 스노클링은 환상적이다. 지부티 시는 떠들석한 프랑스 식민지의 모습과 현대적인 아랍의 향기가 남아있다. 그리고 중요한 매력의 결핍은 풍문을 만들어낸다. 도시는 아랍과 아프리카 문화가 혼재해 종교적으로 서로 경쟁하고 있다. 여행자는 현지인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전통적인 아프리카의 호의를 받는다.
통계 자료
국명 : 지부티 공화국(Republic of Djibouti)
면적 : 23,000 sq km
인구 : 5십 4만 명
수도 : 지부티 시(Djibouti City, 인구 360,000명)
인종 : 아파르, 아사스, 소말리, 예멘, 프랑스
언어 : 프랑스어와 아랍어
종교 : 이슬람
정부 : 공화국
지리 및 기후
지부티는 여전히 엘 살바도르보다 작지만 어디에도 푸름을 찾아 볼 수 없는 경작이 불가능한 더운 지역이다. 태아 모양으로 지리적으로 해안의 평지, 남부와 중부의 화산에 의한 분지, 북부의 산악지대로 구분된다. 에리트레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고 아프리카의 뿔인 이디오피아, 소말리와도 국경을 접하며 홍해와 해안선을 접하고 있어 바다를 건너 예멘과 연결된다.
락 아베(Lac Abb'e)는 아침이면 플라밍고를 볼 수 있는 곳으로 국립공원으로 보호되는 곳은 아니지만 야생생물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다. 지부티의 기온을 생각한다면 '작열함'과 '건조함'이 바로 떠오를 것이다. 매우 더운 나라로 물을 구하는 것도 낙타가 사막의 오아시스를 찾는 것처럼 어렵다. 시원한 계절은 평균기온이 25도이며 가장 더운 시기에는 45도까지 올라간다.
역사
이슬람의 영향은 기원전 825년부터 시작됐는데 당시에는 대지를 응시하고 있던 일부 종족(이디오피아 동부에서 온 아파르와 소말리아서 온 이사스)만이 살고 있었다. 아랍 무역상은 16세기까지 이 지역에 대한 지배를 했으나 프랑스가 도착한 1862년을 기점으로 오복(Obock)과 따주라(Tadjoura)의 술탄의 권력이 약해진다. 프랑스는 바브 알만답 해협의 다른 방향인 아덴(Aden)을 지배한 영국과의 균형을 유지하며 술탄들과 정착을 위한 교섭을 벌여 만 탈러에 소유지를 구입한다. 1888년에 프랑스는 따주라 만의 남부연안에 지부티 시를 건설하기 시작해 대부분 소말리인에 정착이 이루어져 프랑스령 소말리랜드(French Somaliland)가 형태를 갖춘다.
지부티는 이디오피아 상업의 중계점이 되고 프랑스가 건설한 지부티-아디스 아바다 철도가 완성돼 현재까지 남아있어 전략적으로 상업적으로 이디오피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사스의 식민지 정책에 대한 반대가 1949년 일어나 이태리, 영국, 프랑스령 소말리랜드의 통합을 선동하고 식민지 정부의 배제를 촉구한다. 아파르는 프랑스의 지배를 지지했는데 이로 인해 프랑스는 아파르에 우호적이었고 아리 아레프(Ali Aref)와 그의 동료들은 지방 정부를 통치하게 한다.
프랑스 지배 연장을 찬성하는 투표가 소말리의 배제와 반대 지도자에 대한 체포로 60% 지지를 얻었고 지속적인 폭동이 수도에서 발생한다. 식민정부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식민지의 이름을 '아파르와 이사스의 프랑스 특별구역(French Territory of Afars and Issas)'로 개명해 프랑스 지배의 연장을 꾀한다. 하지만 지부티는 계속 신음했고 1970년대는 소말리 해안 해방 전선과 합류해 공격을 시작했다.
아리 아레프와 그가 이끄는 정당은 야당을 지지하는 심화된 시위로 인해 1976년 붕괴위기에 놓인다. 아레프가 사임하고 프랑스는 마지못해 다음해에 독립을 허락한다. 하산 굴레드 압티돈(Hassan Gouled Aptidon)이 이끄는 인민진보회의가 선거에 승리해 하산 굴레드가 대통령이 된다. 지부티는 아프리카의 프랑스 식민지 중에 가장 늦게 독립을 획득한 나라가 된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1990년 하산 굴레드는 야당에게 군사조직을 창설하도록 허락하는 위험한 이중정책(지부티는 이라크와 군사조인을 체결했다)을 썼으며 지부티에 프랑스군의 영향력도 현저하게 증가한다. 해군 시설을 사용하도록 연합군도 허락했다.
1991년 11월 아파르 반군인 전통적으로 자신들이 소유하던 영토인 북부지역에서 내전을 시작한다. 이사르 정권은 이사르인에게 우호적이었으며 4개월간의 유혈충돌과 인명피해로 인해 하산 굴레드 정부는 양보를 허락한다. 1992년 새로운 정부구조 조직을 위한 회의와 완전한 평화협정이 1994년에 수립됐으나 여전히 북부지역을 포함한 국경지대는 인종간의 갈등이 폭발 직전의 상황이다. 20세기의 마지막 해에는 프랑스 군대의 획기적인 철수가 실행돼 지부티의 경제를 더욱 고통 받게 만든다.
경제
국내 총생산 GDP : US$ 8억 7천만
1인당 국민 총생산 GNP : US$ 1,099
경제 성장률 : 3.1%
인플레이션 : 6%
주요 산업 : 기름, 낙농품이나 천연수를 생산하는 작은 기업
주요 교역 대상국 : 이디오피아, 프랑스, 소말리아, 태국, 예멘
문화
인종은 공평하게 둘로 나뉘어 있는데 소말리아와 연관된 이사스(Issas)와 에리트레아와 이디오피아와 연관된 아파르(Afras)로 구분된다. 이디오피아와 소말리아의 난민들이 만 5천명에 이르고 예멘의 난민도 소수 살고 있다. 인구의 대부분은 무슬림이며 프랑스어와 아랍어가 공식언어로 사용된다. 짧은 옷을 입은 남자와 여자는 프랑스인이며, 상대적으로 현지인은 지부티식의 사롱인 푸타(futa)를 착용한다.
여자들은 긴 드레스나 치마를 입으며 얇고 밝은 색이 들어간 천인 샬마(shalma)를 두른다. 음식은 프랑스의 영향이 레스토랑에 남아있지만 거리의 상점에선 전형적인 북아프리카 음식을 살 수 있다. 콩, 빵, 닭, 고기 볶음, 생선 볶음이 일반적인 음식이며 홍해의 생선은 매운 소스로 굽거나 바비큐로 요리되며 추천할 만 하다. 다른 무슬림 국가와 마찬가지로 술은 자유롭게 마실 수 없으나 현지인들은 콰트(qat)를 대용한다. 콰트는 고지대에서 자라는 순한 자극제로 지부티로 향하는 콰트는 오후 한시 경 이디오피아 항공 화물기로 제공되거나 오후에 선적된다. 거리의 음식은 한시간 정도만 신선함을 유지하며 젖은 천으로 음식을 덥고 있는 모습을 시장에서 목적할 수 있다.
source : rwIHmaP0uJ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