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Cameroon - 역사와 문화
카메룬 (Cameroon)
찌는 듯한 열대 우림, 거드름 피우는 술탄, 야생동물 보호구역, 구운 치킨이 있는 나라인 카메룬은 아프리카에서 자연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가장 다양한 국가의 하나이다. 프랑스와 영국의 식민지배 시대 외에 카메룬은 수십 가지의 언어를 사용하는 130개 이상의 부족이 있는 곳이다. 카메룬에서 이슬람교와 기독교는 죽 눌어선 다양한 전통적인 애니미즘의 신앙과 함께 영혼을 위해 경합을 벌이고 있다. 수도인 야운데(Yaoundé)와 가장 큰 도시이자 산업 중심지인 두알라 같이 팽창하면서 현대화하고 있는 도시 외의 지역에는 열대 우림이 북부의 사반나와 반-사막지대로 연결되면서 대서양에서 북쪽으로 뻗어있다. 코끼리와 큰 영양이 아프리카에서 가장 좋은 몇 군데의 야생동물 보호구역에서 수백 마리씩 몰려다니고 해안의 건달들은 고립된 긴 해변에서 빈들빈들 게으름을 피우기도 한다.
급속하게 성장한 카메룬의 영광의 날들은 경제적인 취약성, 문화적인 다툼, 증가하는 범죄, 특히 대도시와 와자(Waza)넘어 북부 끝처럼 외진 지역까지 늘어나는 범죄로 퇴색되고 있다. 카메룬사람들은 다른 어느 때보다 길고 강압적인 지도자들의 지배하에서 분개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것으로 인해 카메룬은 여행자에게 큰 모험이 되는 곳이지만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는 여행자라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통계 자료
면적: 475,440 sq km (183,570 sq mi)
인구: 1천4백70만명
수도: 야운데(Yaoundé) (인구 1백만명)
인종: 카메론 고지대인 31%, 적도반투인 19%, 키르디인 11%, 풀라니인 10%, 북서부반투인, 동부니그리틱인
언어: 24개 주요 아프리카어, 불어, 영어
종교: 토착종교, 회교, 기독교
정체: 공화국
지리 및 기후
스페인이나 캘리포니아만한 크기인 카메룬은 장화와 약간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카메룬은 북쪽으로 나이지리아, 서쪽으로 챠드, 동쪽으로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남쪽으로 가봉, 적도기니, 서쪽으로 대서양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카메룬은 아프리카에서 지질학적으로 가장 다양한 나라의 하나로 북부의 사반나, 동부의 열대 우림, 북서부의 나이지리아 가까이에 있는 산악지역인 3개의 주요지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부의 바푸쌈(Bafoussam)과 바멘다(Bamenda)시 근처에 많은 화산토양덕택에 이 지역은 카메룬의 다른 어느곳 보다도 농업적인 인구밀도가 훨씬 높은 곳이 되었다. 서부지역은 커피와 코코아의 고장으로 거의 인구의 1/3이 살고 있는 지역이다. 무덥고 건조한 북부는 챠드호수, 주요한 야생동물 보호구역, 암석절벽, 폭이 넓은 베누에강(Bénoué River)이 있는 곳이다. 카메룬의 야생동물 보호구역에는 코끼리, 사자, 자이언트 영양, 영양, 침팬지, 악어, 다양한 조류가 풍부하게 많다.
개발되지 않은 남동부의 외진 곳에는 저지대에 고릴라무리가 약간 남아있기도 하다.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까지 다양한 우기는 놀라울 정도로 북부 끝 지역에서는 농업을 지속할 만큼 충분하게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반면 카메룬 산 부근의 남서부에서는 500cm(200인치)이상 내리기도 한다. 북부에서는 우기가 6월부터 9월까지이고 남부에서는 3, 4월에 내리는 약간의 비가 5월에서 11월까지는 억수 같은 비로 쏟아진다. 남부에서는 7, 8월에 습도가 엄청 치솟는다. 가장 따뜻한 시기는 3월에서 5월까지로 야운데(Yaoundé)의 평균 낮 기온이 섭씨 30도(화씨 86도)이며 두알라(Douala)는 좀 더 시원하지만 비가 많이 온다. 같은 기간에 북부지역은 섭씨 40도(화씨 104도)까지 타는 듯이 치솟기도 한다.
역사
1472년 포르투갈인이 수많은 커다란 새우를 보고 놀라서 '카메루네스, 카메루네스'(그후 이 나라의 국명이 됨)라고 외치면서 도착할 때까지 카메룬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는다. 서아프리카의 대서양에 접한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그후 400년동안 남부 카메룬의 역사는 노예무역과 관련을 맺게 된다. 그와 대조적으로 북부 카메룬은 여러 왕국간의 전쟁터였으며 그 중에서도 챠드의 카넴-보르누(Kanem-Bornu)왕국의 전쟁터였다. 독일인이 19세기말에 도착하였을 때 '봉건적인' 북부 카메룬은 소코토(Sokoto)(나이지리아)의 풀라니(Fulani)왕국의 지배하에 있었다. 1850년대에 그 지역을 보호국으로 지정하라는 두알라 수장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수 십 년간 우물쭈물하다가 결국 1884년 닷 새 만에 영국을 쳐부수고 협정을 맺은 독일에 빼앗기고 만다. 독일은 학교, 철도, 농장 등을 건설하는 적극적인 식민지 개척자였다. 그러나 독일의 지배는 가혹한 것이었으며 한 농장에서 1/5의 노동자가 과다한 노동으로 1년 만에 죽기도 한다.
1차 세계 대전 후에 카메룬은 세계연맹에서 새로운 지배자를 지정 받아 영토의 80%이상을 프랑스가 위임통치하고 영국이 두 곳의 다른 지역인 남서부의 고지대(남부 카메룬)와 북부(북부 카메룬, 지금은 나이지리아의 일부)를 위임통치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단일국가는 두 나라의 식민세력이 지배하는 세 지역으로 분할되고 이러한 상황은 이후의 통일에 거의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게 된다. 더 나쁜 것으로는 영국이 자신의 영토를 소홀히 하고 그 대신 나이지리아에 있는 영국의 행정수도에만 지나친 관심을 기울인 것이다.
몇 년 후에 영국은 카메룬의 위임통치지역을 독일에 되팔게 되고 독일은 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본국으로 돌아가고 연합국이 독일영토를 점령하게 됨에 따라 오랜 기간 통치하지는 않게 된다.이와 반대로, 프랑스는 철도를 개선하고(강제로 노동을 이용하고, 프랑스의 위임통치로 금지됨),코코아와 야자기름 플랜테이션, 수출 목재를 개발하고 세계전쟁에서 카메룬의 프랑스 위임통치 지역에서 무역가치를 5배로 증대시키게 된다. 2차 세계 대전 후에 새로운 정당이 프랑스령 카메룬에서 형성되고 독립에 대한 압력을 가하게 된다.
북부에 근거를 둔 당인 카메룬 연합(Union Camerounaise)은 남부사람들의 분개를 더욱 부채질하면서 국민의회를 통제하게 된다. 1960년에 독립에 뒤이어 불길한 기운은 8개월 동안 5개 대대의 프랑스군과 전투기 비행중대를 패배시기는 전면적인 폭동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리고 나서 수 천명이 무자비하게 죽고 20년 동안 지속된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되기에 이른다. 카메룬 연합은 권력과 지도자를 장악하고 북부인이며 열렬한 회교도인 아마두 아히죠(Ahmadou Ahidjo)가 대통령이 된다. 1961년 북부 카메룬은 나이지리아의 일부가 되기 위한 선거를 실시하고 프랑스령 카메룬과의 연방을 선택한 남부는 11년 후에 단일 공화국을 형성하게 된다.
아히죠는 1975년 반대 없이 대통령으로 재선되고 수많은 정치범을 투옥시키고 언론검열을 하면서 극도로 잔악하고 독재적인 통치를 계속하게 된다. 아히죠가 긍정적으로 기여한 부분은 지나치게 비용이 많이 드는 전시사업을 도입하여 세우려는 유혹을 참으면서 농업, 의료체계, 도로에 폭넓게 투자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학교 등록자수가 70%에 이르게 되고 농업은 자급자족하고 다양한 범위의 상품을 수출할 정도로 충분히 생산하게 된다. 아히죠는 권력과 성공의 절정에서 1982년 뜻밖에도 사임을 발표하게 된다. 그가 지정한 계승자는 '호족'으로 알려진 아히죠의 북부 친구들을 즉시 제거하기 시작했던 남 부인이자 기독교도인 수상 폴 비야(Paul Biya)였다. 1984년까지 호족들은 충분히 많이 모이게 되며 놀랍게도 거의 성공한 쿠데타를 일으키게 된다. 그러나 비야는 재빨리 정권을 다시 장악하게 되고 1988년 반대 없이 재선된다.
카메룬은 1986년 유독한 구름이 서부산악지대의 외진 화산호수에서 분출되어 거의 2000여명의 사람들을 잠자는 중에 질식시킴으로써 국제적으로 알려지게 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1990년에 비야의 서투른 경제운용에 분개한 카메룬인은 부패한 정부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기 시작했고 새로운 당인 사회 민주주의전선(Social Democratic Front (SDF))을 결성하게 된다. 이 새로운 위협적인 반대당을 제거하기 위해 정부는 흉포한 시도를 계속하게 되지만 1년도 안 되는 기간에 30여 개의 정당이 생겨나고 거의 십 여개에 이르는 독자적인 신문사가 생겨난다.
비야가 1991년 헌법제정 회의를 소집할 것을 거부한 후에 일어난 파업은 카메룬을 답보상태로 몰아가게 된다. 비야는 30년이 넘는 동안 최초로 복수정당 선거를 선언하면서 사실상 항복하게 된다. 여러 야당이 투표의 52%를 차지하게 되고 새로운 수상인 시몬 아치디 아추(Simon Achidi Achu)가 1992년 연합정부를 형성하게 된다. 그 후 비야는 준비가 되지 않은 채 뿔뿔이 흩어진 야당을 누르면서 가까스로 대통령에 재선된다. 비야의 승리는 세계의 관측자들로부터 선거사기라는 비난을 일으키게 되고 서부 카메룬에서 만연된 폭동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정부는 1994년에 중앙아프리카 프랑화를 평가절하하고 수출을 늘리지만 공공분야의 임금은 70% 떨어지게 된다.의회(카메룬 연방이 지배적인)가 대통령임기를 5년에서 7년으로 연장한 바로 직후 이번에도 반대는 없었지만 1/3도 안 되는 투표자가 결과에 당황해 하면서 비야가 1997년 다시 재선된다.
경제
국내 총생산 GDP : US$ 233 억
1인당 국민 총생산 GNP : US$ 1,095
연간 성장율: 3.4%
인플레이션: 6%
주요 생산품: 원유생산 및 정유, 식품가공, 섬유, 목재
주요 교역국: 프랑스, 스페인, 이태리, 일본, 벨기에, 룩셈부르크
문화
카메룬의 분열된 영국-프랑스적인 특징은 어리둥절할 정도로 많은 아프리카 부족과 언어로 더욱 복잡하게 된다. 그러나 130개 이상의 부족 중에서 서부의 바미레케(Bamiléké)와 바문(Bamoun), 북부의 풀라니(Fulani)와 키르디(Kirdi), 야운데 부근의 에원도(Ewondo)가 5개의 주요 부족이다. 바미레케족이 서부의 고지대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부족이며 카메룬의 경제를 장악하고 있는 두알라에서 가장 큰 부족의 하나이다.
바미레케족의 시골 본토에는 아주 독자적인 체페리(추장)가 통치하는 약 80여 개의 정치단위가 있다. 각 단위 내에는 예식 보존에 대한 책임을 맡은 수많은 비밀단체가 있다. 이와 반대로 바문족은 술탄으로 불리는 한 명의 지배자가 통치하고 있다. 남부가 500년이 넘게 20세기까지 유럽과 교섭하는 반면 북부는 나이지리아에 중심을 둔 준 봉건적인 회교도인 풀라니 제국의 일부였으며 전통과 외부세계에 대한 저항이 강하게 남아있다.
이러한 고립으로 인해 서양스타일의 개발은 최소한으로밖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북부인은 풀라니족이나 회교도가 아니라 풀라니어로 이교도를 뜻하는 키르디족이다. 키르디족은 풀라니족이 나이지리아 국경부근의 황폐하고 고립된 암석지역으로 몰아낸 부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불어와 영어가 모두 공식어이지만 불어가 특히 야운데, 두알라같은 현대화된 대도시에서 폭넓게 사용된다. 카메룬전국에서 약 10%정도로 대개 나이지리아 부근의 서부지방에서 주로 영어가 의사소통 보조어로 사용된다. 카메룬에서 사용되는 많은 아프리카어중에서 5개의 주요언어는 바미레케어, 에원도어, 바문어, 풀풀데(Fulfulde)어, 아랍어이다. 카메룬에서 가장 잘 알려진 작가는 소설가인 켄조 줌밤(Kenjo Jumbam), 몽고 베티(Mongo Beti)이며 둘다 유럽의 식민지 개척국과 카메룬과의 관계에 관한 것을 썼다.
카메룬의 음악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것 중의 하나로 특히 대중적인 댄스리듬인 마코싸(makossa)가 클럽이나 디스코장에서 크게 울리는 것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마코싸는 전통적인 손가락 피아노에서 기타나 신시사이저까지 다양한 악기로 개작할 수 있다. 마누 디방고(Manu Dibango)는 1970년대초에 마코싸를 국제적으로 유명하게 만들었으며 지금은 샘 팬 토마스(Sam Fan Thomas)가 마코싸의 왕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인기 있는 댄스음악으로는 대개 에원도족이 부르는 비쿠치(bikutsi)가 있다.
카메룬에는 중앙 아프리카에서 가장 맛있는 몇 가지의 음식이 있다. 카사바 잎이 주재료의 하나로 퓨일레(feuille)같은 메뉴에 주로 나오게 된다. 소스는 대개 쌀, 옥수수, 카사바, 프랜테인(바나나 일종), 바나나로 만들 수 있는 쿠스쿠스(couscous), 파에(pâe), 푸푸(fufu)같은 3가지의 주요형태로 된 밥(리즈)이나 걸쭉하게 으깬 감자 같은 것에 같이 나온다. 거리의 음식은 기본적으로 훌륭하며 샐러드, 드레싱과 함께 널찍하게 회전시키면서 속을 가득 채워 양념하여 구운 꼬치로 되어있다. 야운데에서는 특히 맛 좋은 구운 치킨과 생선을 맛 볼 수 있다.
source : S-Wm_YZzLx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