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Benin - 지리, 역사
베넹 (Benin)
베넹은 서아프리카에서 가장 매력적인 곳으로 포르토노보(Porto Novo)근처의 초호에 우뚝 솟은 어촌이 있는 곳이다. 그러나 가장 큰 도시인 코토누(Cotonou)를 포함한 대부분의 도시는 단기체류 여행자가 주목할 만한 곳이 못 되는 것 같다. 베넹은 그 멋진 특징을 내면에 감추고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여행자는 인내심을 가지고 베넹의 문화적인 여러 특징을 지켜보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베넹의 음식은 서아프리카지역에서 가장 훌륭하며 다양하게 맛볼 수 있다. 부두교와 물신숭배가 여전히 널리 이행되며 이와 관련된 다양한 유물이 여행자의 흥미를 끌기도 하는 반면 그와 동시에 여행자를 불쾌하게 만들기도 한다.
베넹은 눈에 뜨지 않는 작은 나라이지만 중요한 무언가를 할 때면 큰 배포를 가지고 하는 나라이다. 서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노예무역이 성행하고 가장 권력 있는 왕국의 일원이었던 베넹의 국민들은 아프리카에서 3번째로 많은 쿠데타를 일으키기도 했으며 (이것은 즉 수많은 쿠데타를 의미한다) 서아프리카에서 온 힘을 다해 막시즘을 채용한 유일한 나라였다. 베넹은 형편없는 도로와 사회기초기반, 나쁜 물과 의료 조건, 관례화된 부패 같은 이웃국가의 문제를 같이 공유하고 있지만 비교적 폭력이 없는 곳으로 대부분의 이웃국가보다 더 부유하고 경제적으로 강력해지고 있으며 가장 멋진 해변과 자연경관이 있는 곳이다.
통계 자료
국명: 베넹 공화국
면적: 110,620 sq km (43,140 sq mi)
인구: 6백만명
수도: 포르트 노보(Porto Novo) (인구 20만명)
인종: 폰 및 아드자족 40%, 요루바족 12%, 바리바족 9%, 베타마리베 풀라니족 6%, 기타 37개의 소수민족
언어: 불어(공식어), 폰어, 요루바어, 기타 50여개의 소수민족어
종교: 애니미즘(부두교) 70%, 회교 15%, 기독교 20%
정체: 민주주의 공화국
지리 및 기후
서아프리카에 위치한 베넹은 110,620 평방 킬로미터(44,000 평방 마일)의 영토로 된 나라이다. 베넹은 기니아만(Gulf of Guinea)의 해안까지 수직으로 길게 뻗은 모양을 하고 있다. 북쪽으로는 부르키나 파소(Burkina Faso)와 니제르 공화국(Republic of Niger), 동쪽으로는 나이지리아 연방공화국(Federal Republic of Nigeria), 서쪽으로는 토고 공화국(Republic of Togo)과 국경을 이루고 있다. 해안선은 동서를 가로질러 124킬로미터(77마일)이며 니제르강(Niger River)에서 베넹만까지 남북으로 672킬로미터(420마일)에 이른다. 국토크기는 포르투갈의 2/3크기이며 미국의 펜실베니아보다 작다.
국토는 해안지역, '라 테르 드 바(la terre de barre)라고 불리는 고원지대, 수풀이 우거진 사반나로 된 또 다른 고원지역, 베넹과 니제르의 수자원 저수지가 있는 북서부의 산악지역(아타코라(Atakora)), 북동부의 비옥한 니제르 평원같이 5개의 자연지역으로 나뉜다. 거대한 야자나무숲과 코코넛농장이 있는 남부의 경작지는 해안에 형성되어 있다.
역사
이슬람의 영향은 기원전 825년부터 시작됐는데 당시에는 대지를 응시하고 있던 일부 종족(이디오피아 동부에서 온 아파르와 소말리아서 온 이사스)만이 살고 있었다. 아랍 무역상은 16세기까지 이 지역에 대한 지배를 했으나 프랑스가 도착한 1862년을 기점으로 오복(Obock)과 따주라(Tadjoura)의 술탄의 권력이 약해진다. 프랑스는 바브 알만답 해협의 다른 방향인 아덴(Aden)을 지배한 영국과의 균형을 유지하며 술탄들과 정착을 위한 교섭을 벌여 만 탈러에 소유지를 구입한다.
1888년에 프랑스는 따주라 만의 남부연안에 지부티 시를 건설하기 시작해 대부분 소말리인에 정착이 이루어져 프랑스령 소말리랜드(French Somaliland)가 형태를 갖춘다. 지부티는 이디오피아 상업의 중계점이 되고 프랑스가 건설한 지부티-아디스 아바다 철도가 완성돼 현재까지 남아있어 전략적으로 상업적으로 이디오피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사스의 식민지 정책에 대한 반대가 1949년 일어나 이태리, 영국, 프랑스령 소말리랜드의 통합을 선동하고 식민지 정부의 배제를 촉구한다.
아파르는 프랑스의 지배를 지지했는데 이로 인해 프랑스는 아파르에 우호적이었고 아리 아레프(Ali Aref)와 그의 동료들은 지방 정부를 통치하게 한다. 프랑스 지배 연장을 찬성하는 투표가 소말리의 배제와 반대 지도자에 대한 체포로 60% 지지를 얻었고 지속적인 폭동이 수도에서 발생한다. 식민정부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식민지의 이름을 '아파르와 이사스의 프랑스 특별구역(French Territory of Afars and Issas)'로 개명해 프랑스 지배의 연장을 꾀한다.
하지만 지부티는 계속 신음했고 1970년대는 소말리 해안 해방 전선과 합류해 공격을 시작했다. 아리 아레프와 그가 이끄는 정당은 야당을 지지하는 심화된 시위로 인해 1976년 붕괴위기에 놓인다. 아레프가 사임하고 프랑스는 마지못해 다음해에 독립을 허락한다. 하산 굴레드 압티돈(Hassan Gouled Aptidon)이 이끄는 인민진보회의가 선거에 승리해 하산 굴레드가 대통령이 된다. 지부티는 아프리카의 프랑스 식민지 중에 가장 늦게 독립을 획득한 나라가 된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1990년 하산 굴레드는 야당에게 군사조직을 창설하도록 허락하는 위험한 이중정책(지부티는 이라크와 군사조인을 체결했다)을 썼으며 지부티에 프랑스군의 영향력도 현저하게 증가한다. 해군 시설을 사용하도록 연합군도 허락했다.
1991년 11월 아파르 반군인 전통적으로 자신들이 소유하던 영토인 북부지역에서 내전을 시작한다. 이사르 정권은 이사르인에게 우호적이었으며 4개월간의 유혈충돌과 인명피해로 인해 하산 굴레드 정부는 양보를 허락한다. 1992년 새로운 정부구조 조직을 위한 회의와 완전한 평화협정이 1994년에 수립됐으나 여전히 북부지역을 포함한 국경지대는 인종간의 갈등이 폭발 직전의 상황이다. 20세기의 마지막 해에는 프랑스 군대의 획기적인 철수가 실행돼 지부티의 경제를 더욱 고통 받게 만든다.
경제
국내 총생산 GDP : US$ 66 억
1인당 국민 총생산 GNP : US$ 692
연간 성장율: 5.5%
인플레이션: 4%
주요 생산품: 섬유, 면화, 담배, 음료, 건설자재, 석유, 야자수제품
주요 교역국: 브라질, 포르투갈, 프랑스
문화
베넹의 문화역사는 풍부하며 백년이 넘는 동안 베넹인의 예술은 전설적인 다호메이 왕국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을 끌어왔다. 19세기 전까지 대부분의 성공한 예술가들이 아보메의 통치왕을 위해서만 작업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술은 기능적이면서도 정신적인 목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러한 시대의 역사는 밝게 채색된 아플리케와 타페스트리에 잘 나타나 있다. 이런 예술형태의 현대적인 작품을 찾는 것도 그리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세계의 수집가들이 베넹인의 청동작품을 숭배하고 있지만 지금은 더 이상 예전만큼 풍부한 양으로 생산되지 않고 있다. 자신의 조상이 청동동상으로 불멸하게 된다고 믿던 이페(Ife)지도자가 너무 격분하여 청동으로 작업을 하던 사람들에게 죽음을 명령한 후 청동주물이 금지되었다고 한다. 수백년이 지난후 그러한 금지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 아보메의 궁전이 또한 유네스코에 의해 인류의 일반유산으로 지정된 주요명소이다.
베넹에는 여행자가 접할 수 있는 어마어마하게 다양한 종류의 종교적이고 문화적인 춤이 있다. 일부 춤은 집단으로 추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개별적이고 복잡한 것으로 놀랍도록 인상적이다. 춤은 대부분 문화와 정체성의 축제인 라 가니(La Gani)같은 특별한 축제기간에 추게 되지만 자연스런 축하행사에서도 추게 된다. 삶을 확인하는 의식이 베넹에서 여행자가 접할 수 있는 가장 황홀한 것처럼 보이므로 댄서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말기 바란다.가장 세계적인 관심을 모으는 베넹 문화의 한 단면은 인구의 약 70%가 신봉하는 애니미즘인 부두교의 풍습이다. 부두교는 인간과 정신세계가 상호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 다신교이다. 부두는 한마디로 모든 사물에 있는 정신을 숭배하는 것이다.
베넹 문화의 좀더 어두운 면은 대개 '여성할례'로 묘사되는 여성성기절단의 풍습이 만연한다는 사실이다. 세계의 의료전문가들이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있지만 이 풍습이 여전히 아주 성행하고 있으며 특히 베넹의 북부지역에서는 여성의 50%가 이러한 의식을 겪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6000년 이상 내려온 뿌리깊은 풍습의 속성과 이러한 의식을 겪지 않은 많은 여성들이 사회적인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으며 대개 수술을 시행한 나이든 여성들이 건강상 덕을 입고 있기 때문에 여성정기절단을 근절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은 실패하고 있고 있다.
축제 및 행사
베넹의 큰 축제는 코토누에 대한 용병공격을 기념하는 희생자의 날(Martyr's Day)(1월 16일), 독립일(8월 1일), 내쇼날 데이(11월 30일), 추수일(12월 31일)이다.
여행자 정보
비자: 15일과 30일간의 비자가 있다. 대부분의 서양과 중앙 아프리카국가는 비자가 필요 없다. 비자신청이나 연장을 하려면 사진이 여러 장 필요하다.
위생: 입국하려면 황열병 예방접종 증명서가 필요하다. 콜레라와 말라리아가 주요한 위험으로 예방 접종을 맞기를 권장한다. 모든 물은 끓이거나 화학 처리해야 하며 살균되지 않은 우유도 끓일 것을 권장한다. 기타 모든 유제품을 피하고 고기와 생선은 완전히 조리해야 한다. 의료시설이 한정되어 있다.
시간대: GMT/UTC + 1 시간
전압: 220V
도량형: 미터법(변환표 참고)
경비 및 환전
통화: 프랑-서아프리카 CFA (XOF)
일반경비
저렴한 식사: US$0.50-1
중급 식당: US$1-3
고급 식당: US$4-10
저렴한 숙박지: US$5-10
중급 호텔: US$11-16
고급 호텔: US$17-110
1994년 베넹화가 50%까지 평가 절하되었으며 베넹은 계속해서 55%(3%부터)의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다. 다음해에 인플레이션은 14%로 떨어지고 그후 계속 떨어질 것으로 경제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베넹은 휴가를 보내기에 저렴한 곳으로 아프리카에서 눈에 띄는 곳은 아니지만 멋지고 편안한 코토누시가 있는 곳이다.
코토누에서 작은 숙박시설에 묵으면서 돈을 아낀다면 하루에 미화 $15불 정도가 들것이다. 가장 비싸고 호화로운 호텔에 묵으면서 하루종일 최고급식당에서 식사하며 고급승용차를 빌린다면 하루에 기름값을 포함하여 미화 $230정도를 쓸 것이다. 베넹에서 환전하기는 쉬우며 특히 코토누와 포르토누보에서 그렇다. 아프리카은행(Bank of Africa)이 대개 가장 좋은 환율을 제공하며 수수료도 없다. 에코뱅크-베넹(Ecobank-Bénin)은 토요일에도 개장하며 화이낸셜은행(Financial Bank)은 비자카드로 현금을 인출할수도 있다. 밤에 도착한다면 공항부근의 쉐라톤 호텔(Sheraton)에서 바꿀 수도 있으며 종퀴에 지역(Jonquet district)부근의 암시장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바꿀 수도 있다.
환전은 프랑스 프랑이나 영국 파운드화를 바꾸기가 더 쉽다. 관광이 늘어나면서 팁을 주는 것이 베넹에서 관광산업의 일부가 되고 있다. 호텔과 식당에서 10%의 팁을 주는 것이 보통이다.
여행 시기
베넹에는 두 가지의 기후가 있다. 남부는 최대기온이 평균 섭씨28도(화씨82도)로 열대기후이다. 건기는 12월부터 4월까지이다. 사막주변지역에 이웃한 북부는 습도가 훨씬 낮지만 기온은 더 더울 수도 있다. 두 지역모두에서 가장 좋기로는 12월에서 3월까지로 여행하기에 가장 쾌적한 시기일 것이다. 주요 축제일인 8월 1일의 내셔날 데이는 가장 큰 도시인 코토누나 수도인 프로토노보를 방문하기에 좋은 시기이다.
source : B_5KbbWsDT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