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a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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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Monaco - 지리, 기후, 역사

2019-02-02 1911
About Monaco

모나코 (Monaco)

모나코는 하나의 나라라기보다는 아침산책을 하기에 알맞은 사이즈로 보인다. 하지만 이 작은 지대도 들여다보면 다양한 생활이 숨어 있다. 이곳의 대부분 거주민들은, 태양과 매력적인 생활스타일, 특히 이곳의 최강 점인 소득세 면제에 이끌려 다른 지역에서 이주한 사람들이다. 
싸구려 숙박과 고유의 문화, 야생의 자연 대신 모나코에는 카지노에 줄을 잇는 리무진, 레니에왕의 기념 머그컵, 몬테카를로 해변에 누워있는 스타지망생의 토플리스(비키니 윗옷을 걸치지 않은)여성들이 있다. 그러나 여기에 주눅들지는 말자.

통계 자료

정식국명 : 모나코 공국 (Principality of Manaco)
면적 : 1.95 평방 km
인구 : 32,150
수도 : 모나코
인종 : 프랑스인 47%, 모나코인 16%, 이탈리아인 16%, 기타 21%
언어 : 불어, 모나코어, 이탈리아어, 영어
종교 : 로마 카톨릭
정체 : 입헌 군주제
국가 대표 : 레니에 3세
국내 총생산 : US$8억
1인당 국내총생산 : US$25,000주요 산업 : 관광
EU 회원여부 : 비회원
지리 및 기후

프랑스 동부 지중해 연안에 자리잡은 1.95평방km의 이 작은 지대에 다양한 지역적 특성은 없다. 대부분 지대가 울퉁불퉁한 바위 위의 언덕지대이며, 간간히 매혹적인 해안절벽이 펼쳐진다.
야생동물에 그나마 관심이 있다면 모나코 아쿠아리움으로 가보자. 나라 대부분이 도시적인 분위기이므로 자연을 느껴볼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 숲 지대가 없으므로,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야생동물은 바퀴벌레와 도둑고양이 그리고 관광객들이다. 모나코 기후는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로, 겨울에도 비가 약간 올 뿐 그리 춥지 않고, 여름은 건조하며 대단히 덥다. 연중 300일은 태양을 즐길 수 있다.

역사

모나코의 역사는 한 나라의 역사라기보다는 그리말디(Grimaldi)가문의 가족사라고 해야될 것이다. 그러므로 모나코는 사적인 활동무대이기도 하고 그것이 모나코의 존재이유가 되기도 한다.
지금의 모나코가 있는 곳은 석기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하고 있었다고 하며, 전설에 의하면, 로마시대 데보트라는 한 젋은 코르시카 순교자의 시체를 배에 태워 아프리카에 보냈으나 그 보트가 표류하면서 현재의 모나코해안에 닿았다는 것이고, 그의 은총으로 모나코가 생겼다는 것이다. 이 지역( 현 왕궁주변)에 건축물을 처음으로 세운 이들은 13세기 모나코를 지배한 황제당 제노바 왕조인 리구리아인들이었다.

그리말디가의 역사는 이들 뒷편 성채에 자리잡은 1297년부터 시작되었고, 1489년 프랑스 왕 샤를르 8세는 모나코의 독립을 승인하였다. 1524년과 1641년동안 스페인의 영향을 많이 받기도 했지만 독립국이면서도 프랑스와의 관계는 긴밀하였다. 그러나 프랑스의 소유욕이 점점 더 강해지면서 1793년 신 혁명제도하에서 모나코는 합병되었다. 1861년 체결된 조약에서 모나코는 재독립하었고, 세금문제의 제한에 대해 최근 수십년 동안 모나코에 거주하는 프랑스인들과 프랑스지점의 세금납부를 거부하며 투쟁하고 있다.

1956년 영화배우 그레이스 켈리와 동화 같은 결혼식을 치룬 레니에 3세는, 1962년 16%밖에 안되는 순수모나코국민들에 의해 선출된 의회를 설립하였다. 그러나 모든 법안들은 왕의 허가를 받아야하므로 의회는 쇼에 불과한 것이었고, 소득세를 거둬들이지 않는 나라에서 거론할 일은 실상 그리 많지 않았다. 게다가 연중 300여일의 햇볕을 받는 나라에서 투표를 한다는 것은 괜한 썬탠 시간만 낭비하는 것은 아닐까. 

문화

다성부 음악(Polyphony)은 고래 일리리안 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통음악으로 여러 사람 또는 악기가 함께 참여해 어우러지는 음악이다. 가사는 주로 서사시, 역사를 주제로 하고 있는데, 느리면서도 음울한 음조를 바탕으로 아름다운 하모니와 요들로 이루어져 있다. 알바니아 영화는 거의 드문 편이나 근래 들어 가장 주목할 만한 영화라면 공산사회 이후의 알바니아의 적나라한 자화상을 그려내고 있는 '라메리카(Lamerica)'를 들 수 있다.

1909년 알바니아어가 표준화되기 전까지 알바니아의 문학계는 그야말로 척박한 상황이었다. 1965년 사망한 팬 놀리(Fan Noli)는 20세기 알바니아 문학계의 거목이었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종교적 주제에 기초를 둔 것이었는데, 이외에도 세르반테스, 셰익스피어, 입센, 오마 Khayy?m 등의 작품을 번역 소개함으로써 위대한 문학 평론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기도 했다. 현대 알바니아 문학계의 거두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작가로 이즈마일 카데르(Ismail Kadare)을 들 수 있는데 그는 1990년 정치적 망명길에 오른다. 그의 작품은 전 세계에서 40개어로 번역, 소개되고 있다.

알바니아어(Shquipja)는 라틴, 슬라브어, 그리스어 등의 특성을 가지는 인도 유럽어에 속한다. 알바니아어에는 2개의 주요 방언이 있는데 토스크(Tosk)와 게그(Gheg)가 그 것으로 이 둘은 1천년 전에 서로 갈라져 나왔다. 1972년 철자법 회의에서 마침내 통합 문어체가 만들어져 두 개의 방언에 대해 현재 널리 통용되고 있다. 이탈리아어는 알바니아를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유용하다. 1943년 전까지만 해도 알바니아인 대부분이 이탈리아어를 배웠고, 요즈음은 이탈리아 방송을 통해서나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많이 배우고 있는 실정이다.

전통적으로 알바니아 종교는 수니파 이슬람교가 70%, 로마 카톨릭이 10%(대부분 북부), 알바니아 정교가 20%를 차지하는데 유럽국가들 중에서 유일하게 이슬람교가 절대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다. 1967년-1990년 알바니아는 공식적으로 세계 유일의 무신론 국가였는데 이 때문에 수많은 교회, 극장들이 영화관으로 바뀌기도 했다. 공산체제가 무너지자 미국 선교사들이 가담하면서 종교가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전국 곳곳에서 교회와 이슬람 사원을 찾아볼 수 있다. 

알바니아 음식은 터키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구운 고기인 쉬쉬케밥(shish qebap), 롬스테이크(다진 고기를 동글 납작하게 만든 요리), 쿄프테(미트볼) 등이 주식이다. 지방색 짙은 요리로 유명한 것은 촘렉(고기와 양파 스튜), rosto me salc? kosi(크림을 얻은 로스트 비트), 타베 코시(tave kosi:요구르트를 얻은 양고기) 등이 있다. 수도 티라나(Tirana)에서는 저녁 식사에 점점 더 비중을 두는 경향이 있지만 알바니아는 여전히 점심을 정찬으로 삼는다.

사람들은 아이스크림(akullore)을 즐겨먹으며 커피는 kafe turke 또는 kafe ekspres(에스프레소)라고 하여 매우 진하게 마신다. 적포도주보다는 백포도주가 품질이 더 뛰어난 편이며, 지역 고유의 술로는 아키(aki:브랜디), 콘작(konjak: 코냑), 우조(uzo; 아니시 열매 풍미를 내는 술) 뿐만 아니라 여러 다양한 과실주들도 있다.

source : SVLZTttOO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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