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b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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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Albania - 지리, 기후, 역사

2019-02-01 1807
About Albania

알바니아 (ALBANIA)

아드리아 해안에 위치해 있는 작지만 따뜻한 나라 알바니아는 오랫동안 가난과 전쟁, 문맹, 수 차례에 걸쳐 실패한 5개년 계획들로 인해 고통 받아 오고 있다. 보다 나은 삶을 향해 수 년 동안 떠돌아다니고 있는 난민들도 있지만 알바니아는 지중해의 전통적인 매력과 소련식 효율성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나라다.

수니파 이슬람교부터 알바니아 정교는 물론, 전원풍의 해안 리조트 및 바위산 봉우리부터 잘 경작된 들판에 이르기까지 종교, 문화, 환경들이 어지러이 혼합되어 나타나는 나라가 바로 알바니아이다. 동유럽 국가 중 독재정권의 잔재로 가장 오랫동안 고통 받아 왔던 이 곳에는 감귤 과수원, 올리브 농장, 포도밭 등이 도처에 있다. 중국인들이 세운 허름한 공장들은 위풍당당한 이슬람 사원 옆에 자리잡고 있고 아름다운 장식으로 꾸며진 알바니아 정교회는 '냉혹한 소련'의 문화 궁전들과 마주보고 있다.

수 천년 동안 발칸 반도의 열강들에게 시달리다가 1960년대에는 모택동 문화 혁명과 함께 일대 변혁을 치르기도 했다. 알바니아는 얼마 전에야 민주주의를 향한 첫 걸음을 떼었으며 외국과의 관계 개선 및 외국 여행자들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웃해 있는 코소보 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종 청소에 대한 비분 강개는 어느 나라 못지 않지만 평화를 바라는 바램 또한 그에 못지 않다. 이런 중에서도 절대 변하지 않는 점이라면 울창한 숲을 자랑하는 산과 따뜻한 지중해의 햇살 그리고 마음까지 따뜻하게 감싸주는 아드리아 해의 파란 바다일 것이다.

통계 자료

국명 :알바니아 공화국(Republic of Albania)
면적 : 27,748 sq km
인구 : 3백 3십만 명
수도 : 티라나(Tirana <인구: 40만 명>)
인종 : 알바니아인(96%), 그리스인(2.54%), 마케도니아인(1.5%), 집시 약간
종교 : 이슬람교(70%), 알바니아 정교(20%), 로마 카톨릭(10%)
정체 : 공화제

지리 및 기후

벨기에보다 조금 작은(우리 나라 경기도와 강원도를 합친 크기) 나라, 알바니아는 아드리아해 동서쪽에 있고 바다 건너로는 이탈리아가 있다. 남쪽으로는 그리스(Greece), 동쪽으로는 마케도니아(Macedonia), 북쪽으로는 유고슬라비아(Yugoslavia) 및 혼란 상태인 코소보(Kosovo)와 인접해 있다. 동유럽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올리브와 감귤, 포도넝쿨이 우거진 지중해 기후를 만끽할 수 있는 나라이다.

거대한 호수들, 그 중에서도 세계 최대 깊이 294m를 자랑하는 발칸호(오리드호)는 유고슬라비아(Yugoslavia), 마케도니아(Macedonia), 그리스(Greece)에 두루 걸쳐있다. 이오니아(Ionia) 연안으로, 특히 블로라(Volora)에서 사란다(Saranda)까지 이어지는 '꽃의 리비에라(Riviera of Flowers)'는 알바니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곳이다.

알바니아에는 국립 산림지 6곳, 자연 보호구역 24곳, 천연 기념물 2000여 점이 있지만 보호라는 건 서류 상 얘기일 뿐이다. 거의 모든 공원은 사냥 및 벌채를 일삼는 인간들로 인해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으며 공원 관리도 소홀한 편이다. 1994년 사냥이 그나마 법으로 금지되자 디브자크 국립공원(Divjake National Park)에 있는 석호 카라바스타호(Karavasta Lagoon) 같은 보호구역 환경이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다.

환경 오염이 주요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수구는 거의 정화되지 않은 채로 강물로 흘러 들어가고, 공장에서 쏟아내는 폐수나 화학물질도 마찬가지다. 알바니아의 여름은 무덥고, 건조하며, 겨울은 시원하고 습윤하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부드러운 바닷바람으로 해안을 따라 여름내 온화한 기후를 보이기도 한다.

겨울 동안 년 중 강수량의 40% 정도가 내리고, 고산 지대를 중심으로는 거대한 대륙성 공기의 영향을 받아 매우 춥다. 그러나 도시에서의 겨울은 그다지 추운 편이 아니라, 대부분 건물에서 난방을 하지 않아 수도꼭지가 얼어붙는 경우도 간혹 있다.

역사

오늘날 알바니아인의 조상인 일리리아인(Illyrian)은 BC 2000년 경 발칸 반도 서쪽에 정착하기 시작했는데. 그 주위로는 호전적 성향이 짙은 나라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BC 7세기경 그리스인들이 들어와 자치 식민지를 건설했고, BC 4 세기경에는 고유 부족 국가를 이룬 일리리아인과 평화적인 무역을 전개해 나갔다. 그러다가 그리스는 알바니아 남부를 점령했는데 그리스는 오늘날까지 이에 대한 영토권을 주장하고 있다.

강성 로마 제국은 쉬코드라(Shkodra; 현재 알바니아 북부)를 중심으로 발전해 가던 일리리아 왕국을 넘보기 시작했고, BC 228 년에는 급기야 군함 200척을 앞세워 침략해왔다. BC 167 년 발칸 전역이 급기야는 로마의 지배하여 들어가게 되었는데, 농지에서 일하던 노예 이외의 일리리아 인들은 그나마 평화와 번성을 누릴 수 있었다. AD 5세기- 6 세기 사이, 로마가 쇠퇴기에 이르자, 이번에는 고트족, 훈족, 슬라브족의 침략이 잇따랐다.

11세기 동로마, 불가리아, 노르만족은 일리리아 북부 지역에 대한 주도권을 두고 서로 다투기도 했는데, 로마가 이 곳을 정복하기 이 전 일리리아는 한 때 다뉴브강 북부에까지 그 세력을 떨쳤다. 세르비아(Serbia), 오스만 터키 왕조(Ottoman Empire), 베네치아(Venetians) 등도 알바니아를 거쳐갔는데, 오스만 왕조(터키)가 1479년 마침내 이 곳을 손에 넣었고, 그 이후 1912년까지 터키의 지배하에 들게 된다. 외세의 침략을 겪으면서 알바니아는 유럽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몰락하게 된다.

프리센(Prizen; 현재의 유고슬라비아의 코소보)의 알바니아 연맹은 1878년 창설됐고, 자치권을 얻기 위한 분투를 오늘날까지 계속하고 있다. 1881년 터키 군대는 독립에 대한 이러한 작은 희망을 무참히 짓밟았으며, 1910년-1912년 독립을 선언하고, 즈마일 케말리(Ismail Qemali)가 이끄는 지방정부가 들어서자 탄압은 더욱 심해졌다. 그러다 1913년 런던에서 개최된 '6개국 대사 회담'을 통해 알바니아 면적의 거의 절 반 가까운 코소보를 세르비아에게 넘겨주며 대망의 독립국으로 승인되어 그들의 노력은 결실을 맺기에 이른다.

세계 제 1차 대전 발발로 그리스, 세르비아.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등의 열강들에게 차례로 침략을 겪으면서 독립운동은 잠시나마 휴지기를 갖게 된다. 그러다가 1920년- 1939년 알바니아는 자체 정부를 수립해 아메드 조그(Ahmet Zogu)가 대통령이 되었고, 그러면서 무솔리니가 이끌고 있던 이탈리아와의 관계가 악화되었다.

그런 상황은 제 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이탈리아의 침입을 겪으면서 직접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엔버 호자(Enver Hoxha)가 이끌던 공산당은 이탈리아를 상대로 저항운동을 전개하였고, 1943년 이후에는 독일에 대항하는 레지스탕스의 주역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44년 10월무렵에는 소련의 지원을 받지 않고 동유럽에서는 유일하게 독일군을 격퇴시키기도 한다. 전쟁 이후 공산당들이 권력을 장악했고, 1946년에는 알바니아 공화국이 탄생되었다. 2년 뒤에는 유고슬라비아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스탈린이 이끄는 소련과의 연합을 꾀했다.

공산당의 입지를 막으려는 시도가 영국과 미국에 의해 일기도 했지만 공산체제를 전복시키지는 못했다. 1960년에는 후르시초프(Khruschchev)가 알바니아에 잠수함 전진기지를 둘 것을 요구하자 소련과의 관계마저도 단절하고 말았다. 1968년 소련이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하자 알바니아는 바르샤바 조약에서도 탈퇴했다.

알바니아의 자체 방어 정책으로 전국 곳곳에는 75만 개가 넘는 이글루 모양의 벙커와 토치카가 있는데 그 중에는 밝은 색상으로 채색된 것도 있다. 1960년 소련과 국교를 단절한 이후 알바니아는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해 나갔고 1966년-1965년에는 문화 혁명에도 동참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1978년 이 관계도 종식되고 만다. 1985년 호자(Hoxha)가 사망하자 그 후임인 라미즈 알리아(Ramiz Alia)는 민주화 및 세계 각 나라와의 외교 정상화를 위해 노력했다. 1990년 동유럽 대부분 나라에서 공산체제가 무너지자 알바니아에서도 동일한 기대가 팽배해 지면서, 12월 학생들의 시위가 계속되자 정부는 야당의 존재를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1991년 총선에서 공산당이 승리했지만 5월 총파업이 거세지면서 사회당은 야당인 민주당과 연립 정부를 구성하게 된다. 1991년, 중앙에서의 경제 계획은 실패했고, 공장 가동이 중지됐으며 식량 배급도 끊긴 채였다. 1991년 말엽까지 알바니아는 그야말로 혼란 그 자체였고 급기야 12월에는 식량 폭동까지 야기됐다. 대량 난민 사태 위기에 봉착하자 EU는 경제 원조를 시작했고, 이탈리아군은 식량 배급선 감독을 위해 두르레스(Durres) 남부에 군 기지를 건설했다.

1992년 선거를 통해 47년 동안의 공산체제는 마침내 종지부를 찍게 됐고, 민주당은 즉각적으로 과거 공산당원들 및 관리에 대한 대대적인 색출작업에 들어갔다. 1933년 국제인권 단체는 점점 악화되어 가는 인권 문제에 발동을 걸기도 했다. 알바니아는 1992년 터키와 군사협약을 맺고 북부 알바니아 지역(그리스는 이 지역을 '북부 에피로스'라고 부른다)에 대한 그리스의 영토 주장에 맞서기 위해 이슬람 단체에 가담했다.

겨우 싹트기 시작한 민주주의가 무너지기 일보 직전의 난항을 겪으면서 1990년 중반부터 말까지 수상과 대통령들이 수시로 바뀌었다. 국민들은 자국을 벗어나 난민으로 떠도는 신세로 전락했고 이 중 몇몇은 이탈리아 해변으로 몰리면서 알바니아의 정치 상황은 날로 악화되기에 이른다.

후임 지도자들은 코소보에서 행해지는 알바니아인에 대한 탄압을 게속 지탄하고 있는데 이 지역은 20세기 이후 유럽의 탄약고 같은 존재가 되었다.

source : CiJNst6WBz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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