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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軍 168명에 무너진 잉카軍 8만···천연두가 멸망 불렀다

2020-03-09 1525
전염병

기술발전이 대전염병 키운다

“로마제국은 유럽과 북아프리카, 아시아를 연결하며 하나의 거대한 세균 번식장을 형성했다.”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총·균·쇠』에서 기술의 발전이 대전염병(판데믹·pandemic)을 만들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역사에 최초로 기록된 6세기의 흑사병 사례를 예로 듭니다. 당시 이 병은 황제의 이름을 따 ‘유스티니아누스병’으로 불렸습니다. 다이아몬드는 “도시의 발생은 세균 입장에선 맘 놓고 증식할 수 있는 엄청난 행운이었다”고 말합니다.  
 
 많은 인구가 모여 사는 대도시는 세균·바이러스의 훌륭한 먹잇감이 됐고, 교통의 발달은 이들이 멀리 퍼져나갈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된 것이죠. 이처럼 개체 간 감염 자체는 자연현상이지만, 대전염병으로 번지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사회현상입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영화가 ‘컨테이전(2011)’입니다. 스티븐 소더버그가 연출한 이 작품은 처음 최근 확산되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비슷한 소재를 다뤘습니다. 영화 초반에선 홍콩 출장을 다녀온 미국인 여성 베스(기네스 펠트로)는 며칠을 끙끙 앓다 발작을 일으키고 응급실로 옮긴지 얼마 안 돼 사망합니다. 곧이어 아들까지 잃게 된 남편 토마스(맷 데이먼)는 마지막 남은 가족인 딸을 지키기 위해 어떤 희생도 감수합니다.

며칠 후 아내와 비슷한 증상을 보였던 사망자들의 소식이 전 세계에서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그 사이 온갖 소문들이 무성하게 퍼지면서 사람들은 아노미 상태에 빠져들죠. 생화학무기를 개발하던 연구소에서 바이러스가 유출됐다거나 기업들이 백신을 미리 개발해놓고도 큰 돈을 벌기 위해 은폐하고 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퍼집니다. 이에 정부는 부랴부랴 역학조사팀이 꾸려져 병의 원인을 찾아 나섭니다.  
 
 환자들의 감염 경로를 추적한 끝에 최초의 감염자가 홍콩의 한 식당 주방장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야생 박쥐의 변을 먹고 자란 돼지를 요리사가 맨 손으로 다루면서 전염이 시작된 것이었죠. 이번 코로나19의 감염원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박쥐일 가능성에 큰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아주 사소한 사건 하나가 어떻게 전 인류를 위협에 빠뜨리는지 잘 보여줍니다.  
 
 영화의 메시지는 이렇습니다. 첫 번째는 마치 지구를 정복한 것처럼 착각하는 인류가 눈에 보이지도 낳는 작은 바이러스 하나에도 여지없이 무너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인구밀도가 높은 대도시, 그리고 교통이 발달한 곳일수록 대전염병에 취약하다는 것이죠. 이번 코로나19가 발병한 중국의 우한시도 인구 1000만이 넘는 교통의 요지입니다. 2002년 말 중국 광둥성에서 발생한 사스가 전 세계로 퍼지기 시작한 것도 홍콩에서 감염자가 나온 뒤였습니다.

이처럼 대전염병은 인간의 기술 발전이 만들어낸 사회현상입니다. 제일 처음 전염병이 창궐하기 시작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인류가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부터였습니다. 제일 처음 수렵·채집 생활을 했던 인류는 먹을 만큼만 사냥하고 늘 이동해 다녔습니다. 그러나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한 곳에 모여 살았고, 동시에 가축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가축의 몸 속에 있는 세균과 바이러스는 인간 면역에 길들여지지 않은 것들이 많았죠. 각종 배설물 등 오염원에 노출되면서 인간은 전염병을 앓기 시작했고, 또 한 곳에 모여사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병은 더욱 쉽게 전파됐습니다.  
 
 165년부터 180년까지 로마에서 발생한 ‘안토니우스 역병’은 동쪽의 파르티아와 전쟁 후 로마로 돌아온 병사들이 병균을 전파시켰습니다. 수백만 명의 로마시민이 죽었고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우스(121-180)의 목숨까지 빼앗아갔습니다. 유발 하라리는 “밀려드는 상인과 공직자, 순례자로 붐비던 고대 도시는 인류 문명의 산실인 동시에 병원균의 이상적 번식처였다”고 설명합니다. (『호모 데우스』)

중세로 넘어오면서 도시가 커지고 교역이 활발해지자 전염병의 파괴력도 강해졌습니다. 중세 유럽을 뒤흔들었던 흑사병은 1346~1352년 750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당시 유라시아 인구의 4분의 1이 넘었죠. 의학기술이 진일보한 1918년에도 스페인 독감으로 2500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왔습니다. 1차 세계대전(1914-1918)에 사망한 군인(약 1000만 명)보다 훨씬 많았죠.
 
 어떤 전염병은 한 나라를 멸망으로 이끌기도 합니다. 1529년 스페인 군대의 침략으로 멸망한 아즈텍은 전쟁보다 천연두로 사망한 이들이 더 많았습니다. 2000만 명에 달했던 아즈텍 인구는 1618년 160만 명으로 급감했죠. 1531년 168명에 불과한 프란시스코 피사로(1475-1541)의 군대가 잉카제국의 8만 군대를 무너뜨린 것도 천연두 때문이었습니다. 전쟁보다 유럽인들이 퍼뜨린 전염병으로 훨씬 많은 이들이 죽었습니다.

이처럼 전염병은 인류에게 가장 큰 위협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치명적인 바이러스보다 코로나19처럼 덜 치명적인 경우가 판데믹의 위험성이 더 크다는 점입니다. 1976년 콩고에서 처음 발견된 에볼라의 예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인체를 매개로 전염되는 에볼라 바이러스는 아마존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 큰 밀림인 콩고분지(362만㎢)를 넘지 못했습니다. 일주일 안에 치사율이 최대 90%라는 점도 확산이 더딘 이유였습니다. 리 골드먼 미국 컬럼비아대학병원장은 “숙주가 죽으면 바이러스도 소멸하기 때문에 치명적인 바이러스는 오히려 전염이 어렵다”고 합니다. (『진화의 배신』)
 
 하지만 코로나19처럼 숙주의 생명에는 큰 지장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무증상 상태에서도 감염을 시키는 바이러스는 대전염병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 과정에서 바이러스는 “인간의 면역체계에 굴복하지 않고 스스로의 분자구조를 변화시켜 생존을 이어나가는데, 이는 진화의 한 방식”입니다. (제러드 다이아몬드)

그런데 문제는 이제 치명적인 바이러스도 하루 이틀이면 전 세계로 퍼져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거미줄 같은 교통망은 인간을 촘촘히 연결해 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파율도 높고 치명적이기까지 한 바이러스가 있다면 인류에겐 재앙과 같은 일이 될 것입니다.  
 
 미국의 의학 저널리스트 소니아 샤는 “지난 50년 간 300종 이상의 감염병이 예전에 한 번도 등장한 적 없는 지역에서 새롭게 출현했고 다음 두 세대 안에 인류에 치명적인 판데믹 바이러스가 나올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판데믹: 바이러스의 위협』


(시베리아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발견된 3만년 전의 고대 바이러스)

몇 년 전에는 빙하에 갇혀 있던 고대 바이러스가 발견돼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영국의 과학기술 전문매체 ‘Phys.org’는 2015년 8월 시베리아에서 발견된 ‘몰리바이러스 시베리쿰’을 기획기사로 다뤘습니다. 이를 발견한 프랑스국립과학센터의 장 미셀 클라베리 박사는 “3만 년 전의 바이러스가 완벽한 냉동 상태로 죽지 않고 보존돼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아직까지는 바이러스가 인간을 전염시키는지, 나아가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지 정확히 밝혀지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3만년의 시간이동을 한 바이러스가 어느날 갑자기 사람에게 전염되기 시작한다면 엄청난 재난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천연두 바이러스에 몰살된 아즈텍과 잉카처럼 인간은 면역이 없는 항원에 취약하기 때문이죠.
 
 인간은 생태계에서 유일하게 천적이 없는 종입니다. 기원전 1억 명에 불과했던 인류는 3년 후면 80억 명을 돌파합니다. 자연은 늘 생태계의 위협이 되는 종에겐 천적을 만들어 균형을 맞춰 왔죠. 현재 인류의 가장 큰 천적은 바이러스가 그 자신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가 판데믹에 대비해야 할 것은 비단 백신뿐일까요?

source : 1583785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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