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Canada - 지리, 역사
캐나다 (Cananda)
캐나다는 크고, 광활하고, 강건하고, 정돈되어 있으면서도 엄청나게 다채롭다. 캐나다에는 이제까지 사람의 발길이 닿은 적 없는 땅과 현대적인 대도시가 함께 있다. 캐나다는 대서양 해안에서 태평양 해안까지 7000km가 넘게 펼쳐져 있다. 캐나다에서는 길거리 카페에서 커피와 크로아상을 즐길 수도 있고, 조용한 북쪽 호수에서 카누를 탈 수도 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에서 아래를 내려다 볼 수도 있고, 백 년이 넘은 요새의 벽을 들여다 볼 수도 있다.
숲에서 사슴과 곰을 찾아볼 수도 있고, 바다에서 물개와 고래를 찾아볼 수도 있다. 눈 덮인 산봉우리에 올라갈 수도 있고, 눈 앞 30km는 아무 것도 방해하는 것이 없는 지평선에서 일몰을 감상할 수도 있다. 캐나다는 사계절이 뚜렷하며 겨울에는 가혹하게 춥고 여름에는 찌는 듯이 덥다. 짧은 봄은 강렬하고 가을은 노랑과 빨강으로 찬란하게 물들어 계절이 바뀌는 것도 드라마틱하다. 캐나다라는 나라의 성격은 북쪽 변경에서의 삶의 거친 현실에 의해 형성되어 왔다.
캐나다는 아직 생긴지 얼마 안 된 나라이므로, 현대적인 개성은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이웃나라 미국과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캐나다의 문화적 뒤섞임은 미국처럼 용광로가 아니라 모자이크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영국인과 프랑스인을 비롯한 많은 민족들, 즉 유럽인에서부터 아시아인, 캐나다 원주민까지 모두 모여서 인종의 조각보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캐나다 달러는 미국 달러에 비해 가치가 낮게 유지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미국인이나 많은 유럽 국가의 국민들에게는 환율이 아주 유리하지만 그 외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안정된 환율을 유지하고 있다. 여러 해 동안 인플레이션은 거의 없었으며 이는 비교적 물가가 안정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 사람들, 국토와 자연..... 캐나다는 이 모든 면에서 여행자에게 매력적인 나라이다.
통계 자료
국명 : 캐나다
면적 : 9,975,000 sq km
인구 : 3000만 명
수도 : 오타와(인구 314,000 명)
인종 : 영국계 후손(40%), 프랑스계 후손(25%), 영국계 후손(3%), 원주민(4%), 기타 소수계 - 이탈리아, 우크라이나, 네덜란드, 그리스, 폴란드, 중국 등
언어 : 영어, 불어, 53개의 원주민 언어
종교 : 로마 카톨릭과 개신교 신자가 월등히 많지만, 종교가 캐나다인 들의 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는 않음.
정체 : 입헌군주제
지리 및 기후
캐나다는 동서로 약 7730km이다. 미국은 유일한 이웃나라이며 북서쪽에 접한 알래스카 역시 미국에 속한다. 국토가 광대한 덕분에 캐나다는 지지(地誌)적으로 엄청나게 다양함을 자랑한다. 대부분의 국토가 호수와, 강이 흐르는 삼림이기는 하지만 캐나다에는 산맥과 평원, 심지어는 소규모의 사막도 있다. 캐나다에는(미국에도 걸쳐 있기는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큰 호수 일곱 개가 있고, 세계에서 가장 긴 강 20개 중 3개도 역시 캐나다에 있다.
캐나다는 깨끗한 물에 관한 한 세계 어느 나라보다 축복받은 나라이다. 캐나다 국토의 25%는 숲이다. 캐나다에서 가장 높은 산인 로건(Logun) 산은 5951m로 유콘 남서부에 있다.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지만 캐나다는 일반적으로 해양국가로 생각되지 않는다. 광대한 중앙 지역에 인구의 대부분이 살고 있으며 이 지역이 여러 가지로 나라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덕분이다. 또 캐나다에서 가장 유명하고 많은 사람이 방문하는 지형인 로키 산맥과 나이아가라 폭포가 모두 내륙지역에 있는 탓도 있다.
퀘벡 동부에서 캐나다의 동쪽 끝에 이르기까지 대서양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 생활에 큰 몫을 차지하며, 구경하고 답사할 장소가 많아 관광객에게도 즐거움을 준다. 물론 서부에서는 태평양이나 브리티쉬 컬럼비아에 대해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캐나다에는 뚜렷한 사계절이 있고, 비록 계절이 바뀌는 시기에는 차이가 있지만 이는 캐나다 전 국토에 다 해당된다. 기후와 매일매일의 날씨에서 중요한 단일 요소는 위도이다. 자동차로 북쪽으로 몇 시간만 올라가도 기온이 (때로는 상당히) 떨어졌다는 것이 느껴질 때가 있다. 캐나다 전역에서 7,8월이 가장 더운 달이며 보통 상당히 건조하다.
미국과의 국경 지역에서는 여름 기온이 보통 섭씨 20도 중반이나 후반이고 해마다 며칠씩은 30도 이상 올라가기도 한다. 매니토바에서 브리티쉬 컬럼비아 중부까지가 여름에 온도가 제일 높이 올라가고 햇빛도 제일 강렬하다. 서부해안과 동부해안은 연간 강수량이 2500mm로 매우 습기가 많지만, 이 대부분은 겨울에 눈으로 내리는 것이다. 대평원은 일년 내내 상당히 건조하지만 몬트리올, 오타와, 토론토를 포함한 캐나다 남동부는 여름에는 아주 눅눅하고 겨울에는 축축하다. 온타리오와 퀘벡은 여름에 비가 많이 오지 않고 온난하다. 온타리오 남부는 한여름에는 더운 경우가 있다. 동부 해안은 보통 캐나다 다른 지역보다 더 시원하고 여름에 비도 더 많이 온다.
유콘, 노스웨스트 준주(NWT), 누나붓의 여름은 기분 좋게 온난하고 낮 시간이 아주 길다는 부가적인 이득까지 즐길 수 있다. 주요 도시를 제외하면 캐나다 어디서건 밤에는 연중 서늘하다. 캐나다는 겨울이 길다. 전국토의 3분의 2에서 1월 평균 기온이 영하 18도이다. 주요 도시에서는 이렇게 춥지는 않지만 기온은 보통 영하이다. 따뜻한 지역만 빼놓고 눈은 매우 많이 내리며 특히 토론토 동쪽에서는 더하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북쪽으로 갈수록 눈은 더 많이 온다. 그러나 캐나다 중부를 넘어가면 건조한 환경 때문에 눈이 많이 쌓이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역사
1500년경, 캐나다에는 각각의 언어와 문화를 가진 여섯 부족이 살고 있었다. 이들은 지리적 위치에 의해 분류되었다. 이뉴잇(Inuit, '사람들'이라는 의미, 에스키모라고도 불렸음) 족들은 1950년대까지도 과거와 똑같은 생활방식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이뉴잇족들은 별개의 부족으로 다른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선조를 따라 아시아에서 옮겨왔다. 미국의 북극 지역과 러시아, 그린란드(덴마크), 캐나다에 약 100,000여명의 이뉴잇족이 살고 있다. 캐나다에는 그 중 대략 25% 정도가 살고 있다.
캐나다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유럽인들은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에서 온 바이킹들이었다. 서기 1000년경 그들이 캐나다의 동쪽 끝인 뉴 펀들랜드 북부에 정착했었다는 증거가 있다. 바이킹들이 얼마나 오래 머물렀고 어디까지 탐험했으며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아메리카 대륙을 둘러싸고 여러 사건들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서기 1500년 정도였다. 유럽인들의 탐험이 몇 차례 있은 후 1534년 프랑수아 1세의 신하였던 프랑스인 자크 카르티에(Jacques Cartier)가 세인트 로렌스 강 만에 다다랐고 그 주변지역을 모두 프랑스의 영토라고 주장했다. 아마 캐나다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카르티에 였을 것이다.
원래는 휴런-이로쿼이 족의 말로 '마을'이나 '작은 공동체'라는 의미인 Kanata였고 거기서 나온 말이 카르티에의 보고서에 기록되었다. 캐나다라는 이름은 처음에는 세인트 로렌스 지역을 칭하다가 새로운 나라의 공식 국명이 되었다. 17세기에는 모피 무역회사가 이 신세계를 지배했다. 1663년 캐나다는 프랑스의 한 주가 되었고, 당시 60,000명의 프랑스인이 캐나다로 이주해 살고 있었다. 그들이 오늘날 상당 비율을 차지하는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의 조상이다. 물론 그 동안 영국도 손가락만 빨고 있지는 않았다. 허드슨 베이 상회(Hudson's Bay Company, 지금도 캐나다의 주요 백화점 체인이지만 오늘날에는 그냥 'The bay'로 알려져 있다)는 주로 아메리카의 동부 해안에 집중하기는 했지만, 1670년경 북부 온타리오의 허드슨 만 지역으로도 진출했다 프렌치-인디언 전쟁(French and Indian War)으로 알려진 전쟁은 1754년에 시작되었고 7년전쟁(Seven Years' War)으로 알려진 유럽에서의 전쟁은 1756년에 시작되었다.
처음 4년 동안은 프랑스가 우세했다. 그러나 1759년 영국군은 퀘벡시티에서 프랑스군을 물리쳤고, 이 전투는 후에 캐나다에서 가장 유명한 전투가 된다. 영국에 대항한 미국 독립전쟁(1775-83)기간 동안 50,000여명의 미 식민지 거주자가 캐나다 북쪽으로 옮겨왔는데 이들은 영국에 충성을 바쳐 '영국당원(Loyalist)'이라 불리던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주로 대서양 주와 온타리오에 자리를 잡았다. 이 이주민들 덕에 캐나다의 프랑스계와 영국계 주민의 비율이 어느 정도 균형이 잡히게 되었다. 곧 퀘벡과 온타리오에는 각각 총독이 상주하게 되었다. 1700년대 후반과 1800년대에 걸쳐 캐나다의 국경은 계속 더 멀리 뻗어나갔다.
1812년에는 캐나다와 미국 간의 마지막 전쟁인 1812년 전쟁이 시작되었다. 전쟁의 원인은 여러 가지지만, 미국이 캐나다를 점령하려 했던 것은 영국에 대항하는 움직임의 일환이었을 뿐이다. 미국과 캐나다는 각각 몇 번의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1814년 전쟁은 무승부로 끝났다. 1867년 영국 북아메리카 법령(British North America Act, BNA Act)이 영국 정부에 의해 가결되었다. 이로서 자치령 캐나다(Dominion of Canada)가 수립되었고 온타리오, 퀘벡, 노바스코샤, 뉴브런즈윅이 여기에 속하게 되었다. BNA 법령으로 미국보다 훨씬 덜 세부적이고 덜 총괄적이기는 하지만 캐나다에도 정부 체제가 수립되었다. 1차 대전 이후 캐나다는 서서히 성장과 번영의 길로 들어섰으며, 1931년에는 자발적으로 영연방의 일원이 되었다.
2차 대전이 발발하자 캐나다는 다시 영국을 지지했지만, 이번에는 미국과도 상호 방어 협정을 체결했고 진주만 공격이 있자 일본과의 전쟁을 선언했다. 2차 대전 이후 캐나다에는 다시 이민의 물결이 밀어닥쳤다. 전후에는 북아메리카에 경제적 신장과 번영의 시기가 왔다. 1950년대는 전례없는 호황의 시기로, 중산층이 급속히 성장했다. 1960년대는 사회적 격변의 시기로, 그에 따른 이상과 자유주의에 의한 사회 복지 프로그램도 생겨났다. 1967년 캐나다는 행사의 초점으로 몬트리올에서 세계 박람회를 열고 건국 100주년을 축하했다. 1968년 자유당 소속으로 저명한 피에르 엘리엇 트뤼도(Pierre Elliot Trudeau)가 캐나다의 수상이 되었고 1979년의 짧은 기간을 제외하면 1984년 은퇴할 때까지 권좌를 지켰다.
트뤼도는 집권 초기에는 대단한 지지를 받았고 국제적으로도 인정을 받았지만 집권 말기에는 그다지 인기가 없었다. 1976년 분리주의를 지지하는 퀘벡당(Parti Que\'becois, PQ)이 퀘벡 주 선거에서 승리했다. 트뤼도는 캐나다 통합 운동을 강력하게 펼쳤다. 1980년 퀘벡 주 국민투표 결과는 60%의 퀘벡인이 독립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와 분리운동은 다소 수그러들었다. 1984년 선거에서 브라이언 멀로니(Brian Mulroney)가 이끄는 진보보수당(Progressive Conservative party)이 전국적으로 엄청난 표를 얻어 트뤼도 시대를 종식시키고 권력을 잡았다. 1988년에는 주요 산업국 7개국이 참가하는 세계 경제 정상 회담이 토론토에서 열렸고 동계올림픽이 캘거리에서 개최되어 다소 불안했던 캐나다의 국제적 위신이 높아지고 세계는 캐나다를 호의적으로 주목하게 되었다. 1988년 선거에서 멀로니 정부는 다음 5년의 임기동안 재신임되었다.
1993년과 1997년의 선거에서는 퀘벡인인 쟝 크레티앙(Jean Chretien,)이 이끄는 자유당이 수월하게 승리했다. 크레티앙은 한때 트뤼도와 연합했었으며 강한 프랑스어 액센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오랫동안 권력 주위에 있어 내부 사정에 밝으면서도 수단을 부릴 줄 모르고 꾸밈없는 태도를 가진 것이 국민들에게 어필했다. 루시앙 부샤르(Lucien Bouchard, 현재 퀘벡당의 당수이자 퀘벡 주지사)의 영도 하에 퀘벡 독립 움직임이 1990년대 초반 다시 일어났고 퀘벡에서는 다시 국민투표가 행해졌다. 1995년 말 '분리는 없다(No Side)'가 다시 승리했지만 표차가 그렇게까지 크지는 않았다. 퀘벡에서 부샤르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현재 퀘벡 주민 대부분은 통합된 캐나다를 선호한다.
퀘벡이 분리되어 별개의 정치적 독립체를 이룰 가능성은 어느 정도는 항상 주-연방 상황에 달려있는 셈이고 반대로 그 가능성이 주와 연방 양쪽의 경제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최근 몇 년간 캐나다는 정치적으로 평온 무사했으며 자유당은 분란을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집권하는데 만족했다. 엄청난 무역 적자는 점점 감소했으며 결과적으로 세금 인하가 박두했다는 사실은 유권자들의 눈앞에 당근을 흔드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캐나다 군대는 여전히 세계에서 으뜸가는 평화유지군에 속하며 중동이나 키프러스같은 전통적인 분쟁 지역만이 아니라 소말리아, 쿠웨이트, 최근에는 과거 유고슬라비아 지역에서까지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source : PDluztBSa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