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orocco - 지리, 역사, 문화
모로코 (Morocco)
지중해의 아랫입술에 위치한 매혹적인 모로코는 회교적 신비에 가득 차 있어 마치 신화와 현실 사이에 떠 있는 요술 양탄자 같은 나라이다. 탄제르(Tangier), 카사블랑카(Casablanca), 마라케쉬(Marrakesh)- 이런 이름만 들어도 마치 코 끝에 맛있는 냄새를 맡은 것처럼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된다. 모로코는 오랫동안 신비스럽게 여겨져 왔다. 물론 그럴만하기 때문이었지만 여행을 많이 다닌 사람이라면 오히려 '진정한' 모로코가 사라졌다고 개탄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모로코의 독특한 생활사와 찬란한 예술을 격찬하고 있다. 아마도 모로코의 실체는 그 중간 어디일 것이다. 모로코는 아프리카 여행을 시작하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유럽에서 훌쩍 뛰어넘을 수 있는 거리여서 여행하기에 아주 친근하고 활기차고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모로코 여기저기 있는 야외시장은 깔개며 목제품, 보석들로 가득 차 있다. 해쉬쉬 다음으로 가장 많이 생산되는 것은 가죽제품으로 전세계에서 가장 부드럽다고 정평이 나있다.
통계 자료
정식국명: 모로코 왕국(Kingdom of Morocco)
면적: 447,000평방킬로
인구: 2천 9백만명
수도: 라바트(Rabat)
인종: 아랍 55%, 버버(Berber) 44%, 외국인 0.7%, 유태인 0.2%
언어: 공식어는 아랍어이고, 버버방언과 불어, 스페인어 영어가 함께 쓰인다.
종교: 이슬람
정체: 입헌 군주제
군주: 모하메드 6세
지리 및 기후
매우 다양하다. 모로코는 클럽메드 관계자들이 군침을 흘릴 만한 거의 모든 요건- 모래사장, 바다,눈-등을 갖추고 있다. 남쪽 해안은 서부사하라의 가장자리까지 뻗어있는 반면 북쪽으로는 모로코인구의 대부분이 종종 만년설이 쌓이는 아틀라스 산맥(Atlas mountains) 기슭에서 살고 있다. 아틀라스 산맥은 모로코를 난폭한 이웃국가인 알제리로부터 보호해주는 완충제역할을 하고 있다. 산맥과 모로코의 대서양쪽 해변 사이에는 비옥하고 관개가 잘 된 평야와 고원이 자리잡고 있다.
남쪽 앤티-아틀라스 (Anti-Atlas) 가장자리에는 마치 바닥을 보이며 흐르는 강물처럼, 골짜기가 점차로 사라지면서 광대한 사하라 사막의 모래와 돌 바닥으로 이어진다. '가장 더운 나라중의 가장 추운 나라' 라는 명성에 걸맞게 모로코의 추운 기간은 아프리카 같지가 않다. 특히 고지대의 겨울은 북극기후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여름의 산 기온은 낮에는 덥고 저녁에는 서늘하다. 11월에서 4월 사이가 우기라고는 하나 가끔 가벼운 비를 뿌리는 정도이다.
역사
다른 여러 북아프리카 국가와는 달리 모로코는 역사이래 한 종족에 의해서 지켜져왔다. 버버족(혹은 땅의 사람이란 뜻으로 이마지엔)은 수천년전에 이곳에 정착했고 한때는 모로코와 이집트 사이의 일대를 지배하기도 했다. 버버족은 여러 씨족, 부족으로 나뉘어져 항상 독립을 갈망했다. 아프리카 국가중 가장 매력적인 문화를 보존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독립심 덕분일 것이다. 페니키아인들도 버버족을 몰아내지 못했고 심지어 로마인들도 BC 146년 카르타고 함락후 조차도 버버족의 생활방식을 바꾸지 못했다.
로마인들은 언제나처럼 평화시대를 제공했고 그동안 많은 도시들이 세워졌다. 따라서 해변평야에 살던 버버족은 도시 거주인이 되었다. AD 3 세기쯤 기독교가 전래되었고 원래 중추적 권위를 싫어하는 버버족은 자신들만이 참 교회를 이룬다고 믿던 도나투스(Donatus) 파를 따랐다. 7c 아랍군사가 아라비아에서 떨쳐 일어났을 때 이슬람교가 세계무대에 알려지게 되었다. 아랍군사는 순식간에 이집트를 정복하고 8c초 북아프리카 전역을 지배했다.
9c 무렵 북아프리카는 점차로 분열되기 시작했고 점차로 통일 모로코로 향한 움직임이 생겨났다. 아랍족의 침략으로 인한 혼돈속에서 정통 버버족의 운동이 살아났고 그 기운이 모로코, 무슬림(Muslim), 알루시아(Alusia)까지 퍼졌다. 알모라비드(Almoravids)가 마라케쉬를 수도로 정했지만 곧 알모하드(Almohad)가 새로운 지배자가 되었다. 알모하드 지배하에서 전문적인 행정사무가 정비되었고 프앤에그라베스(Fès), 마라케쉬, 틀렘첸(Tlemchen), 라바트등이 그 문화적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결국 스페인에서의 기독교의 승리와 이슬람교도가 물린 과다한 세금 때문에 무슬림(즉 무어족) 지배는 쇠약해지기 시작했다.
그 자리를 메꾼것은 모로코 오지에서 온 메레니드(Merenids)족이었고 모로코 영토는 다시 번영기를 맞았으나 1492년 스페인이 기독교에 패배하자 반란이 일어나 메레니드의 100년 통치도 끝나게 되었다. 수명이 길지 않은 왕조들이 생기고 사라지기를 거듭한 후 1630년 알라위트(Alawite) 왕조가 확고한 통치를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 순조롭지는 않을지라도 이 왕조는 모로코를 약 300여년간 독립국가로 유지시키고 있는 실리적인 왕조이다.19c 후반 유럽 상인들이 들어오면서 식민지화작업이 이루어졌다. 그러자 프랑스, 스페인, 독일이 모로코의 전략적 위치와 풍부한 천연자원을 탐내기 시작했다. 결국 프랑스가 1912년 모로코 거의 전역을 점령했고 스페인은 해안의 조그만 보호령에 만족해야 했고 탄제르는 국제구역으로 선포되었다.
초대 프랑스 총독이었던 마샬 료띠(Marshal Lyautey)는 비교적 아랍문화를 존중했다. 그래서 모로코의 시가지를 붕괴하고 프랑스식 신시가지를 건설하라는 본국의 압력에 잘 대처했다. 그는 대서양 연안의 라바트를 새 수도로 정하고 카사블랑카 항구를 개발했다. 술탄도 명색으로나마 존속되도록 했다. 하지만 그 후의 총독들은 그다지 현명하지 못했다. 무턱대고 프랑스식을 강요한 덕에 1926년 리프산맥의 사람들이 버버족학자인 압드 엘-크림(Abd el-Krim)의 지도하에 반란을 일으키게 되었다. 이 반란은 프랑스와 스페인 군사 2만 5천명이 투입되고서야 겨우 진압할 수 있었다. 1930년대에는 2십만여명의 프랑스인이 모로코로 이주해왔다.
2차 세계대전당시 모로코는 연합군이 북아프리카에서 독일군을 몰아내기 위한 전초기지로서 사용되었다. 전쟁이 끝나자 술탄 모하메드 5세(Mohamed V)는 독립군을 지지하여 마침내 1956년 모로코 독립을 쟁취하였다. 그 과정에서 탄제르는 반환되었지만 스페인에서 세우타(Ceuta)와 멜릴라(Melilla) 같은 북쪽도시들의 반환을 거부했기 때문에 이 지역은 아직도 아프리카 대륙의 미약한 스페인 영토로 남아있다. 모하메드 5세는 1957년 자신을 왕으로 격상시켰고 4년 뒤 아들인 하산2세(Hassan II) 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하산 2세는 스페인 영역이던 서사하라까지 평화행진을 함으로서 모로코 국민의 가슴속에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고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할 수 있었다. 무려 35만이 넘는 자원병력의 힘으로 하산의 추종자들은 풍부한 광산지대가 자신들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토착 사라위스(Sahrawis)들을 정복했다. 그러나 1960년대에 들어서 십만여명이 넘는 거주자들이 독립을 원하고 있음이 분명히 드러났다. 사구이아 알 함라(Saguia al-Hamra) 와 리오 드 오로(Rio de Oro)가 이끄는 서 사하라 인민전선은 그 점령을 달가워하지 않았고 모로코를 상대로 길고 섬뜩한 독립전쟁을 시작했다. 1991년 유엔이 휴전을 중재하였고 최근에 그 문제를 그대로 놔두기로 결정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모로코의 힘과시 덕택에 서사하라의 공식적 지위가 결정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모로코의 서사하라 침략 때 모로코인들은 열광했지만 이웃국가인 알제리아(Algeria)는 서사하라 만큼이나 심기가 불편했다. 하산과 알제리아의 관계는 그때부터 쭉 좋지 않은 상태이다. 현재 개헌에도 불구하고 하산은 다소 유서 깊은 절대군주로 남아있다.
경제
국내 총생산 GDP : US$ 863 억 2천만
1인당 국민 총생산 GNP : US$ 2,389
인플레이션 :6%
주요산업: 농업, 제조업, 수산업, 관광업
주요교역국: 프랑스, 스페인, 이태리, 이라크
문화
아랍문화의 기준에서 본다면 모로코는 상당히 다양한 종류의 예술적 전통을 이뤄왔다. 그 다양함을 하나로 묶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무슬림 스페인에서 발달한 고전음악이나 변변찮던 버버족의 설화음악에서부터 현대 아프리카, 프랑스, 팝, 락의 퓨전음악까지의 음악이다. 알제리아 음악에 더 가깝긴 하지만 라이(rai) 음악은 모로코에서 급성장하고 있다. 라이음악은 아랍아프리카의 리듬이 두드러지긴 하지만(베두인 음악에 기원을 두고 있으므로) 다양한 전자악기를 사용하여 최면효과를 내는 가장 서구화된 스타일을 추구한다.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이슬람교의 영향으로 모로코에서는 춤을 자주 볼 수 없다. (율법상, 이슬람 여인은 춤을 추지 않는다.)
그래서 히두스(Hidous)라고 알려진 원형댄스가 버버족에서 그나마 상징적 원시무로 자리매김하고 있을 뿐이다. 다행스럽게도 벌거벗고 닭의 목을 치는 따위의 이식은 더 이상 없다. 모로코의 근간산업은 수공업이다. 마론퀴네리 (Maronquinerie-가죽제품)은 16c부터 가장 선호 받는 교역품이었다. 카펫, 도자기, 보석, 청동제품, 목제품 역시 품질이 뛰어나다. 인테리어는 그림이나 액자를 실내에 많이 걸어놓는 것이 유행이며 메데르사(Medersa)나 다른 종교건물이나 부유한 집에서는 정교한 타일 장식을 많이 쓴다. 회교여인으로 하여금 몰래 거리풍경을 살펴볼 수 있게 하는 베일인 마쉬라비야(mashrabiyya)도 여전히 건재하다. 이런 것들은 비록 기념품으로 살 것들은 못되지만 모로코의 수공업이 관광상품에만 의존하지 않는 다는 것을 보여준다.
외국의 입장에서 보면 모로코는 모둔 종류의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것 같다. 프랑스의 네오바로크 화가인 유진 드라크로아(Eugene Delacroix)는 1830년대 모로코를 방문한 뒤 모로코를 그리기 위해 몇 통의 물감을 쏟아 부었는지 모른다. 시장풍경, 하렘생활, 사자 사냥 등이 그의 캔버스를 장식했다. 그 당시엔 드라크로아가 너무 앞서나갔는지 모르지만 100년뒤에는 헐리우드가 무엇에 홀린 듯 모로코 숭배자가 되었다. 모로코에서 처음 촬영된 영화는 말린 디트리히(Marlene Dietrich) 였고 1942년 카사블랑카가 만들어졌다. 피터 오 툴(Peter O'Toole)이 아라비아의 로렌스 촬영으로 모로코를 활개치고 다니는 바람에 모로코는 그 당시 미국인들에게 환상의 나라로 부풀려졌다.
모로코에서 쓰이는 아라비아어(다리자-darija)는 중동에서 스이는 아라비아어와 상당히 다르다. 시골이나 산맥에서는 여러 종류의 버버방언이 쓰인다. 모로코는 생활, 관습에서 그들 나름대로의 이슬람문화를 창조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남성이 모든 면에서 우위를 차지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여행자가 보기에는 공공생활에서의 남녀차별이 엄격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니기도 할 것이다. 특히 대도시에서는 그런 불일치가 더하다. 모로코의 음식은 특이하지는 않지만 맛이 좋고 든든한 편이다. 주식은 쿠스쿠스(couscous)라는 것인데 세모리나(semolina)를 곱게 갈은 것으로 보통 야채와 양 캐서롤과 함께 나온다. 스위트 민트차를 즐겨마시지만 그렇다고 술을 못 먹는 것은 아니다. 모로코엔 금주령이 없다.
source : C0oh-o1pY7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