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alawi - 지리, 역사, 문화
말라위 (Malawi)
말라위의 관광 팜플렛에는 '아프리카의 따뜻한 마음'이라는 광고문구가 들어 있으며 이러한 과대광고가 일단은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말라위의 경치는 찬란하고 다양하며 말라위 사람들은 여행자들에게 아주 친절한 경향이 있다. 말라위는 또한 정말로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여행지라고 할 수 있으며 여러 곳의 국립공원과 야생동물 보호구역이 있고 산악 하이킹과 고원 트레킹, 광대한 말라위 호수에서의 멋진 다이빙이나 배타기, 한가롭게 시간 보내기를 할 수 있는 곳이다. 말라위의 믿을만한 교통수단과 아담한 크기덕분에 여행하기도 좋다. 다양한 범위의 숙박시설과 레저스포츠 때문에 여행자가 돈에 쪼들리거나 많거나 상관없이 멋진 시간을 보낼 수가 있는 곳이다.
통계 자료
면적: 118,500 sq km (45,750 sq mi)
인구: 9백60만명
수도: 릴롱웨(Lilongwe) (인구 23만5천명)
인종: 아프리카인 99%(체와, 툼부카, 야오, 롬웨, 세나, 니얀야, 통가, 은고니, 은곤데족 포함)
언어: 영어(공식어), 치체와(공식어), 기타 현지어
종교: 기독교 55%, 카톨릭 20%, 회교 20%, 토착종교
정체: 복수정당 민주제
지리 및 기후
말라위는 잠비아, 탄자니아, 모잠비크사이에 있는 작고 육지로 둘러싸인 나라이다. 길이가 약 900킬로미터(560마일)이고 가장 넓은 지점이 동서로 150킬로미터(95마일)인 말라위는 불가리아나 쿠바보다 약간 큰 나라이다. 동쪽 국경의 대부분은 아프리카에서 세 번째로 큰 호수로 말라위 국토의 거의 1/5을 차지하고 있는 말라위 호수(Lake Malawi)(니야사 호수(Lake Nyasa)라고도 불림)로 형성되어 있다. 그레이트 리프트계곡(Great Rift Valley)이 말라위호수가 있는 곳에 물길을 형성하면서 말라위를 통과하고 있다.
말라위의 주요한 고지대 지역은 니이카 고원(Nyika), 비프야 고원(Viphya Plateaux), 남부에 있는 물란예산(Mt Mulanje)이다. 말라위에서 가장 높은 지점은 물란예산의 중심에 있는 사피트와(Sapitwa)봉우리(3000미터/9840피트)이다. 말라위의 주요강으로는 말라위 호수의 남부끝에서 흘러나와 사실상 모잠비크의 잠베지강(Zambezi River)으로 흘러가는 쉬레(Shire)('쉬-레'라고 발음함)강이 있다. 말라위의 식물대는 약 1500미터(5000피트)의 습한 지대에서 많이 발견되는 종류인 미옴보(Miombo) 숲, 쉬레 계곡의 중간지대와 말라위 호수의 남쪽 해안에서 발견되는 저지대의 모파인(mopane), 말라위 전역에 있는 상록수 숲, 북부의 완만한 구릉지에서 발견되는 산악 초원, 호수가와 강가의 습지대가 있다. 다양한 종류의 서식지덕분에 말라위에는 다양한 종류의 토종 야생화가 많이 있다. 다양한 종류의 프로테아, 알로에, 글라디올라스, 헬리크리섬('에버래스팅'으로 알려짐)이 있다.
말라위는 특히 난초로 유명하며 400여종 이상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쉽게 볼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동물떼가 많지는 않지만 말라위에는 많은 수의 동물들이 있다. 대부분의 동물은 말라위의 국립공원과 야생동물 보호구역에서 볼 수 있다. 주요 국립공원인 리원데(Liwonde)에는 코끼리와 영양(임팔라, 부쉬벅, 얼룩영양을 포함하여)떼와 쉬레강의 하마도 유명하다. 얼룩말, 흑멧돼지, 엘란드, 자칼, 표범, 큰영양은 북부지역의 특히 니이야 국립공원(Nyika National Park)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말라위는 물고기로도 유명하며 말라위 호수는 총 500여종 이상의 물고기가 서식하는 곳으로 세계에서 다른 어떤 내륙의 호수보다 많은 종류가 서식하고 있다. 우기가 10월 중순이나 11월초부터 4월 중순이나 말까지 계속되며 건기는 5월부터 10월이나 11월까지 계속된다. 10월에 일일 평균 기온이 섭씨 약 32도(화씨 90도)까지 올라가며(쉬레 계곡 같은 내륙지역이 약간 더 덥기도 함) 7월은 일일 최고기온이 섭씨 약 21도(화씨 70도)정도로 가장 시원한 달이다.
역사
인간이 2백만년전부터 말라위 지역에 거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약 10만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현대인류가 정착한 유적이 말라위 호수가에서 발견되고 있다. 이러한 흔적은 이들이 아프리카의 남부지역에서 거주한 보스콥인(남아프리카에서 유골이 발견된 연대미정의 인류조상)과 같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으며 보스콥인은 현재 고립된 작은지역에서만 생존하고 있는 중앙 아프리카의 피그미족과 남부 아프리카의 산(San)족('부시맨')의 조상이다. 약 2천년전에 이 '석기시대의 말라위인'은 말라위지역으로 점차 이주해 온 다른 부족인 반투(Bantu)족의 압력을 받게 된다. 반투족은 철을 다루는 지식을 가지고 와 전달했으며 농업과 전쟁에서도 우세한 강점을 제공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반투족이 이전에 살던 거주민들을 완전히 지배하게 된다. 더 많은 반투족이 콩고지역에서 탄자니아를 경유해 말라위 북부지역으로 이주해 오게 된다. 남부에는 오늘날의 자이레에서 다른 부족들이 이주해와 남부지방을 통치한 왕국을 세우게 된다. 19세기초에 중요한 두 부족이 이주해 오게 된다. 모잠비크 서부지역에서 야오(Yao)족이 말라위 남부의 고지대로 침략해 오면서 지나는 길을 따라 평화롭게 거주하던 현지 거주민들을 죽이거나 노예로 팔기 위해 생포하게 된다. 동부 해안에서 아랍 무역상들의 무기를 공급받은 야오족은 아프리카 내륙지방을 공격하여 노예무역상에게 노예를 공급하던 여러 아프리카 부족중의 하나였다. 거의 같은 시기에 오늘날의 남아프리카에서 줄루(Zulus)족이 말라위 남부지방으로 이주해 오기 시작하고 많은 현지 부족을 지배하면서 사실상 말라위 전역에 퍼지게 된다.
말라위에 도착한 최초의 유럽인은 오늘날 모잠비크의 동부해안에서 아프리카 내륙으로 들어온 포르투갈 탐험가들이었다. 말라위지역에 도착한 가장 유명한 유럽 탐험가는 1850년대에 말라위지역을 최초로 여행한 스코틀랜드의 선교사인 데이빗 리빙스톤(David Livingstone)이었다. 토착민과의 형편없는 관계와 말라리아의 창궐에도 불구하고 많은 스코클랜드의 선교사들이 말라위에 선교단과 수도원을 세우게 되며 대부분은 열병으로 죽게 되며 아프리카인을 거의 개종시키지 못하게 된다. 명백하게 정해진 목표는 거의 성공하지 못했지만 선교단은 다양한 모험가들과 무역상들에게 길을 열어주었으며 뒤이어 그들에 의해 말라위는 식민지화를 다투는 뜨거운 지역이 된다. 1878년 중앙아프리카의 강 루트를 개발하고 무역을 개시하려는 목적에 관심을 둔 한 스코틀랜드인이 리빙스톤 중앙 아프리카 선교회사의 형태로 말라위지역을 식민지화하게 된다.
영국 정부는 1889년 쉬레 고지대를 보호령으로 만들고 점차 확대하여 식민지 '니야사랜드(Nyasaland)'라고 불리는 말라위호수의 서쪽지역까지 보호령에 포함시킨다. 영국의 지배가 확대됨에 따라 이 지역의 무역과 외국인수가 증가하게 되며 그에 따라 토착민들이 식민지화에 대해 저항하는 것도 증가하게 된다. 성직자 존 칠렘브웨(John Chilembwe)가 1900년대 초에 처음으로 영국에 대항하여 고분분투하게 되고 대규모 사유지를 공격하여 백인 관리자를 죽이게 된다. 식민당국은 이들을 척결하게 되고 1950년대까지 표면적인 독립운동은 나타나지 않게 된다. 영국은 북부 로데시아와 남부 로데시아(지금의 잠비아와 짐바브웨) 연방을 니야사랜드와 통합하고 이 조치로 인해 식민통치에 대항한 분노는 더 깊어지게 된다. 1944년에 결성된 니야사랜드 아프리카 의회(Nyasaland African Congress)는 통합이 발표된 후 하스팅스 반다(Hastings Banda) 박사가 이끌게 된다. 1년후에 식민당국은 긴급상황을 선포하고 반다를 체포하고 날뛰고 돌아다니면서 52명의 아프리카인을 죽이게 된다. 저항은 계속되고 1960년 반다가 풀려남으로써 더욱 거세지게 된다.
결국 영국은 선거에 대해 반다와 합의하게 되고 다음해에 선거가 실시되어 반다와 그의 당(지금은 말라위 의회당(Malawian Congress Party)이라고 불림)이 압도적인 승리를거두게 된다. 바로 그 후 로데시아와 니아사랜드 연합은 해체되고 말라위는 1964년 7월에 독립을 선언하게 된다. 반다의 통치는 가혹한 것으로 드러나며 침묵하지 않는 반대자들은 추방되었다. 자신의 사업관계를 통해 반다는 또한 경제를 완전히 장악하게 된다. 충분한 권력을 장악한 것같지는 않았지만 반다는 1971년에 스스로 '종신 대통령'을 선포하게 된다. 남아프리카와의 편안한 관계로 인해 새로운 수도인 릴롱웨(Lilongwe)(그 전에는 브란티어(Blantyre)가 수도였음)를 건설하고 1975년 사업을 개시하게 된다.
1978년 독립이후 첫 선거가 실시되었지만 반다가 입후보하려는 모든 사람을 개별적으로 심사하여 예상 후보자들에게 영어테스트를 실시하는 식으로 선거전에서 유력후보의 90%를 바로 자격이 없는 것으로 판정한 것을 생각하면 정말로 어리석은 광대극에 불과했다. 1980년대가 지나면서 반다가 정치체제, 집권당, 경제를 완전히 장악한 말라위 자체였다는 것이 점차 분명해진다. 한 신문사는 반다가 집권한 30년동안 25만명의 사람들이 사라지거나 살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1990년대까지 반다의 전체주의적인 일당집권에 대한 반대가 거세지고 냉전이 끝나고 말라위같은 서방국의 '속국'에 대한 원조가 줄어들게 됨에 따라 반대운동은 계속 박차를 가하게 된다 1992년 카톨릭교의 주교가 반다를 비난하는 서한을 배포하고 말라위 전국에서 시위가 일어나면서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온다. 원조국들이 비인도적인 원조를 중단하여 반다가 권력을 포기하는데 합의하게 될 때서야 수명을 재촉하는 마지막 골치거리는 사라지게 된다. 선거민의 80%이상이 1993년의 국민투표에 참가하여 2-1의 비율로 반다를 누르고 새로운 체제에 대해 표를 던지게 된다. 군사 쿠데라라는 간단한 위협에도 불구하고 복수당 선거가 그 다음해에 실시되었다.
그리고 남부의 마친가(Machinga)출신의 회교도인 바킬리 물루지가 새로운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물루찌는 즉시 정치범을 석방하기 시작하고 언론과 연설의 자유를 보장하고 반다가 통치하던 시대의 특징이던 비공식적인 야간 통행금지를 해제한다. 반다 자신은 1995년 세 명의 정부장관을 살해하도록 명령한 것으로 재판에 회부되었지만 무죄 석방되고 나중에 그는 '모고서 일으킨' 고통에 대해 사과를 하게 된다. 특히 큰 타격을 주는 인플레이션, 심한 경제개, 늘어나는 실업, 영양부족, 범죄증가와 함께 복수정당 민주제를 운용하는 것이 쉽게 되지는 않고 있다.
경제
국내 총생산 GDP : US$ 42억 6천만
1인당 국민 총생산 GNP : US$ 264
연간 성장율: 6%
인플레이션: 83%
주요 생산품: 담배, 원유 가공, 운송장비
주요 교역국: 미국, 남아프리카, 짐바브웨, 일본, 독일
문화
말라위에 있는 모든 아프리카인은 반투족의 혈통이다. 주요 민족집단('부족')은 말라위의 남부와 중부지방을 차지하고 있는 체와(Chewa)족, 역시 남부지방에 사는 야오(Yao)족, 북부의 툼부카(Tumbuka)족이 있다. 그리고 주로 도시에 사는 약간의 유럽인과 아시아인이 있다. 말라위의 모든 다른 부족은 자신의 언어나 방언이 있다. 체와족이 우세한 집단으로 체와(Chewa) 또는 치체와(Chichewa)라고 불리는 언어가 국어이며 공통언어로서 말라위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영어는 공식어이며 특히 주요도시와 가끔은 외진 시골지역에서도 널리 사용된다. 말라위의 기타 언어로는 북부에서 약 50만명의 인구가 툼부카(Tumbuka)어를 사용하며 남부에서 약 60만명의 인구가 야오(Yao)어를 사용한다. 말라위 대부분의 국민들은 기독교도이며 대개 19세기말에 선교사들이 세운 기독교 교회 중 한곳의 일원이다. 북부에는 특히 말라위 호수를 따라 회교도가 있으며 이 지역에서 일하던 아랍 노예무역상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기존의 종교와 함께 많은 말라위사람들이 또한 전통적인 애니미즘을 믿고 있다.
해외와 말라위내에서 작품을 크게 인정받은 말라위 예술가중에는 쿠티 메데(Cuthy Mede)(아마 가장 유명할 것임), 케이 치롬보(Kay Chirombo), 윌리 남페예(Willie Nampeya), 루이스 딤프와(Louis Dimpwa)가 있다. 그들은 돌과 나무 조각, 납결(밀랍을 이용한 염직법), 그림을 제작하면서 다양한 매체로 작업을 한다. 다른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와 마찬가지로 말라위에도 풍부한 구전 전통이 있다. 독립이후 말라위의 새로운 작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며 하스팅스 반다의 독재적인 통치로 인해 수많은 훌륭한 작가들이 1990년대 중반까지 추방되기도 한다.압제, 부패, 권력남용 등이 많은 작가들의 공통적인 소재임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작품은 영어로 쓰여졌으며 거의 모두가 영어로 출판되었다.
유명한 말라위 시인중에는 프랭크 치파술라(Frank Chipasula), 가장 많은 찬사를 받은 작품이 레인메이커(The Rainmaker)인 스티브 치몸보(Steve Chimombo)가 있다. 말라위의 주도적인 소설가로는 1970년대의 아프리카 여행에 대한 반자전적인 작품이 큰 찬사를 얻은 렉슨 카이라(Legson Kayira), (말라위의 다른 여러 작가들처럼) 작품 때문에 몇 년동안 감옥에 투옥된 샘 음파수(Sam Mpasu)가 있다. 전통음악과 춤은 말라위의 사회적인 기능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대부분의 부족에 자신들의 독특한 가락과 춤이 있다. 악기 중에는 조롱박으로 만들어 손에 들고치는 울림바(ulimba)와 나무줄기에 새겨만든 의례용 큰북 같은 북, 서양의 실로폰과 비슷한 맘빌리라(mambilira)가 있다.
마세체(maseche)라고 불리는 다양한 방울과 흔드는 기구를 댄서의 다리와 팔에 매달기도 한다. 말라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전통 춤은 체와족의 굴레 왐쿨루(Gule Wamkulu)로 활기있게 토착종교를 반영하며 비밀단체의 활동과도 관련되어 있다
source : L9GSVwRrLcg